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다시 사셨네
요한복음 11:17~27
Entrance Prayer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베드로전서 1:3~6)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감당하시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며, 그 은혜에 참여하기 위하여 겸손히 예배합니다. 예배하는 중에 찾아오시며 부활생명으로 충만케 하시며, 이 말세에 승리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부활하사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할렐루야!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아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문을 여시며, 영광의 주님으로, 승리의 주님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부활하신 주님으로 말미암은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부활생명을 소유하시고, 영생과 함께 주님이 주시는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함께 큰 소리로 따라해 봅시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아멘” 저는 이 말을 입으로 고백하게 될 때에 얼마나 큰 감동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일 지경입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음부까지 내려가셔서 내가 당해야 하는 모든 고난과 저주를 한 몸에 받으신 주님께서 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수차례에 걸쳐서 반복하며 혼자서 큰 은혜 속에 감사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변호사 시절에 주의회 의원에 출마했다가 낙방하고, 하원의원에 출마했다가 낙방했습니다. 이러기를 몇 차례 거듭하자, 그는 철저하게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그를 염려했습니다. "저러다 링컨이 자살하는 건 아니야?" 친구들은 링컨이 목숨이라도 끊을까봐, 자기들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링컨은 친구들의 염려대로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떠한 개선이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의에 빠졌던 링컨이 어떻게 재기하여 미국의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그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공화당에 입당하였고,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부활신앙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절망할 일들이 많고 낙심되는 일들이 많지만 그런 것만을 바라보고 인생을 포기하고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님으로 말미암아 용기를 얻으시고, 산 소망을 가지시고, 어떤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는 귀한 축복이 넘쳐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승리적 생애를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의지하고, 인생의 계획을 의지해서는 절대로 승리적 생애를 살아갈 수 없고, 절망적 상황을 축복으로 만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요한복음 1:17)
베다니에 나사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지는 더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 나사로를 보고 희망을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사로는 인생의 법칙을 따라 볼 때에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자를 위하여 위로했습니다.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의 위로로도, 그리고 그들의 눈물로도 나사로는 결코 희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절망이 찾아옵니다. 고통이 찾아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또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죽은 지 나흘이나 된 것같은 무시무시한 절망이 찾아옵니다. 몹쓸 질병으로 울어야만 하고, 지독한 가난 때문에 탄식도 해야 합니다. 사업이 부도나고, 직장에서 명퇴되어 앞길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잠시의 위로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희망이 되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우리를 절망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궁극적인 열쇠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절망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시편134:3~4절은 “방백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되리라”(시편134:3~4)고 말씀하고 있고, 이사야 2:22절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이사야 2:2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인생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을 의지하는 것으로 그 절망의 나락에서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목사이다 보니 초상집을 자주 방문하게 됩니다. 말씀을 가지고 위로하기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주는 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희망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위로가 필요하고, 또 주님께서 새롭게 용기를 주시고, 희망을 주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절히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모든 절망적 상황 속에 사람의 위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잠시의 위안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의지하는지 모릅니다. 돈을 의지합니다. 권세를 의지합니다. 사람을 성공을 위한 줄로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줄 수 있는 것은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에게 사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절망의 상황에서 그들은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의지하게 합니다. 세상의 영광과 부귀를 보여주면서 세상과 자신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세상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을 가곤 합니다. 파멸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기대어 살아서는 안됩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본문 25~2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모든 사람의 눈에 나사로는 절망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곁에 와 계신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 절망이 다가옵니다. 고난이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잘 믿음에도 불구하고 몹쓸 병이 찾아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다가오고 사업에 실패도 다가옵니다. 좌우를 둘러봐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같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죽음과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 아니 죽은지 나흘이나 지난 절망 속에서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는 결코 절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는 불가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죽음이라도 우리에게 결코 절망이 아닙니다. 죽음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과 축복하심을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기대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절망일 뿐이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죽어도 사는 놀라운 축복이 있게 됩니다.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났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눈물이 찬송으로 바뀐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런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3.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1:25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25)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의 죽음이 비참했기 때문에 실망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는 낙심했습니다. 두려워 숨어 지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던 젊은이들이 엠마오로, 자기의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사랑하던 제자 도마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한 조각 남아있던 믿음마저 내팽개쳤습니다. 모두가 절망했습니다. 낙심했습니다. 사망이 예수님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그 사망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비참한 생애를 마감하신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있지 않으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고,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습니다. 인류 최대의 적이요, 절대적 절망의 근원인 사망을 한판에 퇴치하시고 무덤 문을 여셨습니다.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셔서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겐 죽음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도 절망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생명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상상할 수 없는 희망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경험적으로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리적으로도 그런 일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 죽으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한 번 죽으면 영원한 절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포기합니다. 낙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가 만들어낸 허구가 아닙니다. 소설이나 전설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상에 분명하게 존재했던 사건입니다. 사실입니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성경은 그것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증인들이 순교하기까지 부활을 증언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시고, 예수 생명을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신 이 축복의 말씀을 따라 영생의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유일한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것같은 절망의 상황이 우리이 앞에 다가오게 될 때에 그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저 지옥의 형벌에서 우리를 건져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이 누가 있습니까? 이 세상은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지옥의 고통에서, 그리고 사망과 같은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부활생명으로 말미암은 기쁨과 감격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분을 믿음으로 절망을 벗고, 사망을 벗고 지옥을 벗고 영생과 함께 허락되는 천국의 평강을 얻어 주리는 저와 여러분, 온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므로
죽어도 살고, 또 영원히 사는
부활소망의 사람들이 되기로 소원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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