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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창세기35:1~5)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창세기 35:1~5

Entrance Prayer

(1)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2)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3)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시편 100:1~5)

따사로운 햇살과 향기로운 바람을 허락하시고, 대지 위에 새 생명의 물결로 충만케 하신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부족할 뿐이었으나 주는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고, 변화무쌍한 시대 속에서도 주님을 항상 동일하셔서 우리를 향한 은총을 잊지 않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복주심을 약속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 앞에 예배하고자 합니다. 거짓됨과 죄악됨을 완전히 제거하시고,주님을 향한 정결함과 깨끗함, 그리고 진실함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예배하는 중에 악한 마귀는 조금도 틈타지 못하게 하시고, 성령과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요즘은 유머러스한 사람이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도 유머가 없으면 그는 상품가치가 떨어집니다.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서도, 바이어를 만나서 계약을 성사시키는데도 유머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집사님은 은행의 은행장을 지내시고, 금융계통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분인데, 그분의 성공 원인 가운데 하나가 항상 새로운 유머를 준비해 다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에 신선한 유머 몇 가지를 준비해서 그것으로 대화를 이끌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게 되고, 많은 거래처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성공가도를 달리는데 유익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청춘남녀가 계시다면 유머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사업에 성공하기를 바래도 유머를 배워야 합니다. 목회하는데도 유머가 꽤나 필요한 듯합니다. 요즘은 심각한 얼굴로 설교하는 사람을 별로 반가워 하지 않습니다. 대전중문교회의 장경동 목사님처럼 예정교회의 설동욱 목사님처럼 사람들 배꼽 빠지게 웃겨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도 부흥하고, 사람들도 많이 모이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유머가 환영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없던 시트콤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영화도 웃기는 영화를 만듭니다. 방송 프로그램 중에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바로 개그 프로그램입니다. 웃찾사나 개그콘서트같은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도 아이들이 개그콘서트를 즐깁니다. 저는 아무리 봐도 별로 재미를 못 느낍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늦은 시간에 방송됨에도 불구하고 꼭 봐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 덕에 개그콘서트라는 것은 별로 웃지도 않으면서 봅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유행어도 몇 개 배웠습니다. 명훈이 나와, 명훈이 들어가.. 사실이야? 진짜야? 있으니까! 그까지꺼 대충 지친다 지쳐.. 등등의 유행어도 알게 되었습니다.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별로 웃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털 웃음 몇번씩은 터뜨리곤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웃지 못한 채 분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 코너에 뚱뚱교의 교주로 출산드라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복음의 말씀을 묘하게 패러디하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조롱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일부 기독교인들이 KBS 인터넷 게시판에 항의성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계속해서 방송되고 있고, 오늘 저녁에도 또 방송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사람들의 찬반논란이 뜨겁습니다. 일부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너무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인터넷 포탈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엠파스에서 사이버 투표를 했더니 87%에 해당하는 네티즌들이 기독교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기독교가 옹졸하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이유가 교회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영적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 그렇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영적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교회는 부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짓밟히는 고통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또 재정이 풍성하고, 값비싼 대리석으로 지어진 화려한 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영적 권위를 상실한 교회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밟힐 뿐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세상으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습니다. 짓밟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영적 권위를 잃었고, 성령의 능력과 기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대형화를 추구하고 거대화되고, 웅장해졌지만 참된 부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삶에 구제도 많고, 복지사업도 많고, 착한 일도 많지만 복음과 복음의 정신을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 대하여 아무런 영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세상에 멸시를 당하고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한국교회는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합니다. 더 이상은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니 세상이 감히 두려워서 벌벌 떨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굴복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런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이 동반하며, 가뭄 중에도 100배의 축복을 수확하므로 통해서 세상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바라보며 두려워 하고 벌벌 떨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부흥을 이루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외삼촌 라반의 집을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또 형 에서의 위협적인 방문도 간신히 넘겼습니다. 그는 숙곳을 지나 세겜에 거처를 정하고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일백개를 주고 그 땅을 샀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특별하신 손길로 인도함을 받았던 야곱에게 엄청난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창세기 34: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창세기 34:1~2)

위기 가운데서도 승리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야곱에게 생각지도 않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세겜의 추장의 아들 하몰에게 추행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이 일을 처리하는 중에 시므온과 레위의 경솔함이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야곱은 자녀들에게조차 아비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세상에 짓밟히고,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으며, 문제는 더 커져만 가고, 또 자녀들에게서까지도 권위를 잃고 마는 초라하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본문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세기 15:1)

야곱이 세상에서 짓밟히고, 문제는 더 커져만 가고, 그가 가진 권위를 모두 상실하게 되는 치욕을 겪게 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1.

