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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10:9~16, 주일예배설교)

성령충만하려면 (6)

-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사도행전 10:9~16

Entrance Prayer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편91:1~3)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을 은혜 가운데 인도하시고, 무더운 중에도 건강잃지 않으며, 다시금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의 모습은 부족할 뿐이지만, 주 예수의 은혜를 힘입어 나아왔사오니, 우리를 용납하시고,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하는 중에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고, 악한 마귀는 조금도 관여하지 못하게 하시며, 주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평강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 아멘 ?

Introduction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담스러운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십일조 하라는 말씀이고, 둘째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가지 명령만 없어도 신앙생활을 하는데는 부담이 없을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이 세가지 때문에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전도하라는 말씀은 평생을 걸쳐 고민되는 말씀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매주일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오늘도 혼자 오셨습니까?. 성도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얼마나 부담스러워 하는지 모릅니다. 교회에 혼자 가면 무슨 큰 죄를 짓는 것처럼 고개를 들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꼭 누군가의 손을 잡고 가야만 할 것 같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하라고 합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땅끝까지라도 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고, 선교하지 않고 있다면 신앙양심에 부담을 가져야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부담스런 전도의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전도하라는 말씀만 없어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텐데, 하나님은 왜 이런 사명을 주셨습니까? 효율적인 면에서 생각해 봐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서 복음을 전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우리처럼 실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면서 복음을 증거한다면, 그 복음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즉각적인 형벌을 내리신다면 모든 사람들이 쉽게 복음을 믿을 것이며, 또한 효과적으로 복음이 증거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쉽고 편한 방법이 있는데, 우리처럼 복음을 전함에 자신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에게 힘든 일을 하게 함으로 통해서 우리를 골탕먹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복음 증거를 명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믿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증거의 사명을 주신 것을 우리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며, 더욱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님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을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성령충만이 없으며, 또한 그 유익이 풍성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증거함에 있어서 우리의 입이 닫혀 있었고, 우리의 마음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성령충만을 받는 일에도 한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이 놀라운 사건을 증거하는 산 증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사도바울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파함으로 주 예수의 날에 의의 상급을 풍성히 받을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사도행전 1: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다 암송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이 말씀을 읽어보면 복음을 증거하게 될 때에 성령이 충만해 진다고 했습니까? 아니면 성령이 충만해야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분명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복음을 증거할 수 있고, 능력있는 성도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복음을 증거하고, 전도하고, 선교해야 성령충만한 사람, 그 은혜에 풍성한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모순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말씀은 결코 모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성령이 임하시면 이라는 말씀은 우리 각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에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사적인 성령임재의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그 때부터 성령께서 역사하는 시대가 되는데, 주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뜻에 복종함으로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고, 또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존재론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임과 동시에 당위론적 사명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말씀은 구속사적인 성령임재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지 개인적인 성령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유의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성령충만을 받지 않았으니 전도하지 않아도 되고, 전도하지 않는 것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오해한 소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이라는 것은 간장종지보다도 작은 수준입니다. 겨자씨보다도 작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그릇을 확장시키지 않으면 결코 성령의 충만함과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복음을 증거함으로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을 크고 넓게 하므로 보다 풍성한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간장 종지에는 얼마간의 물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간장종지만큼 담을 수 있습니다. 태풍이 몰아치고, 시간당 200내지 300미리의 비가 내린다고 해도, 그렇게 며칠 밤낮을 내린다고 해도 간장종지는 그 이상의 물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항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을 항아리 만큼 담을 수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그 항아리는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신앙생활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랜 신앙생활을 했으면 성령에 충만하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천국의 기쁨이 넘쳐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성령을 담을 우리의 마음이 간장종지만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담을 만한 그릇이 크지 못하니 아무리 은혜가 장마비 처럼 퍼부어도 그저 성령충만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편81:10)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을 크게 하라는 것입니다. 큰 그릇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하나님께로 받는 은혜가 풍성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연조가 깊어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더욱 풍성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까지 이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집에 큰 아들 녀석이 태권도 승급심사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일년 남짓 수련을 하게 되니 그 녀석의 수준이 어느정도 되는지를 확인케 하는 띠의 색깔이 점점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흰 때에서부터 출발했는데 이제는 주황색 띠라고 합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빨간띠를 거치고 품띠를 거쳐서 검은 띠가 된다는 것입니다. 태권도를 수련함에 있어서 그 수련기간이 지나게 되면 보다 나은 등급을 나타내는 띠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신앙생활을 한 20~30년 정도 했으면 신앙생활의 등급도 태권도 검은 띠 정도 되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잘것없는 정도의 신앙의 수준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는 남의 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교도 하고 전도도 함으로 간장종지만한 우리의 믿음의 그릇은 태평양보다도 크고 넓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충만이 고작 간장종지에 그치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성장과 은혜의 충만에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힘써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그릇을 크고 넓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담을 만한 그릇을 크고 넓게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게 거하려고 하실 때에 간장종지 크기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태평양만큼 넓은 바다의 크기로 성령에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향해서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말씀과 명령을 따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주님의 말씀처럼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1) 첫째는 항상 전해야 합니다. 가끔씩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지금은 때가 아니야! 하면서 복음 전하기를 기피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그런데 자기 편한대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모든 때가 바로 복음을 전할 때라고 합니다. 항상 복음을 전할 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아니 한 차원 단계를 높여서 기회를 만들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는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차별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데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쉽고 수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로마의 황제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로마의 황제에게만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헬라인에게도,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차별없이 은혜를 베푸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고, 또 받아야 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사장님에게도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의 상사에게도, 부모님께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며느리와 사위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우리 민족, 우리 가족에게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셋째는 온 천하에 다니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히 해외선교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충만히 받을 믿음의 그릇을 가장 크게 넓히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루살렘만큼 충만한 것이 아니라 땅끝까지 만큼 충만하기 위해서는 온 천하를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증거하게 될 때에 우리를 향한 성령의 충만은 온 천하만큼 채워질 것이요, 그 은혜를 가히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지난 번 단기선교팀을 파송하기에 앞서 저는 청장년 예배에 설교를 했습니다. 물론 단기선교를 떠난다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선교할 데가 많은데 굳이 해외에까지 가서 돈을 쓰고 와야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는 됩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단기선교나 해외선교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땅끝까지 만큼 우리의 믿음의 그릇을 넓히는 것이고, 또 성령충만을 땅끝까지 만큼 우리에게 풍성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청장년예배에 설교를 하면서 단기선교를 떠나는 청년들을 향해 몇 가지 중요한 당부의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교는 열린 눈,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번에 태국을 방문하게 되면 그들을 향해 열린 눈과 열린 마음을 갖을 수 있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세계만큼 믿음의 그릇을 넓히고 돌아오라. 그리고 그만큼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린 마음, 열린 눈이 아니고서는 온 천하를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항상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성령으로 은혜를 받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유대인에게만 한정된 폐쇄주의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베드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늘로부터 한 그릇을 그에게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들을 잡아 먹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듣고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사도행전 10:14)

