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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사랑한다면 진실하라

사랑한다면 진실하라

스가랴 8:14~17

Introduction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4개월이 지났으면 조금씩 기억이 희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사랑으로 하나됩시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번 한해동안에 하나님 앞에서 이루려고 하는 거룩한 목표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고, 그 사랑 때문에 온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4개월을 돌이켜 보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사랑이 풍성해 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 교회에 얼마나 큰 사랑이 있는지,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사랑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곤 합니다.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교회 안에 사랑의 열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 행복감 때문에 온 몸에 전율이 일 정도입니다. 이렇게 계속 말하는데도 아멘 하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더 계속해야 합니까? (하하) 혹시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우리 교회가 행복하고, 기쁘다는데 별로 반응이 없어서요... (하하)

장로교회는 다 좋은데 이렇게 반응이 늦는 것이 약점입니다. 아마도 순복음 교회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으면 난리 났을 것입니다. 여기 저기서 아멘 아멘 하고 심지어는 박수도 치고 그랬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것은 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아무튼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것을 보면서 자주 행복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이처럼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면 적지않은 걱정이 또 생깁니다. 그것은 누가 와서 이 행복을 빼앗아가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사랑으로 행복하게 되면 그것을 꼴보기 싫어 하는 못된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사탄은 교회와 성도들이 사랑으로 하나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로서 눈을 크게 뜨고 사탄이 어떤 경로로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 있는 사랑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가를 예의주시해서 살핍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사탄의 권세가 조금도 역사하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파괴는 교회의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처한 모든 곳에 사랑이 가득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도록 사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난 것처럼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랑의 아름다운 향기가 가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크게는 우리의 이웃과 민족이 행복하게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이 파괴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랑이 진실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과 진실을 같은 자리에 두었습니다. 창세기 24:49절에서 인자와 진실로 대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4:6절에서도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인자와 진실을 함께 엮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랑과 진실은 붙어다닌다는 것입니다. 뗄래야 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진실을 떼어내면 사랑이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진실에서 사랑을 떼어내면 그것 역시 참된 진실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파괴되지 않기 위해서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파숫꾼이 경계하는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사랑이 파괴되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실해야 합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스가랴 8:16)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징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14절 중간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이 하나님을 격노케 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시고, 뉘우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70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나라를 잃은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방에 포로로 잡혀있는 신세는 눈물 뿐이었습니다. 멸시당함 뿐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다시금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기쁨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실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의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말씀하시면서 진실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진실은 사랑을 이룹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되어집니다. 진실은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천국을 회복할 수 있는 열쇠가 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한다면 진실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9:33절 말씀에서 “그러나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는 진실히 행하셨음이니이다.(느헤미야9:3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바로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사랑하므로 진실하셨습니다. 인류는 악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하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고,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마땅히 진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힘써 진실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를 향한 악한 도모가 있어도 우리의 죄악 가운데서도 항상 진실하셨던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도 항상 진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랑은 진실함으로 충만케 됩니다. 진실함으로 사랑을 견고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실함이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 원문성경에서는 진실함을 에메트(tm,a,)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신실함, 성실한, 진실함 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때로는 법정적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에 그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에메트가 갖는 몇 가지의 의미를 살피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1.

첫째로, 진실함이란 거짓된 속임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16절과 17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고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스가랴 8:16b,17b)

스가랴 선지자는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고, 거짓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진실함이란 절대로 거짓된 속임수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속여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함이 없는 세대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심판하십니다. 무섭게 저주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심판 가운데 고통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심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거짓을 버리고 참 된 것을 말하므로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말과 행실이 일치함으로 모든 사람이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정치인들의 입들이 거칠어진 것을 보면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모양입니다. 무시무시한 흑색선전이 난무합니다. 거짓을 유포해서 멀쩡한 사람을 생매장하기까지 합니다. 정치판이란 게 온갖 술수와 음모가 판치는 곳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선거에 공약으로 내거는 것은 그럴싸한데 정작 그 공약을 지키려는 의지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멋진 공약으로 어떻게 국민을 속일까 고심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분들이 뭐라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나는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존경한다.고 합니다.

