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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초보적인 신앙에서 떠나라 (히브리서5:12~6:2)

초보적인 신앙에서 떠나라

히브리서 5:12~6:2

Entrance Prayer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이사야 33:2)

하나님 감사합니다. 2004년을 허락하시며, 오늘 12월 마지막 달, 첫 주일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한해를 돌아보니 부끄러운 것 뿐입니다.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이룩해 놓은 것없이 어느덧 마지막 달을 맞게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의 불충함을 용서하시고, 다시금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하시어서 남은 시간이지만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하는 처음시간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 아멘 -

Introduction

여자들끼리 모여서 하는 말들 속에는 남자로서는 약간 자존심 상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남자를, 자기 남편을 애 취급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는 그런 일이 없지만... 믿거나 말거나.. 흔히 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남편은 큰 애, 그리고 다른 애들은 그냥 애들이라고 합니다. 자녀가 몇이냐고 묻는 질문에 삼남맵니다. 큰아들이 하나 있구요.. 아들하나 딸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한답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남편의 권위가, 또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어린애 취급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무슨 권력적 힘에 의한 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기를 살려주라는 것입니다. 남편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함으로 그의 기를 세워주고, 힘나게 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인터넷을 통해서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와 특강을 들었습니다. 대전중문교회를 시무하시는 장경동 목사님의 특강을 듣게 되었는데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분의 하시는 말씀에 아내들이여 남편의 기를 세워 주라. 남자는 자기 아내의 칭찬과 격려 한 마디에 정말로 지가 잘난 줄 알고 죽기 살기로 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시는데 어느 할머니 한 분이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는 남편되시는 할아버지를 칭찬하고 격려해야 겠는데 아무리 봐도 할아버지에겐 칭찬할 것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로 칭찬할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웃옷을 벗으시는 것입니다. 노인이 되면 근육이 거의 없어지게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옷을 벗는 중에 팔을 구부리게 되니까 알통이 조금 나오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것을 보시고, 옳다 저것을 칭찬하면 되겠다고 해서 영감, 아직도 팔뚝에 알통이 나오네요..하면서 칭찬을 했다. 할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머쓱해 하시더니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이 지나도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찾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할아버지가 아령을 들고는 운동을 하고 계시더랍니다. 그렇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말, 칭찬 한 마디를 듣고는 죽을 동 살 동 모르고 일한답니다.

이스라엘 땅은 척박하기 때문에 소 한 마리로는 밭을 갈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여러 소가 멍에를 함께 지게 해서 밭을 갋니다. 대개의 경우에 황소와 암소를 함께 멍에에 씌운다고 합니다. 암소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하지만 황소 두마리로 하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황소가 밭을 갈다가 힘이 들면 입에 거품을 질질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잘 밭을 갈지 못합니다. 그 때 암소가 곁에서 그 입에 흐르는 거품을 입으로 핥아주면 금새 황소는 다시 힘을 내서 밭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황소 두 마리를 한 멍에에 매고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랍니다. 사람도 동물로 남자라는 존재는 여자의 격려와 칭찬에 죽기 살기로 일한다는 것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들의 기를 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힘든 세상입니다. 밖에 나가면 스트레스 엄청나게 받습니다. 견디기 힘듭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가족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쳐있는 남편들에게 바가지 박박 긁어대지 마시고,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임금님처럼 떠 받들어 줘 보세요.. 큰 아들이니.. 철부지니 그러면서 깔아 뭉게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서 보니까 괜히 남자들 얼굴이 밝아지고 그런데 아내들이 남편들을 향해서 큰 아들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남편들은 집안에서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대접과 섬김만을 받으려고 합니다. 가정을 위한 봉사나 섬김은 하지 않고 오직 나만을 섬기라고 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이것 해달라 저것해 달라 하면서 조르기만 하는 것처럼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도 스스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내의 손에 의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들이 남편들을 향해서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장 다루기 힘든 아들, 가장 말 안듣는 아들.. 그런 아들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들이여, 집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않고 아내만 부려먹으려고 말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가장의 권위가 사라집니다. 남편답게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본문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테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젓으로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 5:12)

히브리서 기자는 당시의 유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숙한 신앙에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나약한 믿음에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 했습니다. 수없이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가르치고 교훈했습니다. 이미 말씀으로 훈련받고, 예수 믿은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적으로 봐서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그런 모습의 교회와 성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어린 아이의 믿음이었습니다. 선생이 되어도 부족할 판에 그들은 아직도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젖으로 먹어야 하는 지경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젖먹이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정에 태어나게 되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라지 않는다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걱정인지 모릅니다. 5개월이 되면 뒤집기를 하고 8개월이 되면 기어다니고 이러저런 작은 사고도 치고, 12개월쯤 되면 일어서서 걷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태어나서부터 줄고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기만 한다면 그것이 한해 두해 계속된다면 부모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까울 것입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그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신앙은 성숙해져야 하는데 미숙했습니다. 불완전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안타까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십자가의 군병이 되라고 하십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용사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젖병을 들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초보에 머물러서 어린아이의 신앙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랜기간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고, 또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아 감당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 아이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내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 선생의 신앙, 장성한 어른의 모습, 아니 십자가의 군병으로서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군병으로 영적 무기를 들고 나가서 싸우라고 말씀하시는데 젖병들고 나가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스스로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기로 결단합시다. 당당히 십자가의 군병들로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2.

