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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성도 (욥기 1:1~8)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성도

욥기 1:1~8

Entrance Prayer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1~4)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신년 첫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귀한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희망을 품고 새해를 열었사오니 전능하신 주께서 2005년 한 해 동안 주의 백성들을 축복하시고, 권세 있는 손으로 동행하여 주시어서 어떤 환경과 형편에서도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께 예배하고자 합니다. 악한 마귀는 틈타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시며, 예배하는 모든 심령들 위에 넘치는 평강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 아멘 -

Introduction

신년 첫 주일을 맞아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금년도 우리 교회의 표어는 자랑스런 성도, 자랑하고픈 교회입니다. 이 한해 동안 우리 성도들은 모두 다 자랑스런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자랑하고 싶은 좋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젠가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충격적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자기들의 신통력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신을 섬기는데 밤을 세워가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밤을 세워 기도하기는 커녕 한 시간도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말씀에 요즘은 아마도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큰 소리 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똘마니들은 저렇게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고 능력도 나타내는데 당신의 자녀들은 왜 저 모양 저 꼴입니까? 어디 한 놈인들 온전한 놈이 있습니까?

자녀들 가운데는 부모의 자랑거리인 자녀들이 있는 반면에 부모의 근심거리인 자녀들이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자랑거리인 교회와 성도가 있는 반면에 근심거리인 교회가 있고, 또 성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욥은 하나님의 자랑거리였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의 회의가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사단도 그들과 함께 자리했습니다. 사탄이 무슨 이유로 하나님의 회의에 참석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회의에 사탄도 참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보시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땅에 두루 다니며 여기 저기 다녀왔습니다.

여기의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자세히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서 왔느냐?는 말씀은 단순히 사탄이 어딜 다녀왔느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어딜 다니면서 사람을 미혹하고, 멸망의 자식들로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사탄의 속성은 그렇습니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멸망을 가져다 줍니다. 사람을 미혹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합니다. 죄악에 빠지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대하여 사탄의 대답은 걸작입니다. 땅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는 온 땅을 다니며 한 사람이라도 멸망의 자식을 만들기 위해서 혈안이라는 것입니다. 온 땅의 모든 백성들을 미혹하고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자신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온 세상은 자기의 손안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미혹했고, 네 손아귀에 장악했는데 욥도 그렇더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네 미혹에 다 넘어가도 욥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은 욥을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탄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미혹했다고 주장하는데 욥도 그렇더냐? 욥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더냐?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며,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났다. 하나님은 욥을 마음껏 자랑했습니다. 참으로 욥은 하나님의 자랑거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자랑하는 것을 보고 사탄은 심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어긋장을 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랑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이요,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의 핏값으로 세운 교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되어서야 하겠습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안절부절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실 때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는 그런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랑스런 성도, 자랑하고픈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교회와 성도들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기로 결심하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욥은 하나님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은 그가 가진 소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그는 대단한 소유를 가진 사람이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10명입니다. 아들이 일곱이요, 딸이 셋이었습니다. 가족적으로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양이 7000이요, 약대가 3천이요, 소가 500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종들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정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욥을 자랑거리로 생각하신 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재산을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욥을 자랑거리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사회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에 자랑거리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자기 딸을 자랑하는 것을 들어봤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에 계속 장학금을 받고 다녔습니다. 대학원을 공부할 때도 꽤 유망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공무원으로 특채되었습니다. 그 딸은 하는 일마다 잘 되었습니다. 게다가 마음씨도 얼마나 이쁜지 아빠를 위해서 선물하기 위해 적금을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그 딸 이야기만 하면 입이 귀에 걸립니다. 거품을 물어가면서 딸 자랑을 합니다. 여러분, 부모는 자식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부모가 자식을 자랑하게 되면 팔불출이라고 합니다. 못난 짓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독교적인 생각에 근거한 것도 아닙니다. 내 자식을 내가 자랑하지 않으면 누가 자랑합니까? 자기 자녀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부모를 자랑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자기 남편, 자기 아내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랑거리를 찾아서 부지런히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 가정은 더욱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딸 이야기만 나오면 그렇게 자랑하는 집사님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딸이 얼마나 공부를 잘했고, 얼마나 실력이 있으며, 장래가 총망되고 있는지 등등의 조건이 딸을 자랑하는 대부분이었습니다. 대개의 경우에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녀가 얼마나 능력이 있고, 출세했으며, 성공했고, 또 많은 재산을 소유했느냐 등등의 것이 이유가 되어집니다. 많은 재산과 소유를 가지고 있으면 자랑거리인 자녀가 되지만, 근근히 먹고 살아야 하는 가난 속에 살고 있다면 자랑거리가 아니라 부끄러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유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위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이 어떠냐도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건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재정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여 예배하는 초대형 메가처치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를 자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존재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우리의 신앙인격이 어떠한가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욥이 하나님께 자랑거리가 된 것은 그의 신앙인격입니다. 그의 신앙인격이 참으로 멋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그를 자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과 같은 멋진 신앙인격의 사람들이 되므로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욥의 신앙인격은 어떠했습니까? 본문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기 1:1)

2.1.

