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5장
1. 일곱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
<요약>
사도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보았다. 그 두루마리는 안과 밖에 글이 쓰여있었다. 그러나 일곱인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천사가 큰 음성으로 누구도 그 인을 떼기에 합당치 못하다고 한다. 그래서 요한이 크게 울었다. 장로중에 한 사람이 요한에게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고, 그 일곱인을 떼실 것이라고 했다.
분명 두루마리는 책이다. 계시를 가득히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봉인되었다. 그 책의 내용을 볼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심으로 그 봉인을 떼고, 그 내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속에 기록된 것이 실현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용어설명 및 주해>
1절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내가 보매"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 앞에서 아주 특별한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 있었음을 언급한 것이다.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한권의 두루마리"였다. 그 책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었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시고, 오른손은 그의 권능의 손을 말하고, 통치의 손을 말한다. 하나님의 강한 손이 그 책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손에서 책을 함부로 가져올 수 없는 것이고, 그 책에는 그만큼 귀하고, 중요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요한은 그 책의 안팎에 뭔가가 쓰여있었다고 한다. 두루마리는 한쪽으로, 또는 양쪽에서 한 방향으로 말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안과 밖에 무엇이 쓰였는지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아니 그 안에 글이 쓰였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없다.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그 책은 안과 밖에 빼곡히 글이 쓰여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확인한 것을 미리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그 속에 그렇게 글이 쓰여있다는 것은 들었거나 짐작하게 되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그 책은 안과 밖에 글이 빼곡히 쓰여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곱인으로 봉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볼 수 없고,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고, 그 책의 내용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실현될 것인가에 대한 영적 비밀을 담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내용들임을 말한다.
2~3절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두루마리에 대한 생각이 이쯤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요한의 앞에 등장한 존재가 있었다. "힘 있는 천사" 였다. 이 천사가 가브리엘인지 미가엘인지는 알 수 없으나, "힘있는 천사"가 요한의 앞에 등장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아무도 그 두루마리의 인을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본문은 이런 뉘앙스를 풍긴다. "이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는 것이다. 그 천사가 "그가 합당한지 아닌지"를 시험하고,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힘있는 천사의 위엄앞에, 그 위력 앞에 어느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그 천사를 능히 이기거나, 극복하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펼자가 없었던 것이다. 본문은 하늘, 땅, 땅 아래를 언급하면서 창조세계 전체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능히 하나님의 손에 놓인 두루마리를 펴서 보고, 그 책의 내용을 실현할 수 있는 자가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구원의 일은 누구도, 어떤 힘도, 권세도, 그리고 어떤 지혜나 도덕으로도 능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구원을 행함이나, 공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며, 또 영적 수련을 통해 쟁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행위의 헛됨을 말씀하는 것이다.
4~5절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룸에 있어서 인간의 전적 무능력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우는 것 뿐이었다.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합당한 자가 없다"는 말은 모두 자격이 없고, 능력이 없음을 뜻한다. "크게 울었다"는 것은 요한의 절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칼빌의 말을 굳이 빌지 않아도, 이 본문은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을 나타내고 있음에 분명하다. 절망적 존재임을 적시한다.
요한이 절망할 때에 "장로 중 한 사람이 요한에게 말했다." 그 내용은 "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는 것이다. 유대 지파.. 구약에 "유대 지파는 없다. 유다 지파다. 유대는 유대민족, 유대 땅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었을 때에 북쪽 이스라엘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본문이 다윗을 언급한 것을 보아 "유대 지파의 사자"는 "유다 지파에서 나온 하나님의 종"인 다윗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 "다윗의 뿌리"는 다윗의 자손을 말한다. 그러니 본문에서 언급하는 분은 "유다 지파에서 나온 하나님의 종인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이기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힘있는 천사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지키며, 그 인봉을 뗄 수 있는 자격여부를 가늠하고자 할 때에, 예수님은 승리자로 오셔서 힘있는 천사도 그분을 가로막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시고, 그 책의 인봉을 모두 떼어내시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친히 이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세에 인류 구원의 모든 과정을 친히 이루시게 되셨음을 뜻한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이 실현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묵상>
하나님의 손에 있는 구원의 비밀, 어느 누구도 그것을 취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고, 그 속에 남긴 구원의 역사를 이룰 수가 없다. 오직 승리하신 예수님만이 그 일을 이루신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준다. 말세에 구원을 위한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길은 오직 예수님 뿐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그 구원과 축복의 비밀을 담고 있으며, 실현시키는 책을 가져와 읽을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 앞을 지키는 힘있는 천사를 지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님이 그 일을 이루셨기에 그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 뿐이다.