베드로는 속된 것을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부정한 것으로 자신을 더럽힐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먹으라고 명령하신 것을 먹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사도행전 10:15)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하신 것을 우리가 속되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넓은 마음으로 품는 사람을 우리가 거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품으시는데 우리가 세계를 품지 못하고, 옹졸하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 주변의 가장 친한 친구들만을 포용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은혜를 받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 우리의 입을 넓게 벌리지 못하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끔씩 교회에 등록한 성도들에게서 교회에 적응하기가 쉽지않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하는데 벽이 너무 높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들 끼리는 서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처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굳게 닫힌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가족의 입장에서는 성도들이 자기들 끼리 똘똘 뭉쳐서 굳게 쳐둔 그 벽을 결코 뚫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성령충만을 받는 일에 있어서 한계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됩니다. 이제는 우리의 벽을 허무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끼리의 담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완전히 열어 젖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품에서 쉬고 안식하고, 평안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고, 눈을 열고, 우리의 모든 것을 열어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교, 복음증거는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옹졸했던 마음, 혹은 우리의 가까운 사람들과만 함께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옹벽을 쳐두었던 모든 마음은 완전히 무장 해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열린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에게서 요람 속과 같은 평온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온 땅, 모든 사람에게까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그릇, 우리의 믿음의 그릇을 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며, 하늘의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복음을 힘써 전하기로 결심하는 온 교회와 모든 성도들 위에 성령충만, 은혜충만 능력충만 기쁨충만한 역사가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므로

크고 넓은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여

보다 풍성한 성령충만의 은혜를 체험하기로 소망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