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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성령을 속이지 말라 (행5:1~11, 수요예배설교)

성령을 속이지 말라

사도행전 5:1~11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 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도행전 5:1~11)

Introduction

요즘 교회는 돈 있는 사람이 끗발부린다고 합니다. 교회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교회의 권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목사님의 글에서 교회에는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 믿음과 헌신이 있으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 오천명을 족히 먹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황금으로 치장하고 있어도 믿음의 헌신이 없이 끗발부리려 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그 교회는 이미 교회로서의 빛을 잃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Main Subject

1.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지상의 모든 교회들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성령충만의 공동체였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장 바람직한 천국의 삶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습니다. 청지기 정신으로 서로를 위해 기꺼이 섬겼습니다. 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인물들 중에 특히 바나바라는 사람은 대단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사도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 나라의 사역과 그의 백성들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기꺼이 헌납할 수 있는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나바의 믿음과 신앙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 바나바를 칭찬하는 소리가 자자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초대교회에서는 바나바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아나니아였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보나 어느 모로 보나 바나바보다 뒤질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나바 못지않는 존경을 받아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이 있다고 인정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하나님 앞에서 멋진 헌신을 하므로 존경을 받는 것을 보며, 그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한편으로는 바나바의 위대한 헌신에 대한 영적 부러움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바나바가 교회와 성도들로부터 칭찬받는 것을 보며 자기에게도 그런 칭찬이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상의를 합니다. 우리도 바나바처럼 하나님께 헌신하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밭을 드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익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바나바처럼 자기들의 밭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여기까지의 아나니아, 삽비라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헌신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영적인 도전을 받고, 부러움을 갖는 것을 나쁘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아름다운 신앙인들의 신앙을 본받고 싶어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받는 영광의 상급을 부러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소욕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인 성령의 사람의 행동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바나바의 헌신에 대하여 감동하므로 바나바의 헌신을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혀, 그들은 헌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개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헌신의 사람들을 볼 때에 그것을 칭찬하기 보다는 비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헌신한 사람의 아름다운 헌신을 폄훼하려고 합니다. 비아냥거립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아름다운 헌신을 바라보면 그것을 본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부러움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섬기는 일에 헌신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를 보면 왠지 모를 시기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섬기는 일에 헌신하는 멋진 교회를 보면서 그런 교회를 본받을 수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잘하는 사람을 보면, 아름다운 헌신의 사람을 보면 뒤에서 헐뜯습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목사에게 인정을 받으며, 성도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몹시 배 아파합니다. 그리고 증오하는 마음까지 갖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마땅히 아름다운 일을 본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더욱 힘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바나바의 헌신을 바라보면서 영적인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바나바처럼 헌신하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아나니아의 이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2.

그러나 아나니아의 헌신에 사탄이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탄은 성도가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헌신의 기회에, 영적 성장의 기회에 방해꾼이 됩니다. 올무를 놓습니다. 덫을 칩니다. 그리고는 헌신하려는 성도의 마음을 좌절시킵니다. 낙심시킵니다. 이것이 사탄의 속성입니다. 사탄은 한 순간도 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쉬지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깨어라 근신하라 너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영적 결단을 가지고 헌신하려 할 때에 사탄이 그들의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미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나니아가 밭을 팔아 그 받은 돈을 손에 쥐었습니다. 견물생심이라. 돈을 받고 보니 돈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돈이면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고, 이 돈이면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고, 이 돈이면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바나바를 바라볼 때는 그의 신앙과 헌신의 아름다움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헌신을 본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보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돈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명 같은 돈을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 홀랑 바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다 바치고 나면 나는 뭘 먹고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앞일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얼마간의 돈이 꼭 필요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돈을 떼어 놓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바나바는 전재산을 바치고 모든 성도들에게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았는데, 자신은 전 재산이 아닌 일부만을 바쳤다고 하면 바나바가 얻은 칭찬을 받을 수 없을 것같았습니다. 교회로부터 바나바보다 못하는 평가를 받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사회적 지위가 있고, 자기의 명성이 있지 그렇게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누가 알겠느냐? 전부를 드린다고 하고, 일부는 숨겨두면 될 것이 아니냐? 너희가 말하지 않는데 알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그렇게 하면 헌신도 하고, 교회적인 명성도 얻는 것이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느냐? 이런 거짓말쯤 했다고 누가 손해보는 사람이 있느냐? 아무도 손해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이런 거짓말은 해도 괜찮은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그들의 고민은 끝났습니다. 밭을 판 돈 가운데서 일부는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일부를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2~3절 말씀입니다.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도행전 5:2~3)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모의 끝에 밭값의 얼마를 감추고, 얼마를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여 땅값의 얼마를 감추고 전부를 드린다고 하느냐? 베드로의 말은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밭값의 얼마를 감추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전부를 드린다고 한 것뿐입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령을 속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베드로를 속이고, 교회의 성도들을 속이려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령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조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은 성령의 전입니다. 교회의 운영자는 하나님의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속이는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주의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같습니까? 세상에서 보니 별볼일 없는 것같습니까? 권세도 없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힘없는 것으로 보입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온갖 박해를 몸으로 받으며 견뎌야 하는 곳이 별볼일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께서 세우신 성령의 전입니다. 이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는 성령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며, 이 교회를 속이는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입니다.

