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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모이기를 힘쓰라 (히브리서10:19~25, 주일대예배 설교)

성령충만하려면(8)

- 모이기를 힘쓰라 -

히브리서 10:19~25

Entrance Prayer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편 40:1~3)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무더위에 지쳐 힘들어 하고 있을 때에 이 땅 저편에서 큰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시므로 청명한 하늘과 신선한 공기를 허락하셨사오니 감사드립니다. 이 아름다운 나날들 속에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하시고, 맡겨진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도 거룩한 성일로 주의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하늘의 평강이 온 교회와 모든 성도들의 삶에 편만하게 하옵소서. 악한 마귀가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며, 우리의 마음을 빼앗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주의 천군과 천사로 지켜주시고, 하나님만으로 인한 행복이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고립적 존재로서 인간은 그 가치를 제대로 실현해 낼 수가 없으며, 너와 내가 서로 관계를 맺고 협력할 때에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꾸준히 모이기를 노력했습니다. 또래집단으로 모이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며, 이상과 신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서 모이며,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모입니다. 혼자로서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지만, 모이게 되면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고, 또한 위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성도를 향해서 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고립적 존재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협력하고, 격려하고 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모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이기를 힘쓰게 될 때에 무능하던 성도 한 사람이 큰 능력을 갖게 되고, 모이게 될 때에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기록하고 있는 성령충만의 역사는 고립적 존재로서의 성도가 홀로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얻은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충만은 모임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에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행1:13~15, 행2:1)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받고 예수를 영접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스스로 광야로 갔던 것이 아닙니다. 모이기에 힘썼습니다(행2:46~47). 그 때에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며,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말은 교회에 성령충만과 함께 부흥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이기에 힘쓸 때에 성령충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게 될 때에 성령충만이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곳에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했습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께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했습니다.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사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능력있는 복음의 사역자들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놀랍게 부흥시키되,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씩 부흥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충만을 원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교회와 가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축복이 임하기를 원한다면, 모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모이기를 힘쓰므로 성령충만, 은혜충만, 축복이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본문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여기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모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모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유대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예수를 믿고 기쁨 가운데 있다가 그 기쁨을 잃어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회귀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아 옛날이여!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좋았는데…”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정확하게 분석해보면 좋기는 뭐가 좋습니까? 좋지 못한 것 투성이입니다. 우리가 아 그 때가 좋았는데 하는 그 시절은 보릿고개를 지내며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하며 살아야 하던 때입니다. TV가 어디에 있으며 냉장고가 어디 있습니까? 세탁기나 김치 냉장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겨울에는 따뜻한 보일러가 있는 방에서 잘 수도 없었습니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지 않기 위해서 머리맡에 떠다 놓은 물 한 대야가 아침이 되면 꽁꽁 언 얼음덩어리가 되던 그런 방에서 잠을 자야 했던 때입니다. 그런데 그 때 뭐가 그리 좋았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 옛날이여~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때가 좋았다는 추억에 대한 과거지향적 노예근성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대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성전에서 예배하던 그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 주님을 섬기며 찬양하며, 예배하는 모임을 등한시하고 성전제사에 다시금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성전제사의 부당성을 강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므로 더 이상 성전의 제사는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전의 휘장은 찢어졌고 이제는 새로운 구원의 길, 영생의 산 길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히브리서 10:19~21) 그러므로 이제는 성전제사로 돌아가서도 안되고, 유대교적 안식일을 준수하는 모임으로 모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난 길을 따라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며, 이 날에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이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안식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유대교적 전통을 따라 제7일(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주장들을 가지고 오는지 모릅니다. 얼른 들으면 그들의 주장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구약의 성경에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몹시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의 예언서와 신약 성경에 무지한 처사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적 제사와 안식일 준수로 돌아가는 유대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면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난 길을 따라 영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구약적 제사나 안식일 준수는 우리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구약적 안식일이 변하여 주일의 새로운 신약적 안식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구약적 율법으로서의 안식일 준수가 아니라 신약의 은혜로서의 주일성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주님이 새롭게 열어주신 신약적 예배와 주일성수로 모이기에 힘쓰므로 성령충만의 은혜를 사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모여야 한다고 하니, 모이기는 열심히 모이는데 곗돈놀이하기 위해서 모입니다. 노래방 가고, 찜질방 가려고 모입니다. 그래도 그 모임에서 건전하게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모여 가지고는 모여서 교회를 세우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공격합니다. 교회의 사역자들을 비난합니다. 성도들을 저주하고 비방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케 하고 유익하게 해야 하는 성도의 모임이 오히려 교회를 방해하며, 심지어는 공격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모임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모여도 성령으로 충만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채찍과 심판으로 충만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임이 성령으로 충만한 모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첫째로 성도가 힘써 모여야 하는 모임은 예배하는 모임입니다. 예배하는 모임입니다. 본문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10:22)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에 나아가자고 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힘써 모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배하기 위해서 힘써 모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에 그 모임을 통하여 하나님은 성령의 충만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주는 성전에 계시는 온 천하는 그 앞에 잠잠할 것이요, 감히 어떤 세력도 성전을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라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좌정하고 계신 성전이 그들 가운데 있으니 그들에게는 항상 하늘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이었을지 가히 짐작이 됩니다. 많은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절기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오르며 하나님께 최대의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제사를 보시면서 하나님은 가증스럽다고 하셨습니다. 더럽다고 하셨습니다. 불결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예배면 다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성령충만을 허락하시는 예배가 있고, 그렇지 못한 예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성령충만을 허락하시는 참된 예배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힘써 모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본문 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10:22)