정치인들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는 속고 속이는 못된 풍습이 가득합니다. 같은 민족이라고 하며 운명적 공동체라고 하는데 사랑은 없고, 진실도 없고, 거짓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가서 뭔가를 사면 제값을 주고 샀는지 속고 샀는지를 항상 의심하게 됩니다. 믿고 거래하는 단골 고객에게 덤터기 바가지를 씌웁니다. 형제의 재산을 담보로 하여 사기를 치고 도망갑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진실하지 못합니다. 거짓된 속임수로 가득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한다면 절대로 속일 수가 없습니다. 거짓된 속임수로 국민을 현혹할 수도 없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없습니다. 단골고객에게 바가지를 씌울 수도 없습니다. 사랑한다면 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속임을 내다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정치인은 국민들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속이는 저울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공정해야 합니다. 이웃간에 상처를 주는 속임이 없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항상 정직해야 합니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있는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사랑이 더욱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2.

둘째로, 진실함이란 눈속임이 없는 성실함입니다. 히브리어의 에메트(tm,a,)라는 말의 본질적인 뜻은 바로 성실함(fidelity, reliability, faithful)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향해서 성실하셨던 것을 에메트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약속하신 것에 대하여 철저하게 지키신 것을 에메트, 신실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하신 것에 대하여 식언치 않으셨습니다. 인류는 언약을 저버리고 불의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하나님은 항상 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말과 행동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진실함이란 이와같이 전혀 눈속임이 없는 성실한 언행일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정말로 얄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잔머리의 대가들입니다. 그들은 순발력이 뛰어납니다. 재능이 있습니다. 일은 게을리하면서도 상급자의 인정을 받습니다. 적절하게 아부도 잘하고, 요령도 잘 피웁니다. 그런 사람들 보면 정말로 얄밉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진실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 하나 때문에 그 직장은 천국이 되지 못합니다. 기쁨이 살아집니다. 엄청난 손해를 보고 말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자녀들을 권면하면서 직장에서 근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으르지 말락 합니다. 눈속임으로 살지 말라고 합니다. 주인이 보든지 그렇지 않든지 항상 성실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직할 정도로 성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직장생활하면서 어떻게든 요령을 피우고 힘든 일을 피해가고, 돈만 많이 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정작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손쉽게 아부나 잘 해서 승진도 하고, 봉급도 많이 받으려는 잔머리를 굴려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은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품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매사의 모든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아부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써 수고하고 노력할 뿐입니다.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주어진 일에 피땀을 흘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엘리에셀이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집에서 늙은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종에게 자기 아들 이삭의 결혼문제를 맡겼습니다. 자식의 결혼, 그것도 백세에 낳은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의 결혼을 누구에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신실하지 않은 사람, 성실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못 맡깁니다. 성실함으로 믿을만한 사람에게나 맡길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이 얼마나 주어진 일에 성실한 사람이었으면 아브라함은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삭의 결혼문제를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냈습니다. 엘리에셀은 주인에게 많은 돈을 받아가지고 밧단아람으로 갔습니다. 그 돈이면 멀리 혼자 도망가서도 잘 살 수 있는 거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가지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게으름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한 신부를 순적히 만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함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라반의 집에서 리브가를 만나게 했을 때에도 그는 거기에서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여기에서 대접을 받고 편안하게 있다가 주인에게로 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신속히 떠나기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그에게 맡긴 일을 아브라함의 일로,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자기가 해야 하는 자기의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그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엘리에셀을 평가하시는데 에메트의 사람, 즉 진실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진실한 사람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가정을 세우시고,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절대로 아부나 잘하는 사람, 요령을 잘 피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의 본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면 진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의 실력을 키우고, 조금도 게으르지 않고 성실해서 주어진 일에 관한한 누구든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본분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데 아부나 하고, 요령이나 피우는 모습으로 사랑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우리의 말한 것에는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반드시 이행하는 이런 성실함이 있게 될 때에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2.3.

