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 Church/Shema Isreal

미스바로 모이라 (사무엘상 7:7~12)


미스바로 모이라(2)

사무엘상 7:7~12

Entrance Prayer

(12)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13)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14)여호와께서 너희 곧 너희와 또 너희 자손을 더욱 번창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15)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시편 115:12~14)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분주한 세상 속에서도 은택을 허락하시며, 순간마다 도우시는 은혜로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지난 4개월을 은혜 가운데 인도하시고, 아름다운 계절 5월을 허락하시며, 복된 가정, 꿈이 있는 교회로 우뚝 설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성도들이 주님 앞에 예배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이 모임에 축복하시고, 세상의 걱정과 시름을 다 잊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천국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온 교회 위에 충만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은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축복하라고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옆에 계신 분에게 축복하겠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축복하시면서 이 찬양을 부르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스바냐 3:17)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축복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기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서 넘치는 사랑을 공급해 주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그로 인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와 축복을 전할 수 있는 능력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부흥입니다. 이런 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므로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며,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을 살려내고, 교회를 세워나가며, 또한 천국같은 행복으로 기뻐하며 웃을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이 부흥입니다. 돈이 많아도 죽은 영혼이 살아나지 않고, 교회가 세워지지 않고, 천국의 기쁨을 소유할 수 없다면 그것은 결코 부흥이 아닙니다. 아무리 외관상으로는 멋진 폼을 갖추고 있고, 조직을 갖추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만족이 없다면 그곳엔 부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주님 앞에서 참된 부흥을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부흥하므로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직장에도 넘치는 행복으로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이스라엘 민족의 부흥은 눈물의 회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블레셋의 억압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부흥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이 사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날의 불신앙과 어리석음을 눈물로 회개하며 가슴을 찢었습니다. 사무엘의 명령을 따라 온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여호와 앞에 물을 붓고, 금식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들이 죄에 대하여 얼마나 심각하게 탄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놀라운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은 다른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떨어뜨리는 작은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부흥은 결코 인간적인 잔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돈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부흥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돈 많은 사람을 교회의 중직자로 세우게 되면, 세상적으로 권세 있는 사람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게 되면 교회가 부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만큼 사탄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그렇게 몰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을 금식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시금 확인하고, 하늘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간구했고, 그것을 통해서 인류를 구속하는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시려 했습니다. 그 때에 사탄이 나타났습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하는 말이 “온 천하를 보여주고, 내게 절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구차하게 고생하면서 사명을 감당하지 말고 세상의 권세와 힘을 가지고, 돈과 명예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라고 유혹했습니다. 그 말은 대단히 설득력 있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높은 지위, 권세가 있으면 안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일이 다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면 교회도 크게 지을 수 있고, 좋은 편의시설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부흥은 그런 것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명이 살아나고,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온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는 돈으로, 세상의 권세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사탄은 돈으로 해라. 세상의 지위와 권세로 하라고 유혹합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 부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직분자를 세우려고 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교회도 새로 지어야 하고, 또 지역적으로 필요한 여러 가지 시설을 마련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돈 있는 사람을 직분자로 세워야 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교회는 직분자를 세우게 될 때에 일억씩 받는다고 하는데, 돈 많은 사람을 세워야 큰 돈을 내고 교회를 섬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왕이 없으니 이방 민족들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까?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을 주소서. 간구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사무엘의 입을 통해서 너희의 왕은 너희를 위해 강력한 보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딸들을 취할 것이요, 무거운 세금을 매길 것이요, 너희 아들들을 군대로 끌어갈 것이라. 그렇습니다. 돈 많은 사람을 세우겠다고 해서 돈 있는 사람, 권세 있는 사람을 세우겠다고 해서 권세 있는 사람을 추종하게 되면 그들이 교회를 섬기고, 부흥케 하며, 교회로 하여금 생명력 넘치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를 무시하고, 교회의 권위를 멸시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 때문에, 권세 때문에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임직자를 선택하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포기하면 공동의회에서 선택되어도 임직할 수 없습니다. 소정의 신앙훈련을 철저하게 마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임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임직자가 되면 교회에 돈 내는 관행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한푼도 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감사헌금은 가능하겠지만, 임직자가 교회에 뭐 해놓고, 또 교회에 얼마 내고 하는 이런 식의 관행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십원 한 장도 돈으로 교회의 직분을 사는 것 같은 모습은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교회가 생명력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세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결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심령,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놀랍게 축복하시고 그를 통해 교회의 부흥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은과 금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했습니다. 내 능력은 은과 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능력은 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권세를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케 하며, 수많은 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할 수 있습니다. 온 천하에 하늘의 행복을 전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것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울기 위해서 회개의 자리 미스바로 모이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부흥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눈물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눈물이 사라지면 교회의 부흥도 사라집니다. 에베소 교회가 첫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촛대를 옮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무엇입니까? 바로 눈물입니다. 회개의 눈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는 탄식입니다. 그것이 사라지면 교회는 결코 부흥할 수 없고, 교회의 교회 됨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물로 교회의 바닥을 적실 수 있는 교회가 되므로 부흥이 멈추어진 이 시대에 부흥의 불꽃을 피울 수 있는 온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거기에서 금식했습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은 민족의 부흥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식과 눈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장에 찾아온 것은 부흥이 아니었습니다.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 하여 (사무엘상 8:7)

