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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복음,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 (롬 1:14~17)

복음,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

로마서 1:14~17

Entrance Prayer

1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 (시편 48:1~2)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을 은혜 가운데 인도하시고, 오늘 거룩한 성일로 허락하셔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시만 주님께 예배할 때에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며,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작은 소망조차도 주의 은혜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배를 시작합니다. 마칠 때까지 악한 마귀는 틈타지 못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우리사회는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에 아픔이 있더라도 사회의 구조를 개혁하고, 법을 개혁하고 정치 풍토 뿐 아니라 사회전반의 모든 것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개혁할 것입니까? 그것은 정치인들의 잔꾀와 술수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법과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고 해서, 또 수정보완한다고 해서, 또는 목숨을 걸고 그것을 사수한다고 해서 참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우리의 미래 사회를 축복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제도와 법에 희망을 걸고 살아갑니다. 어떤 정치인의 이념이나 사상에 미래의 꿈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한대로 인생들이 하는 모든 것은 수에 칠 가치도 없는 헛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개혁은 어떻게 이룰 수 있으며, 행복한 미래는 어떻게 이룰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1789~99)은 인류역사상 가장 전형적인 혁명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정치적 부패와 재정파탄에 대한 범국민적 개혁운동이었습니다. 이 개혁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라는 새롭게 되고, 보다 나은 미래가 도래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적인 혼란이 가중되고 침체의 늪에서 허덕일 뿐이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영국은 인간적인 사상에 의해 개혁을 주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한 웨슬레(1703~91) 라는 신앙인물로 복음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혼란하고 부패했던 영국사회를 복음을 질타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복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영국사회는 인간적인 개혁이나 혁명이 없었지만 새롭게 소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참된 개혁은 인간적인 사상이나 제도가 이루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에는 뒤따르는 무서운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말미암은 개혁은 시대를 바르게 할 뿐만 아니라 축복된 미래를 가져오게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 비약적인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상의 어떤 제도적 사상적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편지하면서 “나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14~15)

여기에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든지 복음 전하기를 힘썼습니다. 항상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복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헬라인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야만인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로마의 사람에게도 필요하며, 유대인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간혹 교회 다니시는 분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데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에게도 복음은 필요한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도 필요하며, 오늘날 교회에 다니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복음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무가치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절실하게 필요할 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이 나라가 살고, 이 민족이 축복가운데 성장하기 위해서 복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사는 것 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의 행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절대로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침몰해 가는 배 위에서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절대로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복음의 참된 가치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복음이라는 사실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Main Subject

1.

16a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 (로마서 1:16a)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럽게 여겼던 모양입니다.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우상은 로마의 황제였습니다. 사람들을 권세있는 로마의 황제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숭배했습니다.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부귀와 영화, 그리고 권세를 함께 소유하고 싶어했습니다. 황제의 영광을 가장 존귀한 영광인줄로 알았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과 그의 복음에 대해서는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눈에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는 로마황제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는 분이셨습니다. 평범한 여인의 슬하에서 태어났습니다. 로마의 황실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사렛이라는 보잘 것 없는 촌 동네에서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천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자랐습니다. 로마의 황제처럼 엄청난 호위병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갈릴리를 다닐 때에 어부 나부랭이들과 어울려서 지냈습니다. 그뿐입니까? 로마의 총독에 의해서 사형에 집행되어 십자가에서 아주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황제의 화려한 영광 앞에 예수님과 그의 복음은 별볼일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로마의 사람들은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예수 믿으면 뭐가 어떤데? 기껏해야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거 아니냐?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예수 믿음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해서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화려한 영광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모두가 황제의 영광을 추구하며, 그것에 매몰되어 살았습니다. 복음 속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날의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세상의 권력과 명예와 영광만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을 마음의 우상으로 섬기고 살아갑니다. 간혹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오직 세상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을 당시에 로마에 살고 있던 사람들처럼 모두가 세상의 영광만을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만을 좋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마음의 우상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동일한 현상이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뿐입니까?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살아가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입니다. 길거리에 옷을 훌떡훌떡 벗고 다니는 사람들, 연예인들은 무슨 경쟁이나 하듯이 누드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들입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것이 영광스러운 것인 줄로 압니다. 오히려 복음을 부끄러운 것으로 알고 우습게 생각합니다. 함부로 조롱합니다. 그래도 되는 줄로 압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 여기에 편승해서 복음을 부끄러워 하며 숨깁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숨겨야 하는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렇게 우습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것은 그분이 왕의 아들로 태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낮고 천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시고, 대단한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신 것은 예수님께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하늘의 놀라운 권세가 있으셨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인류에게 참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죄인으로, 또 유대의 죄인으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 했던 것은 무능력하고 힘없는 죄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모든 인류를 대속하시며, 마귀의 권세를 결박하시고, 승리하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에게 흉칙한 얼굴을 가진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엄마가 다른 친구들의 엄마처럼 예쁘지 못하고 흉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늘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의 엄마가 거리를 지나게 되면 괴물이라고 놀리며 조롱하고 심지어는 돌까지 던졌습니다. 아이는 이런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길에서 엄마를 만나게 되어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진을 보다가 처음 본 예쁜 여자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엄마 사진이라는 것입니다. 엄마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생기셨는데 어느날 밖에 나갔다가 집에 불이 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사랑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엄마의 얼굴을 부끄러워 하는 아이입니다. 집은 불에 타고 있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집안에서 들립니다.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엄마는 아이를 구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구하느라 엄마는 아름다운 얼굴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을 버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에 아이는 결코 엄마의 흉칙한 얼굴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얼굴은 내 생명을 대신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한 징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의 원리에 맞지 않고, 사람들의 눈에 흉해 보인다고 해서 우리는 부끄러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구원하며,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의 아름다운 영광을 십자가와 가시관으로 바꿔 쓰고 계신 그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된 그 복음을 결코 부끄러워 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온 천하의 모든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복음을 자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본문 16b절을 보겠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b)

