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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주님과 연합하라


2005.10.10 주일설교

성경 : 로마서 6:3~13

제목 : 주님과 연합하라

설교 : 신 현 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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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 장로회

마 포 중 앙 교 회


주님과 연합하라

로마서 6:3~13

Introduction

오늘은 세례 학습식이 있는 날입니다. 본문에서 세례를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전에는 세상과 짝꿍이 되어 세상의 일들을 좋아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끊고 예수 그리스도와 짝꿍이 되어서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전에는 세상에 좋아하던 것들과 한 배를 타고 갔었는데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한 배를 타고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한 배를 타고 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풍랑이 일어도 근심이 없습니다. 염려가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세례를 가리켜 하나님께로 은혜를 받는 통로라고 합니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과 한 배를 탔으니 은혜를 안 받을 수가 있습니까? 은혜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세례를 안 받으신 분들은 모두 세례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간혹 교우들 중에 보증을 잘못 섰다가 곤란한 지경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친구나 가족간의 정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보증을 서 주었고, 또 믿을만하기에 보증을 섰는데 그것 때문에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절약해 가면 마련한 집도 잃게 되고, 모든 재산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여러분 보증 서는 것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보증 잘못 섰다가 폭삭 망하는 예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정 때문에, 처지가 너무나 딱해서 보증을 섭니다. 그리고 함께 망하는 길을 걸어갑니다.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사람을 믿으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서로를 향해 신뢰가 있는 세상, 생각만 해도 희망이 벅차 오릅니다. 그러나 인생이 그렇게 멋진 존재입니까? 인생이 그렇게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들입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세상에 못 믿을 것이 인생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인생을 풀과 같다고 합니다. 그 영광과 그 능력과 권세가 풀의 꽃과 같을 뿐이라고 합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일 뿐이라고 합니다. 수에 칠 가치도 없는 헛되고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돈을 믿으며 살아보지만 돈도 우리의 영원한 보장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을 믿으며 살아보지만 사랑이 떠나갑니다. 저만치 멀리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생들에게 보증을 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목사에게도 보증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장로님들에게도 보증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한 교회에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라고 해도 보증을 서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튼 보증을 선다는 것은 한 배를 타는 것입니다. 그가 망하면 나도 망하고, 그가 흥하면 나도 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믿고, 인생을 믿고, 돈을 믿고 보증섰다가 낭패는 보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 보증을 서므로 예수님과 한 배를 타게 되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는 것 같아도 다시금 일어납니다. 패하는 것같아도 기어코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생을 사는 동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고, 예수님께 보증 서시고, 항상 승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본문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4)