울며 회개하며 하나님을 사모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잔인한 민족들입니다. 당시에 블레셋은 이스라엘 민족은 강점하고 있었습니다.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집회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일제의 강점기에 조선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다고 하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물리력을 동원해서 분명한 제재를 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스바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하며, 민족의 부흥운동은 전개한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가만히 둘 턱이 없었습니다. 이 참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싹 쓸어버리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큰 군대를 동원해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벌벌 떨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기를 시작하고, 죄에 대한 탄식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눈물이 있게 되면 사탄은 가만히 두고만 보지 않습니다. 자기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고, 사탄을 이기는 능력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온갖 것을 동원해서 공격합니다. 방해합니다. 크게 두려워 하도록 만듭니다. 때로는 시련을 줍니다. 때로는 좌절과 낙심을 가져다 줍니다. 사업을 힘들게 하고, 가정을 심각한 곤경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옛날에 한국초창기에 교회가 부흥될 무렵입니다. 그 당시에는 부흥집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게 되면 사방 10리 안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모두 그 부흥회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은혜를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옆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이 교회에서 광고를 해 줍니다. 저 옆에 있는 교회에 어떤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니 많이 참석해서 은혜를 받읍시다. 광고를 합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혹시 교인 뺏길까 봐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그 지역 전체가 은혜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믿고 모두가 참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지역에 부흥집회가 일어나게 되면 꼭 그 지역에 사탄도 함께 역사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괴롭히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부흥회를 방해하는 온갖 공작들이 있습니다. 마을의 불량배들이 교회 앞에 와서 행패를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교회의 청년들과 마을 불량배들이 한판 붙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흥회에서 은혜 받은 것은 다 쏟아버리고 교회는 힘든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꼭 은혜의 자리를 방해하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방해하고 성도들이 은혜 받지 못하게 하며,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늘날에는 교회를 향한 마귀의 공격이 시원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시원치 않으면 마귀가 저런 놈들을 공격해서 뭐하냐 이미 내 손아귀에 있는 걸!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교회가 부흥을 시도하게 될 때에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운동을 하고 부흥을 위한 시작을 멋지게 하고도, 눈물로 부흥을 위한 기초를 잘 마련하고도 좌절하면 부흥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부흥을 방해하는 역사가 있게 될 때에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넘어져서는 안됩니다.

3.

그렇다면 부흥은 실제로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으로 인하여 큰 두려움 가운데 있게 되었을 때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본문 8~9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소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상 7:8~9)