1.1.

여기에 보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묻은 손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러 나아오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가증하게 여기셨다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반드시 깨끗한 양심과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구속에 힘입어 예배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에 힘입어 예배하자. 예배는 구약적 제사로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종교적인 의식(Liturgia)로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배에는 의식도 있고, 절차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경건한 외형을 가지고 있는 예배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그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성령충만케 하며, 그 유익 가운데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예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은 은총에 의지하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오늘 우리의 마음 속에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물결이 느껴 지십니까? 그 피로 말미암은 구속에 감사하고, 그 피로 말미암은 사랑에 감격하여 예배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중심에 십자가의 은혜가 강수와 같이 흐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처럼 예배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총에 힘입어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하게 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혜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범람할 수 있도록 하시므로 성령충만의 행복한 역사가 풍성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1.2.

22절 하반절에 보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므로 성령충만을 허락하시는 예배는 형식적인 모임이 아닙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처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짜 예배가 아닌 진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버려야 할 가짜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본문은 두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이 없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믿음이 없는 예배입니다.

A.

선지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습니다(사29:13, 마15:8). 그들의 제사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제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제물을 멋지게 바쳤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존경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제물을 드리기 보다는 마음을 바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참 예배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존경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찬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 때문에 부모님께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돈을 얻기 위해서, 부모의 손에서 자기의 것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부모님께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는 부모의 돈을 빼앗고자 하는 마음 뿐입니다. 이것을 효도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간사한 짓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이런 간사한 자식들의 술수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며, 참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재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너희의 마음을 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예배 자리에 힘써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마다 성령으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B.

마음 없는 예배뿐만 아니라 믿음 없는 예배도 가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려면 온전한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모이려면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엉터리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6)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과 그에게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상을 주시고, 성령의 충만을 허락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자리에 모이게 될 때 하나님을 믿음으로 힘써 모여야 합니다.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하나님이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고, 축복해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서 종교적인 수양을 쌓기 위해서 모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속하시며, 우리의 삶에 놀랍게 축복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예배하는 자리에 모여야 합니다. 믿음없이는 아무리 많은 재물로 예배해도, 아무리 많은 시간의 헌신으로 모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런 사람에게 성령충만의 축복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하게 될 때에 세상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믿음으로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성도가 힘써 모여야 하는 모임은 서로를 축복하는 모임입니다. 성도들이 모여 서로를 향해 힘써 축복하게 될 때에 그곳에 성령충만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고, 교회는 행복한 교회, 성도들의 삶에는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브리서 10:24)

