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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때가 아직 낮이매 (요한복음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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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요한복음 9:1~7

제목 : 때가 아직 낮이매

설교 : 신 현 철 목사

대한예수교 장로회

마 포 중 앙 교 회


때가 아직 낮이매

요한복음 9:1~7

Entrance Prayer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121:1~4)

우주의 창조자가 되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한 순간도 든든히 설 수 없었건만 강한 손으로 함께 하시고,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므로 죄악된 세상에 침식되지 않고 오늘도 주 앞에 새 생명의 기쁨을 맞볼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 이 시간에 우리 가운데 찾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죄악을 이기며, 세상을 이기며 축복의 산지를 향한 승리의 행진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배하고자 합니다. 주의 성령께서 친히 강림하셔서 우리의 허물을 감추시고, 신령과 진정의 참된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 아멘 -

Introduction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시간과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들에게 하늘의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가을철에 더 없는 축복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나라에 실업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젊은이들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합니다. 공부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취업을 위한 과외를 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얻기 위해 취업재수, 삼수를 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실업의 문제가 우리 사회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가고 있고, 게다가 사회가 다양화 복잡화 되어 가면서 취업전선에 젊은이들만 몰리는 것이 아니라 주부들도, 노인들도 일거리를 찾아 다닙니다. 모두가 일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20대는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는 책까지 나올 판입니다.

일이라는 것, 노동이라는 것, 비록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힘든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측면에서 허락하시는 제2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과 구원을 제1의 축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제 2의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오래 전에 교회를 사임하고 약 3개월간 쉬던 때가 있었습니다. 첫 한 달은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마음도 편하고 여유도 있고, 책도 마음껏 볼 수 있고, 가 보고 싶은 교회도 가보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 지나 두 달이 되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일할 때는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놀아보니 노는 것만큼 힘든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치도록 일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놀고 먹도록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창조의 지킴이로, 때로는 창조적 사역의 계승자로 끊임없이 일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놀고 먹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게으름의 죄악입니다. 세상에 제일 못된 사람이 놀고 먹으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게으름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결코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일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만을 위해서 하는 일이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의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 성도들의 우선적인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복음적 사역과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쉬지 않고 일하는 교회가 되어서 주님 앞에 많은 열매를 남기고, 또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본문 1~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한복음 9:1~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이 사람을 보면서 제자들이 주고 받는 대화가 걸작입니다. 이 사람이 소경 된 것이 누구의 책임이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논쟁합니다. 내기를 걸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최종적인 답변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타락한 사람들의 심성은 이렇습니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책임여부를 가리는 데만 골몰합니다. 누가 옳으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데만 열의를 올립니다. 이것이 타락한 사람이 죄던 심성입니다. 성도 중에 누가 암에 걸리면 그 집사님은 왜 암에 걸린 거야? 혹시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야! 이럽니다. 목사님이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잘 모르지만 목사님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졌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거야.. 이럽니다. 사업에 부도를 맞았습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사업 부도 맞는 사람들의 상황을 보면 정말로 처참합니다. 죽을 맛입니다. 아니 죽음도 그것만큼 힘들지 않을지 모릅니다. 안 그래도 죽을 맛인데 그 사람 앞에서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서 똑 바로 못 살아서 그런 거야.. 이럽니다. 왜 이럽니까? 이것이 바로 타락한 사람들의 심성입니다. 누가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지적합니다. 아픈 곳을 더 후벼 팝니다. 상처 난 곳에 잿물을 갖다 뿌립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가끔씩 성도들로부터 목사님, 우리 교회의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저것이 문제입니다. 하는 등등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끼리만 똘똘 뭉치고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처음 오는 성도들에게 냉랭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는 이것이 문제고 저것 때문에 교회가 결코 부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타깝게도 100%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문제가 없는 교회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만 문제를 가득히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모범적이라고 말하는 교회들도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지상교회가 갖고 있는 약점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문제가 전혀 없는 교회가 발견되거든 당신은 절대로 그 교회에 가지 마십시오. 당신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교회는 문제가 있는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문제를 안고 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모두가 크고 작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비판만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지적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비판하기에 앞서 교회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약점이 있고, 문제가 있는 성도들을 보면 비판하고,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영적 무지는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이처럼 피상적인 것에만 집착했습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소경인 한 사람을 보게 되었을 때에 그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그에게 뭐가 문제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비열한 사람들입니까? 소경 된 것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인데 그 사람에게 뭐가 문제냐고 하면서 비판의 구실을 삼고, 쓰레기 같은 말장난만을 늘어놓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그들의 모든 논쟁과 비판을 일축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경을 향해서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판은 자신을 망하게 합니다. 이웃을 망하게 합니다. 우리의 직장과 우리의 교회를 망하게 합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을 삼고 있다면 우리는 사단의 가시요, 십자가의 대적이 되고 맙니다. 아니 비판의 말을 토하여 놓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원수임을 자청하고 있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동일하게 비판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비판으로 너희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 우리 주님은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단호했습니다. 가차없었습니다. 그들에게 결코 양보하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교회생활을 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행태를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그 중심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주일학교 교사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을 자료로 남겨야 한다는 열정 때문에 매일 매일 하루를 평가하는 교사 평가 모임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간식도 있고, 과일도 있고 음식을 먹어가면서 회의를 하니 신이 났습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프로그램은 뭐가 잘못되었다고 하며,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성경학교의 모든 행사가 문제덩어리 였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모든 교사들은 문제를 지적하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교사 평가회를 마칠 무렵에는 이미 싸움판이 됩니다.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고 새로운 영적 충전을 받아야 할 시간에 모두가 기분을 상하고 얼굴을 뻘겋게 하고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면서 중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비판은 결코 사람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판하게 되면 비판을 받는 사람이 더욱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악해진다는 것입니다. 비판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판을 근절시키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판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잠언 27: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잠언 27:21)

