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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축복 있는 헌신 (요한삼서 1:1~8)

축복 있는 헌신

요한삼서 1:1~8

Entrance Prayer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요엘 2:23~24)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루 하루의 삶의 순간마다 선하신 손길로 함께 하시고, 크신 은혜로 역사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못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욕망에 이끌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 때마다 길이 참으시고, 용서하시며, 다시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올 수 있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주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축복하심을 소망하며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예배할 때에 하늘의 안식을 허락하시고, 모든 기도의 소원들에 응답하시옵소서. 악한 마귀는 막으시고, 오직 주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계속되는 장마 속에 지루하고 짜증나지만 주님의 축복하심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곁에 계신 분들에게 축복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당신 때문에 행복합니다. 당신이 계셔서 고맙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에도 다른 것은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한 행복만은 가득해야 합니다. 저는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어떻게 하면 축복이 임할 것인가를 늘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제 일생 목회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지 심판과 저주를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목회가 무엇인가를 깊이 연구해 보았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목회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 잊을 수 없이 각인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현재화(Realisierung)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오늘 이 순간에 누리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목회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그 축복을 누리도록 양육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성도들의 삶에서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같이 행복하게 하고, 성도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넘쳐나게 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경을 통해서 축복의 원리를 찾아야 하고, 그것을 성도들의 삶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목회가 그렇다 보니 목사는 자연히 성경을 연구하면서 축복의 원리들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가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묵상하다가 축복을 받는 중요한 원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헌신의 원리입니다. 헌신하면 축복을 받지만 헌신하지 않으면 축복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헌신이 축복이다.” 그렇습니다. 헌신이 축복입니다. 달란트를 받은 종들이 헌신하게 되었을 때에 그들에게는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헌신하지 않은 종은 버림을 받게 되고,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헌신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신약성경에 나타난 여러 가지 축복의 말씀들 중에 단연 최고의 축복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본문 2절에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2)

사도 요한은 장로 가이오를 향해서 이같이 축복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축복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이와같이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마포중앙교회와 모든 성도들이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런 축복이 우리의 삶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하고 노력한다고 형통하고 건강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모릅니다. 수고하고 노력하면 건강도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맘 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시편 127편 1~2절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복락을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도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그의 앞에 문제라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를 근심케 하는 일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형통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형통함과 강건함은 자기의 힘이나 지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통과 건강은 축복입니다. 수고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야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형통함의 축복과 강건함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형통함과 강건함의 축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이오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그는 영혼이 잘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형통과 강건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영혼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이 잘 되어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께 부요한 자(누가복음 12:21절 참조)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해 풍부한 헌신의 사람이었습니다.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풍요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넉넉한 헌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때 그를 축복하시고, 모든 일에 형통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강건함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부자는 참으로 돈이 많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수고하고 노력한 결과 엄청난 재물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가을에 수확하게 될 때에 그의 곡간에는 곡식이 차고 넘쳤습니다. 전에 있던 곡간이 모자랐습니다. 새로운 창고를 더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도 곡식으로 가득채울 수 있었습니다. 부자는 얼마나 만족했는지 모릅니다. 그의 저금통장을 가득채운 후에 그는 행복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것을 가득히 채워 놓았으니 이제부터는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재물로 인해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부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것으로 채워 주셨는데 하나님을 향해서는 어떤 감사도 없고, 인색했으며, 자기를 위해서는 얼마나 풍족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 자기의 창고만을 채우기 위해서 급급한 인생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만원짜리 한 장을 벌벌 떨면서 자기를 위해서는 10만원, 100만원을 척척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합니다. 사업에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자녀들의 앞길을 형통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가정에 얽혀 있는 모든 문제가 사라지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직 자기를 위해서 모든 것을 비축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풍족하게 예비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체면치레만 합니다. 거지에게 동냥하듯 합니다. 이래서는 결코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있던 축복마저도 빼앗길 수 밖에 없습니다.

부자가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인색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큰 창고를 새로 지어가면서 풍족하게 채우고, 자기의 삶의 만족을 위해서는 조금도 아낌이 없었지만 하나님께 대해서는 무일푼이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부자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20) 하나님께서는 그를 향한 축복을 거두어가셨습니다. 자기를 위해 예비한 모든 것을 빼앗아 다른 사람의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21절 말씀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요치 못하면 그는 결코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수고하고, 애써서 많은 재물을 모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건강한 육체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것으로 인한 행복을 맛보지 못하게 하십니다.

영국의 감리교 창설자 웨슬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처음 1년에는 300달러를 받았을 때에는 20달러밖에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600달러를 받게 된 때에는 320달러를 헌금했고, 그 수입이 1200달러가 되었을 때에 920달러를 드렸습니다. 웨슬레가 죽었을 때 재산 목록을 보면 옷, 서적, 마차 한 대 뿐이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24만 달러를 주님께 바치면서도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웨슬레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교회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인정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 형통함과 강건함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헌신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며, 하나님을 향한 헌신에 인색함이 없이 풍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요하게 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혼이 잘 될 때에 우리는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부요케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형통함과 강건함의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요하시기를 바랍니다. 풍부한 헌신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가이오는 하나님 앞에 부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헌신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은 가이오의 헌신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1.

