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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가을에 품어보는 소망

2005년 9월 25일 주일설교


주일낮예배 설교

성경 : 요한복음 15:1~8

제목 : 가을에 품어보는 소망

설교 : 신현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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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 장로회

마포 중 앙 교 회


가을에 품어보는 소망

요한복음 15:1~8

Introduction

며칠 전부터 날씨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완연한 가을의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고 아름답습니다. 바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신선합니다. 목청을 가로질러 허파로 들어가는 신선한 바람은 우리의 영혼까지 새롭게 하며, 기쁘게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대부분 가을의 묘한 정서를 자극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정화된 영혼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찾게 됩니다. 왠지 가을이 되면 사람들의 소원은 소박해지는 듯합니다. 모두가 시인이 되는 듯합니다. 저는 가을에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종종 묵상하곤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가을의 기도(祈禱)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소망과 믿음이 꿈틀대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시인은 가을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으로 더욱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서 소외되더라도 그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큰 위로를 삼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드리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을 품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특히 아름다운 것은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 들녘이 황량하게 비어 있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태풍으로 한해동안 일구었던 과실이 땅에 떨어지고 남은 것이 없게 되었을 때에 눈물을 짓는 한 여인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여인은 이 과수원에 꿈을 심었습니다. 미래를 심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에 불어닥친 바람이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이를 꽉 깨물고 참아보려고 했지만 터져나오는 눈물을 가로막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수확기에 아무것도 거둘 수 없다면 그것은 고통입니다. 괴로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해마다 빈 들녘을 바라보시고 계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곳에 우리 마포중앙교회를 아름다운 포도원으로 세우셨고, 날마다 영의 양식으로 양분을 공급하시며, 극상품 포도열매를 맺기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는 빈 포도원이라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가을에 우리의 삶은 텅빈 가을들녘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풍성한 열매로 채워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김현승 시인의 기도처럼 세상에서는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일 뿐이지만 하나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한 거룩한 소원을 가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극상품 포도열매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가을에 소원해야 하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어떤 것입니까?

1.1.

첫째는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열매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아무리 거룩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의 삶에 긍휼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 예배마저도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58:6절 말씀에 보니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팔복을 강론하시면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 합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시면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얼마나 잔혹한 시대인지 모릅니다. 자기의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지 않습니다.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라면 잔혹한 성폭력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다. 온갖 어려움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외면합니다. 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시면서 탄식하실 것입니다.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긍휼을 잊고, 이기적 욕심의 노예가 되어 산다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외식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강도 만난 이웃을 보면서도 돕기는 커녕 오히려 피하여 숨는 제사장과 레위인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주변에 힘들어 하는 사람,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위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돕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긍휼히 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많이 도울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 요즘 얼마나 가슴 아픈지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저 손 놓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는 우리 교회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하나님, 마음껏 도울 수 있도록 물질도 주시고, 마음도 주시고, 기회도 주십시오. 저는 이 가을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소원을 품어봅니다. 우리 교회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불쌍히 여기며 기꺼이 도울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 우리 주님께 큰 기쁨의 열매를 결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둘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통회하는 심령입니다. 시편 51: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죄를 깨닫고 통회하는 자가 될 때에 기뻐하십니다. 죄악을 가지고서도 뻔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것을 가리켜 교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십니다. 그들은 공격하십니다. 그들을 망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죄악 때문에 가슴을 치며 우는 사람은 기뻐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보이는 길어귀에서 두 사람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경건함을 과시하듯이 멋진 의복을 입고, 경문을 차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펼치고는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세리와 죄인들과 같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나는 십일조도 드리고 헌금도 많이 하며, 또한 이런 저런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 나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거룩했습니다. 화려했습니다. 감탄을 자아낼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왭니까? 그에게는 상한 심령이 없었습니다. 죄악 때문에 괴로워 하며,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 곁에 세리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감히 하늘을 향해 얼굴도 들지 못했습니다.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립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 죄인은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 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울며 고백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를 바라보시며 기뻐하시고, 그를 위로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진정한 부흥의 기운이 쇠퇴해 가고 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그 징후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이곳 저곳에서는 타락함으로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강단에서는 거룩한 말씀이 선포되고 있지만 교회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온갖 더러운 욕망들로 오염이 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교회가 세상을 바라보면서 똑바로 살아라, 깨끗해라, 거룩해라 고 말했는데 이제는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면서 더럽다고 말합니다. 정화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미 교회는 그 부흥의 기운을 상실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미 교회들이 문을 닫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또한 교인들이 대폭감소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주일학교의 실상은 비참하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미 다 학원으로, 세상으로 빼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우리 성도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교회에서 세상으로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장로고시가 있었습니다. 우리 피택장로님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고시장에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목사님을 한분 만났는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예전에 주일학교 전도사 시절에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교회가 발디딜 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의 수가 장년들보다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일학교가 거의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이라고 합니다. 한 2~30명정도 모여 예배하는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현주소입니다. 이것은 바로 교회가 부흥의 기운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과 몇년만 지나면 한국교회는 서구교회들처럼 몰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냥 괜찮다고 지나갈 문제가 아닙니다. 심각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왜 교회의 부흥이 멈추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두 눈에 눈물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회개하는 심령인데 그것이 없어지게 되니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할 수 없는 그런 교회의 길을 걷게 된 것이고, 부흥의 능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눈물을 먹고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눈물로 말미암아 성숙하게 됩니다. 통회하는 심령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 가을엔 한 번 울어봅시다. 하나님 앞에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의 이 안타까운 현주소를 놓고 울어봅시다. 몸부림쳐봅시다. 하늘을 향해 열린 문을 놓고 우리의 가슴을 찢어봅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 통회의 눈물를 흘려봅시다. 저는 이 가을에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통회하며 기도하는 열매가 풍성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금요심야기도회에 와서 함께 울어봅시다. 교회와 가정을 위하여 울어봅시다. 나라와 민족의 죄악을 내어놓고 통곡해 봅시다. 괜한 첫사랑과의 이별을 기억하면서 센티멘탈(sentimental)해지고,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기고 우리는 헤어졌지요. 하면서 10월의 마지막 밤이나 부르고 있지 마시고 우리의 가슴을 내려놓은 통회하는 심령이 되어봅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기쁨의 열매를 얻으시고, 다시금 우리의 눈물을 닦으시고, 기쁨의 큰 웃음을 웃을 수 있게 해 주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1.3.

