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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사도행전1:4~5)


떠나지 말라, 그리고 기다리라

사도행전 1:4~5

Entrance Prayer

(13)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14)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15)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시편 92:13~15)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수많은 환난과 재난들 속에서도 지키시고, 은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으며 감사 드립니다. 한 순간도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그 은혜의 필요를 망각한 채 세상 속을 부질없이 방황하다가 부르심을 기억하며 주의 전으로 올라왔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 됨과 나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은혜로 채우시옵소서. 예배하고자 합니다. 신령과 진정의 참된 예배가 되게 하시며, 예배하는 중에 하늘 문이 열리고, 우리를 향한 벧엘의 축복의 사닥다리가 펼쳐지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 아멘 -

Introduction

오늘도 거룩한 성일을 맞아 주님의 교회에 찾아 나오신 여러분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충만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하는 중에 우리 안에 있는 문제가 사라지고, 근심이 사라지고, 가난과 질병이 사라지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곁에 계신 분들에게 축복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손을 잡고, 끌어안고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온 교회 위에 주님의 사랑과 축복하심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후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흥의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비겁한 신앙인이요, 영적 패배감에 싸여 꼼짝도 못하는 무기력한 신앙인으로 주저앉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독려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을 떠나 하늘로 가신 후에 사랑하는 제자들이 새 힘과 능력을 가진 부흥의 주역들이 되기를 바라셨고, 그들로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교회가 부흥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소원은 12제자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바라시는 소망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포중앙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교회부흥의 주역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이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고, 이 땅을 향한 주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뿐만 아니라 교회와 민족을 부흥케 하는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우리를 통하여 그의 몸 된 마포중앙교회가 부흥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적으로 무기력한 신앙인이 아닌 부흥을 이루고, 축복을 이끌어내는 천국창고의 서기관 같은 능력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님의 소원을 따라 교회의 부흥을 이루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사람을 살리는 교회, 교회를 세우는 교회, 천국같이 행복한 교회로 만들어갈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섬기는 마포중앙교회가 아현동은 물론이고, 마포구와 서울시, 그리고 대한민국 전역에, 그리고 세계와 땅끝까지 부흥의 물결을 일으키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을 지상에 계시면서 자신을 보이시며, 사랑하는 제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을 견고한 체험적 신앙의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이루어진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뜨거운 체험이 없다면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의 체험과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서의 체험은 단순히 감정적인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중에 환상이나 신비한 역사를 본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인도하심과 자비로운 손길을 맛보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인격적인 체험이 결국 우리로 생명과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하며,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부흥케 하는 주역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40일 동안이나 이 땅에 머무시면서 제자들과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분명한 신앙의 체험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흥을 이루는 주역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몇 가지의 말씀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사도행전 1:4)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한 절 속에 교회의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방법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니 처음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모이셨습니다. 모였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모이게 될 때에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모임이 살아있을 때에 교회는 부흥하며 성장합니다. 살아 있는 교회가 되어집니다. 모임이 사라지고, 소멸되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부흥을 상실한 채 소멸되어버리고 맙니다.

초대교회는 참으로 열심히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매일 모였습니다.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1절에 보니 “저희가 한 곳에 모였더니”(사도행전 2: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는 일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영적인 신비를 체험하는 일도 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임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 내가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마태복음 18:20) 주님의 임재(臨在)는 아무데서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인 무리들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2:46절 말씀에 보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사도행전 2:46) 라고 하고 있습니다.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모임을 소중히 여깁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여하기를 위해서 애를 씁니다.