하나님이 욥을 자랑했던 것은 그의 신앙인격이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순전하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양심이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욥은 양심에 비추어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존재로 서기 위해서는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양심을 파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몇 푼 되지 않는 이익을 얻기 위해서 양심을 파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는지 모릅니다. 나쁜 짓인 줄 뻔히 알면서,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죄인 줄 알면서 조그만 이익을 위해서 양심을 속입니다. 그러나 이런 삶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양심이 깨끗해야 합니다. 불의한 재물에 눈독을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 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않는 일일 줄 뻔히 알면서 행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경상북도 김천에 가면 어떤 집사님이 운영하시는 설렁탕 집이 있다고 합니다. 그분은 설렁탕 한그릇을 끓여도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끓인답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뼈를 끓이는데 거래처에서 뼈를 잘못 보냈는지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게 아니라 누런 국물이 나오더랍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거래처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거래처에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뼈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설렁탕 국물을 고아내기 위해서는 24시간을 꼬박 끓여야하기 때문에 당장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안달을 하니까 뼈장수가 하는 말이 사장님, 오늘만 커피 프림을 타시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간혹 몇몇 설렁탕 집에서는 그렇게 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낮은 품질의 뼈를 사다가 커피 프림을 타서 내놓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전화를 끊고 그 집사님 내외분이 어떻게 하신 줄 아십니까? 끓이던 설렁탕 국물을 죄다 쏟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장사를 하지 않고 문을 닫았습니다. 가게 앞에는 오늘은 설렁탕 재료가 좋지 않아서 장사를 못합니다. 라고 써 붙였습니다.

그날 이후 그 설렁탕 집은 소문을 들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장사가 잘 되어 분점까지 냈습니다. 그분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신앙양심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순전함입니다. 눈앞에 이익 때문에 신앙양심을 속이고, 예수 팔아먹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자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양심을 파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옳아야 합니다. 항상 깨끗해야 합니다. 순수해야 합니다. 조금도 죄악으로 오염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2.

욥은 순전할 뿐아니라 정직했습니다. 정직한 인격은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어집니다. 여기에 정직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야샤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하여 거짓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에게는 속임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된 저울을 미워하십니다. 속이는 말을 가증스럽게 여기십니다. 정직한 마음을 기뻐하시고, 정직한 영혼에 축복하십니다. 욥은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정직했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속이는 거짓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흔히 하는 말로 속고 속이는 시대입니다. 정직이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정직하면 손해보는 시대입니다. 정직하며 망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한결같이 정직하면 안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속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정직 때문에 손해를 보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직 때문에 망하게 된다면 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직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부끄러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직함으로 보는 손해는 손해가 아니라 투자다라는 말입니다. 따라 합시다. 정직함 때문에 보는 손해는 손해가 아니라 투자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이런 말은 적어두셔야 합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정직한 것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놀라운 통로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한 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2005년 한해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랑 거리는 돈많은 것으로,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한 것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속이지 않고, 거짓의 잔꾀로 살아가지 않고,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정직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회의에서 내가 마포중앙교회 성도들을 보니 참으로 정직하다고 하면서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3.