바울 사도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던 이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바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그것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며, 또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도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 외에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누구든지 복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만이 구원을 얻게 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다른 것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고,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돈을 많이 갖게 되면 그것이 구원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의외로 돈많은 사람치고 행복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면 분명히 편리합니다. 그러나 평안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불안합니다. 권세를 갖게 되면 사람들은 구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권세를 가져야 하고, 지금 가진 권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종영된 무인시대에는 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고 할 만큼 권력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비정해 지는지 볼 수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최충헌이라는 인물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권력을 향한 욕망은 한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권세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피를 나눈 형제든지, 조카든지 사돈이든지 심지어는 자식이라도 가리지 않고 처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늘 불안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홀로 독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의 행복은 권력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행복 또한 그 나라가 얼마나 부강한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인간적인 어떤 힘이나 권력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행복하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죄에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죄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권세로 또는 재력으로 도무지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 일을 이루어 냅니다. 복음은 죄에서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찬송가 184장에서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그렇습니다.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습니다. 전에는 죄에 매여 살던 사람이 이제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전에는 기쁨이 없던 사람이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의 심판에서 고통해야 하는 사람이 비록 세상에서는 보잘 것없이 살고, 돈도 없고, 권세도 없고, 무슨 영화도 없지만, 영원한 천국을 얻으며, 또한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복음이 죄로 말미암은 불행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게 되었음을 자랑하며, 증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복음은 죄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여기에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활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되어집니다.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1:17)

바울 사도는 복음을 설명하면서 그것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온전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입니다. 복음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연약한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장성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도 유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형편없이 유치하고 나약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아니 그의 삶은 거의 믿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상 사람들과 거의 동일한 삶을 살아갑니다. 때로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놀라운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이 들어오게 되면, 복음이 한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게 되면, 한 가정에서 역사하게 되면 놀라운 믿음의 성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성장하게 되면 생각밖에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장로 가이오에게 편지하면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믿을만한 사람이 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믿을만한 자녀가 되면 그는 부모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회사의 사장에게 믿을만한 사람이 되면 사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좋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옳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믿을만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아들은 우리에게 주신 분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 않겠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좋은 은사를 넘치게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믿을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지 못하시는 것 뿐입니다.

우리 아이가 어느날 제게 500원을 달라고 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의 묻지도 않고 그냥 줄 것입니다. 주머니에 500원 짜리가 없으면 1000원짜리라도 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제게 아빠 오늘 10,000원만 주세요라고 한다면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어디에 쓸 건데. 정말 거기에 쓰는 것 맞니? 하면서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10,000원을 준 경우에는 그 돈을 그 아이가 말한 목적대로 정확하게 사용했는지 확인할 것입니다. 10,000이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애 버릴까 봐 그러는 것입니다. 왜 1000원짜리를 주는 데는 아무런 말도 묻지 않고 줄 수 있는 아빠가 10,000 짜리를 줄 때는 따집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의 수준과 능력을 아직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믿을만하면 10000원이 아니라 통장 전체를 맡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카드를 주면서 그것까지도 맡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아직은 능력과 절제력과 돈을 사용하는 기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맡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합니다. 이 말은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초보적인 믿음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를 신뢰할 수 있을만한 믿음으로 자라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으시니 우리에게 무엇이든 못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천국의 열쇠를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은행의 카드를 우리 손에 맡기시면 맘대로 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믿음직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곳간의 것을 마음껏 꺼내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입니다. 복음으로만 얻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외에는 이러 축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귀한 것으로 알고 부끄러워 하지 말고 힘써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세상의 것으로 자랑을 삼습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영광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참된 비전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아무리 바꿔 봐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축복된 시대가 도래할 수 없습니다. 오직 복음외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만이 우리와 우리의 가정, 그리고 우리의 교회와 민족을 살리고, 축복되게 하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자랑합시다. 부끄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것을 비록 적게 가졌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놀라운 축복의 가치를 망각하는 가운데 있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구원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놀라운 영적 성장과 그와 더불어 주시는 천국의 열쇠를 얻게 하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오직 복음에 희망을 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나라 이 민족에게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복음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써 자랑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더불어 허락하시는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 온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시는 복음을 믿으며

힘써 자랑하여 자신은 물론이고, 가정과 교회,

그리고 민족을 살리기로 소망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