현대의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의 권위를 무시합니다.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우습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질서는 무시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의 서약은 별볼일 없는 것,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교회에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존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서 거짓을 말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취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경성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아나니아는 왜 성령을 속이는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3.1.

첫째는 욕심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를 하면서, 혹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형제들을 보면서 영적인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 때에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헌신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물질에 욕심이 생겨 헌신의 마음의 변하게 되면 그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이 되고 맙니다.

아나니아는 헌신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많은 물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비록 그의 땅값 중 일부이긴 했지만 않은 물질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단한 헌신입니다. 그러나 이 헌신은 욕심에 이끌리고 말았습니다. 이 헌신을 하게 될 때에 그 마음 가운데 두 가지 욕심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는 물질에 대한 욕심입니다. 또 하나는 영적 우월감에 대한 욕심입니다. 이 두가지 욕심이 그의 마음에 찾아오게 되니 그는 성령을 속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합니다. 교회에 헌신합니다. 많은 재물을 드리기도 하고, 또 많은 시간을 드려 봉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헌신이 다분히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키려는 것일 때가 있습니다. 이런 헌신을 하면서 아까운 마음으로 헌신을 합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을 아까워 합니다. 물질을 드리는 것을 아까워 합니다. 봉사하는 것을 아까워 합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헌신을 하므로 신앙 있는 사람임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교회의 인정을 받는데만 목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욕심에 이끌린 헌신은 결국 성령을 속이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며, 교회를 전횡하고,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순한 헌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헌신의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이기심을 채우려는 욕심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아까워 하는 마음으로 헌신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 때문에 헌신을 결단했으면, 세상 것에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것과 하나님의 것을 동시에 취하고 싶어하는 욕심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잘못된 헌신은 결국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인 사람으로 책망을 받은 것처럼 책망을 받게 할 뿐입니다.

3.2.

둘째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사탄에 충만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영적인 도전을 받고 하나님께 전적인 헌신을 결단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에는 거룩한 상급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일들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돈에 눈을 들기 시작하자 그의 마음에 사탄이 찾아왔습니다. 사탄이 물질과 함께 순식간에 아나니아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를 조종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말에 넘어가 순식간에 사탄의 노예가 되어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그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 사탄의 소욕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이 우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교회를 우습게 여기며, 성령을 속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의 마음에 조금도 틈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단호하셨는지 모릅니다. 사탄이 그의 주변에 어슬렁 거리면 신속히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는 인정사정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을 통해서 사탄이 공격하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묵과하지 않으셨습니다.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무안할 정도로 사탄을 공격하셨습니다. 성도는 이와 같이 경성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포로가 아닌 사탄의 포로가 되어 사탄 충만하게 되고, 사탄의 뜻대로 움직이다가 결국은 성령을 속이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4.

아나니아가 사탄에게 속아 사탄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신앙있는 양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거짓을 말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교회를 속였습니다. 성령을 속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속인 자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본문 5절 말씀입니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사도행전 5:5)

본문에 보니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책망과 함께 아나니아는 그 앞에서 고꾸라져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 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성령을 속인 자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속임은 이와 같이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만홀히 여기고, 우습게 여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있게 역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방해하며, 그 권위를 조롱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향해서 무섭게 진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같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저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를 방해하다가 즉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업신여기다가 가문이 졸지에 망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만 들은 이야기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던 사람들의 멸망을 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방해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무섭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보니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초대교회에 분명히 드러난 것이 있습니다. 주의 교회는 성령의 전이며, 어느 누구도 감히 폄훼해서는 안되고, 우습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교회를 대하여 항상 진실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회의 권위에 두려워 하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신종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는 주님께서 피흘려 세우셨고,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함부로 해도 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힘이 있다고 해서, 물질적인 능력이 있다고 해서, 또 다양한 모습으로 위력을 과시할 수 있다고 해서 교회에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대하여 항상 경건해야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또한 헌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하나의 사교단체, 또는 건전한 취미생활을 위한 곳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전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또한 오랜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들 가운데는 교회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권위를 별볼일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경성해야 합니다. 교회를 대함에 하나님을 대하는 심정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 교회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교회가 되고, 그런 성도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 교회에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섬긴다고 해서 거들먹거려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성령을 속이는 죄가 됩니다. 교회를 함부로 폄훼해서도 안됩니다. 그것 역시 성령을 속이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으로 성령에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게 될 때에 하나님을 그를 높여 주시며,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을 속이는 어리석은 교인은 하나도 없이 모두 바나바와 같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Prayer

1. ? 개인의 영성을 위해서, 직분과 사명감당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2. 예루살렘 ?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교회의 기관과 사역을 위해서, 어려움 중에 있는 성도를 위해서

3. 온 유대 ? 관공서와 학교를 위해서, 지역사회의 독거 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서

4. 사마리아 ? 국가적 불경기가 하루 속히 해결되고, 기업이 도산하는 일이 없도록, 위정자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바른 지도자들이 되기를 위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5. 땅 끝 ? 지구촌 곳곳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선교사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