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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민수기 32:11~13)

성령충만하려면 (10)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민수기 32:11~13

Entrance Prayer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편46:1~3)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탁 트인 산하엔 결실이 익어가고,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은 지난 여름의 피곤함을 단숨에 앗아갔습니다. 주님의 섭리하심이 아니고서는 이런 기쁨과 은혜를 누릴 수 없을 것인데, 이처럼 아름다운 계절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귀하신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나약함을 탓하지 마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총으로 풍성케 하옵소서. 악한 마귀가 예배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늘의 군대로 지키시며, 오직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만이 높임을 받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신앙생활은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뜻에 따르고 복종하게 될 때에 그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아무리 열심히 출석하고, 또 많은 헌금을 드린다고 해도, 그의 삶에 성령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순히 종교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힘입어 살아가는 진정한 신앙생활의 승리자는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성령충만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령충만을 이룰 수 있는 9가지의 원리를 공부했습니다. 혹시 그 아홉가지가 무엇인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가끔씩 목사가 엉뚱한 질문을 해서 곤란하게 합니다. 지난 주에 무슨 설교를 했는지도 기억하기 힘든데 아홉주간에 걸쳐서 설교했던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래도 한 번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② 회개해야 합니다. ③ 말씀을 믿고 묵상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④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⑤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⑥ 마음을 열고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⑦ 인내해야 합니다. ⑧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⑨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은혜를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이상의 아홉가지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충만의 원리들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따라 살게 되면 그것이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안다고 해서 저절로 성령충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멋지고 행복한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부산에 가는 길을 안다고 해서 부산에 저절로 도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부산가는 방법대로 부산을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부산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을 안다고 해서 배고픔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두 손으로 밥을 퍼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배부를 수가 없습니다. 부뚜막에 있는 소금도 뿌려야 짭니다. 부뚜막에 그대로 두고서는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그 방법을 소개하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명령을 따라 실천해야 합니다.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선생님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순종적 실천을 근거로 위력을 발휘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예수 믿고, 성령충만을 받는 방법을 말씀으로 통해서 분명히 교훈을 받았는데,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려는 순종적인 몸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영적 지식을 가지고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은 모두 죽은 신앙에 불과한 것입니다. 죽은 지식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성령충만하려면의 마지막 주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적 실천입니다. 몸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증거된 아홉가지 성령충만의 원리들을 피상적인 지식으로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며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영적 결실은 항상 순종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힘써 순종하시므로 성령충만의 귀한 축복을 소유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압제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굽 군대의 추격 속에 무사히 홍해를 건넜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온갖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반석에서 샘이 터지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을 향한 행진에는 조금도 차질이 없었습니다. 어느덧 눈앞에 가나안 땅이 보이는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머지 않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애굽의 모든 고통을 잊고,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평화로운 생활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기대는 전혀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얻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각 지파의 우두머리 중에 열두 사람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오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 어떠한지를 탐지하기 위함입니다. 미리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이처럼 열두 명의 족장들을 가나안 땅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명대로 가나안의 모든 땅을 탐지하고 다시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허락하신 땅이 어떤 곳인지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족장들이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가나안 땅은 좋은 땅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땅입니다. 한 송이의 포도를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와야 할 만큼 대단한 땅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이 얼마나 좋은 땅인지, 그리고 얼마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땅인지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처럼 좋은 땅을 주신다고 생각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 한쪽에서 조용히 문제를 꺼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지금 정탐군들이 설명한 것처럼 엄청나게 좋은 땅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땅에 아낙 자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들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장대한 사람들입니다. 힘은 괴력에 가깝습니다. 그들의 성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견고합니다. 그 뿐입니까? 그들은 이미 철기의 무기로 무장해 있고, 숙련된 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보십시오. 기껏 노역이나 하던 사람들입니다. 무기는 뭐가 있습니까? 몽둥이를 들고 그들과 어찌 싸웁니까? 우리가 그들과 비교해 보니 우리들은 그들 앞에 메뚜기에 불과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좋기는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그 땅을 정복하고, 그것을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함께 정탐했던 사람들이 맞다고 하면서 합창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덧 그들은 가나안 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낙자손의 대단함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백성들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림의 떡이 아무리 맛있어 보이면 뭐하냐는 것입니다. 먹을 수 없다면 헛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낙자손이 그처럼 위대하고 대단하니 가나안 땅은 고사하고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노했습니다. 모세를 향해 돌을 들어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바라보시면서 불신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불순종하는 백성들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민수기 32:11)

