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 Church/Shema Isreal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마가복음 4:35~41)

마포중앙교회 9월 11일 주일 설교


Play Button을 Click하세요...*^^*

본문 : 마가복음 4:35~41

제목 :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설교 : 신 현 철 목사

대한예수교 장로회

마 포 중 앙 교 회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마가복음 4:35~41

Entrance Prayer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편 46:1~3)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지난 한주간 국내외적으로 참으로 두려운 일들이 가득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내세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음에도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으로 우리를 용납하시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올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모임에 기쁨으로 임하시고, 예배하는 모든 심령 위에 주의 축복으로 더하여 주옵시고, 오직 주님의 이름만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지난 8월 최대시속 240Km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일명 카트리나 라고 불리우는 허리케인이 미국의 남동부 지방을 강타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재산피해 역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엊그제 뉴스 보도에 의하면 사망자가 3만명을 돌파하지 않을까 추청하고 있으며, 뉴올리언즈는 도시폐쇄를 선언하고, 도시 기능이 정상화될 때까지 그 지역을 폐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가히 가공할만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게 됩니다.

미국에서 허리케인이 있었다면 지난 주간에 우리 나라에는 일명 나비로 불리우는 태풍이 있었습니다. 세찬 바람과 엄청난 폭우가 내렸습니다. 고속도로가 끊기고 산사태가 났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인명피해를 입었습니다. 재산의 손실도 엄청났습니다. 일년동안 애써 가꿔온 과수원에는 과일들이 낙과하므로 말미암아 농사하는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중적 피해지역인 울릉도나 울산 같은 곳은 아직도 정상화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신문이나 뉴스를 접하면서 뜻밖에 이런 재난이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되면 얼마나 난감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루 하루가 평온했는데, 미래를 꿈꾸고, 앞날을 설계하며, 희망도 가져보았는데, 어느날 몰아 닥친 재난의 바람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태풍 나비는 울산이나 울릉도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역시 미국의 뉴올리언즈에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고 살아감에도, 교회에 충성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착하다고 인정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에도 재난의 바람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때에 우리의 모든 희망을 송두리째 가져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고 두려운 재난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때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사람들은 재난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태풍경보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이를 위한 정확한 예측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재난을 줄일 수 있는 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해야 합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온갖 재난을 막을 수 있는 대비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안됩니다. 그것만으로는 재난을 대처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말씀합니다. 믿음을 준비하라. 믿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이 모든 문제를 이기고 다시금 승리하는 삶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오직 피할 길은 주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초강대국의 정부도 믿을 수 없습니다. 인공위성의 관측도 믿을 수 없습니다. 수퍼컴퓨터의 예측도 믿을 수 없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절망의 순간에 우리에게 유일한 힘이 되는 것은 믿음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두려운 상황들을 위하여 믿음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재난을 지혜롭게 이기며,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위로와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교훈을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하루 종일을 바쁘고 힘겹게 지내시다가 저녁을 맞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다 건너 저 편으로 가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배를 띄웠습니다. 바람은 잔잔했고, 날씨는 매우 청명했습니다. 주님이 타신 배의 주변에는 호숫가를 여러 개의 작은 배들이 띄워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질녘에 바다 위에 몇 척의 작은 배들이 둥실 떠 있습니다. 일몰의 찬란한 반짝임이 바닷물을 온통 물들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잔잔한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하늘의 안식과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 날에 이룬 모든 주님의 역사들을 회상하면서 만족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루의 일상을 마치신 주님은 많이 피곤하셨는지 배 고물에 자리를 잡으시고 베개를 베시고는 이내 잠이 드셨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잔잔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하늘은 시커멓게 변해버렸습니다. 번개가 번쩍입니다. 천둥소리가 쿵쿵거립니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두움이었고, 바람은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하던 물살은 출렁이기 시작하더니 큰 파도가 되어 주님과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 배를 띄운 것은 그들의 판단이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주님 역시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있는데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본문 35~3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마가복음 4:35~36)

