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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14~29

Introduction

가을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상점마다 과일이 풍성합니다. 옛날과 달리 사시사철 싱싱한 과일을 맛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을에는 더욱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과즙이 가득하고, 입맛을 당기는 맛있는 과일들이 많습니다.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장날 시장에서 사과를 한 바구니 사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사과 다섯 개씩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사과 중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벌레 먹은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어떤 사과부터 먼저 먹는가 하고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큰아들은 다섯 개 중에서 제일 좋은 것부터 골라서 먹고, 나쁜 것은 맨 나중에 먹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나쁜 것부터 먹고 좋은 것을 나중에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두 아들 중에서 좋은 것부터 먹은 큰아들을 칭찬해 주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과 다섯 개 중에서 처음에 제일 좋은 것을 먹고, 남은 것 중에서 또 제일 좋은 것을 먹고, 그래서 큰아들은 사과 다섯 개를 먹을 때마다 좋은 것만 골라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의 경우는 다섯 개의 사과를 먹을 때마다 가장 나쁜 것만을 골라먹은 셈이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똑같은 세상, 똑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희로애락을 겪어 가면서 똑같은 인생살이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큰 아들과 같이 세상의 밝은 면을 찾으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둘째 아들처럼 같은 환경 속에서도 세상의 어두운 면만을 보고, 불평과 원망과 다툼과 짜증 속에 살아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긍정을 보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을 보는 것입니다. 범사를 삐딱하게 보고, 원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불가능을 보며, 부정적인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일이 생겨나게 되고, 모든 것이 불가능할 뿐이지만,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것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누구에게나 인생의 문제는 있습니다. 돈이 많은 부자에게도, 명예와 학식이 높은 사람에게도 문제는 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실 때에 예수님의 마음을 심히 불편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산 위에 계시니, 그의 제자들에게 자기 아들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서기관들과의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한 아이의 문제가 이제는 제자들의 문제로 발전했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대인의 종교문제로까지 비화되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문안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아비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기 아들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마가복음 9:17)

예수님께 데려온 아이는 벙어리 귀신에 들려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황폐하기 그지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평화도 없습니다. 귀신들림은 엄청난 고통입니다. 본문에 보니 이 아이가 귀신에 들렸는데, 귀신이 그를 주장하게 되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던졌다고 합니다. 심히 경련을 일으키고,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까? 귀신으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변한 인생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귀신은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귀신의 본질은 이런 것입니다. 인생을 황폐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파괴합니다.

이 아이의 부모는 자기 아들이 이처럼 황폐하게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다시금 그 아이에게 기쁨을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 아이의 삶에 정상적일 뿐만 아니라, 축복된 삶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불사하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 나아오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귀신으로 인하여 황폐하게 된 영혼이라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그의 문제를 해결하고, 전에 없던 기쁨과 감격이 생겨나게 됩니다.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을 얻고, 부흥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야 합니다. 돈과 권력으로 부흥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실력으로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을 이루고, 축복을 이루고, 우리의 삶에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행복이 가득하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오게 되면,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문제라고 해결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좋으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위해서, 우리의 교회를 위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골육지친, 그리고 이웃들을 예수 앞으로 모시고 나아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앞에서 부흥과 축복과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소년의 아비는 자기의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물론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주님께 나아왔는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자리에는 주님의 제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별의 별 수를 다 써봤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부흥도, 기쁨도, 축복도 없었습니다.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는 기쁨이나 축복이나 부흥이 찾아오지 않은 것입니까? 본문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마가복음 9:18)

2.1.

여기 소년의 아비가 하는 말을 꼼꼼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비는 지금 자기 아들의 질병과 귀신들림을 누구의 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탓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능력이 있다면, 주님께서 잘 가르쳐 주셨다면 그들이 자기의 아들을 고치고,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고, 부흥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인데, 주님의 제자들이 무능하고, 잘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부흥과 기적, 그리고 주님의 축복이 주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공이 사라지고, 실패가 연속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에게 책임을 넘기고, 다른 사람을 탓하게 되면 그것으로는 결코 부흥을 이룰 수도, 기적과 축복을 가져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이나 성공, 그리고 부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 탓을 하면 부흥할 수가 없습니다. 목사가 좋으면 교회가 부흥할텐데, 장로님이 보다 더 열심을 내면 교회가 부흥할텐데, 누가 겸손하면 교회가 부흥하고, 누가 헌금을 좀 더 많이 하면 교회가 부흥할 것이라고 생갑니다. 그러나 자기는 쏙 빠져 버립니다. 그러니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탓만 하는 곳에는 비판이 난무합니다. 상처를 주고 받을 뿐입니다. 싸움이 가득할 수 밖에 업습니다. 천국의 평화는 사라지고, 지옥의 아우성만 있을 뿐입니다. ㅂ부흥이 아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있을 뿐입니다.