첫째는 하나님의 사람 야곱에 세겜에 안주했기 때문입니다. 오랜 동안 유랑생활을 해야 했던 야곱이 세겜에 땅을 샀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야곱은 세겜에 땅을 사고 거기에 안주했습니다. 거기에서 만족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 모릅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겜에 안주해서는 안되는 사람입니다. 그가 돌아갈 곳은 세겜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결코 세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세겜에서 얻은 것으로 만족하며, 거기에 취해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겜에 안주했습니다. 세겜에 땅을 사고, 좋은 집을 짓게 된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곳에 터를 잡고 사람들과 친하게 잘 지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행복을 누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에 디나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이 세겜의 불량배에게 짓밟힘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의 가슴을 찢는 일이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가 세겜에 안주하게 될 때에 그에게 찾아온 것은 바로 세상으로부터 짓밟힘과 첩첩산중의 위기와 권위의 상실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교회가 이런 모습으로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전도도 합니다. 봉사도 합니다. 거룩하고 귀한 일들을 감당합니다.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하는데 세상에 취해 살아갑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 빠져 살아갑니다. 세상 것을 본받으며 살아갑니다. 세상이 주는 화려함과 달콤함을 탐닉하며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름이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돈이 좋다고 돈만 따라갑니다. 돈으로 모든 가치를 평가합니다. 친구가 좋다고 친구 따라 강남 갑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일은 두번째이고 친구가 우선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 제일 중심의 신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배는 다음에 하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가르칩니다. 학생은 마땅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나중에 하고 공부나 하라는 말은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세상지향적인 삶을 살게 하며, 인간본위의 삶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야곱도 그러했습니다. 주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본위로 살았습니다. 세상에 취해 살았습니다. 세상 것에 맛을 들여가며 살았습니다. 그 때 그는 낭패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인생이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자녀들에게까지 권위를 잃고 자존심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것에 빠져 살아서는 안됩니다. 아파트 사고, 좋은 차 사고 하는 재미에 빠져 세상 것을 따라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순례자입니다. 이 땅은 우리의 고향이 아닙니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따로 있습니다. 이 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에 취해 살아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세상에서 버림을 받고, 짓밟히게 되고, 권위를 잃게 되는 것이 바로 땅의 것에 맛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취해 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돈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자되고, 성공하는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탐닉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과 똑같이 인간본위, 세상본위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 취해 살고, 세상에 안주해서 살고 있게 때문에 짓밟히고 버림받으며, 권위를 잃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겜을 떠나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취해 살고, 세상이 주는 단맛에 빠져 살던 안일함을 벗어버리기 바랍니다. 고향을 향하는 순례자가 되어서 저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교회의 영광과 영적 권세를 회복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

