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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복음, 사랑의 확증 (롬5:6~8)

복음, 사랑의 확증

로마서 5:6~8

Entrance Prayer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6)

청명한 하늘과 신선한 바람을 허락하시고, 가을의 풍성함으로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며 성례주일로 지낼 수 있게 하시니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사는 우리들이었지만, 그 사랑과 그 은혜는 잊어버리고 세상과 벗하여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여주옵소서. 이제 주의 백성들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님을 경배하고자 합니다. 악한 마귀가 조금도 틈타지 못하게 하시고, 구속의 은혜가 각인의 심령마다 강물같이 흐르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 아멘 ?

Introduction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선교회 가운데 CCC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선교단체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거지순례라는 것을 합니다. 주머니에 최소한의 돈을 가지고 일정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학생이 이 거지순례에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CCC에서 훈련받은 것을 기초로 해서 복음을 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학생은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할머니 사영리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할머니는 못 들어봤노라고 했습니다. 학생은 할머니에게 사영리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사영리란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네가지 영적인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첫번째 원리가 하나님은 할머니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마치기가 무섭에 할머니는 흐느껴 울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학생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붙들고 할머니 왜 우십니까? 왜 그러세요. 걱정스럽게 여쭤보았습니다. 한참을 우신 할머니는 학생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일생을 살면서 누구에게서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부모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고, 남편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고,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니 너무나 감격해서 웁니다. 이 말씀을 들은 학생은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놀라운 것이구나 하면서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선언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참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으며 때로는 멸시를 당하기 까지 합니다. 힘있는 자들에게 억압을 당하고, 약한 자들에게는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애정결핍증 환자와 같이 사랑을 구걸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해도, 증오해도, 무시하고 저주해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복음은 바로 주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향해 사랑을 선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의 현장으로 나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따라합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로마서 5:6)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권세도 없습니다. 가진 것도 없으며 실력도 없습니다. 아무런 사랑받을만한 조건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조건을 뒤로 하고 조건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저는 중매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남자 여자를 소개시켜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중매를 하려면 상대방의 조건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지? 얼굴을 얼마나 잘생겼으며, 키는 얼마고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 가문은 어떠하고, 학벌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들이 어느 정도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중매하고 난 후에 뺨 석대를 맞기 쉽상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반영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는 사랑받을 만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능력이 있고,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며,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어야 사랑하며, 또한 그런 사람들이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별로 능력도 없고, 외모도 시원치 않고, 가문도 그저 그렇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한다면 더구나 장애를 가지고 있다거나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보다는 외면당하기 쉽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의 조건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조건만을 보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보다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죄악 덩어리입니다. 자고 먹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죄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무능력함에도 불구하고, 경건하지도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죄악으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을 뛰어넘은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증오하시지 않고, 사랑하시며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떠난 탕자와 같이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추악한 몰골을 해서 돌아오는 아들과 같습니다. 온 몸에서는 돼지를 치던 냄새가 배어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추악한 모습이 그에게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더러운 죄인을 아버지가 달려가 감싸안아주시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호세아의 부정한 아내 고멜과 같이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과 짝하여 방황하며, 세상의 쾌락을 따라 부정한 여인처럼 다닌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부정한 아내와 같은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고멜을 다시금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아내로 삼으신 것처럼 우리를 향하여 끊임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사랑은 끝없는 사랑입니다. 조건을 초월한 끝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제자들은 모두가 주님을 떠났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배신하여 떠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떠날지라도 나는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며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를 향해서 네가 닭 울기 전에 세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주님은 그의 제자들이 얼마나 비겁한 모습을 주님을 떠날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연약함과 불경건함과 죄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13: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1)

주님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제자들만을 향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죄악되었지만, 우리의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치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한없는 사랑으로, 조건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 주님 앞에서 감히 사랑을 요구할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의 의로움을 내세우고, 우리의 능력을 내세우고, 우리의 경건함을 내세워 주님께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으니 나를 사랑해 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주님 앞에 우리는 여전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지고, 별것 아닌 것에도 이성을 잃고 흥분하며, 죄악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히 내세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주님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라곤 전혀 없는 존재들입니다. 주님께 사랑받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그런 존재들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의 주인이 되신 가장 멋지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우리 마음에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것이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이루시기 위해서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성상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결코 죄와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죄인들에 대하여 자비심을 품으실 수가 없습니다. 철저하게 응징하고 심판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 앞에 커다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불경건함, 우리의 죄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조건없는 사랑으로 우리가 연약함에도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에는 여전히 우리의 연역함과 죄악이 걸림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제거하시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그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불경건함과 죄악을 용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런 댓가없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귀중한 아들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우리를 위해, 우리가 담당해야 하는 죄와 연약함의 짐을 지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며 우리의 죄가 용서되기를 호소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고통의 눈물을 흘리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고통을 호소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참으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시면서도 참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을 향해서 울부짖으면서도 결코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고통을 견뎌야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그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만 그 십자가에 고통스러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금니를 깨물고 눈물을 삼키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절규하는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앞에서 두눈에 고여있는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고통하는 아들을 보지 못하시고 등을 돌려 눈물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제 아내가 리비아 청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로 된 사영리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다음에 만났을 때에 한글로 된 이슬람 책자를 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읽어보고 이슬람을 믿으라는 암시였던 것같습니다. 아무튼 그 책을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어보면서 이슬람교가 어떤 종교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선행을 강조합니다. 경건한 신앙생활을 강조합니다. 그 책에서는 어떤 테러에도 옹호하는 것같은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보면서 대부분의 아랍 사람들이 고매하게 생각하는 이슬람 종교에서도 그들을 위해 대신 죽는 사랑을 보인 존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교의 창시자 고다마싯다르타도 인류를 향해 생명을 바친 사랑을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종교의 창시자들이 어느 누구도 그의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아무런 가치없는 인생을 위해서, 죄 덩어리인 존재를 위해서 대신 고통을 당하며 십자가를 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그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눈물을 삼키며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사랑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의 절정입니다. 사랑의 완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장소, 그 십자가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런 가치없는 우리들, 아무런 자격없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그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주님의 사랑고백을 들으시며, 그 사랑으로 우리의 삶에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넘쳐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너나 할 것없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연약한 존재입니다. 부족한 존재입니다. 죄덩어리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라곤 전혀 없는 존재들입니다. 사랑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당한 존재들입니다. 그뿐입니까? 우리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며, 멸시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보잘 것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조건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의 능력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가 연약하고, 경건치 못하고, 우리가 죄인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넘치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참으시므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거하며 기쁨으로 충만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사랑 가운데 거하기를 소망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