귀신들린 아이에게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귀신이 물러가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남의 탓을 하는 못된 심령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의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의 눈의 있는 티를 크게 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 눈에 있는 들보에 더욱 마음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고가야 하는 십자가가 무엇이며, 내가 헌신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며, 내가 아직 감당하지 못한 사역이 무엇인가에 마음을 쏟을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부흥을 이루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문제가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탓을 버리고, 내게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므로 부흥과 축복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2.

소년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문제가 더 커지게 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패배주의에 빠진 잘못된 믿음입니다. 본문 21~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1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마가복음 9:21~22)

소년과 그 아비가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귀신의 괴롭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실패였습니다. 고통이었습니다. 축복이나 성공, 부흥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께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믿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동안의 고통 속에서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극복하지 못했으니, 이제도 성공할 수 없고, 이제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갖긴 했지만, 실패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승리하는 믿음이 아닌 패배자의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다 보면 많은 계획들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이 계획은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을 많이 해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늘 안 되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안되는 믿음을 가지면 모든 것이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믿음, 패배자의 믿음을 갖고 있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망하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가능의 믿음을 갖고 있으면 범사가 불가능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 할 때에 그곳으로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12명의 정탐군은 가나안 땅을 탐지한 후에 백성들 앞에서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땅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12명 중에 10명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이 좋기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그 땅에 들어가겠느냐? 우리는 군대도 시원치 않고, 떠돌이일 뿐이다. 그런데 가나안의 족속들을 보니 심히 장대하고, 강력한 무기로 무장이 되어 있다. 객관적 전력을 비교해 보니, 그들은 용사고,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일 뿐이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땅을 취할 수가 없다. 가나안을 정탐한 10명의 족장들이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함께 하시는 온갖 기적을 체험했지만, 여전히 패배주의의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안 되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런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들에게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있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광야를 유랑하다가 모두 광야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불가능의 믿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 앞에 나온다고 해도, 위대한 지도자 모세와 같은 사람의 지도를 받는다고 해도, 불가능의 믿음으로, 패배주의의 믿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부흥이나 축복, 성공과 기적 같은 것은 도저히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패배주의의 불가능의 믿음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성공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부흥도 이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향한 기적과 축복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되는 일이 없어도 이제부터는 잘 될 거야. 지금까지는 불가능한 일이어도, 조금만 있으면 분명히 될거야 이러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가능함을 고백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불가능의 신앙, 패배주의의 신앙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승리하며, 기적을 만들어내는 믿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소년의 아비는 그들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기쁨과 감격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남 탓하는 못된 습성, 그리고 패배주의적 믿음을 가지므로 결국 실패자가 되고, 축복과 부흥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 주님은 다시금 기회를 주셨습니다. 부흥과 축복, 성공과 치유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9:23)

예수님은 소년의 아비에게 신앙이 무엇이며, 믿음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교훈하셨습니다. 축복과 기적을 만들어내고, 교회의 부흥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은 가능의 믿음 긍정의 믿음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하므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태산이 있어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저 태산도 넘을 수 있고, 목표한 축복과 부흥의 땅에 이를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안된다고 고백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된다고 고백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할 것같습니까? 객관적인 판단에 의하면 여러 가지로 부흥하기 어려운 조건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을 보면 안됩니다. 주 안에서 가능을 보면 됩니다. 부흥은 어떤 큰 교회만 부흥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부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주 안에서 믿음으로 도전하면 살 수 있다고 고백하고, 용기를 내기만 하면 상상 밖의 놀라운 부흥과 축복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능을 고백하고, 할 수 있음을 선포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빌딩 사이를 열심히 뛰어 다니는 두 명의 구두닦이가 있었습니다. 그 둘은 각 사무실을 방문하며, 자기들이 닦을 구두를 열심으로 모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구두닦이는 하루에 백 켤레 이상도 거뜬히 받아 오는데, 다른 구두닦이는 하루에 열 켤레도 겨우 받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열 켤레 구두닦이가 백 켤레 구두닦이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이 구두를 모아올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백 켤레 구두닦이가 되물었습니다. 너는 사무실에 들어가면 뭐라고 하면서 구두를 모아오느냐 열 켤레 구두닦이가 말했습니다. "난 사무실에 들어서면 '구두 닦을 거 없어요?'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 때 백 켤레 구두닦이가 말합니다. "난 사무실에 들어서면 '구두 닦을 거 있어요?' 하지"