2. 두루마리를 취하신 어린양
<요약>
요한은 보좌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이었다.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고, 그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했다.
요한은 예수님을 특별한 모습으로 그리면서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취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용어설명 및 주해>
6~7절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요한은 "보좌와 24장로와 네 생물" 사이에서 "한 어린 양"을 보았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처럼 어린 양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그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속죄제가 드려지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구속함을 얻게 된다. 본문은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기본적인 이미지인 "어린양"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그려 보이고 있다. 요한은 이 어린양이 "일찍 죽임을 당한 것같다"고 한다. 즉 그에게는 죽음의 흔적이 있음을 말한다. 십자가를 통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던 흔적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이다.
그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다. 뿔은 힘과 권능의 상징이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모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예수님은 모든 권능을 가지셨다는 말이다. "눈"은 "온 땅에 보내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씀한다. 4장에서도 소개된 것처럼 하나님의 보좌 앞에도 일곱 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일곱 영은 "일곱 등불"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예수님께도 일곱 영이 있었고, 그것은 눈으로 묘사되었다. 보좌 앞에 있던 "일곱 영"과 어린양에게 있는 "일곱 영"은 어떤 것인가? 각각 다른 것인가? 아니면 같은 것인가?
신학자들은 성령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성령의 기원은 성부하나님과 동시에 성자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성경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했음"을 언급한다. 그렇다면 "일곱 영"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치 않을까 싶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같다. 또한 눈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어린 양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며, 성령의 모든 지혜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분이다. 그런 예수님은 일찍 죽임을 당하신 모습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취하시기에 합당하실 뿐 아니라, 그것을 취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성취해 가시는 것이다.
8절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예수님께서 그 두루마리를 취하셨을 때에 "네 생물과 24 장로들이 그 앞에 엎드려 경배했다. 각각 거문고를 들었고,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들었다. "네 생물과 24 장로"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을 모셔 선 자들이고, 또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찬양하며, 그의 통치를 이루어가는 존재들이다.
예수님께서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게 될 때에 "네 생물, 24장로가 엎드렸다"는 것은 빌립보서에서 "하늘과 땅과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기록한 것을 연상케 한다.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놀라운 영광과 권세를 주셨음을 뜻한다. 이것은 새롭게 부여된 권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구속의 계획을 실행하여 이루어감에 있어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네 생물과 24 장로들의 손에 있는 거문고는 찬양을 상징한다.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기도의 그릇"을 뜻한다. 예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며, 또한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말하는 것이다. 유일한 중보자로서의 자격을 소개하고 있다 할 것이다.
