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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복음, 함께 하심의 약속 (창28:10~19)

복음, 함께 하심의 약속

창세기 28:10~19

Entrance Prayer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 51:10~12)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도 은혜로 인도하시고, 민족고유의 명절을 맞이하여 원근각처에 흩어두셨다가 오늘도 한 자리에 모여 예배할 수 있도록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한 해의 결실이 탐스럽게 익어감같이 우리의 믿음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경배할 때에 악한 마귀가 조금도 틈타지 못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천국의 기쁨과 평안이 온 교회 위에 충만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지난 주간에는 여러분을 참으로 사모했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고통라는 특수신학교에 보내셔서 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병원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놀라운 은혜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으로 전신마취를 하게 되고, 또 의사들이 늘상하는 이야기지만 겁주는 말들이 있지 않습니까? 심각한 합병증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수술대에 오르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수술을 받는 자리 뿐 아니라,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불 가운데로 다닐 때에도 주님은 그곳에서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술에서 깨어날 때에 시편23편을 기쁨으로 암송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상관없이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좋을 때엔 우리 곁에 있다가 우리가 힘들 때엔 비겁하게 도망하는 잡신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 언제나 늘 함께 늘 동행해 주시네 주 날마다 내게 이김 주고 늘 동행해주시네(찬송가 494)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고 동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으며, 고난이 가득하고,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 승리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본문 10~1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세기 28:10~11)

야곱이 고향을 떠나 외삼촌의 집이 있는 하란 땅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멀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요즘같이 고속도로가 나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편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하란 땅까지 가려면 그는 한달 이상을 걸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야곱이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늘 있는 일입니다. 해가 지고 뜨는 것은 늘 있는 일이지만 이 날 해가 지는 것은 야곱에게 있어서 엄청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의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대했지만, 그리고 그의 모든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루었지만, 그의 인생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으며, 지는 태양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의 지는 태양은 야곱의 인생에서 희망의 태양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절망의 깊은 밤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제 야곱에겐 더이상의 희망은 없습니다. 그에게는 절망과 낙심 두려움 뿐입니다. 그에게는 찬란한 영광의 태양은 없습니다. 오직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의 밤을 홀로 지새울 뿐입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것은 야곱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없는 모든 인생에게는 절망과 두려움의 밤은 찾아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예외가 아닙니다. 많은 공부를 하고, 외국어를 몇 개 국어를 능숙능란하게 구사한다고 해서 그의 인생에는 항상 찬란한 태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으로 아무리 풍족한 축복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예수 없는 인생은 에서 앞에서 도망해야 하는 야곱과 처럼 두려움의 밤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야곱에게 이와같은 두려움의 밤이 찾아온 것입니까?

1.1.

첫째로 야곱에게 찾아온 두려움의 밤은 그의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따라 합시다. 우리에게 두려움의 밤이 찾아오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야곱에게 두려움의 밤이 찾아온 것은 그가 가진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욕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장자의 자리를 놓고 다툼을 시작했습니다. 남 잘되는 것을 도무지 눈뜨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 야곱입니다. 발목을 잡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비겁하게 발목을 잡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정당당하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마저도 쉽게 저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장성해서는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야곱의 욕심을 끝이 없었습니다. 이 욕심이 결국은 화를 불러온 것이었습니다.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가 그를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기회만 생기면 야곱을 죽여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에서를 피하여 도망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에서의 낯을 피해서 고향 땅을 등지로 낯선 땅 하란을 향해서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밤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욕심은 두려움의 밤을 맞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은혜로 에덴 동산에 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다. 그들은 동산에 있는 모든 생명나무의 실과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동산에서 항상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마음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같았습니다. 눈이 밝아졌습니다.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그 때부터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욕심은 그들로 하여금 극도의 두려움의 밤을 맞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찾아오셨을 때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 떨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대하여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무 사이에 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욕심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면 그것은 바로 징벌과 심판으로 말미암아 떨어야 하는 밤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밤이 찾아오는 것은 두려움의 밤이 찾아오는 것은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정욕 때문입니다. 죄악된 욕심이 우리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에 이끌려 살아가기 때문에 두려우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없고, 주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 가인의 모습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다가 두려움의 밤을 만난 야곱과 같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여러가지가 있지만 욕심을 버리는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욕심을 가지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리게 될 때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둘째로 야곱이 두려움의 밤을 맞이하게 된 것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란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멀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위험이 있을지 모릅니다. 강도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민족들 때문에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에서만을 피해서 도망하는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피하여 도망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란 땅까지 가는 동안에 안전함에 대한 보장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정확하게 하란 땅에까지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앞길이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외삼촌을 만나게 된다고 해도 그의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은 불확실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두려움의 밤을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은 바로 야곱이 만난 불확실한 바로 그것입니다. 어느 것도 확실하고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믿었던 것이 우리의 발등을 찍습니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투자했는데 그것에서 부도를 맞습니다. 이 녀석만큼은 확실하다고 하며 자녀들을 믿었는데 그 자녀가 엉뚱한 짓을 합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기만 하면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에서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또한 그의 삶에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찾아온 것은 안전하고 확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을 그를 속였습니다. 그를 이용해서 자기의 재산을 늘리려 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고생의 떡을 먹으며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외삼촌의 자녀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위기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에게 가면 그의 모든 삶은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더 큰 위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미래의 불확실함 때문에 루스 땅 한 곳에서 두려움의 밤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안전하고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또한 그로 말미암은 두려움이 극에 달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미래의 불확실함 때문에 두려움의 밤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오늘 고생이 족하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며 불안하고 두려울 수 밖에 없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염려를 주께 맡기고 담대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두려움의 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야곱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란 땅으로 향하는 중에 두려움의 깊은 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광야 한 가운데서 돌 베개를 하고 누워 어떻게든 몸 속 깊이 찾아오는 추위와 두려움을 이겨보려고 했습니다. 형 에서가 언제 어떻게 그를 공격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그 지방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 가운데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이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창세기 28:12)

