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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모세같이 되게 하라

모세같이 되게 하라

출애굽기 2:1~10

Introduction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모델로 삼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 중에 모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세는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쓰임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만방에 알게 했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행복은 없었습니다. 오직 고통과 근심 뿐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구원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모세와 같은 인물이 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없을 때에는 종살이로 고달팠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깨를 펴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굽 민족을 향해서 큰 소리를 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 주심과 은총을 만방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구원과 행복이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세와 같은 사람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모세와 같은 사람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배출되기만 하면 이 땅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우며, 애굽과 같은 무서운 적이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가운데서 반드시 승리하며, 큰 구원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우리의 자녀들을 모세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 자란 모든 자녀들이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들이 되어서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 참된 기쁨과 구원의 행복을 전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부모들은 모세의 부모가 어린 모세를 양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헌신했던 것처럼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 때문에 죄악이 가득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축복의 시대로 변화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출애굽기 1:8절 말씀에 보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역사적으로 볼 때에 요셉을 아는, 요셉과 친분이 있던 왕조가 무너지고, 요셉과 전혀 친분이 없는, 이질적인 민족이 침공해와서 왕위를 찬탈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롭게 이루어진 애굽 왕조에서 축복된 신분이 아니요, 종의 신분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애굽 민족의 노예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도 이스라엘 민족들은 점점더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종살이를 하는 중에도 그 수가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분명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하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새 왕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점점 번성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 노예들이 반역을 꾀하게 되면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모든 왕조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새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1:11절 말씀에 보니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고, 16절에 보면 “남자 아이들이 나오게 되면 몰래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애굽의 바로 왕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게 명했습니다. 출애굽기 1: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1:22)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서 치밀하게 민족을 말살하려고 하니 힘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희망이 없었습니다. 절망이었습니다. 끊임없는 노역에 싸여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거기다가 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으로 지금까지 왕성하던 민족의 운명이 한순간에 시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그는 출생부터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태어난 존재였습니다. 희망 없는 시대에 희망 없는 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 좋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부모가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아므람과 요게벳)는 희망없는 아이를 희망없는 채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의 수고와 헌신은 민족을 살리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는 열쇠가 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언약적 행복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길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떠합니까? 모세가 태어난 시대와 같이 암울하지는 않습니까? 우리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지 않습니까? 돈도 없고, 힘도 없고, 자녀들을 뛰어나게 양육하는데 수많은 장애들이 도사리고 있지 않습니까? 무한 경쟁시대 속에 스스로 도태될 수 밖에 없노라고 탄식해야 하는 지경이 아닙니까? 세상은 참으로 험악합니다. 죄악이 관영하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를 보아도 우리 자녀들을 유혹하는 죄악의 손짓들 뿐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자녀들을 모세와 같이 양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마치 우리의 자녀들을 나일강에 버리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을 그들의 작은 아들 모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고, 성경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모세가 세워지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여건에서도 우리의 자녀를 모세와 같이 되게 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은 이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어떻게 모세를 양육했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자녀를 양육하기 힘든 이 시대 속에 우리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같이 양육하는 중요한 원리와 실마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아므람과 요게벳의 모세 양육의 방법을 세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1.

첫째는 아이의 준수함을 보았습니다. 이 말은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위 족속 중에 한 사림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켰더니 (출애굽기 2:1~2)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나게 되었을 때에 모세의 준수함을 보았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태어났을 때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젖살이 좀 오르고, 눈도 맞추고 그래야 이뻐보이지 그 전에는 정말로 보기에 괴롭습니다. 마치 아이의 얼굴은 외계에서 왔다는 이티(ET)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저는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간호사가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아들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는데,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갓난 아이들의 얼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입니다. 아이는 쭈그렁방탱이고, 시커먼 털이 부슬부슬합니다. 눈두덩이 있는 곳에는 주름살이 얼마나 많은지 아이를 대면한 첫 소감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제 자식이라니 애착이 갔습니다. 다음날 아이와 면회시간이 되어서 아이를 보러 갔습니다. 간호사들이 아이를 유리창으로 데려와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무너지게 하는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변에서 같이 아이들을 보고 있던 어떤 사람이 제 아이를 가리키면서 애는 안 바뀌겠다. 그러는 것입니다. 워낙에 쪼글쪼글하고 이상하게 생겼으나 아무도 안 바꿔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못생겼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만 그렇게 못생겼습니까? 아닙니다. 대개의 아기들이 그렇습니다. 울그락불그락합니다. 쪼글쪼글합니다.