사람이 정금같이 귀하게 나오는 것이 무엇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까? 칭찬이라는 것입니다. 비판이 사람을 시련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칭찬하고 축복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청년 때 마을에서 밤에 고스돕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매번 잃으면서도 집에 있는 것을 부모님 몰래 내다 팔아서 고스돕을 치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이 고스돕을 치신 분이 누군 줄 아십니까? 그분의 말씀에 교회의 주일학교 부장 집사님이셨답니다. 교회 청년과 부장 집사가 거의 매일 모여서 고스돕이나 치고 있다면 그 교회 꼴은 알만합니다. 그런데 어느날은 그 부장 집사님 집에서 고스돕을 치고 모든 것을 다 잃고 오게 되었는데 어머님에게 딱 걸렸답니다. 속으로 이젠 죽었다 싶었는데 왠 일인지 어머니는 그 아들을 붙들고 나는 너를 믿는다. 지금은 네가 잠시 잘못된 일을 하지만 반드시 그 자리에서 돌아설 것이라고 믿는다. 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믿어줌이 있었을 때에 그 목사님은 지난 날의 잘못을 회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르게 세우고 죄된 일을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교회의 지도적인 역할을 감당하시기에 이르렀스니다. 무엇이 한 사람을 변화시켰습니까? 책망과 꾸지람과 비판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칭찬과 격려였습니다. 믿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을 때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가정은 행복이 넘쳐나게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 훌륭한 인재가 세워지고, 우리 가정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자녀들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문제점만을 찾아 비판하는 일에 힘쓰지 말기를 바랍니다. 약점과 실수를 찾아 침소봉대하는 가운데 있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하고 믿어줌으로 훌륭한 신앙의 인격자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이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멋진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양육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에 문제를 지적하는 못된 비판을 송두리째 내어버리고 오직 칭찬과 격려와 믿어줌으로 채울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제자들은 현상을 바라보면서 불필요한 논쟁과 비난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을 꿰뚫어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9:3)

세상의 모든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 소경이 있는 것은 그를 비판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에게 나타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조롱하고나 업신여기며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일관할 때가 아니라 지금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야 하는 때, 즉 우리가 일해야 하는 때라고 주님은 강조하셨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9:4)

따라 합시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그렇습니다. 지금은 일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유기해서는 안됩니다. 충성을 다해서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기회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아직은 낮입니다. 그리고 곧 밤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일해야 하는 때이며, 일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기회입니다. 지금이 지나가면 다시는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에 가훈은 후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어진 기회를 최선을 다해서 사용하고,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한 순간도 헛되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은혜 받아야 할 때에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축복을 받아야 할 때에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공부해야 할 때에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후회되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신앙은 후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23: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말씀합니다. 로마서 1:29절에서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후회가 없습니다.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의 약속하신 것을 최선을 다해서 이루어가십니다. 후회하지 않을만큼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천국문 앞에 선 사람들은 ~하길 잘했지!.. ~하길 잘했지.. 한답니다. 예수 믿었으니 잘했지! 내가 열심으로 봉사했으니 잘했지, 그 때 목사님이 직분을 맡기셨을 때 꾀부리지 않고 충성하길 잘했지.. 이렇게 그러길 잘했지 한답니다. 그런데 지옥 문 앞에서 사람들은 ~껄, ~껄 한다고 합니다. 그 때 봉사할 껄.. 그 때 예수 믿을 껄.. 그 때 나도 그 친구와 함께 교회갈 껄... 그 때 기도할 껄, 그때 하나님께 헌신할 껄.. 그 때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이 충성하고 봉사할 껄... 그러나 기회는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지옥문 앞에서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순간들은 너무나 소중한 것들입니다. 잠시도 낭비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노 장로님이 제자들에게 가끔씩 묻는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장로님의 대답은 젊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젊음의 때는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낭비하고 지나가면 그 젊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간도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한 번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렇다고 기회는 젊은이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아직 때가 낮이라고 했습니다. 밤이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밤이란 무엇입니까? 인생의 모든 기회가 끝나고 마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을 의미합니다. 다시는 섬김과 봉사의 기회가 사라지고, 기도하고, 경건의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그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코에 호흡이 있다면 아직은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남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의사가 얼마 못 산다고 했다손 치더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동안은 밤이 아닙니다. 낮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껴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허송세월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그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회가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의 손을 내밀어 그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합니다. 그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허송세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송 세월하는 것은 악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월을 낭비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해야 합니다. 시간을 절대로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기회는 절대로 우리를 위해서 마냥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불현듯 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늦습니다.

