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하나님의 용서하심
이사야 1:18~20
Entrance Prayer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시편 57:1~3)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거룩한 성일을 허락하셔서 사랑하는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할 수 있도록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께 예배하는 중에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만가지 은혜를 받아 누리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사람들마다 행복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편 32편 1절에서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는 것이야 말로 최대의 행복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크게 범죄했습니다. 자기의 정욕을 위하여 충성된 신하의 아내를 빼앗습니다. 그리고 그 신하를 가장 위험한 전장에 보내어 죽게 했습니다. 그는 그 죄를 숨기고 사는 것이 결코 유쾌할 턱이 없었습니다. 마음 가운데 늘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보내셔서 다윗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종용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 통곡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회개한 후에 다윗은 시편 32편으로 찬양하며 고백했습니다. “행복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한 모든 죄에 용서함을 받는 것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용서하심을 덧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세상의 모든 것을 얻는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늘 불안하고, 늘 답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죄지은 사람이 경찰만 보면 슬슬 피하는 것처럼 그렇게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용서받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주님께 용서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살아갑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전혀 죄의식이 없이 살아갑니다. 세상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도덕적 의로움과 종교적 경건을 이야기합니다. 나름대로 착하게 살고, 법을 지키며, 세금을 꼬박꼬박 낼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당히 구제도 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자신이 죄인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주일에 예배도 드리고, 십일조도 하고, 가끔씩 새벽기도나 심야기도회에도 참석하고 있으니 자신은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의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 보면 죄없는 의인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탄광에서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어도 어느 누가 그를 향해서 더럽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조금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모두가 깨끗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탄광에서 입고 작업하던 그 옷을 입고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들어가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인상을 쓰고, 그를 지저분하다고 할 것입니다. 더럽다고 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죄인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죄로 오염된 세상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볼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의 거울에 자기를 비추고는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죄인이냐 나는 의인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야 합니다. 말씀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은 주님의 것을 도둑질한 사람이요, 간음한 사람이요, 강도짓한 사람이요,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도무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알게 되니,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니 그는 스스로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죄인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이며, 우리 앞에 당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인식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 말미암은 행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로마서 5:2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넘치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죄를 많이 지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됨을 처절하게 느끼고 절감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더욱 크고 놀라운 은혜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거울로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거울로,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죄인됨을 통감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틴 루터는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죄 때문에 한없이 울었습니다. 죄인된 자신을 증오하고 미워하면서 죄지은 자기 몸을 향해서 채찍질을 했습니다. 금식을 했습니다. 고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도 그의 죄를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그 죄는 더욱 또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마치 얼룩이 묻어 있는 옷감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세제를 붓고 세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묻어 있던 얼룩이 더욱 또렷하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죄에서 벗어나가 위해서 수고하면 할수록 죄가 더욱 분명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를 깨닫는 것만으로, 그리고 어떤 인간적인 방법으로도 죄에서 용서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쓴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의 죄와 그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사야 1:18)
따라 합시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이 말씀이 얼마나 축복된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죄의 짐에 짓눌려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용서의 자리를 마련하시고, 우리를 그리로 부르는 것입니다. 복음은 바로 우리를 용서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복음으로 통하여 우리를 용서의 자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자리로 나아가기만 하면 지금까지 죄로 말미암아 절망가운데 있던 우리의 모든 삶에 사유하심과 용서를 베푸시고, 우리로 행복할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준비해 두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용서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신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따라 합시다. “십자가의 자리가 용서의 자리이다.” 모든 인류는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가운데 있었습니다. 성경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중에 잉태하여 모든 생각과 마음의 계획이 악할 뿐인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는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시고, 우리가 당해야 하는 모든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시며, 죽임을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하는 죄인의 저주와 멸시와 천대를 죄없으신 주님께서 대신하여 담당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이 십자가의 자리로 부르시고, 이곳에서 우리의 죄를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말씀하시면서 이 십자가의 자리에서 우리의 죄를 내어 놓고 고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피에 우리를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결코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찬송가 184장 1절만 함께 부릅시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를 씻는 것은, 우리가 죄에서 용서함을 받게 되는 것은 죄를 깨닫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피가 묻어있는 십자가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곳에 가서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용서함을 받게 됩니다. 용서함을 받은 자의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가 있게 됩니다. 세상의 다른 것에 아무리 의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의 철학이나 사상이나 이념을 아무리 따라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잠시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마취상태에 있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깨어나게 되면 진상이 드러나게 되면 죄로 말미암은 심판과 고통으로 슬퍼해야 할 뿐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우리의 죄를 진솔하게 고백하고 용서함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3.
사람들은 모든 죄에서 용서함을 받는다는 주님의 말씀을 잘 믿지 못합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18절 하반절을 한 번 따라 해 보겠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 말씀은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는다는 분명한 약속입니다. 유영철과 같은 희대의 살인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그의 죄를 회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주님께서는 흰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깨끗하게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여름에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에 갔습니다. 피서인파가 다 지나간 후였기 때문에 바다는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아이들은 바닷물에 들어가서 물탕을 튀겨가며 한참동안을 신나게 놀더니 조금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해변가로 나와서 모래장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수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을 짓기고 하고, 나름대로 조그만 성도 쌓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파도가 한번 밀려오게 되자 아이들이 쌓아두었던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편평한 모래사장으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파도가 지나가자 다시금 아이들을 자기들이 쌓던 성을 열심히 쌓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밀려오는 파도는 그것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계속해서 성을 쌓았지만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의 피는 마치 파도와 같습니다. 우리가 일생토록 살면서 이런 죄 저런 죄를 짓습니다. 때로는 큰 죄를 짓기도 하고, 작은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번의 파도 앞에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마는 것처럼 그 모든 죄악은 사라지고 말 뿐인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탕자의 형은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를 용서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면 돌을 들어 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한편의 강도가 주님께 청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이르면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세상 사람들은 그를 흉악한 사람이라고, 살인자요 강도라고 하면 저주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강도 마저도 용서하셨습니다. 심지어 주님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으며, 주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눌 뿐 아니라 온갖 저주와 멸시로 예수님을 조롱하던 수많은 사람을 바라보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들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보혈의 피를 의지하며 회개하면 용서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용서는 한이 없습니다. 무한합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용서이십니다. 이 용서를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러 저러한 죄악 때문에 여전히 죄짐을 지고 괴로워 하십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회개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요한일서 1:7절 말씀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어떠하든지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깨끗케 하지 못할 죄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아와 회개하시고,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죄인된 우리에게 최대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자복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악이 아무리 무겁고 큰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완전히 용서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죄악의 보따리를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들고 나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악이 주홍 같을지라도 진홍 같을지라도 아무리 더럽고 추악하다고 해도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의 용서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그 죄짐을 내려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은 십자가의 보혈의 파도로 우리의 죄된 모든 허물들을 다 씻어 버리시고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오늘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파도 앞으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모든 죄짐을 가지고 나와 주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평안과 축복을 얻을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용서하시는 주의 복음을 듣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기로 결심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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