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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역대하 20:20~23)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역대하 20:20~23

Entrance Prayer

1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2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시편 144:1~2)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간을 은혜 가운데 인도하시고 거룩한 성일을 허락하셔서 축복하시며,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하심을 감사합니다. 불순종한 요나같이, 추악한 고멜과 같이, 아버지를 떠난 탕자와 같이 감히 주 앞에 설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다시금 허락하시는 은혜를 사모하며 주 앞에 나아왔습니다. 허물과 죄악은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기도와 간구하는 소원을 받으시고, 넘치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예배 시종을 주께 의지합니다. 성삼위 하나님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고, 예배하는 모든 심령들 위에 한없는 주의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 아멘 -

Introduction

지난 주간에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이 돌연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귀국을 놓고 온갖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서 그분이 귀국했느냐 하는데 의문은 갖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우중 전 회장을 놓고 국가 경제에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에 사면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동정론과 국가경제를 망치고, IMF 사회혼란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을 경제적 파탄으로 몰아간 것에 대하여 반드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분에 관해서 평가하고, 또 처리하는 일은 국가의 몫입니다. 법이 신중하게 판단할 것입니다.

그런데 김 전 회장이 귀국할 당시 한 신문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넓어도 기댈 데는 없었다. 저는 그 제목을 보면서 글 쓰는 사람들의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우중 전 회장의 책 가운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이 대우를 일으킨 모토였습니다. 대우의 비전이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이 비전으로 대우라는 기업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유럽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세계는 그에게 있어 꿈의 바다였습니다. 마음껏 자기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IMF를 견디지 못하고 기업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피하게 되었습니다.

노구를 이끌고 타향살이를 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다닐 수도 없는 형편이었고, 여기 저기 숨어지내야만 했습니다. 노인의 괴로움은 극심했습니다. 결국 고국에 돌아와서 죄값을 치루고 편히 인생을 마감하겠다는 것입니다. 신문기자는 이런 김우중 전 회장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의 꿈의 바다였던 세상도 그가 기댈만한 곳은 되지 못했다고 한 것입니다. 그가 젊음을 바쳐 사랑했던 물질도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피난처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비전을 품고 살아갑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힘써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멋진 울타리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피난처는 아닙니다. 넓고 넓은 세상을 다녀봐도 우리가 기댈 만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결코 참된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에서는 사나 죽으나 인생에게 유일한 위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질문하면서 오직 예수 뿐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위로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본문은 유다 왕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시대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 왕의 기반 위에 나라를 견고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사 왕은 정치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왕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의 영토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견고한 요새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아사왕의 이런 배경 속에서 여호사밧을 왕위를 물려받았고, 더욱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나라는 번영했습니다. 군사력은 막강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어느 나라도 유다를 향해서 감히 큰 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북쪽의 아합 왕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죽이던 사람이었습니다. 아합이 아람사람들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여호사밧이 함께 그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은 패배였습니다. 여호사밧이 원정에 실패하게 되었을 때에 지금까지는 여호사밧 앞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던 나라들이 그 빈틈을 이용해서 유다의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모압과 암몬이 연합군을 형성하고 여호사밧을 공격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에 군사를 모으기 위해서 부산을 떨지 않았습니다. 그는 북쪽의 이스라엘에게 원정군을 보내달라고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역대하 20: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 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 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역대하 20:3~4)

본문에 보니 여호사밧이 두려워 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 했다는 것입니다. 왭니까? 왜 당시에 가장 강대한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여호사밧이 두려워 했습니까? 아람과의 전쟁에서 많은 군사적 손실을 보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가 겁쟁이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사밧에게는 아직도 충성된 장수들이 있었습니다. 강대한 성읍들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여호사밧은 언제든지 전장에 출정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가 두려워 했다는 것은 모압과 암몬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은 크고 강대했습니다. 두려울 만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을 두려워 했던 것이 아니라, 모압과 암몬을 자기들 앞에 크게 하신 하나님을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 역대하19: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가로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역대하 19:3)

모압과 암몬이 공격해 올 때에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를 향해 선언하셨던 하나님의 진노의 음성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낯을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혼자만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 백성들과 더불어 기도했습니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도 금식했습니다. 자기의 죄악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민족의 죄악을 내어놓고 눈물을 흘려가며 기도했습니다.

