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라
누가복음 2:25~35
Entrance Prayer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사야 11:1~5)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들로 가득한 가운데서도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탄주간을 맞아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예배하는 중에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새 힘과 능력으로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귀한 날, 주 앞에 예배하는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축복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연일 들려오는 소리와 소문들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그러나 성탄주간을 맞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시므로 하늘 소망으로 기뻐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가진 것 많고 남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사람조차도 누군가의 위로를 필요로 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만만하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지치게 하는지 모릅니다.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생각지도 않는 질병이 찾아와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기쁨으로 한껏 웃고 싶지만 우리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는 우리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게 하고, 사랑하는 자녀의 진학실패, 취직실패 등등의 일들은 남 모르는 통곡으로 밤을 새우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홀로 누워있는 방안에서 쓸쓸히 눈물을 훔치기도 합니다. 믿었던 남편의 배신과 얽혀있는 인간관계는 우리의 마음에 엄청난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처절할 정도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입니다.
모르긴 해도 한 해를 지내면서 수없이 많은 날들을 고민 속에 지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서 우리의 마음에 이런 저런 상처들이 남아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의 상처난 심령에 주님의 위로하심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위로보다도 가치있고, 참된 만족을 줄 수 있는 주님의 십자가의 위로가 풍성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한 민족이었습니다. 세상의 여러 강대국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사랑하셨고,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세상의 쾌락을 따라갔습니다. 세상의 만족을 찾아갔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축복의 상실이었습니다. 은총의 상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능력으로 역사하며, 그의 백성들을 축복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떠나셨습니다. 그들에게서 축복을 거두시고, 은총을 거두시고, 원수의 강압 가운데 맡겨버리셨습니다. 열방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앗수르의 침공으로 그들은 민족적 자긍심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바벨론의 압제 가운데 통곡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후에 로마의 점령으로 이스라엘은 온통 상처뿐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어보이는 나라꼴을 보면서 좌절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를 돕지 않으신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절망감은 대개 두 가지로 표출됩니다. 하나는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그들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또 하나는 함부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신앙이고 뭐고 다 팔아먹고 함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비겁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온통 상처뿐이요, 백성들은 좌절했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비겁한 이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나라꼴은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무렵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분입니다. 우리 함께 본문 2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누가복음 2:25)
암울한 현실 앞에 모두가 절망하고 있고, 자포자기함으로 함부로 처신하고 있을 그 때에 시므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절망 중에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고난이 극심하고, 형편이 아주 나쁜 것임에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의 삶에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며, 약속하신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구약 성경을 통하여,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치 않는 것이기에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는 하나님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현재의 문제는 사라질 것이고, 지난날 세계와 열방 가운데 멸시를 당하고, 억압을 당하던 모든 가운데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축복의 시대를 다시금 열어갈 수 있을 것임을 자각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신앙인인지 모릅니다. 신앙인에겐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자포자기해서 함부로 사는 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낙심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며 메시야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시므온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기다렸듯이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위로를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 아무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냈을 때 사람의 말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를 위로할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이델베르그 신앙교육서에서는 제일문에 “생사간에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하면서 질문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은 바로 이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유일한 위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중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연세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절망 뿐입니다. 암담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암담합니다. 신문을 읽다보면 기쁨으로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거의 찾을 수가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짜증납니다. 경제를 보아도 암담합니다. 사회면을 보면 온갖 범죄가 기승을 부립니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정치인에게 희망을 걸고 그에게서 위로를 찾으려고 합니다. 어떤 기업의 성공에 기대를 겁니다. 교육이 발전되면 무엇인가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여기고 “개혁”을 부르짖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위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가 살 수 있고, 이 시대가 하늘의 위로 가운데 행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정신이 이 땅에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나라와 우리 시대를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그저 물질의 풍성만을 사모하며 나아갑니다. 육신이 건강한 것에만 목표를 두고 나아갑니다. 명예가 높아지는 것에만 최대의 관심을 갖습니다. 세상에서만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면서도 여전히 세상 것만을 추구하며, 그것이 풍성하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결코 여러분의 삶에 참된 위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유일한 위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정신입니다. 그분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재하시며, 또 그분의 정신이 이 시대 가운데 충만하게 되면 정치의 문제도, 사회 경제의 모든 것도 주님의 위로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위로하심 가운데 영원한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세상 것의 풍요로움을 기다립니까? 사랑하는 가족들의 안일함과 평안함을 기다립니까? 우리를 돕는 어떤 사람, 어떤 능력, 어떤 권세를 기다립니까? 그런 것을 기다려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시므온 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며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을 그 때에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성탄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 한 주간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으로 말미암은 위로를 사모하는 한 주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야의 시대가 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억울함과 고통과 괴로움을 다 씻을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기다렸는지 25절 말씀과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5절 말씀..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누가복음 2:25)
27절 말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누가복음 2:27)
본문에서 시므온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로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경건했다는 것입니다. 세째는 성령에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네째는 성전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삶의 표본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메시야를 기다리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탄생을 감사하는 성탄주간을 지냅니다. 그런데 이 성탄주간을 지내면서 시므온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유일한 위로로 알고 기다렸던 것처럼 “예수 정신이 이 땅에 가득하기를 위해서, 우리 교회에 충만하기를 위해서 시므온과 같은 삶으로 주님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1.
