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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반드시 넘어야 할 산


제목 : 반드시 넘어야 할 산

본문 : 창세기 4:1~7

설교 : 신 현 철 목사...

대한예수교 장로회

마 포 중 앙 교 회


반드시 넘어야 할 산

창세기 4:1~7

Entrance Prayer

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기 42:2~6)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날씨를 허락하시며, 무더위로 지친 심신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으로 살기를 원했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한없이 약하여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시고, 예배하는 중에 우리의 영혼으로 독수리 같이 힘있게 하시고, 성령과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 아멘 -

Introduction

할렐루야! 한 주간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올 여름은 정말로 더웠는지 모릅니다. 그 지독한 무더위가 계속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시원함, 아니 싸늘함 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름의 더위를 지나 가을의 시원함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에게 우리 주님의 넉넉하신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갑작스런 날씨의 변화에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행복한 나날이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 어르신들이 지금까지 부모로 살아오시면서 그분들이 가진 소망이 있습니다. 나는 못 먹고 못 배워도 자식들만큼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며, 많이 배워서 사람들에게 인정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찌 되어도 좋으니 자식들만 잘 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참 험악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부모를 내다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은 부모는 신기하게도 절대로 자식의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식의 이름을 말하면 그 자식 체면이 뭐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은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으니 절대로 자식에게는 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네 부모님들의 마음입니다.

자녀 된 여러분들은 이런 부모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모의 마음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면서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암송합니다. 서두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양자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들이 우리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듯이, 당신 자신은 어떻게 되더라도 자식들에게 최고의 것으로 채워주고 싶어하듯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된 우리를 향해서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각양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그의 백성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께 복받는 원리를 분명히 알아서 심판을 벗어나고 축복으로 가득하게 되기를 소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에 합당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을 받을만한 자격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으로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하면 마귀가 가만 두질 않습니다. 방해합니다. 가로막습니다. 받은 축복마저도 빼앗아버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축복된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마귀의 소원은 우리가 망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0절 말씀에 보니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게 되는 축복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이는 것입니다.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을 가만히 놔두고 보지 않습니다. 욥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때에 가만히 놔두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욥을 괴롭혔습니다. 욥에게 있는 축복을 빼앗아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마귀의 모든 궤계를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귀를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Main Subject

1.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한 후에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범죄함의 결과는 쫓겨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인 에덴에서 쫓겨나서 가시와 엉겅퀴가 있는 저주 받은 땅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을 받는 사람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죄가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과 상관없는 자가 되어집니다. 기존에 갖고 누리던 모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빼앗기고 저주와 탄식 속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죽어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죽어도 죄를 짓지 않으면 죽어도 사는 역사가 있지만 살기 위해서 죄를 지으면 영원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에덴에서 쫓겨난 중에도 하나님을 그들에게 여전히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들에게 두 아들을 주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입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에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배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상관없이 저주 가운데 있는 사람들, 죄악 가운데 출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왜 예배하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 하나님의 축복과 상관없는 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예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왭니까? 우리고 하여금 쉬지도 못하고 불편하고 귀찮게 하기 위해서 예배하라고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어집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과도 상관없는 자가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아벨에게 예배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왜 여러분들에게 항상 예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동일합니다. 예배하게 될 때에 하나님과 관계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신학자 가운데 에른스트 랑게 (E. Lange) 라는 분은 예배를 가리켜서 “언약갱신의 축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하게 될 때에 하나님과 늘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은 그 언약을 갱신하시므로 우리에게 축복하시고, 그 축복으로 말미암은 축제의 잔치가 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에 예배는 필수입니다. 예배를 드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각양 은사와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예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배없이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우리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생명을 거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가득히 소유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 예배하면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소산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는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농사하여 얻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의 예배를 받으시고, 가인은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에게 축복하시지 않았습니다. 예배했는데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가인은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했으면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기뻐해야 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분노에 싸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무시되고, 동생에게 수치를 당하게 되었노라고 얼굴을 붉히게 되었습니다.

2.1.

