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 Church/Shema Isreal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눅 5:3~11)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누가복음 5:3~11

Entrance Prayer

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3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4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시편 145:1~4)

찌는 듯한 더위 가운데서도 은혜를 잊지 않으시고, 보호하시며, 거룩한 주의 날을 허락하셔서 다시금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도록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난날들을 돌이켜 돌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원망하며 불평했을 뿐이지만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고, 용서하시며, 주님을 섬겨 구원함을 얻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지친 삶을 돌아보시고, 다시금 새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 앞에 예배할 때에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세상을 이길 담대함을 허락하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 아멘 -

Introduction

지난 월요일에 신학교에서 함께 교제하던 동료 목사님들과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목사가 매번 노는 것은 아닙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교제를 나누고, 서로간의 목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인데 두 달만에 모였습니다. 날도 덥고 해서 계곡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작년에도 한번 그런 모임을 가졌었는데 그 때는 거의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반두를 갖다 대기만 하면 고기들이 잡히는 것이었습니다. 손가락 굵기만한 고기들이 그물에 걸려 올라올 때마나 탄성이 터졌습니다. 가끔씩이긴 해도 손바닥 만한 모래무치가 올라오기도 하고, 꺽지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한 마리 두 마리 고기를 잡을 때마다 도시생활의 답답함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탈출이라는 것은 꽤나 기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많은 고기를 잡게 될 때의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물고기를 잡다가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낚시를 잘 모르던 사람도 손 맛을 보고 나면 낚시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틈만나면 낚시도구를 갖추고 강으로 호수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들도 사람을 낚는 손맛을 보고 나면 전도에 미친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손 맛을 보지 못했기에 낚시터에 무료할 정도로 앉아있는 사람을 보면서 지겹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전도하는 일을 피곤하고 힘든 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이 여름에 계곡으로, 강으로 나가면서 물고기 잡는 것으로 낙을 삼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낚는 귀한 사명을 위해서 헌신하므로, 그 영적인 대어를 낚는 손맛을 보므로 천국의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이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저 놀러 가자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심심하니 너희들이 내 곁에 있어달라고 부르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사명을 맡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람을 취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한낱 고기잡는 어부로, 물고기의 손맛만을 느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므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의 손맛은 느끼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주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교회 생활에서 즐기고만 있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영적인 손맛을 보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을 낚는 일입니다. 사람을 취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마치 고기를 잡기 위한 그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 속에 던져져야 합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천국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 그물로 잡아서 천국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 던져져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취하여 올릴 수 있는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물이 찢어져 있으면 그것으로는 고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서는 결코 영혼구원의 그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와 여러분 자신은 사람을 취하는 그물로, 또는 사람을 취하는 어부로 우리 주님께 부름을 받았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취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 일에 게으르고 나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변에 있는 이웃들에게 예수님을 한 번도 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빵구난 그물입니다. 물고기들이 지나가고 있는데 그저 지나치는 것입니다. 물고기들이 많이 지나는 곳에는 낚시를 드리워야 합니다. 어항을 놓아야 합니다. 통발을 놓아야 하고, 쵸크를 쳐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도무지 저 고기를 잡을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람을 취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을 낚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낚는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온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 믿는 성도들과 교회는 사람을 취하는 성도, 사람을 낚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사람을 취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을 취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집니까? 어떻게 사람을 취하므로 부흥하는 교회, 능력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까?

2.1.

첫째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시몬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고기잡는데 선수입니다. 제가 바닷가에 가서 고기를 잡는데 잘 못 잡는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고기잡는 선수가 고기를 못 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전에 시찰회에서 바닷가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님들 중에는 바다낚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함께 난생처음으로 바다낚시를 해 보았습니다. 배를 타고 낚시바늘을 바다에 드리우고 고기가 물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고기가 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배의 선장님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답답했는지 잠시 내려오셔서 바다물에 낚시를 던졌습니다. 불과 몇분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럭 한 마리가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장님이 낚시를 드리운 곳과 제가 낚시를 드리운 곳은 불과 1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장님 낚시대에는 연신 고기가 올라오는데 제 낚시에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미끼가 다른 것도 아닙니다. 바닷가에 있는 고기들이 무슨 담합이라도 해서 신목사 낚시 바늘은 죽어도 물지 말자고 논의했다는 소리는 못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장님의 낚시에만 연신 고기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아마도 낚시 기술의 차이일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잡이로 생업을 삼았던 사람입니다. 고기잡는 일에는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그들은 프로였습니다.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밤을 새워 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고의 허탈함을 안고 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전문가의 기술로도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랜 경험으로도 큰소리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자기들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로도 고기잡이에 실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고기잡는 어부가 아닌 사람을 낚는 신령한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화됩니다.

