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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Bible Study

요한계시록 2장

요한계시록 2장

 

 

 

1.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용어설명 및 주해>

 

1절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영광의 모습으로 임하신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일곱교회를 향한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먼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도록 하셨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미 계시록 1장에서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로, 일곱 별은 교회의 일곱 사자로 소개했다. 그렇다면 주님은 모든 교회 가운데 다니시며, 그의 사역자들을 손에 쥐고, 교회를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많은 이단의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교회의 교회됨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것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은 이런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 되시고, 주님께서 그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친히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을 믿고, 모든 영적 도전을 이겨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교회의 주인이 되심을 언급하면서 어느 누구도 교회에서 주인행세를 해서는 안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2~3절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주님은 자신을 교회의 주인으로 계시하시면서 에베소 교회가 갖고 있는 장점을 칭찬하셨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하셨다. 즉 에베소 교회는 거룩한 행실이 있었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수고가 있었고, 소망 중에 견디며 인내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를 시험허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냈다" 거짓된 교훈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다니며, 마치 자기들이 무슨 사도인체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거짓됨을 찾아냈고, 쫓아냈다. 영적인 분별력이 가진 교회였다. 교회와 성도들은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는 모든 것을 잘 참아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어떤 고난도 잘 견뎌냈고, 맡겨진 사명에 대하여 게으르지 않고 충성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기꺼이 손해를 볼 줄 알고,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그런 교회였다.

 

4~6절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에베소 교회는 정말 훌륭한 교회였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기에 합당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에는 정말 중요한 결함이 있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 책망할것이 있다고 한다. 주님께 책망받을 것이 없는 교회, 그런 성도가 복되다. 그러나 주의 책망은 또다른 기회가 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책망의 말씀은 엄청난 은총이다. 사랑하기에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에베소 교히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처음 사랑"이란 "첫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을 때에 처음으로 갖게 된 사랑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또 교회가 세워지면서 교회 안에 갖게 되었던 처음 사랑을 말할 수도 있다. 초창기 교회에는 사랑이 풍성했지만 점차 그 사랑이 식어지고, 형식적인 관계만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이라는 단어는 "우선적으로" 라는 개념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가장 뛰어난"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처음 사랑"이란 사랑을 가장 우선시 함, 사랑을 가장 귀중히 여김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에베소 교회는 사랑을 가장 중요시 여겼던 교회였는데, 점차 이단과의 싸움, 교리적 논쟁이 고조되면서 사랑이 차선으로 밀려나게 되었을 것이고, 주님은 이것에 대하여 책망하신 것으로 보여진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찾아 회복하라고 한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다. 교리적 논쟁도, 때로는 권징을 행함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함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무서운 경고를 덧붙이셨는데,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은 그 촛대를 옮겨 버리신다고 한다. 교회의 주인되신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의 교회됨을 폐지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금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을 위로하신다. 너희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데, 잘 했다. 나도 그들을 미워한다고 하신다. 처음 사랑의 회복을 말씀하셨지만, 니골라당의 행위마저도 사랑하라는 것은 아니며, 니골라 당과 같은 이단의 가르침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고, 그들의 행위를 미워함으로 본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7절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매우 독특한 말이다. 이 말은 모든 교회를 향해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이다. 문자적으로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들을 귀 있는 자"만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깨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에 민감하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을 놓치게 되고, 은혜와 축복의 말씀을 듣지 못해 망하게 되고 만다. 말씀에 주파수를 맞추고 세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 때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복을 누리게 된다.

주님은 깨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한다."고 약속하신다. "이기는 사람"즉 주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심판에서 벗어나게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 사람이 천국을 얻게 되고, 천국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묵상>

 

에베소 교회는 이단을 몰아내며 견고한 교회로 서왔다. 그러나 교회가 차츰 사랑을 잃기 시작했고, 주님은 이것에 대하여 심히 꾸짖으시면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기는 자가 되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고 하셨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하고, 사랑없이 행하는 모든 것에 조심해야 한다. 전도도 사랑으로, 봉사도 사랑으로, 헌신도 사랑으로, 심지어는 권징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빌어오는 것은 식상한 짓일까?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소리나는 구리가 되고,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이다. 사랑으로 할 때 충성이 아름답고, 헌신이 귀하고, 봉사가 숭고해진다. 주님은 이것이 말세를 사는 교회의 모습이어야 하고, 이런 믿음의 삶을 잘 사는 자들에게는 약속한 천국과 그 기쁨이 있음을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처음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2.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용어설명 및 주해>

 

8절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서머나는 풍요로운 항구 도시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집중적인 박해가 있던 지역이기도 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이렇게 계시하셨다. 주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시라는 것이다. 처음과 마지막,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이다.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주의 주권아래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역사의 주관자 되심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은 또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부활의 주님이시며,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분이시라는 말씀이다.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최고의 소망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첫열매가 되셨다는 것이다.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유일한 생명의 주님이신 것이다.