분명히 가인은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까? 가인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축복을 받는데 걸림이 되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6~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6~7)

가인은 예배하는 자이었지만 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축복의 사람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가 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의 예배마저도 외면하셨고, 그에게 축복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분함이 어찜이냐? 안색이 변하는 것이 왠말이냐? 네가 선을 행했으면 축복을 잃었겠느냐?” 하나님은 가인이 축복의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은 그가 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예배해도 선하지 못하면 그 예배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예배자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인이 선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에서는 가인의 예배는 믿음이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없고 욕심만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가 선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나쁜 행동을 했다기 보다 그의 삶은 전체로 불신앙의 삶이었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하나님은 여기에 반드시 계시며, 우리가 참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면 우리에게 축복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으므로 예배해야 합니다. 늘 하는 예배, 형식적으로 드려서는 안됩니다. 되는대로 드려서도 안됩니다. 무성의하게 드려서도 안됩니다. 마지못해 드리는 예배는 더더욱 안됩니다. 이런 예배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인이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먼저 가인의 예배가 믿음이 없는 잘못된 예배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노라고 하면서 불신앙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잔존하고 있는 모든 불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향해 나아감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불신앙의 큰 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것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모든 불신앙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모든 불신의 산을 뛰어넘고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

하나님은 가인에게 너는 불신앙의 사람이었기 악하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이후에 다시금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7)

선을 행치 않으면 무엇이 문에 엎드린다고 합니까? .. 죄가 우리의 문 앞에 엎드린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앞에 두고 그 몸을 낮추고 노려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앙의 돌부리에 걸려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게 되면 죄란 몸이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서 노려본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죄를 의인화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가 사람을 노려보고 안 노려보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죄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마귀가 죄된 유혹으로 우리를 집어삼키기 위해서 기회를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번역은 조금 어렵습니다. 그런데 원래의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집어삼키기 위해서 간절히 열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삼키고 싶어하는 간절한 소원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접하면서 마귀가 얼마나 우리를 가로막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안깐 힘을 쓰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온갖 유혹의 덫을 놓고 거기에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걸려들기만 하면 꿀꺽 집어삼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시대가 얼마나 많은 죄의 유혹들로 가득한지 모릅니다. 성인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온갖 컨텐츠(Contents)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인터넷을 통해, 휴대전화를 통해 추악한 음란물들이 배달됩니다. 세상은 온통 음란함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합니다. 이런 시대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마귀는 온갖 죄악의 덫을 깔아놓고 우리가 거기에 걸려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우리의 약점이 발견되면 집어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눈 팔아서야 되겠습니까? 세상으로 눈을 돌려서야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세상이 조금 재미있어 보인다고 그리로 눈을 돌리다간 끝장나고 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온데 간데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향해서 권면하셨습니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따라합시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나는 죄를 다스리겠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마귀가 죄된 쾌락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하려고 해도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따라가려는 못된 욕망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 되지 말고 성령의 말씀으로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마귀의 모든 계략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얻으려면 죄를 정복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있습니까? 도무지 불가능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시험에 들지 않기를 힘써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므로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무장될 때에 우리는 마귀의 죄된 유혹의 산을 넘어서고 축복의 산지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넘쳐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 늘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축복과 행복은 예배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서 예배하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곶감 빼먹듯이 빼먹어서는 안됩니다. 천금보다 더 귀한 축복의 시간이라고 믿고 예배하는 일을 생명같이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서 너무나 멀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축복을 얻기 위해서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불신앙의 산을 믿음으로 넘고, 죄된 유혹으로 방황케 하는 산을 성령으로 뛰어 넘기만 하면 축복을 쏟아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그 산지에 올라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동떨어진 채 그대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배를 위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불신앙을 벗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죄된 모든 유혹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영생의 축복과 함께 금생에서 백배나 되는 축복으로 충만케 채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하나님의 축복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방해물을 참된 예배와 믿음과 성령으로 능히 극복하고

영생과 더불어 백배나 되는 금생의 복을 받아 누리기로 소원하는

온 교회와 사랑하는 주님의 모든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