여기에 보니 예수를 믿어 세례를 받으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으므로 주님과 연합하게 되면 예수님이 망하신 곳에서 함께 망하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과 연합했다면 예수님이 망하신 곳에서 함께 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망하신 곳이 어디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그곳에서 망하게 될 것이고, 또 그곳에서는 반드시 망해야 할테인데 예수님이 망하시고, 죽으신 곳은 도대체 어디입니까? 10절 말씀에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으셨습니다. 죄의 소욕에 대하여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끊임없는 고통과 절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극한의 괴로움으로 몸부림을 쳐야만 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인의 자리입니다. 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머물러 있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으므로 주님과 연합하여 예수님께 보증을 서고, 예수님의 보증을 받는 우리들은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죄를 향한 심판에서 죽은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멍에가 우리를 얽어매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하며,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례에 이와같은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주님이 주시는 해방감과 평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이 자유를 누리고 살지 못합니다. 세례는 받았으되 죄에 대하여 죽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형식적인 연합만을 하고 삽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죄에서 자유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에서 자유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죽고 망한 곳에서 우리도 죽고 망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는 놀라운 축복의 선언입니다. 동시에 이제는 죄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악과 그 쾌락을 향하는 마음을 철저하게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를 죽인 것처럼 우리도 죄를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죄를 위해서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건 싸움을 죄와 더불어 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과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기어코 죄를 죽여야 합니다. 그것을 죽이지 못하면 죄가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아 종을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망이 우리 가운데서 왕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초대 교회사에 보면 능력 있고 유명한 부흥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의 설교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으며, 이 민족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은 축복을 가져다 주는데 주효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김익두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예수 믿기 전에 황해도 안악골에서 유명한 불량배요 깡패였습니다. 어느 하루도 술 안 마시는 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과 안 싸우는 날이 없었습니다. 또 그 일대에서 그에게 괴로움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귀신은 뭐하고 있나 저런 거 안 잡아가고.. 그가 얼마나 못된 사람이었는지 시장에 가는 사람들은 시장 가는 길목에 있는 성황당에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오늘은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 주시기를 비나이다. 하면서 싹싹 빌었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깡패 김익두가 안악시장을 거닐다가 한 어린아이가 전해주는 전도지를 한 장 받게 되었습니다. 안악교회에서 미국의 선교사 스왈런 목사님이 사경회를 인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지를 보던 김익두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곳에 가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면 깽판을 놓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는 남몰래 슬그머니 가서 제일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날 따라 스왈런 선교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은 영생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으로 그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과, 사람 에 따라서는 생명의 부활도 있지만 심판의 부활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 김익두는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탐독하면서 지난 날의 죄악을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게 된 김익두는 마을 사람들에게 부고장을 보냈습니다. "김익두는 O월 O일 O시에 죽어서 장사를 지냅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고장을 받아 든 마을 사람은 대부분 기뻐했습니다. 이제 살판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익두가 세례 받고 교회에서 오는데, 그 때까지 김익두가 죽은 줄만 알았던 동네 사람들이 김익두를 본 것이었습니다. 그가 죽기는커녕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다녀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물어 보았다. "김익두씨 당신이 세상을 떠났다고 부고가 왔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묻게 될 때에 그는 "예, 옛날 불량배요 깡패였던 김익두는 오늘 장사 지내고 지금의 김익두는 옛날 김익두가 아닙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분은 조국 교회의 부흥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한 능력 있는 부흥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서 깡패 김익두가 죽었습니다. 죄악된 김익두가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자의 본분입니다. 김익두 목사님 뿐 아닙니다. 세계적인 성자로 불리우는 어거스틴 역시 젊은 날에는 방탕아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를 믿고 회개하여 변화받은 다음부터는 그 전에 짓던 죄를 생각하면서 오랜 세월을 두고 참회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길을 걷다가 옛날에 같이 지내던 창녀를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어거스틴을 보자 따라오면서 "여보세요! 당신이 어거스틴이 아닙니까? 왜 요사이는 눌러 오지 않습니까?" 하며 애교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어거스틴은 뒤도 안 돌아보고 "네가 전에 부르던 그 어거스틴은 이미 죽었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옛 사람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있어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의 옛 사람, 우리의 죄된 소욕, 그리고 세상과 그 향락을 따라가는 본성을 죽여야 합니다. 완전히 죽여야 합니다. 다시 회생될 수 없을 만큼 죄를 죽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옛 사람이 살아있어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죽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깡패 김익두가 자기의 옛 사람은 죽었노라고 부고장을 썼듯이, 어거스틴이 창녀에게 네가 전에 부르던 그 어거스틴으 이미 죽었다고 선언하듯이 우리 안에 있는 죄된 욕망들을 철저하게 십자가에 못박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에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를 누리고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했으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증을 섰으면 예수와 함께 죄에 대하여 망하는 것으로만 끝나면 안됩니다. 죄를 죽이는 것에만 멈추면 안됩니다. 본문 4절 중간에 보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4) 예수 안에서 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연합하여 새 생명을 얻게 되고, 새 생명 가운데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생명으로 살아 운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 생명의 가치로 살아 역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망한 것에 망해야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 흥하신 것에서 반드시 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공하신 것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능력 있게 일하신 곳에서 능력있게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흥한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흥하신 곳이 어디입니까? 본문 10절 중간 이하에 보니 “그가 살아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심이니 이와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로마서 6:10b~11) 예수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바로 이제부터는 삶이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곳에 살아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죄 짓는 데는 죽은 시체와 같고 전혀 무능력하지만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살아서 펄펄 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비록 돈이 되지 않아도 힘이 나고 기쁨이 넘쳐서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고, 능력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노래방에 가면 물 만난 것처럼 신나게 노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자리만 가면 큰소리 치면서 제자리인양 살아 역사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무능합니다.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서 물질을 쓰고 시간을 쓰고, 지식을 쓰는 데는 열심입니다.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쓰고 물질을 쓰고,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는 데는 죽어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을 대하여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교회에 오면 물 만난 것처럼 팔팔하게 움직이며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나가면 젬병이요, 아무것도 못하는 고문관인데 교회에만 오면 유능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서는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능력 있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표징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므로 예수님께 보증을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세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 보증을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망하면 나도 망하고, 예수님 흥하면 나도 흥하기로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망하는 곳에서 흥해서는 안됩니다. 죄짓는 곳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망하십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가 물 만난 것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망하는 곳에서 유능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죄짓는 일에 선수가 되고, 하나님을 떠나는 일에 마스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죄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죽어야 합니다. 난 어제의 어거스틴이 아니라고 하면서 단호하게 죄와의 결별을 선언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흥하시는 곳에서 반드시 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결코 무능하지 않습니다. 결코 게으르지도 않습니다. 아낌없이 헌신합니다. 수고합니다. 희생합니다. 눈빛이 달라집니다. 초롱초롱해집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러해야 합니다. 교회일을 위해서라면 의욕이 불타올라야 합니다. 하나님 이야기하면 눈빛이 달라져야 합니다. 졸다가도 눈이 번쩍 뜨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우리 자신을 기꺼이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본문 12~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2~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를 통하여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니 말로만 연합자가 아니요, 삶으로 주님과 연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를 죽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 자신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의의 병기로 우리 자신을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의의 병기로 우리와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약속하신 생명과 구원과 영생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