여기 보시기 바랍니다. 그날 저물 때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열심으로 감당했던 날입니다. 다른 어느날 보다 더 많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았고, 또 주님의 기적을 체험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날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저편으로 가자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나아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 역시 그 배 안에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풍랑을 만났습니다. 참으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했으면 만사가 형통해야 정상이 아닙니까? 우리가 특별새벽기도회로 기도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겠노라고 성경공부도 하면 우리 앞에 순탄한 길이 열려야 하고, 사업도 잘 되고, 자녀들도 잘 되고, 우리 앞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놀라운 능력을 더하여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무관심하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편 27:10) 그렇습니다. 세상의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돌보시고 사랑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관심하실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시고, 우리의 기쁨에 같이 기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풍랑을 주십니까? 이 풍랑으로 말미암아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은총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나약한 가운데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장성한 성도가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독수리는 절벽 위 바위 위에 가시로 모양을 갖추고 그 안에는 깃털을 깔아 두어서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둥우리에 알을 낳고 새끼가 부화해서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보금자리 안에 있는 깃털을 모두 빼버리고, 가시만 남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새끼는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서 이리 저리 피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둥지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결국 둥지 밖의 절벽 낭떠러지가 보이는 곳에 새끼들이 모이게 됩니다. 새끼가 웬만큼 껐다 싶으면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를 업어서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가서는 새끼를 땅으로 떨어뜨립니다. 새끼는 필사적으로 날개 짓을 합니다. 그러나 어미 독수리 지켜만 볼 뿐입니다. 그러다가 새끼가 땅에 떨어지려는 그 순간 쏜살같이 내려가 다시 새끼를 업어 올립니다. 그리고는 다시 떨어뜨리고 다시 업고 하면서 반복해서 무섭게 나는 법은 훈련시킵니다. 이제 나는 훈련이 다 끝나면 마지막 단계로 특별히 비바람이 치는 날을 택해 새끼와 함께 폭풍우 속을 나르게 하는데. 마침내 구름 위에까지 올라가서는 비바람도 없고 광명한 햇빛이 빛나는 창공을 유유히 나르게 한다고 합니다.

독수리가 왜 새끼를 이렇게 괴롭힙니까? 죽이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새끼가 미워서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날짐승 중에 왕으로 가장 멋지게 창공을 날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독수리로 하여금 독수리답게 하기 위해서 어미 독수리는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 무서운 풍랑을 만나게 하셨습니까? 그들로 하여금 큰 신앙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약한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크고 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렇게 훈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도 제자들처럼 풍랑을 만나게도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 사업에 주님을 모시고 나아가는데도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사업인데 그 사업에도 풍랑을 만나고 큰 시련을 맞게 되어집니다. 부도의 위기를 경험하게도 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했는데도,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공부했는데도 시험에 번번히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 때문에 실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단련하여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고난 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도 고난을 줍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우리를 유익케 할 것입니다. 우리를 정금같이 만들 것이며, 고난을 뛰어넘는 영광을 소유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앞에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믿음으로 더욱 당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자 이내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대체로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베테랑 어부들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라고 하면 손금 보듯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이처럼 갑작스런 풍랑이 자주 일곤 했기에 풍랑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리고 풍랑을 이기고 나가는 비법들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주님을 굳이 깨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피곤하신 주님을 깨울 것까지는 없고, 자기들이 힘을 합쳐서 이 풍랑을 빠져나가자고 했습니다. 열심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풍랑에 배가 좌초되지 않도록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들 앞에 불어 닥친 풍랑은 그들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 게다가 얼른 지나가지도 않고 그들의 곁에서 계속해서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차츰 제자들의 손에 힘이 빠져갔습니다. 배는 이미 들이닥친 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도무지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이 풍랑 속에서도 주님은 만사태평이었습니다. 너무나 달콤하게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눈에 그 장면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굳이 주님까지 깨울 필요가 있나? 우리가 해결하자고 했던 제자들이 절망의 순간에 주님을 보자 원망이 튀어나왔습니다. 본문 37~3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마가복음 4:37~38)

