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24~29
Entrance Prayer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시편 91:14~16)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을 은혜 가운데 인도하시고, 거룩한 성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 예수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은 주의 백성들이 그 크신 사랑을 의지하므로 주 앞에 나아왔습니다. 허물과 나약함을 용서하시고, 다시금 새롭게 하시는 주의 은총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배할 때에 악한 마귀는 물러가고 주님의 성령께서 친히 임하시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능력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날씨가 좋지 않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에게 주님의 열정적인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곁에 계신 분들에게 인사합시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지난 번에 헌신예배에 오셨던 목사님께서 “사랑합니다.” 하면서 3분간 끌어안고 떨어질 때 손을 잡으면서 “축복합니다.” 하라시던데 우리도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복주심이 넘쳐나는 참된 부흥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은 부활 주일로 지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향해서 원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을 묵상하면 할수록 분명하게 인식되는 것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부활생명, 더 이상은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억눌림을 받지 않고, 승리케 하는 이 부활생명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부활생명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소생되고, 부흥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영생을 얻기를 소망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교회가 늘 부흥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스스로 부활하신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부활생명이 제자들에게 공유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부활생명을 소유하고 부흥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며, 놀라운 교회의 부흥을 주문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한 사역자들로 헌신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소원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교회의 부흥입니다.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부활생명을 소유하므로 승리하고, 세상 속에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이 가득한 축복의 나라를 크고 아름답게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소원인 부흥을 이루어내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흥이라는 말을 하게 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교회가 크게 건물을 짓거나 많은 사람들이 회집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 풍성하게 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흥이 그런 것만이라고 한다면 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 또 무조건 사람들만 많이 끌어 모으면 된다는 식으로 목회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부흥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부흥은 그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흥의 결과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선물로 주시는 것일 때에 참된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건물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천 명의 성도들이 운집해서 함께 예배할 수 있게 되기도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축복할 수 있는 부흥이 각 사람의 마음에 충만하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흥의 원리가 풍성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Main Subject
1.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20:20절 말씀에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한복음 20:2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셨는데 손에 난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제자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맡기시는 사명을 가지고 온 천하에 예수 부활의 복된 소식을 전파해야 하는데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상처난 몸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하심을 확인하고 예수님이 그 모든 상처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한 후에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저 선생님으로만 알았습니다. 랍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위대한 스승으로 알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부활하셨고, 지금 제자들의 눈 앞에 아직도 핏자국이 선명한 그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주님은 단순한 랍비가 아니요, 인류의 도덕적 스승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 가운데 매여있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요, 메시야이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의 몸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갖게 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생명과 건강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부흥케 할 수 있는 주역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적 생명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부흥케 하는 주역이 되는 것은 다른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고, 돈을 많이 갖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돈으로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모릅니다. 물론 외면적으로 볼 때는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선교사역을 함에 있어서도 돈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새롭게 건축하고 단장하는 일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섬기며, 봉사하고 구제하는 일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돈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교회를 부흥케 하고, 우리의 삶에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돈을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적인 실력을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수학을 잘 풀거나 영어를 잘하는 실력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자기의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돈이 능력이 아니라 믿음이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돈이 능력이 아니다. 믿음이 능력이다.” “건강이 능력이 아니다. 믿음이 능력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또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이루며, 교회를 성장케 하는 능력은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이 이 일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자기의 몸을 보여주시므로 제자들이 순교적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믿음을 갖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주님의 부활과 능력을 믿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치료하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교회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를 주시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려면, 세례교인이 되고, 교회의 직분자가 되려면 그런 말을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의 고백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증언할만한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능력 있는 교회가 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목숨 걸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흥은 바로 이런 신앙고백 위에 주어지는 선물이며, 축복입니다. 현대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점차 그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예수를 위해 생명을 던지는 직분자들이 없습니다. 