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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일군이여, 갈지어다 (눅 10:1~6)

2005. 10. 02. 주일낮예배 설교


2005. 10. 02 주일설교

본문 : 누가복음 10:1~6

제목 : 일군이여, 갈지어다

설교 : 신 현 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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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 장로회

마 포 중 앙 교 회


일군이여, 갈지어다

누가복음 10:1~6

Introduction

샬롬! 좌우 앞뒤에 계신 분들 함께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손도 좀 잡아주시고, 환한 미소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야 합니다. 열매없는 빈들은 참으로 황량합니다. 가련합니다. 가슴 아픈 탄식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못지 않게 큰 괴로움이 있습니다. 가을 들녘에 가득한 곡식이 있고, 과실이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그것을 수확할 일군이 없다면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가을들판에는 일군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교회에도 일군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알곡을 곡간에 들일 일군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일군들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일군이 없어서 목사가 고민하고, 우리 하나님께서 고민하는 일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새벽에 이런 기도를 거의 빠뜨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일군이 풍족할 수 있게 하옵소서. 일할 사람이 가득하고, 또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가 아름답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꼭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일군이 풍족하고, 우리의 능력있는 일군들로 하여금, 우리 교회는 물론이고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누가복음 9장 말미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그 때에 예수님은 그의 말을 들으시고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따라 합시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면 신속히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것에 얽매여서 그것 때문에 주님의 부르심을 망각하고 있다면 심각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처럼 강권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절 말씀에 보니 갈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껏 부르신 주님께 본문 10장에서는 제자들에게 가라 말씀하십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누가복음 10:3)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신 주님께서, 그토록 강력하게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세상으로 갈찌어다 말씀하십니다. 세상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이 더럽고 추하고, 온갖 위력으로 괴롭히며, 공격하게 된다고 해도 도피하지 말고 그곳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품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품안에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갈찌어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으로 가야만 합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주님께서는 동일하게 우리를 부르시고, 그의 제자 삼으시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갈지어다.” 마태복음 28:19~20절 말씀에 보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머물러 있는 교회이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심각하게 부르시고, 주님의 품안에만 있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이리가 드글거리는 위험천만한 곳이라고 그곳으로 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십자가 아래 머물러 있지만 말고, 성경공부하는 자리, 예배하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세상으로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세상으로 가야 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평안할텐데 왜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으로 가야 합니까?

1.1.

첫째는 주님께서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심각하게 불러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70명을 따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가시려고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누가복음 10:1)

여기에 보니 달리 70인을 세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수없이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 모두에게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히 몇70명을 한정하여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시려고 하는 곳으로 이들을 가라고 보내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중대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부름을 받은 것은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가실 곳으로 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며, 주님의 나라를 평탄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주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일군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영광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입니까? 어떤 존재입니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고 거짓된 것이 인간의 마음” (예레미야 17:6)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로마서 3: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와 본질은 절대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소경과 같이 중풍병자와 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인들, 이런 무능력한 사람들을 불러서 세상의 일을 시키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 우리 주님의 거룩한 그 일, 주님께서 가셔서 하시려고 했던 그 일을 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영광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디모데전서 1:12) 라고 합니다. 또한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10) 그는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참여케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미천한 존재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대신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같은 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시려고 하는 그 곳으로 가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겐 아무런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천하디 천한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무가치하며 무능력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특별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일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일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사명을 받은 우리를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두려워도, 우리를 향해서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어도 우리는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존재였는데 주님께서 충성 되이 여기시고, 우리를 일군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일군된 자격이 없음에도 주님은 우리를 일군으로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1.2.

둘째로 우리가 세상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추수할 것이 너무나 많고 일군은 심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누가복음 10:2~3)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탄식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라고 하십니다. 추수해야 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적은 것은 보통 걱정이 아닙니다. 요즘 수확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마을에서는 많은 과일을 경작했는데 그것을 거둘 일군이 없어서 안달이라고 합니다. 인건비는 너무 비싸고 또 경작해 둔 과일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갑갑한 일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우리의 농촌을 위해서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을 수확기에 우리 교회가 봉사단원을 편성해서 그런 마을에 가서 봉사도 하고, 필요한 농산물을 직거래도 해서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확기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거리는 많은데 홀로 발을 동동 굴려야 한다는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세대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 구원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를 믿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주변을 자주 다녀봅니다. 그러면 교패가 붙은 집들도 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교회와 상관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알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멀리 있는 아프리카나 캄보디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현동에만 해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 교회 옆에 있는 삼성 아파트.. 가구수가 엄청납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까? 저는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불과 몇 퍼센트 일 뿐입니다. 그곳에서 주일날 교회에 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보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무엇입니까? 주님 보실 때에 수확해서 거두어야 하는 곡식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족을 보시기 바랍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보시면서 탄식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너무나 많은데 일군으로 헌신하는 사람은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밭에 추수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모든 영혼들을 거두어 들이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며 천국창고를 가득히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면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수할 것이 많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눈에는 너무나 잘 보이는데 혹시 우리는 추수할 곡식을 외면하고 간과하고 지나쳐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일군이 되어 수확하는 자로, 거두는 자로 나서야 하는데, 뒷짐만 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주님의 탄식을 기억하시면서 힘써 수확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힘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기쁨이 되며,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는 마땅히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작정 가기만 하면 됩니까?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세상은 이리와 같이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걱정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누가복음 10:3) 그렇습니다. 세상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우리를 삼키려는 이리와 같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는 사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 무작정 나가기만 하면 됩니까? 그러면 다 잡혀 먹히고 맙니다. 철저하게 무장하고 나가야 합니다.