핍박자 사울의 인생이 변화되고, 전도자 바울이 된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기독교 역사의 초석을 제공할 만큼 위대한 사역을 이루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인생이 변화됩니다. 예수를 만나면 세상일 조차도 능히 감당할 수 없던 실패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이루는 성공자가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금번 여름에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시면서 여가를 즐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온전히 변화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무능한 그리스도인에서 유능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굴한 그리스도인에서 세상을 향해서 도전하며,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복종시키는 용기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능히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대장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2.2.

둘째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던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들의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이 바뀐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우리 주님의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자기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거셨습니다. 배를 조금 빌려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물을 씻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한 젊은 양반이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찾아와서는 배를 좀 빌려달라고 할 때에 이들의 마음은 어땠겠습니까? 대개의 사람들은 몹시 기분 나빴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탕을 친 이들에게 배를 빌려달라는 소리는 반가운 소리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배를 빌려준 삯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잠시 배를 빌려주고 배삯을 받을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들은 자기들의 배에 예수님을 태웠습니다. 바닷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배를 세우고는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배에 태운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감동했습니다.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한참동안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이건 말도 안되는 명령입니다. 고기 잡는 데는 누가 선수입니까?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입니다. 바다와는 상관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분이시기는 하지만 고기잡는 것과는 상관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전문가에게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저 같으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시고 뱃삯이나 내라고 했을 것입니다. 기껏 그물을 잘 정리해서 나중에 쓸 수 있도록 해 두었는데 괜한 수고를 할 피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영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명하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순종할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기를 잡는 것은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말씀을 들음이 없이, 말씀으로 훈련되지 않고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수많은 고기를 잡아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명하시든지 기꺼이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특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씀을 듣기에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듣게 될 때에 가까이 나아와야 합니다. 멀찍이 서 있으면 곤란합니다. 자기의 배 위에 주님을 모시고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주님의 가당치도 않는 명령에도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주님은 축복하시고, 많은 고기를 거두게 하시고, 또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2.3.

세째는 회개와 주님을 따름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을 때에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모습은 심상치가 않습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누가복음 5:8)

베드로는 주님을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예수님을 자기 배에 모실 때에 뱃삯이나 받을 심산이었는데 주님은 자기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시고 축복을 주시는 메시야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난날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즉시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같은 죄인은 떠나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시라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같이 존귀하신 분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자기를 축복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의 삶이 될 때에,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이제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죄를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죄악을 가지고서는 결코 사람을 취할 수 없습니다.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질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사람을 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죄인임에 대한 깨달음이 없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취할 수 없고,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대교회의 가장 큰 질병이 눈물이 메마른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이 메마르게 되면 은혜가 메마르게 됩니다. 은혜가 메마르면 아무런 능력을 나타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이 있는 곳에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눈물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참된 회개를 회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죄악을 돌이켜 이제는 구주와 그리스도를 향해서 전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907년 한국교회의 부흥은 다른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회개했습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교회가 사람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회개의 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성도들도 주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할 수 있고, 그 눈물이 있어서 사람을 취할 수 있는 능력있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한국교회는 사람을 취하는 손맛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들은 이미 예수 믿던 사람들이 수평이동하는 것입니다. 교회들은 서로간에 경쟁하며 보다 많은 성도들을 유치하므로 위력을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가 서로 경쟁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교회가 세상에 던져진 그물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취할 수 있는 능력있는 교회, 참된 부흥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사람을 취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면서 이제 후로는 너희가 사람을 취하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향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후로는 우리 마포중앙교회가 사람을 취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던져진 그물이 되어서 교회가 터지도록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채워지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때문에 다른 교회까지도 함께 채워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된 회개와 헌신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부흥이 사라지고, 전도의 열매가 없는 이 나라 이 민족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사람을 취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로 결단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