야곱이 세겜에서 짓밟힘을 당하고 권위마저 상실한 두번째 이유는 벧엘로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패한 야곱에게 세겜에서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세기 15:1b)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실패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지 않았습니다. 그가 정치적인 힘이 없기 때문이나, 자식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벧엘에서의 예배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벧엘을 버렸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권위를 잃고 짓밟힌 것입니다. 그가 예배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겜에서 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세겜에서의 예배는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예배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긴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긴 하지만 말 뿐이었습니다. 참된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겜에서의 예배는 하나님의 언약이 없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야곱 사이를 연결하는 축복과 응답의 사닥다리가 없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십자가의 구속과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체험도,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서원의 이행도 없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곱에게 세겜의 예배가 아닌 벧엘의 예배를 명하신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대한 체험과 간증과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위로하셨던 간증이 있는 예배, 삶의 고백과 체험이 있는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만나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없는 위로와 축복을 허락하시는 예배를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만 잃어버린 권위를 회복할 수 있고, 놀라운 능력과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겜의 예배로는 결코 영적 권위를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갈 것이 아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합니까? 아무리 예배에 열심이 참석하고, 찬송도 잘하고, 기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해도 그것이 세겜에서 드려지는 예배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향해서 축복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도 권위를 잃게 되고, 교회에서도 권위를 잃게 되고, 형편없이 몰락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감격을 가지고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뜨거운 눈물이 있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찬양도 특이합니다. 때로는 감정적입니다. 열정이 있어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감격이 그 안에 없이 찬양의 리듬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불태워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그 은혜로 말미암은 두근거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질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회복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부흥케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영적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을 때에 하나님은 누가 성전문을 닫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드리는 제사로 내가 배가 부르다고 탄식했습니다. 주님은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통회하는 마음을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은혜의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격하는 예배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간증있는 예배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해 뜨거운 가슴과 촉촉한 눈망울을 가진 예배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교회는 부흥하게 됩니다. 영적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세상이 크게 두려워 하는 능력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형식의 세겜의 예배가 아닌 감격이 있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뜨거운 벧엘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이 두려워 하는 큰 부흥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서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 전에는 인간본위, 세상본위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창세기 35:2~3)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벧엘로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은 일백개를 주고 산 땅을 포기했습니다. 세겜의 모든 좋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옛사람의 모습을 가지고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우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했습니다. 의복을 바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는 자리는 함부로 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옛사람의 죄악을 그대로 가지고서 라면 벧엘로 올라가봐야 벧엘만 더럽힐 뿐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진노를 살 뿐입니다. 야곱은 자기 뿐 아니라 모든 가족들의 우상을 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모든 풍습을 완전히 제거하게 했습니다. 이방사람의 옷도 버렸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히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새롭게 했습니다. 또한 잃어버린 벧엘신앙을 회복했습니다. 그 때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본문 4~5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 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 들로 크게 두려워 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세기 35:4~5)

야곱이 벧엘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잃어버렸던 영적 권위가 살아났습니다. 아들들 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그리고 그에게 속한 사람들이 야곱의 권위에 복종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의 옷을 다 벗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례자로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야곱을 향해 대들던 아들들이 공손히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이었지만 순종했습니다. 고분고분해졌습니다. 야곱의 영적권위를 인정하고 그 앞에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이 숫적으로는 야곱의 가족들보다 훨씬더 많았지만, 더 강대한 힘이 있었지만 야곱의 가족을 두려워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그들로 크게 두려워 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짓밟힘을 당하던 야곱이었습니다. 멸시를 당하던 야곱이었습니다. 자기들의 발가락이나 핥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인양 생각했습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별볼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신앙을 회복하고, 영적 권위를 회복하게 되었더니 세상이 두려워 하게 됩니다. 세상이 감히 야곱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무서워 피하는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교회와 성도들의 권위가 땅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은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취하여 몰래 숨겨둔 우리의 우상들을 꺼내 버려야 합니다. 세상사람처럼 되려고 세상 유행을 따라가며,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던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좋아하던 우리의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큰 상수리 나무 아래 묻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손해보는 것같지만 벧엘을 향해 하나님 섬기는 순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세상의 단맛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사모하므로 그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교회는 영적인 권세를 회복할 것입니다. 세상이 감히 짓밟지 못하고 한길로 왔다가 수천, 수백길로 도망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겜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단맛에 취해 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아파트, 높은 지위, 아름다운 명성이 우리가 안주해야 하는 땅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향은 이 땅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의 시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 땅의 것에 연연하고 인간본위, 세상본위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동시에 세상적 가치를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과감하게 세겜을 떠나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달콤한 맛에 중독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신속히 세겜에서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겜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언약적 감격이 있고, 십자가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체험과 간증이 있는 감격의 예배, 신령과 진정의 참된 예배가 있는 벧엘로 올라가시길 바랍니다.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젖어있는 이방의 옷들을 벗어버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거룩한 옷,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아 주어진 세마포 예복을 입고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는 감격있는 예배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들은 영적 권위와 부흥의 역사를 이룩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이 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눈물과 감격이 있는

벧엘의 예배자들이 되므로

잃어버린 영적 권위를 회복하고

세상이 깜짝 놀랄 부흥을 이룩하기로 소원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Rev. Shin, Hyunch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