2.1.

첫째로 기도로 무장하고 가야 합니다. 본문 2절 말씀에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일군을 보내 주소서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일군이 부족하니 일군을 보충해 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일군으로 나아가는 제자들이 일군으로서 능력 있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기도가 없이는 세상에 나가서 영락없이 마귀의 밥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로 무장하게 되면 귀신이 물러갑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기도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상기해봅시다.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기도 없이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세상에 나가면 백전 백패입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세상이 우리 녹록한 곳이 아닙니다. 세상은 강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막강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보면 그저 무시무시한 이리 앞에 어린 양과 같습니다. 어린양이 이리를 이긴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불가능한 가운데서 어린양이 이리를 잡아먹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군대를 보내시고, 우리로 하여금 승리자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권능 받고 온천하와 땅끝까지 증인이 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으로 갈 때에 그냥 가면 안됩니다. 그러면 죽습니다. 기도하고 가야 합니다. 기도하므로 가야 합니다. 주님의 손을 잡고 가야 합니다.

2.2.

둘째로 아무 것도 가지지 말고 가야 합니다. 세상에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능력 달라고, 성령 달라고 기도하면서 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누가복음 10:4)

여기에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는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CCC에서 대학생들이 여름철에 거지전도라는 것을 합니다. 그들은 최소한의 돈만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전도여행을 합니다. 먹을 것을 사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전도받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면 감사함으로 먹고, 그렇지 않으면 금식하면서 전도하곤 한답니다. 이런 전도를 하는 것은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의 본래적인 의미는 세상의 물질이나 그 힘을 의지하지 말고, 또 권세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의 말씀만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으로 가는 성도들의 참된 모습입니다. 간혹 우리가 전도하게 될 때에 돈으로 물질로, 그것에 의지해서 전도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으로도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그런 방편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인 방법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물질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전략적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면 낭패 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케팅이지 전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업이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일군으로 세상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합니까? 세상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를 의지해야 합니다. 이리 떼 가운데로 어린양을 보내시면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시고, 우리를 염려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선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만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피곤하고 힘들어 쓰러질 때, 오직 우리를 도우실 이는 예수 밖에 없습니다. 주 예수 밖에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의지하므로 세상에 가야 합니다. 주님의 손 붙잡고 세상에 가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우리 앞에 쓰러질 것입니다. 문제가 사리질 것입니다. 염려가 끝날 것입니다. 우리를 억압하던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물러가게 되고,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백 길로 도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으로 나가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가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6) 명하고 기적과 승리를 이룰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3.

세째는 가서 평안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샬롬을 이루는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평안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누가복음 10:5)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 평안이 있기를 축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안이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로마가 번성하던 시대를 팍스 로마나(Pax Romana)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로마의 평화라는 뜻입니다. 로마의 힘과 문화로 말미암아 온 땅에 평화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화를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팍스 크리스티나(Pax Christina)가 오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시고 다스리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므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축복이 임하여 오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평화를 따라서는 안됩니다. 팍스 맘모니아 (Pax Mammonia) 돈으로 말미암은 평화를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이 가져다 주는 쾌락과 만족을 갈구하며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이런 것을 전파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안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화가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이 평화가 어떻게 온 것입니다.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한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온갖 고난과 멸시와 천대를 다 당하시고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평안입니다. 전에는 죄와 사망의 종이 되어 도무지 평화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임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시므로 얻게 된 평화입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주어진 평화입니다. 세상이 주는 잠시의 쾌락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그런 평화가 아닙니다.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질적인 차이가 있는 평안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그렇습니다. 이 평안은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무지 세상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돈으로도, 지식으로도, 힘으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과 영원히 잇대어 있는 그런 평화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가서 이 예수의 평안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족에게, 친지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안의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로 가야 합니다. 가서 돈 자랑하지 마세요. 가서 힘 자랑하지 마세요. 가서 예수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축복과 감격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것을 전하게 되면 그들이 예수를 믿을 것입니다.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전달될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의 가정에 팍스 크리스티나( Pax Christina)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이런 귀한 축복이 우리의 삶에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예수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마음, 죄악의 마음,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 합당치 않는 것이 됩니다. 오늘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은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떼어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예배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심장의 박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문턱을 넘어 세상으로 나가기만 하면 즉시 주님의 심장은 떼어놓고 세상 것으로 바꿔 달고 갑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심장을 달고 세상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은 세상을 향해 탄식하고 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바라보시면서 일군이 없다고 하십니다. 이 아현동에,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추수할 것이 많은데 그것을 수확하여 천국창고에 들여놓을 일군이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몇 안 되는 일군마저도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일군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가 주님의 일꾼인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주님의 일꾼이 되기로 힘쓰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세상으로 가서 거두어야 하는 많은 알곡들을 거둬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All Coming Holy Festival에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여 천국의 창고를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내시는 주님의 명령을 받아 게으르지 말고, 기도하므로 능력을 구하므로, 다른 것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고, 복음을 전하므로 아름다운 영적 결실들을 풍족히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곡간을 가득히 채울 수 있는 저와 여러분, 온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