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1. 사데교회를 향한 말씀.
<요약>
소아시아 서쪽 해안에 있던 루디아의 수도로서 서머나 동쪽 약 80키로 지점 트몰러스 산 북쪽 기슭 헐머스 평야 남단에 자리잡고 있다. B.C 1200년경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지대이었다. 세월이 흘러 감에 따라 상업 도시로 번영하였으며 직물과 귀금속 생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B.C 6세기와 3세기 두차례에 걸쳐 파괴되었다. 이곳에는 여신 시빌리의 신전이 있었고 부도덕한 제사의식이 거행되었다. 사데 교회가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자라는 경고를 받게 되었던 것도 이같은 밀의 종교의 보도덕한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 문이다(계 3:1).지금은 서머나 빌라델비아 철도의 정거장 부근 페허에 세워진 한 촌에 그 이름이 붙어 있을 뿐이다.
주님은 사데교회에 편지하시면서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었다고 했다. 죽게된 것을 굳게 하고, 받은 말씀을 회복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이 있는데, 주의 은혜를 누릴 것이고, 이기는 자는 생명책에 그 이름을 기록하고 주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용어설명 및 주해>
1a절
(1a)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주님은 자신을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로 계시하셨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흔히 말하는 대로 완전 수이다. 형용사로 번역하면 "모든"이라는 뜻이다. "영"이란 "육과 대비되는 말인데, 육체의 차원을 뛰어넘는 존재를 가리킨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차원을 달리하는 능력과 지헤와 권세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영적 존재들을 일컫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의 성령과 대비해서 "영"들은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는 존재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온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할 때, 아마도 성령의 권세 아래 있는 영들을 통해 교회를 섬기도록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튼 본문에서 "영"들은 지혜라는 개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같다. 예수님은 자신을 모든 지혜를 가지신 분이리라고 계시하고 있는 것같다. "별"에 대한 소개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이미 "교회의 사자"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세 아래 있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종이 아닌, 예수님의 권세를 따르지 않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거짓 사역자인 것이다.
1b~3절
(1b)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다. 행위가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믿음은 행위로 고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데교회의 실상은 어떠한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교회가 명분은 살아있는 것같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죽어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에 생명력이 없음을 말한다. "일깨워"라고 한다. 흔들어 깨우라는 말이다. 아직 남아있는 것,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마저 죽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온전함"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온통 죄악 투성이라는 것이다. 부족한 것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칭찬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님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한다. 말씀의 기본, 복음의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신앙의 초심을 잃지 말고,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것을 일깨우다라는 말과 연관시켰다. 회개하여 신앙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둑같이 임하시는 주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네가 알지 못하리라."는 말이 일깨우면 "네가 알게 된다"는 말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심판날이 임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심판이 임하게 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4~6절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는 사데 교회가 빠져있는 죄에 동참하지 않고 복음과 신앙의 순수함을 그대로 지킨자가 있음을 말한다.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결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복을 누리게 될 것이고, 주의 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에게 합당한 은총이다. 주님은 사데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아서 이기는 자가 될 것을 당부한다. 그렇게 되면 흰 옷을 입게 될 것이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와 그 천사들 앞에서 주님께서 시인해 주신다는 것이다. 분명한 구원과 축복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 말씀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묵상>
자신의 믿음을 더럽히는 자는 비록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고 해도 죽은 자일 뿐이다. 믿음의 외형을 포장하지 말고, 거룩함과 성결함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아 철저하게 돌이켜야 한다. 잠자는 신앙이 아닌 깨어있는 믿음이 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 보좌 앞에서 주님이 친히 인정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2.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한 말씀
<요약>
리디아(Lydia) 왕국 시대에 칼라테부스(Callatebus)라는 이름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그 후 B.C. 159~138 페르가뭄(pergamum, 성서의 버가모)의 앗탈로스(Attalus) 2세, 필라델푸스 (Philadelphus)는 동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이 지역에 도시를 건립,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라델비아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합성어 로써 '형제애'를 의미한다.
사데에서 4키로 동쪽의 소아시아 루디아 성읍. 소아시아 고원지대와 서머나 사이의 중요한 산업도시. B.C 138년 이전에 버가모왕 아탈저스 빌라델 버스가 세운것으로 언제 교회가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계시록에는 일곱 교회의 하나로 나타난다().일찌기 순교자가 생겼고 1300년 이후 대감독 구역이 되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서 그 앞에 어느 누구도 닫을 수 없는 열린 문을 얻었다.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결코 배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에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게 된다. 빼앗을 수 없는 면류관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 이 교회는 칭찬만 받은 교회였다.
<용어설명 및 주해>
7절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으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소개한다. 특히 다윗의 열쇠를 얻급하면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다"고 하셨다. 절대 주권을 의미한다.
8~11절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하신다. 다윗의 열쇠로 그 문을 열어두었다는 것이다. 그 문을 통해 얼마든지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선언한다. 주님께서 친히 열어두셨으니 어느 누구도 닫을 수 없고, 그들에게 허락된 복을 빼앗을 수 없다.
