본문 바로가기

Bible & Church/Shema Isreal

부흥의 동력

부흥의 동력

룻기 4:14~15

Introduction

거룩한 주의 날을 맞아 예배하기 위해서 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질병과, 염려거리들이 오늘도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다 물러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뒤좌우에 인사하겠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당신 때문에 행복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행복한 관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정보화 사회임에 분명합니다. 신문이나 잡지는 물론이고, 인터넷 TV 등등에서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장마철 빗방울 떨어지듯이,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며칠 전에 TV를 보다가 정말로 중요한 정보를 하나 얻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대다수가 자동차의 바퀴에 문제가 생겨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에는 자동차 바퀴의 공기압이 평상시보다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대개의 운전자들이 자동차에 공기압을 점검하지 않고 다니다가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일반도로를 달릴 때에는 큰 문제가 아닌 것이라도 고속도로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TV에서 직접 실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이어 속도를 실험하는 장치에 새 타이어를 장착하고, 시속 100Km이상으로 주행케 하는데, 한 쪽은 공기압을 평소보다 적게 했고, 다른 한쪽은 평소보다 10% 정도 많게 했습니다. 잠시 후에 열감지기로 보았더니, 공기압이 적은 타이어는 고열로 팽창하고 있었지만, 공기압이 많은 타이어는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속도를 조금 더 높였습니다. 그랬더니 공기압이 적은 타이어는 물결모양을 일으키다가 이내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공기압이 많은 타이어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앞 타이어가 갑자기 터져서 논바닥으로 날아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앞 타이어는 새 것으로 교체합니다. 그런데 방송을 보면서 타이어가 새 것이냐 아니냐 보다 공기압을 적정한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고속도로를 주행하게 되시거든 적정 공기압 보다 10%정도 많게 하셔서 안전운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자동차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동차가 어떻게 움직입니까? 어떤 영화에 보니까 말에다가 묶어서 자동차를 끌고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자동차를 끌고 다닐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동차는 엔진의 동력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엔진의 힘이 좋으면 그 차는 힘이 있는 차가 되지만, 엔진이 시원치 않으면 겉모습이 아무리 번지르르 해도 별볼일 없는 차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도 부흥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흥의 동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힘이 있고, 강력한 것이라면 놀라운 부흥을 이룰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부흥을 이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포중앙교회는 강력한 부흥의 동력을 가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본문 1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사사기 4:15)

본문은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와서 그를 축복하며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보니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회복자라는 것이 바로 부흥케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나오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향 땅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엘리멜렉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이름으로 보아 유력한 신앙인의 가문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성경은 그 시대를 일컬어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그 때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거나, 또는 각 지파의 족장들이 자기의 부족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에 그의 남편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왕이시라. 이 얼마나 엄청난 고백입니까? 이처럼 뛰어난 신앙의 가문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룻기 1:21절 말씀에 보면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력한 신앙의 가문일 뿐만 아니라,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 큰 흉년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풍족하던 삶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불편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그의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고향 땅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갔습니다. 당장에 찾아온 흉년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흉년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 고향 땅을 떠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압 땅에서 살다보니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터를 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살기에 바빠서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은 꿈에나 그릴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가문이요, 오직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언약의 땅을 떠나 모압에 거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엘리멜렉을 죽게 하셨습니다. 나오미는 이런 상황에 이르자 두 아들을 장가들게 했습니다. 모압 여인들로 아내를 삼게 했습니다. 아마도 남편 잃은 외로움을 며느리를 봄으로 잊으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집을 치셨습니다. 그의 두 아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도, 두 아들도 죽고 난 후에 나오미는 깨달았습니다. 그가 머물 곳이 모압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늦었지만 모압을 떠나 고향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돌아오게 됩니다.

나오미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고향의 사람들은 이 사람이 나오미냐? 하면서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나오미는 자신을 더 이상은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마라로 부르라고 합니다. 나오미라는 뜻은 기쁨, 희락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자기에게 기쁨이 없고,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통이라는 뜻의 마라로 불리워야 맞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이와 같이 기쁨을 잃게 됩니다. 나오미가 마라가 되듯이 쓰디쓴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인생이 이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죄의 길을 따라 갑니다. 잠시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주님과 함께 당하는 잠시의 고난을 못 견뎌 하고,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떠나고,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은 비단 교회 밖의 세상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교회에서 중직을 받아 섬긴다고 하지만, 마음은 온통 세상에 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나오미는 말합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오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룻기1:21) 그렇습니다. 모든 풍족함을 잃어버리고, 고통하고, 괴로워 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곁을 떠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절망이요, 고통 뿐인 나오미에게 다시금 부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생명의 회복자 그의 삶에 부흥을 가져다 주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이 절망하며, 고통하던 나오미가 다시 기뻐하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되어졌습니다. 나오미의 삶에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오미의 삶에 부흥이 있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오미에게 일어난 부흥의 동력은 무엇입니까? 본문 15절 말미에 보면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나오미를 사랑하고, 나오미가 사랑하는 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나오미와 룻의 사랑이 나오미의 삶에 부흥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부흥의 동력이 됩니다. 사랑하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코 부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이 부흥하고, 직장이 부흥하는 동력은 사랑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기술이 아닙니다. 세상의 교훈도 동일한 이야기를 합니다. 가화만사성이라. 무슨 말입니까? 가정이 화목하고 서로 사랑해야 모든 것이 다 잘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이 넘치게 될 때에 모든 일에 부흥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방법론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부흥은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은사가 충만했습니다. 능력과 권세가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교회를 향해서 부흥한 교회라고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심히 잘못된 교회라고 했습니다. 책망했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없고, 분쟁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교회를 부흥케 하라는 귀한 사명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서 부흥의 주역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렇다면 룻기에 나타나는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룻기는 어떤 사랑이 나오미의 가정을 부흥으로 이끌었고,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부흥을 위한 동력이 되었다고 말합니까?

