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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부흥, 그 위대한 일이여

부흥, 그 거룩한 일이여

출애굽기 3:1~5

Introduction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산마다 낮아지고,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인생의 형통한 대로가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 따라 하시면서 앞뒤좌우에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향한 기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놀라운 기적을 준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쓰신 책 가운데 거룩한 부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책의 서론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언덕을 오르던 농부가 목덜미 뒤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하늘이었습니다. 그는 이 더운 날에 물지게를 지고 오르막 길을 오르기를 수십 번, 한나절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산등성이에 있는 자신의 논에 모내기할 물을 길어 나르는 중이었습니다.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를 짓는 그에게 모내기 철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은 고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계곡 아래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 비록 가뭄에 물도 시원치 않아 말라가는 개울 바닥이었지만, 그곳을 바가지로 소리 내며 물을 긁어 담았습니다. 그리고 물지게로 날라 자신의 논에다가 부었습니다. 하루 종일 물지게를 졌더니 어깨의 살이 벗겨져 피가 비치는데, 논바닥은 물을 부은 흔적만 남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두어 마지기의 천수답에 가족의 생계가 달렸기에 그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태 전 양식 없이 지내는 겨울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물지게를 지고 한 걸음 걷다가는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논바닥에 물을 부으면서도 푸른 하늘에서 구름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서럽도록 푸르른 하늘이었습니다. 땅거미가 어스름할 때 농부는 어깨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주름으로 굵게 패인 볼에 흐르는 눈물도 투박한 주먹으로 훔치면서….

이튿날 아침 일찍 다시 물지게를 지고 지을 나오려는데 순식간에 바람이 불면서 하늘 가득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온 땅이 컴컴해지더니 천둥 번개 소리와 함께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아아, 비가 온다. 비, 비, 비….”

모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수정 발처럼 산하를 드리웠습니다. 이 십여 분 동안 소낙비가 쏟아지고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맑게 개었습니다. 농부는 자신의논을 찾아 언덕을 뛰어 올라갔습니다. 자신의 논마다 가득 고인 물은 모내기 하기에는 너무나 넘쳐서 물길을 터주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비 오기 전 농부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많이 애쓰지만 열매는 적고, 지혜를 동원하지만 우리 앞에 있는 결과는 우리를 슬기롭다고 말해주지 않는 것같습니다 (중략) 이제 대다수의 교회에선 폭발적인 성장이 아니라 규모를 유지하는 일도 벅차게 느껴질 정도로 복음 사역은 벽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에게는 부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고 부어주시는 거룩한 은혜의 소낙비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다시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시키고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방편들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사람을 근본적으로 고치고, 교회를 새롭게 하실 쏟아 부으시는 긍휼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김남준 목사님이 갈파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가물어 메마른 땅과 같습니다. 그대로 둔다면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절실히 부흥을 필요로 합니다. 아니 한국교회 이전에 우리 마포중앙교회에도 부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흥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진정한 부흥, 거룩한 부흥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부흥의 꿈과 기대를 품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날에 자기 민족을 위한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바로의 딸의 아들로 살고 있었습니다. 굳이 그런 일에 개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애굽 왕조의 귀족으로 부귀와 영화, 권세를 누리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전혀 불편한 것이 없었고,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으로서의 영광을 얻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고난 당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는 그의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민족의 회복과 부흥을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 민족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며 분노했고, 급기야는 히브리 사람들을 괴롭히던 애굽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민족이 고통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젊은 날의 모세는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룰 수 있을 줄로 알았습니다. 애굽 사람을 쳐 죽였을 때에 그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었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는 으쓱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적인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회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결코 부흥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모세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어느날 모세는 히브리인들끼리의 싸움에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동족이 서로 다투어서는 안된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 되었고, 결국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인 살인자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바로에게 쫓겨 광야로 도망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을 꿈꿨지만, 그는 결코 그 일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살인자의 죄명을 쓰고, 광야에 유랑하는 목자로 숨어 지내야만 했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출애굽기 3:1)