하나님은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세를 대적하며 우리를 아낙자손의 손에 죽게 하려느냐?고 외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치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일점일획의 변화도 없이 완전하게 이루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너희 자손에게 줄 것이라 그것을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된 약속을 믿고, 그것을 소망하므로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낙 자손이 강대하다고 할찌라도 그들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들의 성이 아무리 견고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셨고 축복하셨으니 가나안 땅으로 진군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가 바본 줄 아느냐며, 우리를 죽으러 보내는 것이 아니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문제를 보았습니다. 문제를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불신앙이며 불순종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런 실수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성령충만을 약속하시면서 여러가지 원리를 제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의 원리를 따라 진군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니,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이니 믿고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를 들춰냅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빠서 안되고, 연약해서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안좋다는 것입니다. 문제만 보고 지금은 도무지 그럴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말이 좋지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이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문 11절 말씀에서는 “애굽에서 나온 이십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3절 말씀에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로 사십년 동안 광야에 유리하게 하심으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필경은 다 소멸하였느니라”(민수기 32:13)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셨는데 그 축복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미련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의 온갖 세상 일들을 핑계대며 절대로 성령충만의 길을 따라 걷지 않습니다. 기도하자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사랑하자고 함에도 말씀을 연구하는 자리에 무관심합니다. 섬기며, 봉사하며, 또한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데 전혀 그런 말씀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저 목사가 하는 말 정도로 여깁니다. 사람의 말로 여깁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마음은 하나님께 멀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여기며, 순종하기를 게을리 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의 신앙과 삶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결코 성령충만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고사하고 진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은 그 방법을 안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안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함으로 침노해야 하는 땅이었습니다. 그와같이 성령충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으로 침노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약속에 순종하는 것이 때로는 허무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엉뚱한 짓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게 되면 성령충만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처럼 그렇게 성령충만과 그 유익은 결코 맛보지 못한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성령충만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인내하며 사명을 감당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모이기를 힘쓰고, 주어진 축복과 은총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성령충만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2.

본문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민수기 32:12)

이스라엘의 모든 족장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통곡을 하며 모세를 죽이려 할 때에 그 때에 등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갈렙과 여호수아입니다. 이들은 백성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낙 자손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의 밥일 뿐이다고 외치며 하나님께서 이 좋은 땅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으니 진격하여 그 땅을 얻자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크게 보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크게 보았습니다.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크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순종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다시금 그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을 들어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의 가나안 땅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순종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순종이 없이는 결코 성령충만의 가나안 땅을 구경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약속하시고, 축복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므로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까? 그들은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따라 합시다. “온전히 순종하자” 그렇습니다. 순종은 온전히 해야 합니다. 짜투리 순종은 참된 순종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짜입니다. 부족한 순종도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순종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과 발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순종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순종합니다. 그러나 그의 입은 결코 하나님을 고백하지도 않으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입으로 순종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마음도 순종하고 입도 순종하는데 몸이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온전한 순종은 아닙니다. 온전한 순종은 바로 몸이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 앞에서 머지 않아 사람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혹 그런 일이 있게 되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주님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대견한 일입니다. 그들의 말은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주님을 순종하고 싶었습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날이 다가왔습니다. 주님과 함께 기도하고 있던 저녁에 유대의 병정들이 검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제자들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하던 주님이 잡혀가는데도 그것을 눈앞에서 바라보면서도 어찌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도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님을 위해서 라면 죽기라도 할 것이라고 자기들의 마음을 토로하던 제자들의 입은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뜰까지 잠입해서 들어갔습니다. 주님께서 신문을 당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같은 아픔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요, 하면서 주님을 고백하는 입을 갖지 못했습니다. 입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은 비겁한 입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음에는 주님을 한없이 사랑하지만 주님을 저주하는 비겁한 입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주님의 제자들은 마음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입으로도 주님을 따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왕이요, 나의 주님이 되신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주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들의 몸은 주님을 배반하는 몸이었습니다. 철저하게 불순종하며 배반하는 비겁한 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한다고 하고, 또 주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 말씀도 묵상하고, 인내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하며 기타 등등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요구하시는 모든 일들은 하므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의 몸을 얼어붙어 있는 주님의 제자들처럼 옛 습관의 자리에 복지부동,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은 성령충만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서 기도하므로 말씀을 묵상하므로 모이기에 힘쓰므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충만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9가지의 성령충만하려면 시리즈를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에게 성령충만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실천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주어진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그것을 사람의 말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으로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여러가지 핑계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고, 건강이 없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고.. 기타 수많은 이유로 순종하지 못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아낙자손을 핑계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주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있는 문제보다 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앞에 있는 온갖 핑계거리들 때문에 포기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입술만 순종하는 것도 아니요, 우리의 마음만 순종하는 것도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의 명하심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허락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성령충만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를 성령충만한 교회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 각자의 삶에도 성령충만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입니까? 여전히 말씀에 대한 방관자로 있을 것입니까? 지금까지 들려진 성령충만의 모든 말씀을 남에게 하는 말로 들을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들의 삶에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놀라운 축복이, 성령충만의 역사가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주의 약속과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므로

성령충만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결심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