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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부흥을 위한 준비 - 좋은 땅 가꾸기

부흥을 위한 준비 (1)

부제 : 좋은 땅 가꾸기

마태복음 13:3~8

Introduction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청년사역을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저희 집에 청년부의 임원들이 방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 한 여자 청년이 제 집사람에게 물었답니다. 사모님, 애들이 너무 이뻐요 그런데 씨가 좋은 거예요. 밭이 좋은 거예요? 제 집사람은 시집도 안간 처녀의 황당한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후에 제게 그 이야기를 해 주면서 그 때는 뭐라고 해야 하는거야? 하고 물었습니다. 난감한 일입니다. 씨가 좋다고 해야 할지, 밭이 좋다고 해야 할지 그 때에 제가 대답은 이랬습니다. 씨가 좋기는 좋은데, 아무 밭에나 뿌릴 수 없다…”

씨앗이 많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밭이 좋아야 합니다. 땅이 좋아야 합니다. 농산물에 대한 광고를 보시면 어떤 품종이라는 내용보다는 어디에서 났느냐를 강조합니다. 이천 쌀.. 금산 인삼, 나주 배.. 등등 어디서 재배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그만큼 좋은 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좋은 땅이 되어야만이 큰 부흥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만약에 교회가 거친 황무지 같다거나, 돌짝밭과 같다면 결코 부흥의 복된 열매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포중앙교회는 크게 부흥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보실 때에 아름답고 확실한 부흥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교회는 좋은 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야 합니다. 혹 묵은 땅, 거친 황무지가 우리의 자아상이라면 말씀의 쟁기로 뒤집어 엎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큰 부흥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예수님은 공생애 3년의 기간동안에 끊임없이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0:10절 말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풍성히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풍성한 부흥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해변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가르치시는 말씀을 보니 그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으며, 부흥의 시대를 이룰 것인가를 교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한답니까? 길가나 가시밭, 돌짝밭과 같은 인생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땅이 되어야만이 풍성한 부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흥의 원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나쁜 땅에는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어도 결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흥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스스로 좋은 땅이 되어야 하며, 또 교회로 하여금 좋은 땅이 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약 예레미야 4:3절 말씀에서는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예레미야 4:3)”고 말씀하고 있고, 호세아 10:12절에서는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세아 10:12)” 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묵은 땅을 갈아 엎어야 합니다. 옛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 엎어야 합니다. 거친 황무지와 같은 심령에서는 결코 부흥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묵을 땅을 갈아엎고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을 몇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첫째는 가시덤불을 뽑아 내야 합니다. 본문 7절에 보니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가시덤불을 뽑아내야 합니다. 그것을 가만히 두고서는 결코 좋은 땅이 될 수 없습니다. (찔레 나무가 산을 망쳤슴) 주님은 그 가시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2절에 보면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욕심입니다. 세상 것을 얻으려는 지독한 욕심을 말합니다. 이 욕심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으면 결코 좋은 땅이 되지 못하고, 결국은 부흥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 장로님과 말씀을 나누는 중에 어떤 교회가 교회를 크게 건축했다고 합니다. 약 300억의 부채를 질 정도로 교회를 건축했으니 어마어마한 대 공사였음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300억의 빚 때문에 교회가 부도 처리 되었고, 다른 교회가 그 교회를 인수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별로 반갑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 말씀을 듣고 있다가 교회와 목사님의 욕심이 과했던 모양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와 같은 대공사를 시작할 정도의 교회라면 작은 교회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어느 정도의 재정적 능력은 있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친 욕심을 부렸습니다. 과욕을 부렸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결국 부흥을 기대하던 교회는 부흥한 것이 아니라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부도 처리되고, 다른 교회가 그것을 인수하는 비극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다른 교회가 인수했기 망정이지, 이단집단에서 그 교회를 인수했다면 더 큰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왭니까? 그 이유는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과욕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포중앙교회도 부흥해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부흥을 기대한다고 하면서 과욕을 부립니다. 부흥을 주장하는 이면에 욕심을 부립니다. 더 커진 교회, 더 재정적으로 넉넉한 교회, 더 편리한 교회, 등등의 세상적인 관점에서 교회의 부흥을 생각하고, 욕심을 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결코 좋은 땅이 되지 못합니다. 교회의 본질을 잃고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교회만의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욕을 부리게 되면 가산을 탕진하고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증언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너희가 얻지 못함을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야고보서 4:3)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를 크게 부흥케 하기 위하여 우리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욕심의 가시덤불을 완전히 뿌리뽑기를 바랍니다. 적당히 남겨두어서는 안됩니다. 완전히 뿌리뽑아야 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크게 부흥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둘째는 돌맹이를 골라내야 합니다. 본문 5절에서는 씨앗이 돌밭에 떨어졌을 때에 결실할 수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돌맹이가 가득한 밭은 결코 좋은 밭일 수 없습니다. 몇몇 생명력이 강한 작물을 제외하고서는 잘 자라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논두렁 밭두렁에 보면 돌들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밭을 고르다가 돌맹이가 나오면 그것을 캐어내서 논둑, 밭둑에 쌓아두었기 때문입니다. 돌이 많이 나는 밭은 결코 좋은 밭이 아닙니다. 좋은 밭이 되기 위해서는 돌을 캐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교만이요 독선입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은 은혜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체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교회의 전통에 대하여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압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에 빠지고 독선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나만 옳고, 내 생각만 정당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교회를 화평케 하지 못하고, 싸움판으로 만들어 버리고, 살벌한 전쟁터가 되게 합니다. 아무리 큰 은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해도 독선에 빠지게 되면 그때부터 망합니다. 부흥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예전에 연개소문이라는 드라마에서 수나라 황제가 전쟁에 미쳐서 백성을 돌아보지 않고, 점차 폭군이 되어 가고 있을 때에, 포산공 이밀이라는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였을 뿐만 아니라 인품이 뛰어났기 때문에 당대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군사를 일으키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온 나라가 그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독선에 사로잡히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게 되자, 그의 군대는 전쟁에서 연패를 당하게 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이밀의 봉기는 결국 반란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독선에 빠지면 만사를 그르치게 됩니다. 독선은 자기를 죽이는 치명적인 병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함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제거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만 옳고, 내 생각만이 가장 정의로운 원칙이라고 주장하는 독선입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 독선적인 사람을 멸하십니다. 망하게 하십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사람이 될 때에 그를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립보서 2:1~4)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교만과 독선을 버리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만과 독선을 제거할 때에 교회는 좋은 땅이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교만과 독선이 조금도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제거함으로 주의 교회를 부흥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셋째는 흙덩이를 깨뜨려야 합니다. 본문 4절 말씀에서는 길가와 같은 밭은 결코 좋은 밭이 아니며 결실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길가는 어떤 것입니까? 딱딱하게 된 밭을 말합니다. 이런 밭은 갈아엎어야 합니다. 단단하게 뭉쳐져 있는 흙덩이를 깨뜨려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흙덩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A.