 

9절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형편을 아신다고 선언한다. 이 말씀이 서머나 교회에게는 큰 위로였을 것이다. 수고와 눈물,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갈 바를 알지 못해 방황할 때에 주님이 "내가 너를 안다"고 하신다면 그만큼 큰 위로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머나는 분명 풍요로운 도시였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그 풍요 가운데 성도들은 빈궁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극심한 환난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상대적 박탈감은 더했을 것이며, 영적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 겪는 환난, 궁핍을 아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너희가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하신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환난 중에 고통을 당해야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너희가 가장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들의 영적 실상, 하나님 앞에서의 실존은 가장 부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땅에서 풍요를 누리며 사는데, 하나님 앞에서 실상은 가난한 자일 뿐이라면 불행이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와 같이 땅에서는 형편없는 모습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천국을 누리게 되는 사람이라면 그는 복되다. 서머나 교회가 그런 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큰 위로요 축복의 선언이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있는 환난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셨다. 유대인들이 비방하고, 환난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은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혈통적으로 그들은 유대인임에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여김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누구에게도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주님은 그들이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님을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 만이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다. 본문에서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을 핍박하던 유대인들을 "사탄의 모임"이라고 함으로 그들로부터 고난을 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도록 하고 계셨다.

주님은 "너희가 진짜고, 걔들은 가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10절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 교회에는 또 다른 고난이 계속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마귀로부터 끔찍한 고난이 있어서 성도들 중에 몇사람이 옥에 던져지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지만, 죽도록 충성하면, 주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십일 동안 환난을 받는다"는 말씀이 나온다. 계시록에서 "숫자"가 여러단계로 나온다. 그리고 그 숫자는 상징적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므로 숫자 자체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분명히 일정한 기간동안 고통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대개 환난이 오면 넘어진다. 그러나 주님은 견디라고 한다. 그 때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다. 본문은 절묘한 어법을 사용했다. "죽도록 충성, 생명의 면류관.."죽음과 생명은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생명적 축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죽기를 다해서 충성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죽기를 다해 충성하면 결코 헛되지 않아서 생명으로 영광된 보상을 받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정말 고난을 잘견뎠다. 앞으로도 고난이 더 남았는데 포기하지 말고 생명을 걸고 주 앞에 충성해라. 그것에 대하여 반드시 생명을 걸고 은총으로 갚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11절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이기라"고 하신다. 믿음을 지키며 죽도록 충성하라 그렇게 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사망이란 예수님의 재림 후에 일어나게 되는 육체의 부활, 그리고 최후 심판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 지옥불에 영영히 던져지는 형벌을 가리킨다. 이것은 이기는 자에게 약속된 복이다. 만약에 진다면, 다시 말해서 충성하지 못하고 배신한다면, 죽음이 두려워서 주님을 떠난다면 그는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묵상>

 

서머나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아무런 책망을 받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주님의 위로만이 가득했고, 약속이 풍성했다. 왤까? 그들은 고난 속에 있었고 주님을 바라보므로 잘 견뎌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들 약점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고난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주님은 책망보다는 위로를 더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고난이 찾아오지만, 잘 견뎌야 한다. 가짜 신자로 살지 말고 진짜 신자로 살아야 한다. 신자로 살기에 당하는 고난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어려움, 핍박, 환난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말고, 죽기를 다해 충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버가모 교회에 주신 말씀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용어설명 및 주해>

 

12절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버가모 교회에 주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소개한다. 대개 검은 "말씀"을 상징한다. 에베소 성경에서도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언급했고, 히브리서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 찔러 쪼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검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찔러 쪼개는 것이다. 전쟁하는 것이다. 영적전쟁의 도구인 것이며, 강력한 힘으로 마귀의 권세를 섬멸하는 무기인 것이다. 주님은 이 검을 가지고 영적 전쟁을 이끄시고, 결국은 승리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13절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네가 어디에 사는지 안다"고 했다. 버가모라는 지역이 갖는 독특한 영적 현상을 암시한다. 이곳에는 우상숭배가 많았고, 우상의 전각이 많았다. 주님은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고 했다. 마귀의 본거지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이런 끔찍한 곳에서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은 어떠했는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주님을 믿는 믿음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디바가 순교의 제물이 되어 희생될 때에도 그것 때문에 겁을 먹거나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고, 주님을 따랐다는 것이다.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은 환난,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었다.

 

14절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잘 지켰지만, 그들에게 큰 약점이 있었다. 첫째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발람은 메소포타미아의 주술사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모압 왕 발락의 부름으로 그들을 저주하기 위해서 왔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막으셨기 때문에 저주 대신 축복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가 잔꾀를 낸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간음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것이어다. 버가모 교회안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간음과 우상숭배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에베소 교회와는 달리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이단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와같은 사실을 적시하시면서 회개할 것을 요구하셨다. 거기에서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좌위의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께서 그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시고, 죽이시겠다는 것이다.