야곱은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는 밤을 맞아 잠들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야곱을 홀로 버려두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망하는 가운데, 절망하는 가운데 홀로 방치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며, 또한 복음입니다. 야곱이 꿈에 본즉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계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성경이 기록되기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즉 꿈이란 비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상을 말하는 것이며, 묵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꿈이 없을 때에, 묵시가 없을 때에 야곱에게 찾아온 밤은 두려움의 밤이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야곱에게 꿈이 찾아왔습니다. 몽조가 생겼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두려움의 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두려움, 죄로 말미암은 것이든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말미암는 두려움이든지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입니다.계시입니다. 복음입니다. 이것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복음이 있게 될 때에 두려움을 이기고, 평안함 가운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되어, 당당히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안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힘껏 도약할 수 있게 되고, 결국은 당당히 주님이 예비하시는 축복의 벧엘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1.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허락하신 꿈은 어떤 것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외로운 광야의 길을 홀로 걷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15)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그 조상에게 약속하시고, 축복하신대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죽은 하나님이거나 무능한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야곱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너를 이끌고 인도해 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인지 모릅니다. 사업이 부도가 나도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건강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도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원수들이 공격하므로 심히 곤란한 가운데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곳에서 함께 하시고,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바로에게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 고통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통의 현장에서 함께 고통하시며 아파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심판과 저주를 받아야 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은 외면하여 떠나 계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한 순간도 고통의 자리, 심판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주님은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고통을 당하며 풀무가운데 던져진 바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비겁하게 그들을 떠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풀무의 뜨거움을 견디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바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다니엘을 떠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계셨습니다. 밤새도록 사자들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므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셨습니다.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므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파라클레이토스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하십니다. 고통의 현장에서 아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곳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함께 하십니다. 슬퍼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에 위로하시는 성령님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결국은 승리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우리 마음에 굳게 확신해야 합니다.

2.2.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함께 하십니까?

A.

첫째는 하나님은 야곱에게 사닥다리를 보여주시므로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보여주신 이 사닥다리는 단순한 사닥다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는 인류와 축복의 하나님을 연결하는 은총의 사닥다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야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라고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절망 가운데 그를 그대로 방치해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히 야곱을 위해서 고통당하신 십자가의 주님으로 그와 함께 하시며,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막혀있는 담을 허시고, 그에게 천국의 문을 허락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고통과 좌절을 넘어 새로운 축복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두려움의 자리에만 십자가로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죄와 사망의 권세로 말미암아 지옥의 저주와 형벌을 받아야 하는 떨고 있을 때, 주님은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고 서 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에도 굽히지 않고, 꿋꿋히 십자가를 지고 그곳에 우리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을 흘리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찬송가 138장은 “십자가 십자가 내가 생각할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찬양하므로 우리의 고난 중에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그곳에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의 고난과 슬픔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중에, 두려움 중에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현장에서 우리는 홀로 방황하는 광야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고통의 현장, 두렵고 떨리는 현장에 우리 주님의 십자가가 꿋꿋히 서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 까지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천국의 문을 열과 하나님과의 기도의 대화가 이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에게 열린 축복의 사닥다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밤중같은 두려움의 때에 주님의 위로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B.

둘째는 하나님은 언약과 축복으로 함께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13~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세기 28:13~14)

하나님은 야곱에게 꿈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시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다시금 선언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장자로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하나님의 축복의 가문으로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러한 축복의 언약을 듣게 되었을 때에 그의 마음에 있던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으로 떨어야 하던 그 밤을 평안과 행복이 가득한 안식의 밤이 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행복을 추구할 수가 없습니다. 야곱이 그의 잔꾀로 아무리 수고해도 그에게 돌아온 것은 도망가야 하는 불쌍한 신세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결국 그를 망하게 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축복은 네게서 부터 비롯되는 것도 아니며, 네 수고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복음의 진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축복을 자기들의 수고나 노력, 잔꾀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축복의 백성, 언약의 백성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때에 그는 참된 축복의 사람이 되며, 모든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참된 안식의 평안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뿌리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복된 소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언약을 베푸시고, 우리를 향해서 가나안이 천국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어느 누구든지 두려움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죄와 욕심 때문에 피하여 도망하지 않으며 안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피하여 도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 하나님과 사람의 낯을 피하여 도망했던 것처럼 그렇게 도망해야 하는 신세입니다. 미시의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여 불안하여 떨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에게 복음의 소식이 있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꿈을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복음의 소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향해서 끊임없는 고통을 친히 지고 십자가를 지시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는 사랑으로 함께 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네게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약속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고, 두려움의 세상에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몸은 비록 하란 땅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지만 주님의 동행하심을 믿고 나가 승리하며, 축복의 벧엘을 얻을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고 당당히 승리하기를 소망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