이 말씀은 성도는 서로를 향해서 축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모이면 서로를 향해서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이면 쓸데없는 비방이나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모이기만 하면 축복하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축복의 권세와 사명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향해서 까지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축복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지만 동시에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의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성도들이 축복이 권세임도 알지 못하고, 또 축복이 사명임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축복의 권세가 주어졌음에도 서로를 향해서 축복하지 못합니다. 축복하는 것을 부끄러워 합니다. 그러나 축복은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주저하지 말고, 부끄러워 하지 말고 축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축복이 능력있게 역사되는 것입니다.

또한 축복은 사명이기 때문에 축복하기 싫은 사람을 향해서도 축복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축복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주는 것없이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꼴보기도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그림자만 봐도 구역질이 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축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구역질 나는 너희를 축복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축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축복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써 모이되 모여서 저주하고 딴죽거는 그런 모임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모여서 힘써 축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입에 항상 축복하는 말이 있게 될 때에 복음은 능력있게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주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좌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해서 축복하고, 주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축복하고, 우리의 모든 모임들로 통해서 축복하는 일들을 쉬지 않게 되면 그 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우리 교회와 가정에 이룰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모이시기를 바랍니다. 모여서 힘써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임이 종말적 소망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이기는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히브리서 기자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권면하면서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란 어떤 날입니까? 주님의 재림의 날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 즉 종말의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한 핍박이 있고, 고난이 있고, 주님의 재림의 징조들이 있게 될 때에 그것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재림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여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종말적 소망을 가지고 모이게 될 때에 주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충만히 임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종말적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주를 믿고 의지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킨 자들을 향해서 축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고난이 찾아와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며 나아가게 되면 주님께서 그 모든 것에 넘치도록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런 종말적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확신하며(롬8:18),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세상의 일이 바빠도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므로 모였습니다. 힘써 모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허락하시며, 천국의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주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마치 그날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주님을 섬기는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이 일 저 일 핑계가 많습니다. 세상에 바쁜 일을 혼자 다 감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세상이 망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주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모임은 소홀히 여깁니다. 주일 한 번 예배드리는 것을 큰 적선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일에 여러분이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주일 대예배 한 시간을 졸면서 그저 앉아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무슨 이익을 보시는 것이 아니며, 또 여러분이 주일 예배에 결석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대단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에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께 무슨 적선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일 한 번만 예배드렸으면 됐지 다른 모임을 강조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의 일이 얼마나 바쁜데 자꾸 교회로 모이라고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종말적 소망으로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또한 그날을 향한 준비로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일로 바쁩니까? 그래서 주일 한번 예배에 모이는 것도 힘이 듭니까? 그렇다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 그 바쁜 일을 계속하실 것입니까? 아니면 철학자 스피노자처럼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입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사과나무를 심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오늘 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임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의 모임을 이런 종말론적 가치를 지닌 모임이라고 말씀하시고, 이 모임을 위해서 힘쓸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소망을 가지고 힘써 모여야 합니다. 기회를 타서 모여야 합니다. 세상의 일이 바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모여 합니다. 종말적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못 모일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모이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이룩하시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성경은 모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모이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일에 모여야 할 것입니다. 새벽에 기도로 모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부르시며 예배하도록 허락하신 모든 기회의 시간에 힘써 모여야 할 것입니다. 예배함으로 모여야 합니다. 축복함으로 모여야 합니다. 종말적 소망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모임마다 성령충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부르는 복음성가의 가사를 읽음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일 때 주 성령 임하리

우리 모일 때 주 이름 높이리

우리 마음 모아 주를 경배할 때

주님 축복하시리

주님 축복하시리

우리 이 찬양을 함께 불러 보겠습니다. (우리 모일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써 모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 축복충만 은혜충만한 역사가 온 교회와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거룩한 모임들에 힘써 참여하기로 결심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