세번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는 정직입니다. 역대상 29:17절 말씀에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라고 시편기자는 고백하고 있고, 잠언 15:8절에서는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는 바로 정직입니다. 정직한 심령을 극상품 포도나무의 열매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정직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하면 정직한 사람, 정직한 사람 그러면 그리스도인..” 이렇게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신용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무엇이든지 믿었습니다.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사기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거짓되게 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정직하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바르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보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생각으로 삶에 임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사장이 보고 있으면 열심히 하고 그렇지 않으면 농땡이 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 믿는 사람은 가장 약삭빠른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절대로 손해 안보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자기 잇속을 철저하게 챙기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중에는 이렇게 해서라도 돈 많이 벌고, 성공하면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은 정직입니다. 정직 때문에 망한다면 그것을 하나님은 더 원하십니다. 성도는 부자가 되어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직한 가난에 대하여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정직한 가난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 큰 부유함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정직한 가난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직한 가난은 부끄러운 것도, 창피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나 심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하더라도 정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을 많이 벌고, 세상에서 성공하게 되더라도 불의한 방법으로 그것을 이룩하지 마시고 정직하게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나는 정직한 사람의 성공을 믿는다는 책을 읽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직하게 살았던 현시대의 수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시련과 고난을 지나 큰 축복을 얻는 간증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가을에 하나님께 소망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정직하기를 바랍니다. 정직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직한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 않게 하시고, 정직하게 수고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를 얻을 수 있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소원이 여러분들의 소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1.4.