큰 풍랑으로 살 소망이 끊어지게 되자 제자들은 주님께 원망을 늘어놓습니다. 주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들은 지금까지 주님을 깨우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풍랑이 크게 일어도 자기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의 능력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곁에 계신데, 능력의 주님을 깨우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피곤하실텐데,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쓰시게 하면 되겠느냐고 생각을 했습니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꼴입니다. 그리고는 도무지 안되겠고, 이제는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원망을 주님께 돌립니다. 자기들이 해보겠노라고 해놓고, 일이 안되니까 주님을 원망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이 곁에 계신데 깨우지 않습니다. 기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해결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절망의 상황을 맞게 됩니다. 파국을 맞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때 가서 하나님이 있느니 없느니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안도와 주셨다고 합니다. 괜히 목사를 잡고 생떼를 씁니다. 지금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해보다가 안되니까 주님께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지금 우리가 죽을 지경인데 잠만 자고 있으면 됩니까? 하는 것입니다. 어째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다 못해 같이 노라도 저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힘 믿고 살다가는 실패하게 됩니다. 육신의 삶에서 실패할 뿐만 아니라 주님을 향해 원망하는 영적인 실패까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미련한 사람이 자기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실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지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 잠언은 뭐라고 합니까?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를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어리석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풍랑을 만나게 되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신속히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앞에 나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깨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해보다가 안되니까 주님께 우리는 죽을 지경인데 주님은 뭐하고 있습니까? 지금 잠이 옵니까? 이러면서 주님을 핀잔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잠에서 깨셔서 그 상황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호들갑을 떨던 상황, 풍랑 이는 바다에서 우리는 죽겠노라고 원망과 짜증을 늘어놓고 있는 제자들을 보았습니다. 주님이 가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풍랑을 만나지 않았을텐데, 괜히 주님 따라왔다고 여기서 한 많은 인생을 하직하게 생겼노라고, 물고기 밥이 되겠노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의 모든 원망과 하소연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담담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풍랑을 바라보시며 근엄한 목소리로 바람아, 잠잠하라, 풍랑아 고요하라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그치고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원문성경에 보면 큰 고요가 있었다.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주님을 깨우지 않고 자기들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보려고 할 때는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깨우고, 주님께서 한 말씀하시니 큰 고요함이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모든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바다가 잔잔하게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였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주님은 제자들의 문제는 두려움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다니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님과 함께 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세상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곁에 계신데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 일에 현혹되어서 철저하게 실패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서워 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말은 원문성경에서 데일로스(deilov")라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이 단어가 한 번 더 나옵니다. 두려워 하는 자들은 ...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둘째 사망에 해당하는 죄를 말씀하면서 두려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때에 두려워 하는 것이 데일로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의 반대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세상에 대하여 담대해야 하고, 의연해야 하고 당당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세상이 두려워서 세상이 끄는 데로 이끌려 다니고, 하나님을 원망이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명하시고 잔잔케 되었을 때에 제자들은 심히 두려워 했습니다. 41절에 저희가 심히 두려워 하여 서로 말하되.. 여기에 두려워 하다는 말은 포베오(fobevw)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신적두려움,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공포의 대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믿고 경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세상에 대한 데일로스(deilov")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 주님께 대한 포베오(fobevw)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두려운 세상에서, 뜻밖의 재난으로 말미암은 괴로움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무서운 풍랑과 같이 우리를 위협하여 온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보며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소심해 질 필요가 없습니다. 담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풍랑을 겪으면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없는 자에서 믿음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두려워 하던 자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런 귀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가 않습니다. 만만치가 않습니다. 큰 풍랑과 같이 우리를 엄습하여 옵니다. 우리의 재산을 집어삼키고, 우리의 미래를 송두리째 날려버립니다. 지금까지 꿈꿔왔던 모든 희망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곁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을 고아와 같이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삶으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풍랑이 아무리 크고 무섭게 불어와도 우리 주님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풍랑의 크기만큼 우리의 인생에 더욱 큰 고요함과 평온함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을 모시고 가면서도 우리의 힘을 의지해서도 안됩니다. 주님의 도움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견디기 힘든 순간이라고 원망하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주님은 우리를 칭친하시며, 우리 앞에 있는 모든 풍랑을 꾸짖으시고 잔잔케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바라보므로 담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간구하므로 주님이 허락하시는 승리와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큰 풍랑을 잔잔케 하며, 주님의 큰 평안을 소유하기로 결심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