현대 교인들은 주일날 공예배 한 번만 드리는 것으로 모든 모임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신학자의 고백입니다. 현대교회를 병들게 하고 부흥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은 주일 낮 예배 한 번으로 모든 신앙인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수많은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교회에 출석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의 중심에 주일 한 번 예배 드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 어떻게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 심야기도회에 다 참석할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충성하고, 최선을 다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신다고 그럴 듯한 변명을 합니다. 그런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의 습관을 따르는 성도”(히브리서 10:25), 그리고 주일 낮 예배 한 번으로 모든 신앙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인양 생각하는 신앙의 양태는 결국 교회의 부흥을 저해하는 무시무시한 요소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는 자인지 아니면 교회로 하여금 부흥케 하는 자인지 돌이켜 볼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자가 되고, 함께 모이기를 전심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함께 계시며, 축복하시고, 그들을 사용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이 땅에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이기를 게을리 하고, 모이는 것의 귀중함을 상실한 채, 나 홀로 신앙을 주장한다면, 세상 일로 바쁘다는 핑계를 가지고 모이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면 우리는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는 내부의 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힘써 모이기를 결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선택하여 세워야 할 것입니까? 성령님이 우리에게 교훈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모이기를 힘쓰는 사람을 선택해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 게을리 하는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려 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는 이적행위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모이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직분자를 세우게 될 때에도 모이기를 힘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의 귀중한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케 하며, 성도들의 삶에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이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제자들이 함께 모인 곳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모인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고, 교회의 부흥을 이루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함께 모인 제자들에게 부흥의 원리를 설명하십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4절 중간에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사도행전 1:4)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자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낙심했습니다. 좌절했습니다.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각기 자기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갈릴리로 갔습니다. 벳새다로 갔습니다. 여리고로 갔습니다. 엠마오로 갔습니다. 모두가 각기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과 함께 설계했던 하나님 나라의 꿈과 비전은 십자가와 함께 다 못박아 버리고 주님을 만나기 전의 옛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시는 그리로 돌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은 단순히 장소적으로 예루살렘이 중요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자리를 결코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르심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곳에 무시무시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고 해도, 그 곳에 아골골짝의 잔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게 된다고 해도, 결코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포기하는 불신앙의 자리로 가서는 안되며, 또한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자리를 떠나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제자들 만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명은 생명과 같이 귀중한 것입니다. 아니 생명을 걸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기에 때로 사명은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 우리로 하여금 섬기도록 하신 교회와 함께 교제하는 모든 성도가 우리의 사명의 자리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자리를 절대로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신자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에서 조그만 불편한 일이 있어도 당장에 교회를 옮긴다고 성화입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귀중함은 알지 못한 채, 서 있어라 말씀하시는 예루살렘에 서 있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온갖 핑계를 가지고 떠나버립니다. 마포중앙교회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하면서 교회를 떠납니다. 맡기신 사명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결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사람, 교회와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십자가를 지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케 하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중에 제 가슴을 뜨겁게 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가 246장입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내 주의 교회는 천성과 같아서 눈동자같이 아끼사 늘 보호하시네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 까지 늘 봉사합니다.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생활과 구주와 맺은 언약을 늘 좋아합니다.