이것은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이 매너리즘에 빠져 신앙생활하는 것을 뜻합니다. 무감각한 신앙인이 된 것, 무딘 심령이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아무런 눈물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생각해 봐도 그저 그렇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동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를 가리켜 길가와 같은 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무감각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결코 부흥의 시대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이 없이,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동과 희열이 없이, 세상의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구원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배도 습관에 의해서 드립니다. 직분이 있으니 교회에 참여하여 봉사합니다. 성도들과 한 번 만나는 날이기에 사교 삼아 교회에 출석합니다. 그러나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는 무감각합니다.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조상 대대로 믿어왔으니, 매 주일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으니, 왠지 주일에는 교회에 와야 마음이 편하니 예배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영적 감동없이, 구원의 기쁨없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길가와 같은 밭입니다. 이런 밭은 깨뜨려져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에 완전히 깨어져야 합니다. 부서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닫고 마음을 찢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의 감격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좋은 밭이 되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B.

한편으로 딱딱한 흙덩이는 교회 안에 폐쇄적인 관계들을 일컫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디나 사람들의 모임에는 끼리끼리 공동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잘 사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끼리, 많이 배운 사람은 그런 사람끼리.. 기타 등등으로 자기들 끼리 모이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임이 차츰 폐쇄적인 관계를 이루어서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를 배척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만의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 관계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이것은 단단한 흙덩이 같은 밭입니다. 결코 좋은 땅이 아닙니다.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관계를 깨뜨려야 합니다.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관계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르기에 더 귀하게 알고 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가족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 교회는 너무 우리끼리만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런 폐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 오는 성도들이 그 관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진단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이 그렇다면, 우리끼리 사랑하는 그런 폐쇄적인 속성이 강한 교회라면 결코 좋은 땅이 아닙니다. 깨뜨려야 합니다. 폐쇄적인 부분을 깨야 합니다. 보다 포용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좋은 밭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많은 부흥의 열매를 결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와 성도들이 좋은 밭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길가와 같은 땅이든지, 아니면 돌덩이로 가득한 땅이든지, 가시덤불로 우거진 그런 땅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 땅에서는 열매를 기대할 수 있고, 부흥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을 위해서 우리 교회를 좋은 땅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부흥을 이루기에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까? 뽑아내야 합니다. 욕심의 가시덤불을 철저하게 뽑아내야 합니다. 골라내야 합니다. 교만과 독선의 돌덩이를 철저하게 뽑아내야 합니다. 겸손함으로 서로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③ 깨뜨려야 합니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단단해진 매너리즘의 흙덩이를 깨뜨리고, 폐쇄적인 관계로 똘똘 뭉쳐 단단해진 흙덩이를 깨뜨려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은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게 되고, 우리는 좋은 땅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기대하시는 부흥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을 위하여 힘써 좋은 땅이 되기를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통하여 30배, 60배, 100배로 크게 부흥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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