모세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을 간절히 사모한 사람이었지만, 부흥사역에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애굽에서 도망쳐서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이나 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부흥은 인간적인 힘과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부흥은 진정한 부흥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교회의 부흥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온갖 방법들을 강구합니다. 셀 목장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자연적교회성장의 이론을 따라 교회의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기도 합니다. G12로 새로운 교회의 혁신을 시도합니다. 다양한 전도프로그램을 운용하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박차를 가합니다. 연예인들을 강단에 세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인간적인 어떤 수고나 노력으로도 하나님의 교회의 부흥은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학식이 있었습니다. 재능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모든 학문을 통달했습니다. 고귀한 신분의 가문에 속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정치적으로도 유망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을 견제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흥운동을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은 결코 부흥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흥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합시다. “부흥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은 거룩한 운동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기술이나 방법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고, 또 그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 하나님의 산에 오르는 사람만이 부흥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산 호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 올라가야만 부흥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부흥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애굽에서 배웠던 학문이 아닙니다. 그의 경륜과 지혜가 아닙니다. 그의 정치적인 권력기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될 때에 그는 부흥을 이룰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불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한다고 해도 진정한 부흥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포중앙교회는 큰 부흥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부흥의 시대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먼저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와서 불꽃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불 같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사이에서 나타나셨습니다. 모세의 눈에는 굉장한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놀라운 광경을 그냥 스쳐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더 가까이 가서 보고자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모세를 막으셨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부흥을 이루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돌격하여 망하게 하시고, 실패케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4~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 3:4~5)

왜 하나님께서 모세가 그리로 오는 것을 막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산 호렙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흥, 교회의 부흥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그 자리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13절 말씀에 보니 멀리 있던 너희라고 말씀합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는 사람이 감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하나님의 산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에 시내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할 것이라(출애굽기 19:12~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부흥은 거룩한 일임을 반증합니다. 부흥이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심히 거룩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계략이나 힘, 또는 능력을 이용해서 부흥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단순한 실패가 아닌 철저하게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흥을 이룰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은 거룩한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으로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으로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을 얼마 가지고 오라든지.. 깨끗한 정화수로 온 몸을 씻으라든지.. 아니면 거룩한 예복을 만들어 입으라든지... 거룩한 곳에 가까이 할 수 있는 허다한 많은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굳이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굳이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신을 벗는다는 것이 갖는 독특한 영적 의미 때문일 것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몇 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2.1.

첫째는 자기 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지금까지 그가 살아왔던 모든 인생의 과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력과 능력, 경험 등등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버리라는 것입니다. 특히 인간적인 능력으로 부흥을 이루려고 했던 모든 것을 다 내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자기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세상적인 배경이나 환경을 신뢰하며 살았습니다.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고, 부흥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모든 것이 가능할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는 부흥을 꿈꾸기는 했지만 철저하게 불신앙적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부흥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이런 삶의 모습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 날의 모든 죄 된 역사를 송두리째 벗어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존귀함과 거룩함을 인정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모세를 향해서 신을 벗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회개하라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물론 그 말씀이 맞습니다. 모세의 신발은 죄로 얼룩진 신발입니다. 그의 신발은 하나님 없이 살아왔던 삶의 과정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벗어버림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삶 전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주와 하나님께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죄된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부흥의 길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고집이 살아있거나 죄 된 자아가 꿈틀거려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벗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존귀함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흥을 이룰 수 있는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의 대열에 동참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을 벗어야 합니다. 옛 사람의 신을 벗어 자기를 부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방향전환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을 우리를 가까이 오라 하시고, 부흥의 대열에 능력있는 자로 참여케 하실 것입니다.

2.2.