여호사밧은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크고 강한 군대를 가지고 이었습니다. 주변에 좋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다가올 때에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군사력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동맹관계를 믿고 그것을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여호사밧에게 승리를 주시고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와 기도로 간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앞에 당한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마이 뉴스에서 본 것입니다. 고흥에 가면 조 외과의원이 있답니다. 그 병원의 원장은 조대형 장로님이신데 이분이 30년이 넘게 무료진료, 의료봉사 등의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일컬어 고흥의 슈바이처라고 할 만큼 섬김의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고흥에 자리잡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30년 전에 그는 젊은 의사로서 돈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 가리지 않았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수술을 했고, 성공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병원에서 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그가 3개월 이상을 넘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30대 초반의 전도유망한 젊은 의사가 간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절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려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불쌍합니다. 핏덩이 아이들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 때 그는 절망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한 번만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 그의 몸 속에 있는 암세포를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의사입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암세포가 사라졌습니다. 그 때부터 조 장로님은 고흥에 자리를 잡고, 돈 버는 것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고흥의 슈바이처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이 기독교 신문에서 본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 신문으로 유명한 오마이 뉴스에서 본 것입니다. 이 신문을 세속적인 신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주권이 있고, 능력이 있음을 알고 그 분께 기도해야 합니다. 암이 찾아오고, 부도의 위기가 찾아오게 되면 사람들은 암을 두려워 합니다. 부도를 두려워 합니다. 세상을 두려워 하고 환경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두려운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악이 무엇인지 돌이켜 보고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옷을 찟고, 마음을 찟고 금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건지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형통한 길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가장 먼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다가온 모압과 암몬을 우리 힘으로 막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실력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군사력이나 동맹관계를 의지해서 안됩니다. 우리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이 일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생각에 크고 중대한 일에만 무릎을 꿇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찮아 보이는 작은 일 하나에도 하나님께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기에 걸리면 기도하지 않고 의사를 찾아가고, 죽을 병에 걸리고, 의사가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때라도 기도하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감당할 수 없을 위기의 순간에만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감기에 걸려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큰 병에 걸렸을 때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장 먼저 해야 합니다.

2.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힘이나 능력을 의지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군사를 모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의 피난처가 되시며, 힘이 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참으로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본문 역대하 20:12~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역대하 20:12~13)

여호사밧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는 이런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축복으로 허락하시는 기도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기도입니다. 신앙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도 기대고, 세상에도 기대는 양다리는 결코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평양 남문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 무식한 목사가 부임해왔습니다. 이 목사님은 말도 잘 못하고 학식도 없지만 기도는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계속 부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들이 말하기를, 무식한 목사님이 목회해도 부흥이 되었는데 이제는 미국 갔다온 목사님을 모셔오면 더 부흥이 되겠다고 하면서 먼저 목사님을 내쫓고 새로운 목사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해 온 목사님은 학식도 많고 말도 잘하고, 모든 것이 뛰어난데 왠지 교회는 점점 냉랭하게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안타까워 하다가 사찰한테 묻기를 "전에 있던 목사님과 나와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사찰이 대답하기를 "전에 있던 목사님은 강단에서나, 지하실에서나 엎드려 있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목사님은 한번도 그런 것을 못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는 깨닫고 담요를 싸 가지고 산에 올라가 바위를 붙잡고 낙엽이 온 몸을 뒤덮을 정도로 며칠동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전에는 자기의 실력을 의지했고, 탁월한 설교를 의지했고, 멋진 외모를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배설물로 여기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목회가 변화되었습니다. 교인들이 변화되고 교회는 계속 부흥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었지만 그가 자기 실력을 바라보았을 때에 그의 목회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낯을 구하고, 오로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분의 목회가 새로워 질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컬럼리스트 조지 스위팅이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 폭풍이 지나가면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인생이 새로워 질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불안이 사라지게 됩니다. 근심이 변하여 감사와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주만 바라볼찌라.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찬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이 찬양을 부르게 될 때,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가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 하나님에 선하심을 닮아 가는 자 /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 너를 자녀 삼으셨네 /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 하나님 인자한 귀로서 /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쳐 주시고 / 너에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 너는 어느 곳에 있던지 /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눈은 우리를 항상 바라보십니다. 그분의 인자한 귀는 우리의 세미한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사밧은 이런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군대의 많음에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국제적 동맹관계에 나라의 국운을 내어 맡기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꿈을 믿어봐도 소용없습니다. 우리의 직장을 믿어봐도 그것이 우리의 삶에 형통함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실력을 믿어봐도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를 안전히 피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의 눈은 우리의 모든 것을 지켜 보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인자한 귀는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을 바라보시므로 주님께서 견고케 하시고, 형통케 하시는 귀한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 야하시엘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역대하 20: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5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17b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역대상 20:15, 17b)