작은 능력을 갖고 있지만 부인하지 않았다. 빌라델비아교회는 특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환난과 핍박을 받게 될 때에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다. 거기에 사탄의 회당이라고 불려질 수 밖에 없는, 다시 말해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들을 통해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곤 했던 것같다. 그러나 주님은 그 유대인들 중에 몇으로 복음에 복종하게 하게 함으로 주님께서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는가를 나타내시겠다고 한다.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다"는 것은 "인내하라는 내 말을 지켰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님을 소망하며 고난 중에서도 인내하라는 것이 주의 명령이었기에 그 말씀을 기억하며 고난을 당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소망 중에 잘 견뎌왔다는 이야기이다. 주님은 이런 빌라델비아 교회에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신다고 한다. 여기의 "시험의 때"란 언제인가? 그 시험의 때는 장차 온세상에 임하여 오는것인데,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게 되는 때라고 언급한다. 계시록에는 천년왕국과 시험에 때를 말하는데, 천년왕국에 있는 자는 시험의 때와 상관이 없음을 말한다. 아마도 그 부분을 언급하는 것같다.
주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잘 인내할 것을 당부한다. 주님은 속히 오실 것이므로 끝까지 믿음을 잘 지켜서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게 하라고 한다. 이미 면류관이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즉 그들은 면류관을 이미 따놓은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신앙을 끝까지 잘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한 것같고, 상급을 많이 쌓은 것같아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12~13절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세에 영적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해서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 주님의 새이름이 기록된다고 한다. 이것은 심히 존귀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 새 예루살렘에 속한 자, 주님께 속한 자가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높이 세우시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후렴구, "귀있는 자는...." 하는 말씀을 통해 이 말씀을 꼭 기억할 것을 말씀하셨다.
<묵상>
주님께서 열린 문을 항상 열어 놓으므로 언제든지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는 교회는 행복할 것이다. 빌라델비아교회는 그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그 교회가 그렇게까지 복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것"을 갖고 있었지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신뢰했기 때문이고, 환난 중에도 소망중에 주님을 바라보며 참고 인내했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언제나 견고한 믿음을 간직해서 하나님 나라에 기둥과 같이 세워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말씀
<요약>
소아시아 부루기아의 수도이며 골로새에서 서쪽으로 16마일, 에베소에서180km 떨어진 지점.알렉산더가 죽은 후 SELEUCID왕가의 ANTIOCHUS 2세가 그의 부인 LAODICE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라오디게아라 불렀다.
성서시대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 프리지아(Phryghia, 성서상의 부르기아)의 수도로 교통의 요지인 리커스 계곡에 위치하여,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발전했다. 라오디게아는 근처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내리는 온천물이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에 질병치료에 도움을 주었을 뿐아니라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콜로니온이라 불리우는 안약의 산지로 유명하여 의료도시로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곳에서 6.5KM 떨어진 히에라볼리의 온천 물이 수로를 통해 라오디게아로 흘러 들어오게 하였다. 라오디게아의 온천 물은 이곳에 도착하면 식어서 덥지도 차지도 않은 물이 되었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음이 덥지도 차지도 않음을 책망하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덥지도 않던 교회였다. 그래서 주님께서 토하여 버린다고 하셨다. 불론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해야 했고, 흰 옷을 사서 입어 수치를 가려야 한다.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해야 했다. 열심이 없었고, 착각이 심했다. 그럼에도 주님은 여전히 문밖에 서서 기다리심을 말씀하고 계신다.
<용어설명 및 주해>
14절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주님은 자신을 아멘으로,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으로 소개하고 있다. 아멘이라는 말은 "참, 진짜, 동의"를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성취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증인은 "목격한 사람" 그런데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한다.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되며, 진실된 증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내 보여주실 수 있는 분이다. 창조의 근본이란 하나님의 모든 창조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진 것임을 뜻한다. "그가 없이는 하나도 된 것이 없다." 주님은 이 계시를 통해서 주님께 모든 것이 있음, 주님이 가장 부요하신 분이심을 말한다.
15~19절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행위를 안다"고 하므로 신앙은 고백 뿐만 아니라 행위를 포함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는 말은 라오디게아의 온천물이 그 도시에 도달하게 되면 그 상태였는데, 역겨운 맛이 났던 것으로 보인다. 주님은 시청각적 효과를 보이신 것이다. 라오디게아는 풍요로운 도시였다. 그들은 스스로 부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영적 실상이 초라한 거지꼴이라고 하셨다.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씀이다.
영적으로 가난한 거지꼴임을 인식해서 세상 것으로 부자되는데 급급하지 말고,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한다. 흰옷을 입어 벌거벗을 수치를 가리고,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고 한다. 이것은 믿음과 영적인 안목과 순결을 말하는 것이다.
18~20절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신 주님은 책망의 이유, 징계의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징계 받았다고, 책망들었다고 낙심하지 말고,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미지근한 신앙에서 탈피하라는 것이다. 열정적인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다. "볼찌어다"는 주위를 환기시키는 말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주의를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문 밖에 서서 기다린다"고 하신다. 아직 기회가 있고, 기회는 정말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맞아들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음성에 열정을 품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에게로 가서 함께 먹고 마신다고 한다. 이것은 주님과 함께 천국 잔치에 참여함을 뜻한다.
21~22절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서도 "이기는 그에게"라는 말을 한다. 말세는 영적 싸움임을 말하는 것이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복을 얻게 하신다는 것이다. 주의 보좌에 함께 앉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신분적으로 똑같이 높아진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그만큼 존귀하고 높이 세워주시겠다는 것이다.
<묵상>
칭찬 한 마디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 세상적으로 많이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주님 눈 앞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주님 앞에 쓸데없는 것으로 부자인 사람들이었다는 말이다.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거지꼴의 가난함을 나타낼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주님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없는 것을 얻고자 생명을 바쳐 수고하지 않는가? 주님께 귀한 것, 주님 앞에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는 아무런 열정을 갖지 못한 자는 아닌가? 거룩한 열정을 회복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 영적인 통찰력, 그리고 거룩함과 순결한 삶으로 풍성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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