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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사랑한다면 축복하라

사랑한다면 축복하라

누가복음 24:50~53

Introduction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생명입니다. 돈과 명예와 건강이 아무리 중요하고 좋다고 해도,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목숨입니다. 목숨은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할 것 없이 모두가 중요합니다. 그 가치는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타락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 목숨은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여기지만, 남의 목숨은 파리목숨으로 생각합니다. 전혀 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푼 안 되는 물질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잠시의 쾌락을 위해 한 사람의 목숨을 유린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런 자들은 지옥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계18:13, 롬1:32, 계21:8) 지옥이 다른 곳이 지옥이 아닙니다. 사람의 목숨이 귀중히 여기지 않는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생명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라도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곳에 기쁨이 있게 됩니다. 행복이 머물게 됩니다.

목숨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만금이 있어도 목숨을 빼앗기면 모두 다 물거품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목숨이 있을 때 모든 것이 의미가 있지만, 목숨을 잃게 되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의미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성경은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아무런 목적 없이 이 땅에 보내시고, 생명을 누리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생명을 통해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존재하는 목적은 바로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생명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명을 다한 생명을 칭찬하시며, 지극히 존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대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많은 성경학자들은 마태복음 28:18~20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시는 복음전파의 사명이 최고의 사명이며, 지상명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저도 이런 설명에 대하여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은 성도들의 사명임에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이전에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13절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류 최대의 사명이며, 가장 근본적인 사명입니다. 이 명령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명도 의미가 없습니다. 복음전파도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사랑이 없이 행한다면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맙니다. 가장 근본적인 사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생명 다해 감당해야 하는 최고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것이 아닙니다. 죽어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우리의 몸과 영혼을 불살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어도 사랑합시다.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사랑합시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를 향해 뜨겁게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생명 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 교회와 성도들의 가정마다 사랑으로 인한 행복과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우리 인생의 최대의 사명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과제입니다. 사랑하는 방식을 잘 알지 못하면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한다면 축복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사랑한다면 축복하라.” 그렇습니다. 사랑한다면 반드시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함이 없이는 사랑을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친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농담을 해도 되는 줄로 압니다. 물론 친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친한 관계, 좋은 관계가 계속 지속되려고 하면 여기에는 반드시 예절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더욱 존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방식을 모르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관계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 그 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축복하는 것입니다. 축복함이 넘쳐나게 되면 사랑은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축복이었습니다. 5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누가복음 24:50)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이 땅에 남겨 두시고 하늘에 오르실 때에 다른 것보다 축복의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셨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당부나 다른 사명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바로 축복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저주와 원망의 말을 일삼고 있다면 사랑하는 방식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실패자가 되고 말뿐입니다. 사랑한다면 반드시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축복이었듯이, 생명이 다하기 까지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이 되어집니다.

축복이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서 율로게오(eujlogevw)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원래 헬라어에서 이 말은 좋게 말하다. 칭찬하다, 격려하다라는 뜻 외에는 아무런 영적 의미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경(LLX)에서 성경적 축복의 의미가 있는 히브리어 바라크(&r'B;)라는 말을 율로게오로 번역하면서부터 성경적 의미를 함축한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라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육간에 풍성케 되는 복을 선포하고, 주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단순히 건강하고, 돈 많고, 자손이 번창하게 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신 은총 가운데서 영육간에 잘되는 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사람들의 단순한 격려나 칭찬이 아닙니다. 축복은 철저하게 하나님에게서 기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기인하여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자 하는 뜻을 선포하는 것이며, 그 복을 받도록 하는 영적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축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축복의 선언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율로게오의 축복, 바라크의 축복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서, 제자들과 함께 있는 마지막 시간에 다른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사랑을 다른 것으로 표현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돈을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권세와 능력을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실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축복하셨고, 하늘에 오르시면서 그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신 것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과 가족들을 향해서 항상 축복을 선포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제가 읽고 있는 책 중에 하루에 한 번씩 자녀를 축복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작은 개인 소유 비행장에 한 아버지가 자기의 십대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자기의 친한 친구이자 스턴드맨인 조종사를 만났습니다.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친구와 더불어 2인승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비행기는 이륙을 했고, 노련한 조종사는 수년간 했던 곡예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급강하 한 후에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오를 때였습니다. 비행기가 갑자가 속력을 잃었습니다.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비행기는 추락하여 활주로 근처에서 폭발했습니다.