여호사밧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의 신음을 들으신 것입니다. 그의 눈물과 회개를 보셨습니다. 그의 불안해 하는 마음을 위로하셨습니다.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꿈따라가고, 돈 따라가고, 쾌락 따라가는 사람에게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만을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십니다. 모압과 암몬처럼 세상이 온 힘을 다해 공격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 곳에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를 통한 약속의 말씀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역대하 20: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역대하 20:20)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백성들을 향해서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 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전장에 나가서도 칼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군사의 수가 많고 적음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견고한 성읍에 의지하지도 말고 아무것도 믿지 말고 신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시고, 또한 전쟁에서 형통케 하실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이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전장에 나아갔습니다. 군대를 앞세웠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가대를 앞세웠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면서 나아갔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성가대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는 성가대를 편성해서 거룩한 옷을 입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전장에 나아갈 때에도 그는 칼에 의지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전쟁에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 전쟁은 내게 속한 것이라 친히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전쟁에 임하신 것이었습니다. 군대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전쟁에 나가신 것입니다.

유다의 매복 군대가 모압과 암몬, 그리고 세일산 사람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압과 암몬 진영을 크게 혼란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먼저 세일산 사람들을 공격하여 진멸합니다. 그리고 자기들 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되었습니다. 24절 말씀에 보니 “유다 사람이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 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압과 암몬의 군대가 전쟁하러 왔다가 자기들끼리 싸우고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모든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했더니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모압과 암몬이 유다 백성들을 손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큰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망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면 그는 승리하게 되고,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집니다. 여호사밧은 다른 것을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군사력을 의지할 수도 있었고, 또 견고한 성읍을 의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외국과의 동맹을 의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유다의 군대가 전쟁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수고하지 않은 열매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5~26절 말씀에 보면 적군의 진영에 의복과 보물이 너무 많아서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아서 사흘동안 취했다고 했습니다.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짓지 않은 집을 주고, 그들이 뿌리지 않은 곡식을 거두게 하고, 또한 그들이 심지 않은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얻게 한다고 하십니다.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둘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 능력 밖의 축복을 얻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승리함이 넘쳐 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치지 않은 승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손으로 수고하지 않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짓지않은 아름다운 집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서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주님만을 오로지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으로 짓지 않는 축복의 땅을 주십니다. 우리의 칼과 창으로 싸우지 않은 전쟁에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시므로 여호사밧이 이루었던 이와 같은 축복을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세상을 두려워 하므로 벌벌 떨고, 세상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안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세상만을 열심히 바랍니다. 넓고 넓은 세상 속에 나의 피난처가 어디에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세상을 방황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은 넓어도 기댈 데는 없습니다. 어디에도 편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으로 쉼을 얻게 하고, 우리의 삶으로 승리케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 뿐입니다. 주님 만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승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능하심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무서운 기세로 덤벼들어도 세상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고백했던 것처럼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만들어주시는 승리와 축복의 전리품을 얻을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여호사밧과 같이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와 축복을 얻기로 소망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힘들고 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