첫째,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헌신의 사람이었습니다.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한삼서 1:3~4)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했습니다. 그는 진리를 위해서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가이오를 말하게 될 때에 그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다. 라고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헌신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친히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키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하십니다. 은혜를 공급하십니다. 요한복음은 증언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입니다. 진리가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길이 비록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정하십니다. 높여주십니다. 그가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에 모두 응답하십니다.(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말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했다는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영혼이 잘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범사에 형통함과 강건함을 축복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심히 적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말씀대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기를 헌신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말씀이 우리에게 힘든 고난의 길을 요구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진리이기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자유함을 주실 것입니다. 범사에 형통케 되는 귀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태산과 같은 문제들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로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한없는 축복이 우리의 삶에 넘쳐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2.

둘째, 가이오는 진리를 위해 동역하므로 하나님께 합당한 헌신의 사람이었습니다. (5~8절 말씀)

초대교회 당시에는 많은 순회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5절에서는 나그네 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나 바나바와 같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정처없이 다니는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수하게 전파하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헌신을 통해 저주의 땅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하던 나라들이 풍족한 나라, 넉넉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교사들이나 초대교회에 순회 전도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헌신과 눈물과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고통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이나 순회전도자들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환영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로 부터 항상 환대를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거지취급을 당하기도 했으며,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이오는 달랐습니다. 그는 나그네 된 형제"들이 오게 되었을 때에 그들에게 신실하게 대했습니다. 귀찮아 하지 않았습니다. 거지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존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 하듯이 그들을 섬겨 주었습니다.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요한삼서 1:6)

본문 6절 말씀에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문성경을 제대로 번역하면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도록 저희를 전송하였으니 잘 하였도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 합당한 헌신은 선교사들을 전송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전송하다는 말은 프로펨포(propevmpw)라고 합니다. 원래 이 말은 선교사들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후원하므로 사역지에 가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과동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6: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내어 주게 한다는 말이 프로펨포입니다. 선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므로 선교지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가이오는 순회 전도자들, 선교사들이 그를 방문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역을 위해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도왔습니다.

간혹 복음 사역을 위해서 기꺼이 물질을 내어 놓으면서 자기를 과시하는 실수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외국에서 들어오게 되면 돕기는 열심히 돕습니다.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생각 속에 나는 주는 사람이고, 너는 받는 사람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기를 더 높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헌신은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본문 8절 말씀에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삼서 1:8)

선교사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마땅하다는 말의 헬라어 원문은 오페일로(ojfeivlw)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빚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복음사역을 위해서 협력하는 것이 빚을 갚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빛진 자의 심정으로, 감사함으로 순회전도자들을 도왔습니다. 선교사들을 도왔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 사역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하며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축복의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복주시는 사람은 바로 가이오와 같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빚진 자의 심정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돕는 것입니다. 시간을 냅니다. 물질을 내어놓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여기에 있나이다. 하면서 내어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이오와 같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 기꺼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만하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섬김의 기회를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빚진 자의 심정으로 주님의 사역에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헌신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께 하듯이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 섬기되 늘 감사함으로, 빛진 자의 심정으로 섬겨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여름 성경학교와 수련회가 시작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귀중한 사역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수고하고 헌신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자기의 시간을 냈습니다. 여름철의 귀중한 휴가를 여기에 헌신하는 일을 위해서 사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난 주에 당회를 하면서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무엇이 필요한가 물어 보았습니다. 돕는 손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보조교사로 도우실 분들, 봉사하실 분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은 꼭 꼬집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물질로 지원해달라는 암시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 주간동안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특별히 하나님 앞에 축복된 헌신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묵상하면서 작은 일 하나를 찾게 되었습니다. 성격학교와 수련회를 위해 섬기는 교사들에게 가이오와 같은 협력자들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가이오와 같이 협력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역을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이고, 또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는 넘치는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합니다.

여름행사 가운데 러시아 단기선교도 있습니다. 선교의 현지를 살피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또 그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귀중한 사역들을 위해서 온 교회가 협력해야 합니다. 그들은 지원하므로 전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므로 기꺼이 그들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부요한 것이 되어 결국 우리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축복 된 헌신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하다가 무서운 하나님의 책망을 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가이오과 같이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 감사함으로 기꺼이 돕고 헌신하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형통하고, 육신적으로도 강건하게 되는 귀한 축복이 온 교회와 모든 성도들의 삶에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가이오과 같이 축복있는 헌신자들이 되기로 소원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