2.1.

첫째는 배려하는 사랑이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고부간입니다. 고부간 그러면 앙숙이 아닙니까? 한 남자를 가운데 놓고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방식으로는 싸울 수 밖에 없는 관계였을지 모르지만, 이 둘은 서로를 깊이 배려하는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완전히 망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두 자부를 불러놓고는 말합니다. 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갈 것이고, 너희의 남편이 될 다른 아들이 내게는 없다. 너희는 아직 젊은데 긴 세월을 홀로 살아야 하니, 그것도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멸시를 받으며 살아야 하니, 그러지 말고, 네 동족에게로 돌아가서 좋은 사람 만나 시집을 가거라.. 나오미는 젊은 두 자부를 불러 놓고, 진정으로 그들의 앞날을 염려함으로 자기를 떠날 것을 종용했습니다. 이것은 나오미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요즘 스토커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연예인이나, 유명한 사람을 사랑해서 그들의 뒤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나칩니다. 몰래 집에 들어와서 자기가 사랑한다는 고백을 남겨놓기도 하고, 온갖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그 일 때문에 상대방이 어떻게 되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의 사랑을 쏟아놓습니다. 사랑에 배려가 빠지게 되면 스토킹이 됩니다. 부부간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리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한다고 해도, 스토커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른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자기의 며느리들을 배려했습니다. 며느리들의 형편을 살펴주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나오미의 이런 사랑이 결국은 그의 삶에 새로운 부흥의 길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부흥의 동력이 되는 사랑은 남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우리 자신이 부흥의 동력으로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예배하는 성도들을 배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교회 부흥은 물론이고, 가정과 세상을 부흥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2.

둘째는 끝까지 섬기는 사랑입니다.

나오미는 그의 며느리들을 향해서 네 민족에게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간곡한 권유에 첫째 며느리인 오르바는 자기 민족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4절 말씀에 보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는 것은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낯선 유대 땅에서의 삶이기 때문에 앞날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늙은 노모를 모시고 섬겨야 하는 고생은 불을 본 듯 뻔한 일입니다. 그런데 룻은 시어머니의 배려와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어머니를 따르겠습니다. 하면서 붙좇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자기의 고향을 버렸습니다. 동족을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가져왔던 우상의 신앙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나섰습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 나선 것은 부귀와 영광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 시어머니를 사랑했고, 사랑함으로 섬기기 위해서 그랬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섬김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손해와 불이익을 감수하고, 고난과 역경을 감수하고 기꺼이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란 대개 어떤 분입니까? 요즘에는 안 그런 어머니들이 간혹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기꺼이 섬기는 분입니다. 신분이 낮아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 뒷바라지 합니다. 자기의 인생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는 것처럼,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부흥과 삶의 풍성함은 바로 이런 사랑으로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함으로 끝까지 섬기는 귀한 모습이 부흥의 동력이 되어집니다. 교회를 능력있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을 기쁨과 환희로 가득하게 바꿉니다. 절망의 시대를 희망과 부흥의 시대로 일구어갑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하나님은 우리 마포중앙교회를 향하여 부흥을 기대하십니다. 부흥을 이루어 하나님의 축복의 시대를 만들어가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부흥을 이루어야 할 것이고, 부흥의 주역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오미의 일생은 고통이 가득한 생애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절망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생명의 소망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오미와 룻과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이 나오미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나오미 뿐만 아니라 룻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부흥의 동력이 됩니다. 사랑은 연약해 보이지만 결코 연약한 것이 아닙니다. 무능해 보이지만 결코 무능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흥을 사모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을 잃고서는 절대로 부흥의 주역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부흥의 진정한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사랑이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어려운 고난을 자초하는 일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ㄱ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오미와 룻이 서로를 향해서 아름다운 사랑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기꺼이 섬기는 자가 되기로 작정했던 것처럼, 사랑함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함으로 끝까지 섬기는 아름다운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사람이 교회를 부흥케 하는 힘이 되고, 가정에 축복을 가져오는 동력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포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