오늘 우리가 버려야 하는 어린 아이의 일은 무엇입니까? 어린아이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직 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나만을 사랑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혹 있다고 해도 그들에게로 돌아갈 것보다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것이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의 마음, 어른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식사를 하다가 이 녀석들이 어떤 반찬을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으면 그쪽으로 젓가락이 가질 않습니다. 아이들 많이 먹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신기합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쪽으로 젓가락이 안갑니다. 전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아이들이 맛있다고 하는 그 반찬... 그건 제게도 역시 맛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는 그쪽으로 젓가락이 가지 않습니다. 왭니까?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배려하는 마음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른입니다. 어른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어른입니다. 장성한 사람은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교회의 특징이 어떻습니까? 오직 자기 교회만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 교회만을 풍요롭게 하려고 합니다. 모든 행사의 집중이 자기 교회만을 위해서 합니다. 축복을 받아도 다른 교회보다 우리 교회가 더 많이 받아야 하고, 우리 교회가 더 커져야 하고, 우리 교회가 더 편리해야 하고, 우리 교회가 더 아름다워야 합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특징입니다. 이런 어린아이의 틀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그 방향이 자기에게로 집중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모든 사역의 방향이 외부로 밖으로 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랑하며 그들에게 주님의 복음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만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가지고 보다 넓고 원대한 곳을 향해 비전의 날개를 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교회만을 위해서 모든 활동과 행사를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건물이 아무리 크고, 교인 숫자가 몇천명 몇만명이 된다고 해도 어린 아이와 같은 교회일 뿐입니다.

성도들 중에도 어린아이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자기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섬김을 받아야 하는 성도는 누구입니까? 장로님입니까? 아닙니다. 목사님입니까? 아닙니다. 안수집사님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권사님들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에서 가장 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는 새가족입니다. 교육부서의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들이 가장 섬김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의 사역 가운데 대부분은 여기에 집중되고, 교회의 섬김은 대부분 그리고 향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참으로 괴상한 형태의 교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기형적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어린아이같은 교회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자체만을 위해서 모든 활동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만을 위해서 사역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과 그분의 높으신 뜻을 위해서 헌신하고 힘써 섬기고 봉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섬김을 받으려고 힘쓰는 성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섬기고 희생하기를 원하며, 하나님 나라의 십자가 군병으로 우뚝 서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어린 아이는 자기만을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섬깁니다. 장성한 교회는 다른 교회를 섬깁니다. 세상을 향해서 섬기는 교회가 되어집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고, 우리 성도들은 이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성한 사람의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섬김을 하고, 사랑을 하고, 희생을 하는데 그것을 먼저하는 사람이 장성한 사람입니다.

저희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여러모로 민망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같은 동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서로 등을 돌리고 갑니다. 한동안 저도 그렇게 해 봤습니다.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먼저 인사하자 이렇게 결심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무조건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얼굴이 익혀지게 되고, 서로를 만나면 인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베이터 안이 그렇게 답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장성한 사람은 선한 일을 미루지 않습니다. 먼저 합니다. 희생을 먼저합니다. 사랑을 먼저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먼저 사랑하지 못하고, 먼저 섬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좋다는 것은 다 압니다. 그런데 먼저 실천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먼저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한가지 실행하도록 합시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먼저 인사합시다. 장로님들도 먼저 인사하시고 누구든지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인사합시다. 인사하기를 기다리지 맙시다. 사랑하기를 기다리지 맙시다. 용서하기를 기다리지 맙시다. 내가 아직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장성한 사람이 아닙니다. 유치한 어린아이의 신앙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서로 사랑하기를 먼저하며 따라 합시다. 서로 사랑하기를 먼저 하며 그렇습니다. 먼저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아름다운 천국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섬기는 일, 희생하는 일.. 그것도 먼저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자체를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하는 것도 귀중하지만 세상을 향해서 행하는 수고를 먼저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서 사랑을 베푸는 일을 먼저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 교회는 성숙한 교회, 장성한 교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알게 모르게 나만을 섬기고, 자기 교회만을 위하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젖병을 들고 서 있는 교회와 성도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런 초보적인 신앙을 벗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젖병을 들고 설 때가 아니라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하나님의 전사가 되어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세상으로 돌진하기를 바라십니다. 먼저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닌 보다 높은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함을 받는 귀한 교회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초보적인 신앙을 버리고,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로 결심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