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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라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라

춯마태복음 16:21~24

Introduction

중국은 알 수 없는 나라입니다. 땅덩어리가 크고 넓어서 그런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부자와 일반인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생활을 하지만, 부자들은 어마어마한 경제력을 갖고 있습니다. 최고급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값비싼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애완견을 키우는 것이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장가오라는 개는 무려 7억원을 호가하고, 강아지의 경우도 1천만원 정도 한다고 합니다. 개나 고양이, 짐승은 그 가격이 어떤 품종이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진도개의 경우도 순종과 잡종의 가격에 차이가 납니다. 풍산개도, 삽살개도 그렇습니다. 어떤 종자이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느냐? 그 사람이 백인이냐, 황인이냐? 흑인이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했고, 지금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아무리 명문가에서 태어나도 삶이 엉망이라면 그 사람의 가치는 형편없어지고 맙니다. 반대로 별볼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났어도 대단한 일을 하게 되거나, 위대한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되어집니다. 품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깡패의 일을 하면 깡패가 됩니다. 도둑질을 하게 되면 도둑이 됩니다. 사장 일을 하게 되면 그는 사장입니다. 존경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좀더 위대한 일, 좀더 대단한 일을 많이, 그리고 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형편없는 일을 하는 보잘 것없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거나, 좋지 못한 일을 하므로 불명예스런, 무가치한 교회나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가치있고, 존귀한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일을 많이 하고, 또 잘 해서 지극히 가치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우리 주님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치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 2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태복음 16:21)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흔히 이것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시므로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믿음으로 구원얻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일을 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은 그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꺼이 죽는 것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데서 머무르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죽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꺼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기꺼이 치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고집과 주장도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은 사는데 있습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러지 않습니까? 사람의 일은 사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죽고, 우리의 고집이 죽고, 우리의 자존심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욕이 죽고, 욕심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죽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살아있어서는 결코 하나님의 일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를 세우고, 대단한 행사를 주최하고, 엄청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남을 십자가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가치있고, 존귀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의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슈바이쩌 박사라든지, 아인슈타인 같은 분들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분들은 대단한 존경을 받고, 영광을 받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과학자, 철학자, 군인들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들을 사람의 일들입니다. 사람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사람의 일을 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광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아름다운 가치를 얻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일을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웃음을 주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일을 하셨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힘입게 된 것입니다.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주님처럼, 죽어야 합니다.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은 결코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을 죽이고서라도 자기라 살려고 합니다. 죽을 각오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죽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없는데, 살아 꿈틀거립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교회의 가치는 형편없이 추락하며, 또 성도들의 이름은 비호감 제 일 순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이 사람의 일에 매여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욕심을 죽이고, 자아를 죽이고, 고집을 죽이는 그런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셔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가장 가치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태복음 16:22)

베드로는 주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도 예수님에 관하여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베드로는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했었습니다. 그 일로 그는 주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붙들고, 간청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죽다니요? 어떻게든 살아야 합니다. 살아서 성공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고백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죽음의 자리, 멸시와 천대의 자리를 회피하고, 영광의 자리, 존귀한 자리, 칭찬을 듣는 자리에, 편안한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런 자리에 올라 서기를 바랬습니다.

