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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시편62:5~8)

하나님만 바라라

시편 62:5~8

Entrance Prayer

27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시편73:27~28)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을 은혜로 인도하시며, 주님의 선하신 손길로 역사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니 부끄러운 것, 죄스러운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때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은혜 베푸셨음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부족했지만 주는 능하셨고, 우리는 어리석었지만 주는 지혜로우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높이며, 경배하기 위해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였사오니,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의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며, 예배하는 모든 심령들 위에 하늘 기쁨으로 충만히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을 지내면서 제게는 교회를 향한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연말과 연시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월을 축복하며, 사랑하는 달로 만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간 신문을 읽으면서 말세는 말세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의 집단 성폭행이 자행되고 있는 상상하는 것만도 끔찍한 일들이 우리 나라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세라는 말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경은 말세를 몇 가지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극심한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자연적 재해가 끊이지 않고 곳곳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거룩한 곳에 가증한 것이 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거룩한 곳에 가증한 것이 선다는 말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룩한 것으로 존중 받아야 하는 것이 멸시를 당하며, 가증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거룩히 여기지 않고, 가증히 여기고, 멸시하고 거부하는 때가 말세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깁니다.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과 교회를 징그러운 벌레처럼 생각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아십니까? 함부로 대합니다. 인터넷에서 젊은이들이 교회를 향해 저주하는 글들을 읽어보면 섬짓할 정도입니다. 얼마나 끔찍한 저주를 퍼붓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뿐입니까? 사람들이 교회를 조금도 거룩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경외심이라곤 조금도 없습니다. 함부로 대합니다.

저는 매일 교회에 살다시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어보면 가관입니다. 담배를 피워 교회에 버리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갖 쓰레기를 교회 앞에 던지고 가는 사람, 음료수를 마셨으면 마땅히 자기 집 쓰레기 통에 버려야 하는데 교회 문 앞에 가지런히 놓고 가는 사람..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죄지은 사람들은 교회 근처에도 못 왔습니다. 무서워했습니다. 그리로 지나다가 벌받을까 봐 무서워서 죄지은 사람은 교회를 피해갔습니다. 감히 교회 앞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담배를 버리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회 앞을 지날 때에는 피던 담배도 끄고 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핍니다. 아니 교회 화장실까지 들어와서 담배를 피우가 갑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왜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거룩하게 여기지도 않고, 두려워 하지도 않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도들 탓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도무지 교회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권위를 무시합니다. 업신여깁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교회와 교회의 질서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교회의 권세를 자기집 머슴의 권세쯤으로 생각합니다. 내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면서 똑같이 업신여기며 무시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를 우습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질서를 우습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와 교회의 권위를 우습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도 교회는 물론이요, 하나님과 복음을 우습게 여깁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게 되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 복음의 가치를 알고, 복음과 교회, 그리고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랑하며, 자랑해야 하는 대상이지, 우리가 함부로 하며 우습게 여기고, 비난해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Main Subject

1.

성도가 하나님과 교회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그 가운데 핵심적인 것은 바로 하나님과 교회를 향한 원망과 불평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의 선수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음에도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며 불평을 합니다. 기적같은 역사로 구원함을 얻게 해 주셨고,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따라 사명을 맡겨주셔서 능력으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는데 감사는 커녕 불평만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셨습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코 축복을 맛보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불평해서도 안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도는 어떤 일에도 항상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몫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목사가 심방을 하면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보는 데서는 아멘 하지만 속으로는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감사합니까? 하면서 불평이 솟구쳐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좌를 봐도, 우를 봐도 감사할만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만 가득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도는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감사가 나옵니까? 잘 안됩니다. 그러면 감사는 못해도 침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은 존중히 여기는 삶입니다. 따라합시다. 감사는 못해도 침묵은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힘든 고난이 다가와도,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감사는 못해도 침묵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우리에게 그와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므로 하나님의 교회를 우습게 알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형편에서도 범사에 감사해야 할 것이지만, 도무지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침묵이라도 해야 합니다.