우리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출현을 앞두고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날을 준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의 삶을 의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죄악된 모든 것을 깨끗이 씻고 이제는 주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삶을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간음하던 것을 끊으라고 했습니다. 군인으로서 백성을 강탈하던 것을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온전하고 의로운 삶을 위해서 매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정의를 외쳤습니다. 헤롯왕의 정의로웁지 못한 행실을 보고서 묵과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를 외쳤습니다. 이 시대에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정의를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의를 위해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의로운 삶을 위해서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여전히 관공서에 부정과 비리가 가득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독교인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세상을 그렇게 빡빡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적당히 탁류에 휩쓸릴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살면 세상적으로는 출세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넉넉한 사람, 관대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삶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정신이 이 땅에 충만하므로 하나님이 공급하여 주시는 참된 위로가 가득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불편하고 힘들어도 의를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롭지 않은 것과 적당히 타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기업을 하면서도 정의롭게 해야 합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정의롭게 해야 합니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롭게 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는 삶입니다.
2.2.
성도는 경건해야 합니다. 경건함은 바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방편이 되어집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분 앞에 우리 자신을 무릎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경건을 기도와 연결시켰습니다. 기도없는 경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이 경건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울며 탄식한 것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민족을 위해서 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상처뿐인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를 위해서 통곡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달라고 눈물을 뿌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일에 푹 빠져 살아가며, 세상 일들로 염려가 가득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렸습니다.
경건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울어야 합니다. 민족의 문제를 가지고, 가족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의 마음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상처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울 때에 위로가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암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위로가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은 경건의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오랜 기간동안에 많은 상처들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 모든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요? 안됩니다. 아무리 재밌는 개그콘써트, 요즘은 웃찾사가 더 웃긴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열심히 시청한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에 위로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의 정신이 이 땅에 충만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3.
세째는 시므온은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에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에 내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성령의 뜻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존재입니다. 수없이 복잡한 문제들이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우리의 삶에 다가옵니다. 때로는 짜증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시므온인들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수많은 고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괴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마다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고집을 주장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며,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와 우리 교회에 이스라엘의 위로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정신이 충만하기를 사모하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함부로, 멋대로 사는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의 원리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이기심으로 충만해서는 안됩니다. 원망 충만해서도 안됩니다. 불평충만해서도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목이 곧은 백성이 되어서 고집으로 충만해서도 안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우리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정신으로 말미암은 참된 위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2.4.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은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므온은 성령에 이끌려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는 늘 예배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예배는 주님의 오심을 기대하는 모임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 영적인 감격이 있게 되고,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해 보지 않았습니까? 극심한 슬픔에 빠졌을 때에, 이런 저런 일로 상처를 받았을 때에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되면 주님의 위로로 말미암아 새 힘을 었던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현대 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예배를 소홀히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물론 바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일제시대보다, 6,25전후보다 힘들거나 바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때보다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때는 생명걸고 예배했습니다. 예배하므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를 우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대로 살아갑니다. 다른 것이 다 우선되고, 예배는 남는 시간에 적선하듯이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런 예배로는 하나님의 위로를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식적인 예배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된 위로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에로 나아오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주님의 위로가 넘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 교회와 이 시대에 우리 주님의 위로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으로 그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예배를 회복하므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사모하게 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예배하는 일에 핑계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늘 강조합니다. 매주 월요일 새벽기도,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이상은 금요심야, 수요예배, 오후예배에 참여합시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해야 하는 최소한입니다. 가급적 모든 예배에 힘써 참여하시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축복하심을 기대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위로가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예상밖의 문제들로 실패하며,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다른 것으로 피난처를 삼습니다. 술을 퍼마시므로 위로를 삼으려고 합니다. 쾌락으로 위로를 삼으려고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는 것으로 위로를 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시므온 처럼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은 위로를 소망 중에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정의를 위해 헌신하므로, 눈물의 기도가 있는 경건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하게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성전을 늘 사랑하고, 올라와 예배하므로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던 것처럼 주님의 위로를 사모하여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놀라운 승리와 평강이 저와 여러분, 온교회 위에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시므온처럼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므로
정의를 위해 헌신하고
눈물의 기도로 경건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성전에 예배하기를 힘쓰기로 결심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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