구원과 축복을 받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엎드려야 하고, 경배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 찬양해야 한다.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성도들의 기도는 향기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제도에서도 향단을 두게 했고, 거기에서 향기가 끊어지지 않게 했다. 성도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향기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적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되는 중요한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9~10절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예수님앞에서 "새 노래"로 찬송을 한다. 에배소서에서 성도들을 향해서 "새 노래"로 찬송할 것을 권했다. 새 노래란 "새롭게 지은 노래"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어느 누구도 부르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만들어져서 부르게 되는 노래는 분명히 새 노래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새 노래란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교훈한 것처럼 새 노래도 옛 노래와 대비되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정욕적인 노래가 아니라 거룩하고 성결하며,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된 노래를 뜻한다. 즉 새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노래"를 의미한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본문은 새 노래의 내용을 소개한다.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구원의 역사를 실현하시는 유일한 자격자이심을 찬양한 것이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음"을 노래한다. 이것은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되, 그의 핏값으로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 은혜의 백성이 되게 하셨음을 말한다. "그들을 하나님 앞에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음"은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왕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셨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며, 자랑할 수 있는 은혜와 복을 누리게 하셨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땅에서 왕노릇하게 하심"에 관한 것은 아마도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천년왕국의 통치"를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천년왕국에 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추후 논하기로 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복종시키게 되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싶다. 그러나 "땅에서 왕노릇함"이 어떤 정치적, 권력적, 군사적 지배를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같다.
<묵상>
두루마리를 취하신 예수님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죽임을 당하시고,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믿으며, 그분의 구속하심에 의지하게 될 때에, 그래서 새노래로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힘써 기도하는 자로 살아갈 때에 구원의 기쁨과 능력을 누리며, 왕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존귀하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복음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구속의 역사에 있어서 능력의 주체가 되시는 십자가의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음으로 영광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3. 천사와 피조물의 찬양
<요약>
네 생물과 24 장로들의 찬양이 있은 후, 수 많은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을 찬양하게 된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심에 대해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그 때 네 생물은 아멘"했고, 24장로는 "엎드렸다." 아주 절묘한 조화였다.
<용어설명 및 주해>
11~12절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사도 요한은 "네 생물과 장로들 주위에" "많은 천사"를 보았다.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수많은 천사들이 둘러 있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음성이 드렸는데, 그 수가 만만, 천천이라고 한다. 만만은 일억, 천천은 100만이다. 숫적으로 굳이 따지자면.. 그러나 만만, 천천이라는 말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음"을 의미한다. 수많은 천사들이 보좌를 둘러 등장하게 된 것이고, 그들이 음성을 합해서 큰 음성으로 찬양을 했다는 것이다. 그 찬양의 내용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 구속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때에는 초라한 모습이셨지만, 그분의 실제는 그것이 아니며, 그 모든 고난을 감당하심으로 두루마리를 펼쳐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며, 그 모든 일을 통해 모든 영광과 존귀, 찬송을 받으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을 노래한 것이다. 예수님의 위업이 얼마나 컸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신분이 얼마나 존귀하신가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천사들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모든 천사들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것이다.
13~14절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요한은 또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 바다 위, 그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피조물이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이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구원의 일을 친히 이루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들이 드릴 수 있는 존귀를 드린 것이다. 그 이름을 찬송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을 함께 언급했다. 무엇을 말하는가? 동등하심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고통당하던 피조세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온전하케 회복되어짐을 보여준다. 로마서에서 피조세계가 구속의 날을 기다린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에, 구속하심을 인하여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과 주님을 높이게 되어있음을 시사한다.
영원한 영광은 하나님께 있다. 어떤 피조물도 찬양을 받거나 높임을 받거나 섬김을 받아서는 안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만이 높임을 받으실 수 있고, 경배의 대상이 된다. 이 모든 고백과 찬송을 들으며 네 생물이 "아멘"하며 화답했고, 그 소리에 24 장로는 엎드려 경배한다. 이것은 정말 절묘한 조화이다. 하나님께 경배함에 있어서 기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조화인 것이다. 24장로의 경배는 온교회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24장로는 구약의 교회 지도자와 신약의 교회 지도자를 통칭하는 개념이 되기 때문이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온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어 있다. 이것은 피조세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며 찬양하게 됨을 뜻한다. 그리고 어떤 무엇도 찬양의 대상이 되지 못하며, 종말에는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만이 영광을 받으심을 보여준다. 하나님만을 높이며 찬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로만 참된 회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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