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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갈1:4~9)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1:4~9

Entrance Prayer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50:14~15)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을 은혜가운데 인도하시고, 오늘도 거룩한 성일을 허락하셔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올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보니 부족한 것 뿐이고, 죄스러운 것뿐입니다. 말씀을 증거하라는 사명을 받았지만 게으르고 나태했음을 고백합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오늘도 우리 각인의 심령마다 사유하시는 은총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배하는 중에 성령으로 임하셔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며, 원망과 좌절이 변하여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악한 마귀는 조금도 틈타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주님 만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 아멘 ?

Introduction

지난 9월 11일자 국민일보 만평에 재밌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함석지붕의 허름한 집에 비가 내립니다. 남편은 아마도 TV를 시청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방송을 통해 뉴스가 전해집니다. 오늘도 정치권은 보안법 폐지와 개정을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그 때 부엌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여보, 오늘 비도 오는데 김치전 좀 부칠까요~? .... 뉴스 좀 그만 보시구요~ (프로젝터로 띄울 것)

저는 이 만평을 보면서 씁쓰레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뉴스를 봐서 뭐하냐 속만 상할 뿐이다. 뉴스 보고 있느니 차라리 김치 부침개나 부쳐먹자.는 말로 우리 나라의 현실을 너무나 시니컬하게 꼬집고 있었으며, 우리 나라는 좋은 소식보다는 듣기 싫은 나쁜 소식들로 가득한 나라가 되어있다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뉴스를 접하며 살아갑니다. 한 순간도 뉴스가 없이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뉴스들이 다 좋은 뉴스는 아닙니다. 어떤 것은 좋은 뉴스이지만 어떤 것은 매우 나쁜 악성 뉴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뉴스는 무엇이고 나쁜 뉴스는 무엇입니까? 좋은 뉴스는 그 소식을 통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고, 행복을 주는 것입니다.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치료약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좋은 뉴스입니다. 오랜동안 병상에 있으면서 치료책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치료책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그것으로 치료를 받게 된다면 틀림없이 완치할 수 있게 된다고 할 때에 환자는 기뻐할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비록 환자이지만 행복할 것입니다.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부도직전에 있던 사람에게는 부도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이 생겼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고,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금줄이 막혀 안달을 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돈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를 빌려줄 것인데 이 돈으로 급한 대로 부도를 모면하라고 한다면 그는 이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할 것입니다.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에는 합격을 알려주는 소식만큼 좋은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합격발표를 기다리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초조합니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 합격여부를 물어보았습니다. 얼마나 긴장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전화로 들려오는 소리가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라고 하면 전화통을 붙들고 연신 머리를 숙여가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를 외칩니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반면에 악성 뉴스는 그것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며, 짜증을 유도하고, 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라크의 무장단체가 우리나라 젊은이를 납치하여 살해했다는 이야기는 전국민을 슬픔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갔습니다. 중국이 옛 고구려를 자기들의 속국이었다고 하며 민족의 역사를 왜곡하고, 또 훔쳐가려고 할 때 국민들은 침통하며 분개했습니다. 경기침체와 정국의 혼란에 관한 소식들, 연쇄살인범에 관한 끔찍한 사건과 사고를 전하는 소식들에 접하게 될 때에 어느 누구도 기뻐하고 희망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슬퍼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이처럼 낙심과 좌절, 또는 분노와 슬픔을 가져오는 소식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나쁜 소식입니다. 게다나 남을 헐뜯고 비방하므로 심각한 곤란에 빠지게 하는 소식들은 악성 뉴스입니다.