비행기의 잔해가 부서져 있는 곳에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비행기 안에 갇힌 아버지를 급히 끌어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살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축복한다.”는 말을 남기고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1]

저는 이 글을 책에서 읽으면서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축복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면 축복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주와 원망의 말을 가지고서는 결코 사랑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비록 비행기 사고로 죽어가면서도 축복의 말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항상 축복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며,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 교회의 여러 어르신들은 믿음의 후손들을 향해서 힘써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들마다 행복한 웃음 꽃이 피어나고, 우리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량없는 축복으로 풍성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는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해야 합니까? 그것은 축복에 위대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축복하면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는 책에 “마시”라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 아이는 밝은 성경의 아이였습니다. 항상 웃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병원에 찾아가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진단결과 암세포가 장과 내분비선 계통에 퍼져있었고, 췌장은 종양 때문에 정상보다 거의 3배나 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췌장암은 젊은 사람에게 거의 발견되지 않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단 발병하면 매우 치명적이어서 거의 92%가 사망한다고 합니다. 의사는 마시와 가족에게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최선의 대한은 암의 진행율을 낮추기 위한 화학치료 뿐이었습니다. 마시의 아버지는 이런 딸을 보면서 축복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여호와는 마시에게 복을 주시고, 마시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마시에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마시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약 7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것도 기적입니다. 그런데 마시의 폐와 장기에 있던 모든 암 반점이 사라졌습니다. 간에 있던 반점 두개는 치료를 시작할 때보다 훨씬 작아졌습니다. 마시의 췌장은 이제 정상 크기로 돌아왔습니다. 담당의사도 이런 결과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2]

무엇이 이런 기적을 만들었습니까? 이미 의사는 포기했었던 일입니다. 오직 아버지와 가족들, 친지들의 축복만이 마시와 함께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축복은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죽을 병에서 생명을 얻게 합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들에게 마음껏 축복해야 합니다. 힘껏 축복해야 합니다. 축복함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니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 가시면서 제자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1.

첫째로는 축복은 큰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본문 5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누가복음 24:52)

주님의 축복이 있었을 때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는 큰 기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지금 주님과의 이별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니 사랑하던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고, 이제 그들은 고난의 현장에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 했고, 로마의 군병들을 무서워 했습니다. 그래서 숨어지내야만 했던 사람들입니다. 불안과 초조함 속에 덜덜 떨었던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축복하시게 되자 그들에게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아니 기쁨이 생겨났습니다. 적당히 기쁜 그런 기쁨이 아닙니다. 큰 기쁨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이것은 축복의 효과입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은 제자들에게 큰 기쁨이 생겨났다면 오늘 우리가 축복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기쁨이 생겨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축복하게 되면 그 축복은 그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그 축복으로 인하여 공동체가 크게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 대신에 원망과 저주의 말이 난무하게 되면 기쁨이 있던 곳에도 슬픔이 찾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2.

둘째는 축복은 성숙한 신앙인을 만들어 줍니다. 본문 5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누가복음 24:53)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이 늘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다고 말씀하실 때에 축복이라는 말과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율로게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구걸하며, 예수님을 떠나 도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서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갖지 못하고, 비굴하게 숨어서 지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늘 성전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뿐만 아니라 보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자기의 영광을 구하던 자들이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축복의 위력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성숙한 신앙의 인격자가 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이 되어지는 것은 바로 축복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말합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잠언27:21) 사람은 칭찬과 축복으로 성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려면 반드시 축복해야 합니다.

심방을 하다보면 자녀들의 신앙문제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교회에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축복하면 됩니다. 축복하면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저녁으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을 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능력있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책망하는 것도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축복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축복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 교회의 기둥과 같이 귀중한 인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우리는 주님의 명하심을 받아 사랑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을 기꺼이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기까지 사명을 다하는 충성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돈 많이 벌어라. 자녀들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만들어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일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기꺼이 생명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힘써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면 안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사랑한다면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축복하는 것이 참된 사랑의 실천 방법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가르침이 없습니다. 기껏 격려하라는 말은 있습니다. 격려와 축복은 천지차이입니다. 왜냐하면 축복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요, 격려는 내 이름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름으로 하는 격려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축복은 얼마나 능력이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온전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으로 축복하는 사람이 되면, 우리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슬픔이 가득한 세상에 기쁨이 찾아오게 됩니다. 불안과 초조함이 있는 곳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큰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가져다 주지 못하는 행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이 물러가며, 가난이 물러가고,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근심과 문제들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축복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받고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합니까? 믿음이 성숙하게 합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축복하는 것입니다. 때를 가리지 않고, 기회를 얻는대로 힘써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변합니다. 인격이 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사람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사랑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힘써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창조물들을 만드시고, 기뻐하시며 축복하신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며 간절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축복하신 것처럼,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힘써 축복하시므로 온 교회와 우리의 모든 가정이 크게 기뻐하며, 믿음으로 성숙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누리며 행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랄프 가복,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 두란노, pp.7-8

[2] Ibid. pp. 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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