모두 주님의 부활과 능력, 그리고 우리를 향한 축복에 대해 애매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복음을 자랑거리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남들에게 말하기는 민망한 것으로, 그렇지만 포기하기에는 꺼림칙한 그런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우리의 삶에 천국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원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이 말은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기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축복이 없고, 은혜가 없고, 우리의 삶에 감사의 제목들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야 우리는 교회의 부흥은 물론이고,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축복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해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결과 그들에게 놀라운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이 기쁨을 샬롬이라고 말합니다. 이 기쁨을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평강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된 평화요 기쁨을 의미합니다. 전에는 주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었습니다. 마치 현대 신앙인들이 교회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생명의 구주가 되셨다는 복음을 듣기는 하지만 확신이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제자들의 모습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평강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기쁨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 떨며 한 집에 모여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요한복음20:19)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믿게 되면서,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서, 예수님과 함께하면 죽어도 산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서 그들의 마음에는 한없는 기쁨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샬롬이 찾아왔습니다. (요한복음 20:20b)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 우리의 생명과 삶을 주장하시고, 죽음과 같은 절망에서도 건져내시는 능력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망에서 지옥에서 우리를 천국으로 옮기시는 영원하신 구세주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끊임없이 간구하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축복을 소유하시고,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부흥케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확신을 갖게 되었고, 믿음을 갖게 되었고, 샬롬과 기쁨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한 사람 도마는 그 자리에 있지 못했습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한복음 20:20)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주 되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얻게 되었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부흥의 씨앗이 싹터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쁨 중에 증거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그분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죽어도 사는 놀라운 축복을 얻게 되었고,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주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부흥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제자들이 받은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주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다른 제자 도마에게 전해주지 않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마의 마음은 그렇게 편치 않았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다른 제자에게는 모습을 보이셨고, 상처 난 손과 아직 아물지 않은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셨는데 왜 자기에게는 찾아오시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마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부활하신 모습은 아니더라도 꿈에서라도 주님을 한 번쯤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에게는 상처 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는데 자기만 쏙 빼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으려면 너나 믿어라 난 못 믿겠다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20:25)
여기에 도마는 결코 믿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내게도 주님이 나타나 주시지 않으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체험으로 주님을 경험하게 되지 않으면 결코 주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도마는 주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구주가 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을 수 있지만 난 결코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도마의 분노가 숨겨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자신을 보여주셨는데 왜 자기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지 않고, 보여주시지도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의 억지는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 도마가 없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기의 몸을 보이시고, 그들에게 견고한 믿음과 함께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면서 왜 똑 같은 제자인 도마에게는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마의 원망과 분노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도마가 없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마는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체험적인 신앙만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신앙을 교정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여건에서도 절대로 굽히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체험적 신앙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체험적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만약에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면 제자들에게 주님은 자신을 보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며, 또한 그런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체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체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도마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그런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마는 주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도 도마를 사랑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도마가 없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므로 도마는 은혜를 체험하는 자리에 소외되었습니다. 속상했습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것 때문에 영적인 눈이 흐려지게 되어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마는 체험지상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내가 체험하지 않은 것, 내가 경험하지 않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고 철저하게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질병인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무시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착각하지 않고, 부활을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또 내가 확인하고 보아야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할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부인합니다. 안 믿는다고 말합니다. 왭니까? 