둘째로 신을 벗는다는 것은 권리포기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네가 갖고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고대근동아시아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권리를 포기하게 될 때에 신발을 벗어주는 것입니다. 룻기에 보면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자에게 찾아가서 그의 기업을 무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기업을 무르게 되면 나오미와 룻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기업무를 자는 그것을 거절하고, 자기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신을 벗어 보아스에게 주었습니다. (룻기4:8)

기업을 상속받는 권리가 있는 자가 그 권리를 포기하게 될 때에 신을 벗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모든 권리를 포기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으로는 절대로 부흥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오를 수도 없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인 부흥의 일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을 이루기 원하는 자는 권리포기를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것이 MBC 주몽입니다. 주몽이 이끄는 다물군이 비류와 더불어서 졸본을 통합하고, 또 현토군마저 정복했습니다. 드디어 고구려라는 나라를 건국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 때에 지금까지 의기투합했던 다물군과 졸본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누가 고구려의 왕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물군은 당연히 주몽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졸본은 소서노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두 진영간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택한 히든 카드가 주몽과 소서노가 결혼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분열되고 멸망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기득권을 주장하고, 권리를 내세우게 될 때에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꺼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면 그 나라는 흥왕하며 놀라운 부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교회 안에서 권리를 주장한다면 결코 부흥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하여 부흥을 이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흥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부흥을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권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목사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장로의 권리를 포기하고, 교인들이 자기의 기득권과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권세만이 역사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고, 주의 성산에 올라 놀라운 부흥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 부흥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신을 벗어야 합니다. 기득권의 신발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기꺼이 우리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늘 권세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모든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으신 것처럼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3.

셋째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종이 된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올 때에 나를 아들로 여기지 마시고 품군의 하나로 여기소서. 하면서 왔습니다. 그는 스스로 종을 자처하며 신을 신지 않았습니다. 맨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명하여 신을 신기라고 했습니다. 고대 근동아시아에서는 종은 신을 신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유민이나 주인만이 신을 신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왕자로 나서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으로 섬기는 자가 될 때에 비로소 부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왕자였습니다. 애굽의 힘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왜 교회가 부흥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교회의 부흥을 그토록 원하고 있고, 또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그토록 부흥을 사모하는데 왜 부흥되지 않습니까? 종은 없고, 주인행세하는 사람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주인행세하고, 장로님들이 주인행세하고, 헌금많이 하는 어떤 사람이 주인행세합니다. 그러기에 진짜 주인되신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실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흥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흥을 원한다면 종이 되어야 합니다. 종은 말이 없습니다. 종은 주장이 없습니다. 종은 그저 아멘일 뿐입니다. 순종일 뿐입니다. 종은 죽으면 죽으리라 할 뿐입니다. 종은 큰소리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종이 될 때에 교회가 부흥합니다. 우리가 종이 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서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주인행세하지 말라, 왕자행세하지 말라. 배운 척하지 말라. 종이 되라. 낮아지고 겸손하고 무조건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이루실 거룩한 부흥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모두가 신을 벗어 종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어떤 위대한 일을 맡기시기에 앞서 먼저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호렙산에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고 올라간 모세,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허둥거리며 신을 벗었을 것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 모습을 우스울 지경입니다. 누군가 곁에서 보고 있었노라면 이게 무슨 코메디도 아니고 하면서 포복절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을 원한다는 교회와 성도들이 거대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거나 엄청난 물자를 투자해서 획기적인 기획을 만들어내는 등의 일을 하지 않고, 자기를 부정함으로 회개하는 자가 되어지고, 자기의 권리를 포기함으로 손해보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 종이 되어서 순종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진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시는 부흥은 세상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방식으로는 절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세상의 미련해 보이는 것이지만, 우리의 신을 벗어버릴 때에, 우리 자신을 부정하고, 권리를 포기하고, 스스로 종이 되어 겸손히 섬기는 사람이 될 때에 비로소 부흥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반드시 부흥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부흥을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흥은 인간의 일이 아닙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잔꾀나 술수로, 또는 세상의 물질과 기획으로 부흥을 이루려는 생각을 포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신을 벗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부정의 회개로, 권리포기의 희생으로, 종으로 섬김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을 우리 마포중앙교회에서 이룰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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