 

 

17절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버가모 교회를 향해서도 "이기라"고 하신다.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에 파선하지 말고,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흰 돌"을 줄 것이라고 한다. 만나는 하늘 양식이다. 그렇다면 흰 돌은 무엇인가?  약정서 내지는 초대장일 것으로 보여진다. 거기에 뭔가가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고, 뭔가 중요한 약속을 담은 표식이거나, 초대장인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받은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한 것으로 봐서 거기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흰 돌은 누군가의 이름을 기록해 둔 것이다. 아마도 고대사회에 왕궁이나, 중요한 잔치자리에 초청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게 되는데, 나무조각이나 돌에 특별한 표식을 했던 것으로 추정해 볼 때 거기 기록된 것은 천국 잔치에 초대하신 예수님의 이름이 기록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일 것이다.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이와같은 축복을 약속하셨다.

 

<묵상>

 

고난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단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갖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거룩함과 성결함을 유지하는 일이다. 바른 진리에 굳게 서는 일이다.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잃는다면 심판을 면할 수 없고, 하나님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진리에 서 있지 않는다면 흔들려 무너지고 말 것이다. 굳게 진리에 서서 말씀으로 잘 무장해서 마귀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하겠다.

 

 

4.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말씀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8)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9)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3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용어설명 및 주해>

 

18절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자신을 "눈이 불꽃 같은 분으로, 그 발이 빛난 주석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셨다. 눈이 불꽃같다는 말씀은 그 분의 눈을 속일 수 없음을 뜻한다. 모든 것을 온전히 감찰한다는 것이다. 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 발이 빛난 주석같다는 말은 강력한 권세를 의미한다. 주석은 힘을 뜻한다. 그런데 빛난 주석이라 하고 함은 매우 높고 강함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 발은 무서운 심판주로서의 의미를 품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다. 단순히 육신의 몸을 입고 왔으니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권세와 위엄과 영광이 하나님의 아들의 그것이며, 주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19절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서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 하셨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일 많이 했다고 하신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일을 많이 벌였던 것같다. 전도행사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교회건축도 하고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했던 것같다. 그런데 그 일이 어떠한가?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 다시 말하면 일을 하는데 점점 더 크게, 엄청난 일들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 잘 하는 교회였다. 어떻게 보면 크게 부흥한 교회라고 할 수도 있다.

 

20~25절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큰 일을 잘하고, 크게 부흥한 교회에게 주님은 칭찬보다는 책망이 더 많으셨다. 일은 많이 했는데,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을 용납했다. 이것은 우상숭배에 깊이 빠지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세벨이 누구인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로서 온 이스라엘을 우상의 구렁텅이로 몰아갔고, 온 민족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하므로 영적 암흑기를 가져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 우상숭배를 용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적당히 타협했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 이세벨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음란에 빠지게 해다는 것이다. 우상에 참여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그것을 그냥 용납했다. 오늘날에 교회 지도자들이 음란에 빠지고, 세상적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과 같다. 주님은 이런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볼찌어다"라는 말씀으로 주위를 환기시키고는 단호하게 선언하셨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것이며,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환난 가운데 던지고, 사망으로 그의 자녀들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선지자를 멸하고, 그것 때문에 교회에 엄청난 시험이 다가오게 되고, 사망의 고통이 임하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친히 "죽이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행위대로 갚으신다"는 말씀을 하신다. 우상숭배와 행음은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며, 그런 사람들은 주님이 반드시 심판하여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두아디라에 다른 성도들, 그것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성도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대해서는 주님이 다른 책임을 지우지 않으시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상숭배에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굳건히 할 것을 당부한다.

 

26~30절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8)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9)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3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세는 이겨야 한다. 이기는 자에게, 그리고 끝까지 주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자에게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한다. 그는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리며, 질그릇같이 그것들을 깨뜨리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받은 권세이기도 하다고 햇다. 주님께서 받으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성도들이 누릴 수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또 새벽 별을 준다고 했다. 계시록 22장에서 "새벽 별"을 언급하는데,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새벽 별을 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덧입혀 주신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또한 별을 교회의 사자로 소개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 교회에 가장 좋은 사역자를 보내 주신다는 말씀이 될 수도 있겠다.

 

<묵상>

 

큰 일을 행하는 것보다 신앙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업적을 남기는 것보다 성결함으로 주의 말씀을 따름이 더 귀하다. 성결함을 잃은 채, 큰 일만을 행하고, 큰 일을 행한 것만을 귀하게 여김으로 성결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이 곧 교회의 부패와 패망을 가져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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