세째로 진실함이란 항상 상대방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을 보겠습니다.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8:17)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서에게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실함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해하려는 음모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해하려는 생각이 아닌 유익하게 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면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이라는 말에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실을 폭로하는 것 자체를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못 생긴 사람에게 너는 정말로 못 생겼다고 하면서 나는 너무 진실한 게 탈이야. 라고 합니다. 물론 못생긴 사람에게 못생겼다고 하는 것은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말로 인해 그 못생긴 사람이 받을 상처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까만 사람에게 까맣다고 하는 것, 사실을 이야기한 것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실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실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정치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자주하는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만 선거철이 오면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폭로함으로 사람들이 그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을 많게 하려고 합니다. 폭로가 거짓된 것이라면 더욱 큰 문제겠지만 때로는 사실에 맞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폭로는 성경이 말하는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반드시 사랑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유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폭로하게 되면 그 유익이 깨어집니다. 그래서 안됩니다. 사랑은 덮어주는 것, 감추어주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참된 진실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약점을 감싸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성도들을 향해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지라”(에베소서 4: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했다(고린도전서 10:33)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진실함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생명을 바쳐 남의 유익을 구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많은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의 약점을 폭로하여 자기의 유익을 삼으려고 하는 것은 야비한 술수입니다.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상대방의 약점을 덮어주고, 침묵할 수 있는 배려이기도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행복의 동산으로 에덴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뱀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 묻습니다. 하와는 뱀의 물음에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을 먹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하와의 말을 듣고 뱀이 말합니다. 아니다. 절대로 안 죽는다. 네가 그것을 따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고,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뱀의 말을 듣고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의 실과를 따서 먹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었습니다. 눈이 밝아졌습니다.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죽지도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 뱀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결코 아담과 하와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망보다 더 무서운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진실한 것 같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말은 표면적으로, 문자적으로 틀린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아담과 하와의 유익을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를 망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한다면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폭로하는 것은 안됩니다. 그것은 죄악입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감추어줄 줄 아는 배려가 바로 진실함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자기가 친히 십자가를 지면서까지라도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이 바로 진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는 이런 진실함의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성도들의 감추고 싶은 허물을 폭로해서는 안됩니다. 허물을 가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자신이 십자가를 지기까지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참된 것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약점을 온 천하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사랑이 저만치 갑니다. 사랑이 깨어집니다. 행복이 기운을 상실하게 되고, 점차 가정은 지옥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폭로보다는 서로의 유익을 위해서 감추어주는 배려를 간직한 진실의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사랑한다면 진실해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진실하지 못하다면 그 사랑은 쉽게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진실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참된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진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웃에게 진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직장에서, 사회에서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항상 진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고 하면서, 진실이 없다면, 우리 안에 있는 사람은 쉽게 파괴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랑으로 말미암아 행복의 낙원을 이루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힘써 진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된 속임수로 우리의 이기적 욕심을 채우는 가운데 있어서는 안됩니다. 거짓된 저울을 포기하고 항상 정직을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게 되어도 진실만을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눈가림으로, 요령이나 아부함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최선을 다해 성실함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조금도 게으르지 않고 맡은바 소임을 최선을 다해 감당함을 모든 사람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빌미로 폭로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 언제나 남을 향한 배려로 약점을 감추어줄 수 있는 진정한 진실의 사람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속고 속이는 세상입니다. 참된 진실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하게 살아가는 그런 성도가 희귀한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위해 진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런 속임도 없이, 서로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성실하므로 우리 하나님 앞에 참된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진실했노라고 인정함을 받으며, 교회와 가정, 우리의 삶의 영역에 행복을 가득하게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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