욥을 잘 압니다. 그는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에게 찾아온 고난은 부당한 고난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보좌에서 자랑하실 만큼 그는 영적으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인간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아들 딸이 한꺼번에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많던 가축과 재산을 하루 아침에 다 잃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갑작스레 문둥병과 같은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괴로움에 절규해야 하는 그 순간에 욥은 그 입술로 범죄치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이 감사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에게 감사의 조건이 사라졌습니다. 도무지 감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는 침묵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 하는 형편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는 이를 악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을 했습니다. 욥이 멋진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부당한 고난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므로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다가온 고난은 너무나 부당한 것이었기에 도무지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으로 그의 입을 더럽게 하지 않았습니다. 추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감사는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침묵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욥의 신앙을 멋지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를 지내면서 우리 안에 알게 모르게 쌓이는 원망과 불평 꺼리들이 있습니다. 시험 꺼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에 넘어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든 일, 견디기 어려운 일, 때로는 부당해 보이는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로 원망하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우습게 여기고, 그 결과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을 받게 하기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때에 감사하므로 영적 승리자들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도무지 감사할 수 없다면 침묵하므로 거룩함을 지키고 다시금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간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아니면 침묵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2.1.

우리가 감사 또는 침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박국 2:20절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박국 2:20) 우리가 교회에서 침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때로는 교회에서 힘든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내 맘에 맞지 않는 이런 저런 일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는 것같기도 하고, 자신의 기분에 맞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서 감사하거나 혹은 침묵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열심이었습니다. 아마도 초대교회의 바나바 못지않는 실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같습니다. 어느날 바나바가 자기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의 교회에 바쳤습니다. 사람들이 그 일로 바나바를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재산을 바쳐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두 부부는 사람에게 칭찬받을 욕심으로 자기의 재산을 팔았습니다. 그것을 교회에 바치려고 하니, 앞일에 대한 염려도 생기고, 또 아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얼마를 감추고 일부만을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리고 재산의 전부를 바쳤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우습게 여겼던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를 하찮게 여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교회와 교회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며,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진노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은 베드로의 책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섬지방에 가면 성황당 앞을 지날 때에 사람들이 두려워 합니다. 성황당에 어떤 위해도 가하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마을 전체에 재앙이 내린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산에 있는 큰 바위, 마을 어귀에 있는 큰 나무는 두려워 하면서 만군의 하나님의 교회는 우습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가 우습게 여겨지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을 향해서 반드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간혹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교회를 우습게 여기곤 합니다. 교회의 질서를 내 맘대로 바꿔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그 영광을 두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우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잠잠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마포중앙교회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습니까? 저도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교회의 질서를 우습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내 마음에 안든다고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온 천하가 그 앞에 잠잠해야 하듯이 우리도 잠잠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침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2.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감사 또는 침묵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2절 말씀에서 “그리고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도전서 4:2) 말씀하고 있고, 디모데전서 1:12절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직분을 받은 자이며 사명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감사, 또는 침묵해야 하는 것입니다. 맡은 자가 구할 것이 무엇입니까? 충성입니다. 그런데 충성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이나 불평으로 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고 섬긴다고 해도, 많은 물질로 교회의 통장을 묵직하게 한다고 해도 그 입에 원망을 담고 불평을 담고 있다면 그는 충성하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사람일 뿐이며, 그의 모든 헌신은 헛된 것이 되고 말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충성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충성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침묵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시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치욕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존심 상해하는 것 이상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수모를 당하시면서 주님은 털 깎는 자 앞에 선 양과 같이 침묵하셨습니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침묵은 가장 위대한 충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침묵의 본을 보이셨고, 우리로 하여금 침묵하며 충성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충성된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착하고 부지런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앞에 주어지는 고난, 때로는 자존심상하는 일들, 기분 나쁜 일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수많은 일들에 대하여 묵묵히 침묵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며 침묵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은 그를 향해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 5~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6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편 62:5~6)

우리 앞에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심각할 수도 있고, 부당한 고난이 우리를 향해서 엄습해 올 때도 있습니다. 더구나 천국같은 교회 생활이 짜증나고 기분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원망이나 불평은 우리의 특권이 아닙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수 없다면 침묵해야 합니다. 다윗에게는 엄청난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그를 괴롭히는 온갖 요소들이 주위에 들끓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침묵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멋진 신앙인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원망이나 불평을 우리의 입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답답한 것도 안타까운 것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참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향해서 축복하십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라며 침묵했더니 하나님은 오직 그를 위한 반석이 되셨습니다.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산성이 되셨습니다. 무수히 많은 위험과 고난 중에서도 요동치 않으며 견고하게 승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조그만 일에도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감사하라. 감사할 수 없으면 침묵하라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은 외면한 채,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혹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부당한 고난이 찾아왔다고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서 가득한 분노를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교회로 하여금 세상의 업신여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는 일들입니다. 이제 침묵을 다시금 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견디기 힘든 고난, 자존심 상하는 괴로움에 침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침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놀라운 축복, 천국의 행복, 반석과 같은 돌보심이 항상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부당한 처사로 고통하고 있을 때

원망과 불평하기 보다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기로 결심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