여기에 보니 부르짖는다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부르짖기를 청했고, 사무엘은 그들의 청구대로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부흥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았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여기에 부르짖다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자아크(q['z:)라는 말인데, 이 말은 큰소리로 부르짖는 것을 말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 살려달라고 큰 소리로 아우성 치는 것을 자아크라고 합니다. 애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애걸복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자아크 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애걸복걸하는 것을 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신사적으로, 제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멋지고 폼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합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데 신사적으로 점잔케.. 하나님, 우리에게 부흥을 주셔야겠거든 주십시오.. 이러고 앉아있으면 절대로 부흥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흥이 없이 우리의 영적생활을 블레셋의 압제 가운데 있는 것이며,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울부짖어야 합니다. 간절하게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옵소서. 여호와여 이 수년 내에 우리 교회로, 우리의 가정으로 부흥케 하옵소서. 간절히 간구해야 합니다. 눈물을 뿌려가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부르짖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이런 기도에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이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를 이루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의 함성을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흥을 이룰 것입니까? 잘 생긴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돈많은 사람이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부흥의 주역이 되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부르짖으라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부르짖을 때에 하늘이 움직이고, 땅이 요동합니다. 세상이 두려워 떨게 되고,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압제하던 원수는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의 질병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문제가 사라집니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방해가 일거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기도하는 것만이 능력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가복음 9:29)

우리 교회는 직분자를 세우는 귀한 일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합니까?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부르짖지 않는 사람을 교회의 직분자로 세우는 것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는 일입니다. 의의 병기로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죄의 병기로 마귀에게 우리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투표의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기쁘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절대로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사단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하면 문제는 사라집니다. 우리에게 기근이 찾아오는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양식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 부르짖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공동의회에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임직자로 선택하는 일 순위에 올려두어야 합니다.

3.1.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부르짖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부흥케 하시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본문은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쉬지 않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미가서 3:4절 말씀에는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지 아니하시고”(미가 3:4), 라고 하시며, 에스겔 8:18절에서는 “그들이 내게 큰 소리로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에스겔 8:18b)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아무런 부르짖음이나 다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자세가 있습니다. 쉬지 말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는 포기가 없습니다. 기도는 어떤 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기도는 항상 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산 사람이 쉬지않고 호흡을 해야 하는 것처럼, 호흡에 장애가 있으면 신속히 병원에 가야 하는 것처럼, 성도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말씀했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 그렇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입니다. 이 영적 게으름의 죄악을 가지고는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 부르짖음은 시끄러운 소음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전혀 상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새벽기도에도 참석하시고, 기도의 기회를 만들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쁠수록 더 열심히 숨을 쉬어야 하듯이 바쁠수록 더욱 열심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기도에 쉬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부흥을 이루는 주역이 되는 것이고, 교회에서 가장 귀중한 사람입니다.

3.2.

둘째는 부르짖되 온전한 번제를 드림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흥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온전한 번제를 드리는 사람으로 부르짖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온전한 번제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일차적으로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의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로 설 때에 그의 기도가 의미있는 기도가 되어집니다. 그의 부르짖음이 교회와 가정을 살리고 부흥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예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배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없이는 참된 성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가지고 예배를 빼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신앙으로는 결코 부흥의 주역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단순히 번제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한이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예배가 온전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예배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온전한 예배는 사랑의 섬김이 있는 예배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8:6절에서는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야 58:6)고 말씀하고, 신약 야고보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기 위해서는 온전한 제사를 드리며 부르짖는 것이어야 하는데,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온전한 예배는 화해와 용서가 있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는 자에게 결코 은혜를 베풀지 않습니다.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있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24) 사람과 화목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아내와 화목하지 않고는 그 기도에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아내를 귀히 여기라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베드로전서 3:7)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해와 용서는 우리의 예배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의 부르짖음이 응답되고, 교회는 놀랍게 부흥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 전쟁하는 교회는 결코 부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전쟁하고 있다면, 우리 마음에 견고한 옹벽을 쳐두고 있다면 부흥은 저 멀리 달아나버리고 맙니다. 부흥도 우리에게 결코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면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부흥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교회들이 진정한 부흥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서 참된 부흥이 무엇인지 모르고 물량적, 외형적인 부흥만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회는 이 시대를 향해서 참된 부흥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들은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루는 주역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을 이룰 것입니까? 부흥은 우리가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요,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랑거리인 성도와 교회가 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울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축복을 사모하므로 성전바닥에 눈물을 뿌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울며 회개하지만 부흥은 오지 않고 더 큰 시련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아크, 애원해야 합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야 합니다. 이 간구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온전한 예배로 사랑과 섬김으로, 용서와 화해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블레셋을 무찌르고 큰 승리를 거두게 하시며 에벤에셀의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에, 우리 교회 위에 놀라운 축복과 부흥을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부흥의 주역이 되기를 사모하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며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로 결단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Rev. Shin, Hyunchul


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