욥이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더욱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경외라는 말을 이해할 때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벌벌 떨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을 향해서 신령과 진정함의 예배를 드리게 될 때에 그것을 경외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경배를 그분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외입니다. 욥은 외식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무엇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도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존귀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참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된 것은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그는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자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전에 올라와 희생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형식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고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참된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렸을 뿐입니다. 또는 축복을 받아보려는 계산으로 예배하는 자리에 참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배자들을 보시면서 탄식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른 예배자가 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식적인 예배자가 되어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근심거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A.W. 토저라는 분이 저술한 예배인가 쇼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표지에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순결한 예배가 쇼 기획 방식으로 기획되고 있다. 계신된 멘트 감정을 조장하는 찬양, 입맛에 달콤한 설교.. 껍데기 예배는 가라, 예배가 변질되면 모든 것이 망한다. 이 분의 글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예배를 기획하는 방식에서 부터 진행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쇼를 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처럼 철저하게 기획한 것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예배의 본질을 망각한 채, 기획과 쇼만 남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토저는 그것을 공격한 것입니다. 현대의 예배는 화려합니다. 멋집니다. 엄청난 음악과 음향 시스템, 그리고 화려한 영상을 총동원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예배의 본질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없습니다. 참된 헌신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인 경건과 다름이 없는 지극히 외식적인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를 가지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 은총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참된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배할 때에 존귀하신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감사, 그리고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날 우리의 예배를 반성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이 자랑할만한 것이었습니까? 그렇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예배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스스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귀찮아서 집에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겨우 예배에 참석합니다. 다행히 길이 잘 뚫리면 5분전에 도착하고, 조금 막히면 5분 후에 도착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지 않습니다. 그저 편리한 복장으로 예배에 참석합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일에 입을 옷을 정갈하게 준비하고,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일찌감치 서둘렀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지 전에 조용히 묵상하므로 기도했습니다. 예배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한 없는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예배는 되는대로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귀한 사람을 만나러 가도 깨끗한 옷을 입고,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예배한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자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예배에 소홀하지 않을 것을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처한 형편이 어떠하든지 최선을 다해 예배하기를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4.

마지막으로 욥은 악에서 떠났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라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통칭해서 일컫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이런 등등의 못된 짓을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것이 악입니다. 그것을 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악은 거기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일이 악입니다. 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악입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도 악입니다. 경건에 힘쓰지 않는 것도 악입니다. 성경은 이런 것을 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런 것에서 떠났습니다. 철저하게 떠났습니다. 그 모양이라도 버렸습니다. 악인의 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았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죄악이라고 하면 흉내도 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이와같이 죄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에서는 철저하게 멀어져야 합니다. 죄악의 자리에 서있고, 앉아있으면서 난 죄를 범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악의 자리에 서거나 앉는 것까지, 그 모양을 흉내내는 것까지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욥은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라면 죽어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습니다. 세상 노래 가운데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 우리 예수님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기쁨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라면 그것이 천만금이 생기는 일일지라도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제하는 일, 섬기는 일, 봉사하는 일, 전도하는 일 이런 일들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 일들을 찾아가며 기쁨으로 감당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우리를 하나님의 자랑거리로 삼으실 것입니다.

요즘 연일 보도되는 것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지진과 해일로 인한 동남아 일대의 피해에 관한 것입니다. 뉴스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어야만 했습니다. 해일이 덥쳐오는 것을 피하다가 두 아들을 다 살릴 수가 없어서 한 아들을 포기해야만 했던 엄마의 사연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분만실에서 해일로 인해 아내를 잃었던 사연.. 등등의 헤아릴 수 없는 안타까운 일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피해액과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재난이었습니다. 실종내지는 사망한 사람의 수만해도 왠만한 약 20만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세상에 어느 전쟁이 한순간에 이만큼 엄청난 인명피해를 낼 수 있겠습니까?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참으로 인간은 보잘 것없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하나님의 손길 앞에, 아니 하나님의 작은 손가락의 움직임에도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보도를 접하면서 더 안타까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지역의 피해에 관해 궁금하기는 해서 뉴스를 보고, 안되었다고 혀를 차기도 하지만 그들을 돕기 위한 어떤 계획도 세우려 하지 않는 저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좋아하실 일이 무엇인가? 비록 언어는 다르더라도 또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더라도 그들을 향한 사랑, 그리고 그들을 향한 섬김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줄로 알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모든 악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죽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기꺼이 해야 합니다. 뭐든지 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한 해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 까지 우리 교회가 이 귀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모두 피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기꺼이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복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아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근심거리, 염려거리고 세상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욥은 하나님의 자랑거리였습니다. 하나님의 회의에서 모든 천사들 앞에서, 심지어는 사탄 앞에서도 하나님은 욥을 자랑했습니다. 욥에게 재물이 많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욥이 저처럼 잘 생겼기 때문도 아닙니다. 욥은 어떤 유혹이 있어도, 사탄의 계략이 있어도 흔들림없는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순전했습니다. 그는 정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악에서 떠났습니다. 이 한해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의 회의에서 우리 마포중앙교회와 성도들을 침이 마르도록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욥처럼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욥의 인생이 갑절의 축복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이런 축복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사모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