그들의 마음에 체험지상주의적 생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는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다른 성도들과 동일한 은총이 없고, 축복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므로 사업도 잘되고, 또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기도 하고, 하는 모든 일마다 형통하게 되는데 내게 그런 일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은 그 사람만 사랑하고 나는 덜 사랑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적 체험이 없기 때문에 영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혀 신앙을 잃고, 믿음을 잃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내게 체험이 없어도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은혜가 쏟아지는 것 같고 내게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주님은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로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겠다고 주장해서도 안됩니다. 성경에 진술했던 수많은 사람이 보았노라고 말하며 생명을 걸고 증언한 증언을 믿어야 합니다. 그 증언을 근거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생명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 주님께서 내겐 그 육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더라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축복 된 삶이 됩니다. 보지 못했다고 믿지 않겠노라고 억지를 쓰게 되면 멸망의 자식이 되고 말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마와 같은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지식 믿고, 내 눈 믿고, 내 손으로 만진 것만을 믿겠다고 억지를 쓰게 되면 결국 부활하신 주님으로 말미암은 놀라운 능력과 축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체험이 없어도.,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믿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복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교회를 부흥케 하고, 주님의 축복하심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도마가 불신앙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를 바라보시니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도마는 주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가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하는 다른 제자들의 주장은 뭔가 잘못된 것이며, 자기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믿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음 없는 도마, 아니 철저하게 믿음을 거부하는 도마를 바라보시면서 주님은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도마를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도마 하나쯤 믿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어도 상관이 없을 법한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을 거부하고 있는 도마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부흥을 위한 일군으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으십니다. 자신의 상처 난 손을 보여주시며, 그 상처 속으로 도마의 손가락을 가져가십니다. 다시금 도마의 손을 잡으시고 자신의 피 흘렀던 그 옆구리에 가져다 대십니다. 그리고 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주님의 이 행동은 도마의 영적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견고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의 방문하심과 격려하심에 힘입어 도마는 주체할 수 없는 감격에 빠져들었습니다. 며칠 전에 자기가 억지주장을 하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은 나의 구세주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사랑스런 방문으로 도마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27)
주님은 도마에게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것을 믿는 사람.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 시기심에 이끌려 믿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믿음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믿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체험이 없어도, 때로는 주님께서 외면하시는 것 같아도, 때로는 주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복인 줄로 압니다. 누군가의 노래에서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집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백 년 살게 되면” 그것을 복인 줄로 압니다. 물론 그런 것이 복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참된 복이 주어지게 되고, 비록 예수님을 눈으로 보지 못했고, 만져서 체험하지 못했지만 주님의 말씀과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샬롬하게 되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기뻐하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유익하게 하고, 또 교회를 부흥케 하는 것이 이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도마는 주님을 만져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28)” 주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의 믿음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것을 걷어치워버리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도마를 보시고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도마가 복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보지 못했다고 믿지 않게 되면 주님의 축복을 빼앗기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주님을 보지 못해도, 때로는 주님께 외면당한 것 같아도, 때로는 주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주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으면 복이 있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과 건강을 주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시고, 또 교회의 부흥을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날 이후로 도마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인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복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건물이 화려해서 복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돈이 많아서 복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많고, 또 예배가 1~3부까지 드려지며, 드리는 예배마다 사람들이 꽉꽉 들이 차서 미어지도록 많아지는 그런 것으로만 복을 삼는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영적 부흥과 기쁨이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으로 풍성한 참된 부흥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환경을 극복한 믿음, 보지 못하고도 믿는 믿음이 가장 복되고, 귀하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0:29)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을 믿으며, 추구합니다.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 주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또 주님께서 간섭하지 않는 것 같고, 아무리 기도해도 주님이 듣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을 얻고 샬롬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교회를 부흥케 하는 능력 있는 일군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천만 가지 세상 것을 가지고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아무리 귀해 보이는 것, 아무리 아름다워 보이는 것으로도 안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샬롬과 부흥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믿음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뿌리 채 뽑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영적 교만이 믿음을 방해합니까? 때로는 영적 시기심에 눈이 멀어 주님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까? 때로는 체험지상주의의 신앙이, 합리적인 생각들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에 축복의 원천이 되시고, 부흥의 뿌리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합니까? 이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환경과 여건이 어떠하든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소유하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천국의 샬롬을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교회의 부흥과 가정의 부흥과 민족의 부흥을 이룰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며,
천국의 샬롬과 교회의 부흥을 이루기로 간절히 소망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