하늘의 영광과 베푸신 축복이 진리와 함께 영원히 시온에 넘치네.. -아멘-

저는 특히 3절을 부를 때면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바로 이런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눈물과 기도로 생명 다하기 까지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도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두렵다고 사명을 포기하고 옛사람의 자리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맙시다. 교회를 떠나지 맙니다.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생명 다하기까지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성도들로 가득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도망갈 사람이라면 그는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도움이 되는 것은 고사하고 방해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죽어도 떠나지 않기를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 새로운 직분자를 세우게 될 때, 이런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죽기 살기로 헌신하는 사람, 절대로 교회를 떠나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사람.. 혹 그럴 일이 없겠지만 모든 성도들이 가라고 해도, 심지어는 목사가 나가라고 해도, 주님 앞에서 절대로 예루살렘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하면서 죽어도 교회만은 못 떠난다는 고백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의 중직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이루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죽어도 교회를 떠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시므로 하나님의 교회를 크게 부흥케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덧붙인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지키고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떠나지 말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사도행전 1:4) 그렇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5절 말씀에 보니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사도행전 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입니다. 은혜입니다. 축복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게 되고, 하나님의 크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하므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 때에 그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가 될 수 있고, 그런 성도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서 아름답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원동력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에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체험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신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해 주시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게 되면 인간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방언도 나타납니다. 예언도 나타납니다. 귀신이 물러가는 역사들도 나타납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으로 병든 자가 일어나고, 우리 앞에 놓인 큰 산과 같은 문제들이 큰 바다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쁨은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입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이런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이미 영적 패배감에 사로잡혀서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성령체험을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런 체험도 없고, 은혜에 대한 경험도 없게 되니 성령님에 관한 이야기는 좀처럼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성령님께서 임하지 않으며 성령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이 아닙니다.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마귀는 그런 영적 패배감을 이용해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을 사모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못하게 합니다. 속으로 은혜 받으면 좋지라고 말하지만 은혜를 받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사모함으로 간절히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전에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은혜를 받는 일을 위해서라면 산에 올라가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밤을 지새우면서 교회 기도실에서 눈물을 흘려가며 성령충만, 은혜충만을 사모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세계를 체험할 수 있기 위해서 무릎으로 살았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성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은혜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성령의 체험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하니 마지못해 억지로 성령을 주시옵소서 기도하지만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충만히 역사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간절히 사모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성령충만도, 은혜도 축복도 사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떼쓰지 않는 것이 보다 신사적이고, 성숙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없습니다. 애타는 마음이 없습니다. 성령을 사모하는 갈급함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축복에 대한 흥분된 기대가 없습니다. 그것이 멋진 신앙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고상한 신앙이 아닙니다. 무기력한 신앙입니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 은혜충만, 축복충만을 간절히 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의 영혼이 성령충만, 은혜충만, 은사충만, 축복충만을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앉아서 폼잡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므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기다리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기다리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찾고 구하라는 말입니다.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구해야 합니다. 찾아야 합니다. 두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부르짖으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 하나님의 큰 일, 부흥을 기대하는 사람은 열심을 다해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기도하지 않고 역사를 이룬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부흥을 이룬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공을 거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았는데 성공하는 것같습니까? 그렇다면 그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더 큰 풍랑이 우리 앞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탄의 목구멍으로 순탄하게 넘어가고 있는 중임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는 순탄한 성공적인 길이 펼쳐졌습니다. 욥바에 왔더니 다시스로 가는 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데 모든 일이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지나 바다 한 가운데 이르렀더니 그곳이 풍랑이는 바다였습니다. 큰 물고기의 목구멍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성공하는 것은 바로 사탄의 목구멍으로 신속히 가는 성공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며 성령충만을 간절히 구하는 사람만이 교회의 부흥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에 생명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세상 것을 사모하는데는 정말로 간절히 사모하며, 모든 것을 다해서 사모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쉰 떡 보듯이 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축복보다 더 사모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충만입니다. 금 곧 정금보다 사모할 것은 성령의 충만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힘써 성령충만, 은혜충만, 은사충만, 축복충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조금 폼나지 않는 것같고, 조금 고상해 보이지 않는 것같아도 눈물 콧물 흘려가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성도가 되어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교회부흥의 주역으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교회 부흥을 가로막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면 비록 돈 없고, 빽 없어도 교회를 부흥케 하는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중직자를 선택할 때에 여러분, 꼭 기도하는 사람을 선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뽑으면 교회는 심각한 위기로 내몰릴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용사가 교회의 중직자가 되고, 직분자가 되면 교회는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능히 풍랑을 잔잔케 하며, 천국의 기쁨이 가득한 부흥의 항구에 다다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마포중앙교회를 부흥케 하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일군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부흥케 할 수 있는 멋진 성도가 되어지면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부흥케 한 모든 성도들에게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영육간에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음같이 우리의 하는 모든 일에 형통케 되는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가난도 물러갈 것입니다. 못된 질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천국의 안식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부흥케 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부흥케 하는 일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여야 합니다.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이는 자리에 시간을 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모여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부르신 자리, 직분과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때로는 십자가를 지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우리가 있어야 할 마포중앙교회를 끝까지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들다고 도망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므로 열심을 다해 기도하고, 간구하고, 기도하는 일을 쉬는 죄를 결코 범하지 않는 기도의 능력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넘치는 축복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이런 귀중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든 성도들 위에, 가정들 위에, 온 교회 위에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직분과 사명의 자리에서 죽기까지 충성하기로 결심하며

성령의 충만한 임재하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Rev. Shin, Hyunchul

Baratt Waugh-More than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