그렇습니다. 똑같이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똑같이 구두 닦을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긍정적인 믿음으로 외쳤고, 다른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외쳤습니다. 결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긍정적인 믿음으로 외칠 때에, 그는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외친 사람은 많은 성과를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할 수 있다는 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흥도 성공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전도하는 것이요? 힘드는 일입니다. 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믿겠어? 이러면서 복음을 전하니까 안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생명이 있고, 축복이 있고, 은혜가 있음을 굳게 믿고, 사람들이 이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 복을 누리게 될 것을 믿음으로 전하게 되면 그 고백대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할 수 없다. 우리 교회는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작은 교회고 무능력한 교회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대단한 교회입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교회입니다. 능력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못할 것이 없는 교회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교회의 부흥을 선포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당당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흥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삶에 주님이 주시는 성공과 축복이 충만하게 되고, 악한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천 길로, 만 길로 물러가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긍정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마음대로 되느냐 입니다. 누가 긍정의 믿음을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긍정의 믿음, 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가능의 믿음을 갖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모를 까닭이 있습니까? 압니다. 그런데 안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악한 마귀가 우리의 삶을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마가복음 9:24)

소년의 아비는 자기의 믿음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는 그 믿음을 고칠 수 없고, 또 긍정의 믿음, 가능성의 믿음으로 바꿀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여 도와주옵소서. 그렇습니다. 주님께 도움을 청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자기들에게서는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자기들을 통해서는 왜 부흥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를 물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9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29)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바른 믿음, 긍정의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분명히 하고, 도움을 청구하므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여 주옵소서. 왜곡된 믿음, 잘못된 믿음, 부정적이고,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믿음을 소망의 믿음으로, 긍정의 믿음으로, 가능의 믿음으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서 부흥이 일어나고, 우리의 삶을 향한 성공과 축복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분명히 뜻을 세우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변화시키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부흥케 하십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 기도의 열기가 조금 식은 듯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벌떼와 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득해야 합니다. 저녁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협력단에서도 열심을 내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 이런 부흥을 이루어갈 수 있는 믿음이 우리 교회 안에 충만하기를 위해서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금요심야기도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 소리높여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가 살아있는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죽으면 믿음은 병들게 되고, 결코 부흥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라고 하니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만 마음에 자극을 받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젊은 사람이 일을 해야지 기도나 하고 있으면 되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는 모든 일을 허사입니다. 기도하고 하는 일이 능사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아무리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려고 해보아도, 소리를 높여 보다도, 별의 별 수를 다 써봐도 허사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므로 바른 믿음을 갖기만 하면,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말씀하신 성경대로 기적과 능력을 이루며,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부흥과 성공은 주님께 나아올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다 부흥을 이루고, 성공을 거두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들린 소년의 아비는 자기의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괴롭히는 귀신은 더욱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고통스럽게 할 뿐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의 믿음은 남 탓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실력을 탓했고,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음을 탓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했습니다. 힘써 책임을 감당하려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항상 남의 탓을 하며,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들은 주님을 향한 믿음에도 엄청난 잘못이 있었습니다. 불가능의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라고 하면서 은연중에 할 수 없음을 이야기했고, 오랜 기간동안 해결하지 못했음을 이야기하면서 패배주의의 믿음에 사로잡혔습니다. 결국 이런 그들의 믿음이 아무런 기적과 축복을 이끌러 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처럼 왜곡되면 우리는 절대로 부흥을 이룰 수 없습니다. 축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부흥은 큰 교회나 하는 것이지 우리는 안돼! 이런 패배주의에 사로잡히고, 전도는 특별한 전도왕이나 하는 것이지 나는 안돼! 이런 불가능에 사로잡혀도 결코 부흥을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런 불신앙, 불가능의 잘못된 믿음, 패배주의적인 신앙의 모습을 벗어버리기를 원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가능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긍정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반드시 부흥할 것이라고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부흥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어도 이제부터는 성공할 것이고, 부흥할 것임을 고백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부흥합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긍정의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대로 안됩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정의 믿음, 가능의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부흥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교회의 부흥과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른 믿음을 갖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부흥과 축복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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