어느 누구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영광의 자리에 앉는 것은 좋아합니다. 칭찬을 받는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합니다. 누가 십자가를 지고, 멸시와 천대의 길을 걷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찬송가를 부릅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라. 찬송을 부를 때는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데 아무도 멸시 천대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존경을 받고, 높임을 받는 일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뭔가 멸시를 당한 것같고, 뭔가 대접이 시원치 않으면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기분이 상합니다. 인지상정입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조금 자세히 보면 내용이 더 재미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했다고 우리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NIV에 보면 Peter 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다른 사람이 없는 곳으로 살짝 데리고 나가서는 예수님을 막 꾸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주님, 그런 쓸데없는 말은 왜 하십니까? 그리고 그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마십시오. 나 베드로가 있는 한 주님은 절대로 그래서는 안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의 높은 자리를 예수님께 드리고, 주님과 함께 세상의 영광을 취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유익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도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님 가까이에 있습니다. 주님을 향해서 성경적인 신앙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거룩한 직분을 받아 봉사도 하고 섬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직분이나,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하는데,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아니 죽으려 하는 사람을 꾸짖습니다. 나무랍니다. 십자가를 져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명예나 이름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분개합니다.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아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정작 섬기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죽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구하지 않고, 그 영광만을 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일은 어떻게 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자기만을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피해가 없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기꺼이 손해를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하나님도 팔고, 교회가 욕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형제가 실족하여 신앙이 무너지는 것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내 기분, 내 자존심, 내 명예만을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따로 조용히 불러서 야단을 치는 자리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우리의 신앙이 베드로와 같은 모습이 되어있지는 않습니까? 자세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십자가는 지려 하지 않고, 영광만을 취하려 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손해를 볼까 안절부절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거절하기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의 궤도를 새롭게 수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베드로가 주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시비를 걸며 나서게 될 때에 주님을 그를 통렬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16:23)

주님은 베드로가 자기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또 하나님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높아지고, 영광을 받고, 칭찬을 받는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게 될 때에 그를 향해서 사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조금전까지만 해도 너는 반석이니,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네게 천국의 열쇠를 줄 것이다. 이런 칭찬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은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귀감이 되며, 표상이 되는 그런 고백이었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이처럼 위대한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였지만,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사람의 높은 자리를 생각하고, 높아지고, 영광스러워 지는 일을 생각하게 될 때에, 세상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주님은 그를 향해서 사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짓이라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만 일어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마귀짓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저버리고,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마귀짓입니다. 죽기를 거부하고, 자기 살기만을 바라는 것이 마귀짓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잊어버릴 때에 마귀가 됩니다. 사람의 일에 집착하여 살아갈 때에 마귀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에 걸림돌이 되고, 사람의 생각으로 고집하고, 주장하게 되면, 그것이 마귀짓이 됩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내 체면, 내가 받을 유익... 이런 것 만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람에서 마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욕심에 이끌리게 되면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잠시 방심하면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다가 마귀짓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본문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베드로를 꾸짖으신 주님께서는 다시금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일 때에 가장 존귀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어떻게 합니까? 주님은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고집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닌, 순종하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없고, 오직 말씀과 사명만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어떤 사람은 목회자의 기를 살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나게 사역을 감당하도록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순종합니다. 목회적 방침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수고합니다. 때로는 목사의 목회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협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반대의 경우를 만납니다. 뭔가 일을 하려고 하면 브레이크를 걸어댑니다. 부정적인 비판을 합니다. 이유를 따집니다. 얼마나 똑똑한지 모릅니다. 때로는 옳고 그름을 말하며 목사가 틀렸다. 목회방향이 잘못되었다.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 때 목사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말하나 마나입니다. 기운이 쭉 빠집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저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의욕이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교회는 그만큼 퇴보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합니다. 왜요? 미련하기 때문입니까? 모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때로는 뛰어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합니다. 협력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왜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에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주님은 주님의 일을 위해서 뛰어난 사람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식있는 사람, 능력있는 사람, 권세있는 사람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10억 이상의 재산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박사는 되어야 한다. 어떤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또 고위공직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의 재산이나, 능력이나, 지식을 동원해서 자기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입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것만큼 그들은 큰 걸림돌입니다. 돈이 많으면 그 만큼 걸림돌입니다. 권세가 높으면 그만큼 걸림돌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멸시와 조롱을 담당해야 합니다. 기꺼이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희생하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손해 보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가치는 그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못된 일을 하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착하고 좋은 일을 하면 선한사람이 됩니다. 위대한 일을 하면 그는 위인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귀하고, 대단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사람의 일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마귀짓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직분을 갖고 교회를 섬긴다고 해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므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체면을 생각하고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의 영광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듭니다. 무더운 여름에 쉬었던 하나님의 일을 다시금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유익이나, 명예를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장 기뻐하실까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기꺼이 손해를 보고, 고집을 꺾고,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멸시 천대의 십자가라도 기꺼이 지고, 주님의 일이 활력을 얻을 수 있게 희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주님의 일을 막아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기꺼이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가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김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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