세상이 아름답게 되고, 축복된 곳이 되려고 하면 좋은 뉴스가 많아야 합니다. 나쁜 뉴스가 가득하거나, 악성 루머로 풍성하게 되면 그 사회는 망하는 사회가 되고 맙니다. 그곳에는 희망이 자라지 않습니다. 절망과 좌절 뿐입니다. 슬픔과 낙심 뿐입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 좋은 뉴스가 가득한 땅에는 비록 지금은 고통 가운데 있고, 심각한 질병 가운데 있고, 또 견디기 힘든 괴로운 상황 속에 있다고 해도 희망을 갖고 결국은 행복한 땅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나라와 이 땅에 좋은 소식들이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들에 아름답고 좋은 뉴스들이 풍성해서 기쁨이 가득하고, 행복이 넘쳐나고 희망이 춤추는 귀한 역사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 좋은 뉴스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의 삶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가 전한 좋은 소식은 잠시 머물 이 땅에 제한된 좋은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이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갈라디아서 1: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악한 세대에서 구하시려고 우리를 죄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자에게 좋은 의사는 좋은 소식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인심좋은 부자는 좋은 소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세대 가운데서 죄 중에 살고 있는 죄인들에게는 의사도, 인심 좋은 부자도, 위대한 사상가도, 정치인도 좋은 소식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죄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시는 그리스도만이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괜찮은 존재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이만큼 생겼으면 잘 생겼고, 이만큼 능력 있으면 괜찮고, 또 도덕적 양심적으로 이만하면 된다고 하며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단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존재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세대 가운데서 죄악을 저지르고 사는 추악한 존재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난 후에 암이라고 선언을 받으면 비록 지금은 큰 이상이 없는 것같아도 심각한 것입니다. 그것을 들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건강해 보여도 의사가 정밀하게 검사해서 암이라고 하면 그는 암 환자일 뿐인 것입니다.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것입니다.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무리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으로 검사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면 다행이지만, 성경이 죄인이라고 하면 그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악한 세대 가운데 사는 죄악된 존재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머지않아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으며,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옥 이야기를 하니까 요즘도 지옥같은 것을 믿는 사람이 있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옥 같은 것은 괜히 꾸며낸 이야기면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가보면 알 것입니다. 가보면 후회해도 늦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옥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은 꺼지지 않는 불이 소금치듯이 그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단순한 고통이 아닙니다. 울며 이를 갈고 통곡해야 하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고통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이 지속되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을 없다고 부정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죄악된 존재들이었습니다. 악한 세대 가운데서 죄악을 저지르며 사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괜찮아 보여도 죄 투성이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의 형벌 속에 있어야만 하며, 아무런 탈출구도 없이 절대 절망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나쁜 뉴스 속에서 좌절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기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를 죄로 말미암은 심판 속에, 지옥의 형벌 가운데 버려두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시고, 그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이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곳에서의 흘린 피는 우리의 죄를 말갛게 씻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바 되었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이제는 축복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축복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복음이 주어졌습니다. 좋은 소식이 주어졌습니다. 영원히 행복하고, 소망 중에 거할 수 있는 복된 소식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복된 소식으로 받아야지 그렇지 않게 받거나 무시하면 안됩니다. 복음을 받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복음으로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대에 우리 안에 천국의 기쁨과 평안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곳곳에서 이 복된 소식들이 들려지게 해야 합니다. 이 소식들이 회자되어야 합니다. 암송되어야 하고,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은 좋은 소식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천국의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 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우리의 가정에 복음이 계속해서 진동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천국의 소식이 끊임없이 고백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가정은 천국과 같이 행복한 곳이 되어집니다. 가정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 좋은 소식이 이야기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 전체는 천국이 됩니다. 행복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이러한 복음을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고, 자랑하고, 증거함으로 천국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의 삶에 충만하게 함으로, 이 복된 소식으로 그들 가운데 가득하게 함으로 그들에게 복을 가져올 수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 사이에 들어오게 되었던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에게 속아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인 줄로 착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들의 삶에서 이것을 포기하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좋은 소식이 충만해야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데 악성루머가 충만하게 되었으니 교회는 천국이 아닌 혼란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은 준엄하게 꾸짖고 있었습니다.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라디아서 1:6)

바울 사도는 이미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고, 기쁨과 행복을 얻게 되는 참된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이 이 복음을 받고 기뻐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서 이들은 바울이 처음에 전해준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참된 복음을 그들의 삶에 충만하게 하지 못하고, 복음이 아닌 율법주의에 빠져 그것을 복음으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인줄로 알고 그것을 위해서 수고했습니다. 율법을 따라 할례를 행했습니다. 구약적 안식일을 준수했습니다. 희생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등 온갖 구약의 율법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삶이 그들에게 구원을 주는 것인양 생각하고,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로 돌아가 그것이 복음인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복음이 아닙니다. 공로사상은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하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런 복음을 저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심히 안타까워 하면서 성도들의 잘못된 신앙을 꾸짖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복음을 버리고 복음 아닌 것을 복음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는 7절에서는 “다른 복음은 없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 8절과 절에서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기쁜 소식이 될 수 없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좋은 소식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가 아닌 것은 결코 복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그럴듯하게 미혹한다고 해도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외에 어느 무엇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해 낼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결코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착각을 합니다. 도덕적인 선을 행하면 무슨 구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적인 선을 행하면 무슨 구원이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여러분 암병에 걸렸는데 착한 일을 하면 병에서 고침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암병을 고쳐야 합니다. 치료해야 합니다.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착한 일을 하고, 도덕적으로 그럴 듯한 일을 해도 그것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무서운 질병에서 건져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이 못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소식이며, 복된 소식이라는 말씀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이야기, 그리고 무슨 도덕적인 수련의 이야기 등등의 우리에게 복음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아무리 우리의 삶에 풍성하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는 복된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천국의 평강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엊그제 캄보디아의 선교사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지금 기독교를 박해함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오직 예수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기독교의 주장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이해합니다. 자기들이 지금까지 섬겨왔던 우상종교에 구원이 없다고 하니 당연히 반발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면 안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은 독보적인 진리입니다.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것만이 참된 복음입니다.

현대의 많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교회에 출석합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 신앙이 점차 세상것과 타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으나 삶은 전혀 예수믿는 삶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을 좇아갑니다. 세상의 부귀를 섬기고, 그것이 복음인줄로 알고 그것을 따라갑니다. 세상의 것이 아름답고 귀해 보인다고 그것을 추구하기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갑니다.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십자가에는 희망을 걸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돈이 복음입니까? 아닙니다. 건강이 복음입니까? 복음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명예나 세상에 속한 어떤 것도 결코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천국을 가져다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이런 것들로 노래를 불러봐도, 이런 것들을 향한 불타는 정열을 가지고 또 그 결과로 세상의 이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고 해도 결코 우리는 천국의 행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결코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복음인줄로 착각하며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참된 복음을 저버리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외에 다른 것은 어떤 것도, 그것이 아무리 화려해도 복음이 아닙니다. 멋진 인생을 선물해 줄것 같아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지옥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만이 그분의 능력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의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그렇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 있어도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참된 기쁜 소식입니다. 천국을 누리며, 그 행복 가운데 거하게 하는 참 좋은 뉴스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의 달콤함에 빠져 그것이 복음인줄로 착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복음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또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을 복음으로 착각하고 따라가다가 멸망의 자식으로 전락하는 가운데 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주의 자식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모든 것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어가는 저주의 소식, 악성 루머임을 기억하시고, 참된 복음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과 더불어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오직 예수 밖에 다른 복음이 없음을 믿고, 믿음에 견고하게 서므로

천국의 행복을 얻기로 소망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