네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갖고 계신 소원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4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사람을 원하십니다. 사람이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을 얼마나 사모하셨으면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이 땅에 보내시기까지 이 일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여러가지 일들 중에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바로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바울은 잠시도 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서 웃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너무나 기뻐하시며 좋아하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잠시도 복음 증거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이 일을 위해서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고 있고 물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독생자를 내어놓으시기까지 투자하시고, 그 결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사람이 되었는데, 천국의 시민이 되었는데 우리는 얼마나 주님의 복음을 자랑하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모든 사람이 누리게 하는 일을 위해서 집중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존전에서 숨김없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게으르고 나태한 종입니다. 주님께 드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 받은 달란트는 있는데 그것은 땅에 감추어두고, 우리가 먹고 살고, 우리의 생애를 즐기느라 바빠서 한 순간도 주님께서 주신 그 달란트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받은 달란트 땅 속에 고이 숨겨 두었다가 이제 꺼내왔습니다. 하면서 우리의 불충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서 기대하는 최고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 길로 가며, 망하는 넓은 길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형제들, 우리의 가족들, 우리의 이웃들을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주님께 데리고 나아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지옥길을 버리고 천국길을 걷게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가을에 소망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우리 성도들이 이 가을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귀한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그들을 섬기며, 구원할 수 있게 하옵소서. 이 가을엔 전도의 결실이 풍성히 맺히기를 바랍니다. 수확기를 앞에 둔 농부를 쉴 새가 없습니다. 힘써 일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가을에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알곡을 수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게으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힘을 집중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에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열매로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여러분 모두가 주님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 가을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열매를 맺어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따라합시다. 열매를 맺으면 살고, 못 맺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맺어도 그만 안 맺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사를 결판짓는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죽어도 꼭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신자라고 하면 죽어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처럼 죽어도 풍성한 열매를 향한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5:2)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제해 버리시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찍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가차없이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큰 풍랑이 찾아오게 되고, 인생의 어두운 밤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찾아오는 이 인생의 밤은 어떤 수고로도 헤쳐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그런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일을 위해서는 집중하지 못합니다.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 성공만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이 땅에 속한 것을 얻기 위해서 집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은 열매는 들포도입니다. 거친 돌배입니다. 개복숭아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내어 놓습니다. 열매는 없이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의 꼴로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제하여 버리시는 것입니다. 즉시 뿌리까지 말라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고, 저 무서운 심판의 불 속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긍휼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통회하는 심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정직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귀하디 귀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망하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으면 정반대입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2절 하반절에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에게는 깨끗케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암탉이 그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과 같이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주는 강한 산성이 되셔서 어떤 원수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큰 물과 같이 뛰놀며 집어삼키려고 해도 하나님은 그의 우편 그늘이 되셔서 낮의 해도, 밤의 달도 상치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가장 큰 질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병에 걸린 환자가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마음을 잃는 것처럼 오늘날의 성도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 기대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세상 것에 취해 살아갑니다. 그것이 다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는 축복은 세상이 주는 성공과 그 달콤함에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일억씩을 그냥 나눠준다고 하면 죽어도 가서 받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는 이런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갑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진력하면, 그리고 작은 열매라도 맺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더 큰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큰 간증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큰 간증을 가지고 더 큰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가을에 논과 밭에 오곡백과가 맺혀가듯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풍성한 열매들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다함이 없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열매를 맺는 일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풍성히 맺히려면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 때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주님을 떠나서는, 주님과 상관이 없이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물관과 채관을 통해서 영적 자양분이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열매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태아가 그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되어 영양분을 공급받듯이 우리는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의 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주님 없이 혼자 해보겠노라고 태아가 어머니의 탯줄을 스스로 끊어버리듯이 주님을 박차고 나가게 되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도무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말씀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하라고 하신 것은 죽어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죽어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말씀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절대로 손을 대지 않습니다. 주님의 명령이라고 하면 죽어도 그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이런 신앙인들이 드뭅니다. 적당히 신앙생활합니다. 적당히 타협합니다. 적절한 변명으로 핑계하고 세속화되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도무지 죄악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 산다는 것은 말씀이 명하시면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금하시면 죽어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 말씀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말씀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지 말기를 바랍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곧이 곧대로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게 되면 우리는 분명히 말씀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와 함께 하나님이 더하여 주시는 크신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7절 말씀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원이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가을에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이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안에 거하므로,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극상품의 포도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열매맺는 가지에게 더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가득히 소유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 소원이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 전체의 소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푸른 하늘과 신선한 가을 바람 그리고 길가의 코스모스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킵니다. 가을들녘에 펼쳐진 영글어 가는 곡식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케 합니다. 가을을 맞는 대개의 사람들은 그 풍요함 속에 넉넉하며, 욕심을 버린 소박한 소원들을 갖곤 합니다. 순수한 사랑의 옛추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가을에 우리 성도들에겐 거룩하고 아름다운 소원이 있기를 바랍니다. 풍요로운 가을의 들녘처럼 하나님 앞에 가득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 세상과의 고독을 감수하고, 더욱 우리 주님과의 첫사랑에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과 그분의 말씀에 잇대어 보다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금년 가을에는 아무 열매 없는 빈들이 되지 안됩니다. 주님 앞에서 가장 귀중한 긍휼의 열매, 통회하는 눈물의 열매, 정직의 열매, 영혼구원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가득하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더욱 깨끗케 하시며, 우리의 모든 기도에 넘치게 응답하시는 이 귀한 축복을 소유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