열 처녀가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신랑이 오게 되었을 때에 준비한 처녀들은 신랑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처녀들은 바깥에서 슬피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야 하는 때 입니다.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낭비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회를 포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고 충성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바라봅니다. 우리 교회가 43년 이라는 긴 기간동안 이 지역을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직도 우리를 향해서 아직 낮이라고 합니다. 아직 밤이 오직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 지역사회를 향해서, 이 세상을 향해서 일하는 교회로 세워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늙었다고 미루어서도 안됩니다. 힘이 없고 돈이 없다고 물러나서도 안됩니다. 아직은 밤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최선을 다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3.

아직 낮입니다. 우리는 일해야 합니다. 절대로 절망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게을러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죄악입니다. 그저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만하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본문3절에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4절에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 말씀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요한복음 9:5)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우리 주님은 당신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에 당연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 말씀, 지당한 말씀으로 쉽게 넘길 수 있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너무나 깊은 주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고 있다기 보다는 주님께서 감당하셔야 하는 사명이 무엇인가를 적확(的確)하게 지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세상의 빛으로 살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3절에서 말씀하고 있던 하나님의 하시는 일, 그리고 4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보내신 이의 일 즉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시고, 또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목숨을 걸고, 죽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그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닙니다. 성공하고 출세하고 이름을 만천하에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합니다. 위대한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남기는 것이 우리의 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위해서 목숨을 겁니다. 기회를 타서 돈 버는 일에 집중합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들을 위해서 귀중한 시간, 생명같은 시간들을 소진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위해서 시간을 쓰는 것을 아까워 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내서 교회구석 구석을 청소하며 빗자루를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시간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을 위문하며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서 생명같은 시간을 드리는 것, 물질을 드리는 것을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썩을 것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것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둠을 밝혀야 합니다. 소외된 사람에게 광명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쳐 쓰러지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어깨를 디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빛된 삶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바라보면서 제자들은 그를 평가절하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자기들의 편견과 아집으로 소외당한 사람,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을 정죄하고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어두운 눈을 밝히시고 광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본문 6~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한복음 9:6~7)

예수님은 침뱉아 진흙을 소경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땅에 침을 뱉아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랐다는 것은 조금 지저분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면서 어느 누가 깨끗하다. 기분이 좋다 할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소경의 삶의 실제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소경은 사람들의 조롱거리였습니다. 제자들의 비난거리였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소경으로 태어났느냐며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현대사회가 장애인들을 향해서 많은 복지 정책을 실천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조롱을 당하고 있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소경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외면.. 그것이 바로 소경의 현주소였습니다. 그의 인생은 이런 것들로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주님은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실로암이라는 뜻은 보냄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보냄을 받았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것은 4절 말씀에 나를 보내신 자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보냄을 받은 자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실로암 연못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조롱받고 멸시받고 외면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와서 그에게서 밝히 보고, 광명을 보고 소외에서 벗어나라고 주님은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일이었습니다. 소경에게 광명을 주며, 소외와 따돌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보냄을 받으신 주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었고, 또 우리가 해야 하는 빛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소외된 사람에게 눈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 안에도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주님의 심장으로 따뜻하게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 그러므로 소경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저주의 침뱉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고, 생명의 빛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경을 위해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참된 빛을 잃고 어둠 속에 소외된 사람, 그를 구원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주님의 은총의 빛에 거할 수 있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주님께서는 주님 혼자만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우리가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바로 주님께서 하신 것과 같이 주님의 은총의 빛을 알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소외의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광명의 밝은 빛을 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므로 지옥의 고통 속에 헤매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천국의 찬란한 영광을 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일하는 교회, 일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잠시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주께서 맡기신 부흥의 사명을 위해서 힘써 전진해야 합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우리의 수고를 잠시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상관없이 저주의 어두움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정죄만 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들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품고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참된 빛을 얻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아직은 낮입니다. 아직은 우리에게 일할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분명히 언젠가는 우리가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가서 후회하지 마시고, 지금 일할 기회가 있을 때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노는 교회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것은 원치 않을 것입니다. 게으른 종, 노는 종을 가리켜서 주님은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도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재의 상태에 주저 앉아서 남 탓만하고 있는 그런 교회는 더더욱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일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힘써 일하는 교회, 충성을 다해서 일하는 교회, 지금은 아직 일할 기회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밤이 오기 전에 힘써 일할 수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빛된 사명을 감당하므로 어두운 그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빛을 전해 줄 수 있는 복된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고 멋지게 사명을 감당했노라고 칭찬하고 축복하시는 귀한 은혜가 온 교회 위에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때가 아직 낮임을 기억하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기로 결단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