모센들 별 수 있었겠습니까? 이 땅에 태어날 때에는 다 그렇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세를 보면서 못생겼다. 실망스럽다. 이렇게 생긴 녀석을 꼭 키워야 하나? 하면서 모세의 부모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적 환경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의 외형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 아이에게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그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할 때에 그에게서 이루어질 놀라운 가능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그런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합니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모세의 부모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아이들의 가능성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할 때에 이 아이들을 통해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이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을 크고 귀하게 사용하시며, 하나님의 위대한 그릇이 되게 하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약점을 봅니다. 사람을 평가하면서 잘한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잘못한 것을 지적합니다. 그 잘못한 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언제 무슨 실수를 했던 것, 그리고 무슨 죄를 지었던 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도 부모들이 대개 그런 자세로 자녀들을 대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약점과 부족함으로 그 아이를 평가합니다. 아이를 보는 시각이 부정적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모세와 같은 사람을 키우는 방법이 아닙니다. 모세의 부모는 그의 아들을 보게 되었을 때에 아이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아이의 장점을 보았습니다. 긍정적으로 아이를 보아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이를 보아주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그에게서 나타난 것입니다. 민족을 구원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준수하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멜랑히톤은 학교를 방문하며 어린 학생들을 볼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시장님, 의사님, 목사님, 의원님들.. 하면서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니 아이들이 형편없는 존재들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보였던 것입니다. 준수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보게 될 때에, 우리의 자녀들을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이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약점을 보기 시작하면 한도 없습니다. 끝도 없습니다. 절망의 사람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장점을 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사람이 바뀌게 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용기가 생겨나게 됩니다. 희망이 보이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손에 귀하디 귀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그릇으로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2.

둘째로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보호했습니다. 본문 2절 마지막에 보니 “석달을 숨겼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의 삼엄한 경계가 있고, 애굽의 군대가 수시로 순찰을 합니다. 어린 모세를 죽이기 위해서 군대가 순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사람들 역시 감시자들이 되어 잇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아이를 보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의 부모는 석달동안이라는 시간동안 아이를 숨겼습니다. 목숨을 건 수고였습니다. 헌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의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 앞에 다가오는 온갖 위험과 유혹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세상의 밥이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보호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으로부터, 죄악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어디에서 보호해야 합니까?

첫째로 육신적 사고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부모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한해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미아로 실종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휴대전화에 공익메시지가 뜨는데 아이들의 실종되었으니 찾아달라는 메시지가 얼마나 많이 올라오는지 모릅니다. 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미아발생수는 연간 4천명에 이르고 그중 300명이 부모를 찾지 못해 보호시설에 수용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자녀들은 각종 사고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신학자 코메니우스는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제일원리가 바로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르쳐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건강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통사고로부터 생명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온갖 위험한 일들로부터 조심케 함으로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기에 건강검진을 하게 하고, 이상이 있으면 신속히 대처하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녀를 보호함에 있어서 자녀들의 정신세계가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온간 마약이나 음란물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술과 담배를 먹고 피우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컴퓨터를 열면 음란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지금 우리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이런 유혹 앞에서 우리 자녀들의 정신세계를 쉽게 병들고,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나갈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신세계가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컴퓨터로 음란물들을 보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건전하지 못한 생활습관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부모님들이 경계의 눈을 부릅뜨는 것 못지 않게 본을 보이는 순결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자녀들의 정신세계는 건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우리의 자녀들의 영혼을 보호해야 합니다. 온갖 이단들, 뿐만 아니라 종교다원주의 사상이 교회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사상이라는 것은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종교에서도 나름대로의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상당히 포괄적이고, 관대한 사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던 사상들입니다.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단 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대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기독교도, 불교도, 천주교도 같다고 모두가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그런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가 일입니다. 오직 성경의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천주교로도 구원을 얻을 수 있고,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천주교는 성경적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미신적인 신앙을 따르고 있습니다. 온갖 우상종교와 혼합된 종교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여로보함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단을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것을 섬기게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제단을 쌓는 것이 바로 천주교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같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혼합주의적 종교를 따릅니다. 성경도 따르고, 다른 것도 섬깁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이 이런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고, 성경적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목숨을 건 개혁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건강을 잃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도, 그리고 정신세계가 건강하도록 생활의 습관을 지켜주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녀들의 영혼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잘못된 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견고한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모세와 같은 자녀가 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심어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게 해야 합니다. 암송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편 119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의 말씀만이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말씀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서 세상의 온갖 유혹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부모가 생명을 걸고, 애굽의 군대와 백성들로부터 모세를 보호한 것처럼, 석 달 동안이나 숨겨서 키운 것처럼 우리의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자녀들의 영혼과 정신과 육신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런 수고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녀들이 모세와 같이 되어지고, 우리의 자녀들을 통하여 교회가 부흥하고, 이 나라와 민족이 구원의 큰 기쁨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3.

세째로 모세의 부모는 모세의 삶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출애굽기 2:3~4)

모세의 부모는 아기 모세를 석 달 동안이나 숨겨서 키웠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도무지 이 아이를 숨겨서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에 그들이 결정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보호했지만 더 이상은 한계였습니다. 자기들의 힘을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의 손에 이 아이를 맡겼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를 나일 강에 그냥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했습니다. 이 아이를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누이로 하여금 아이가 어떻게 되는가 그 상황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단순히 아이를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긴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농사는 맘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 있는 사람은 남의 자식 함부로 욕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것은 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해도 자식은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최고로 자식을 키우고 싶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녀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방치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게 되면 하나님은 능력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인간의 계획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자녀를 돌보시고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방탕하고 빗나가는 아들 어거스틴을 바라보면서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늘 기도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불러가면 눈물을 뿌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니카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거스틴을 회심케 하십니다. 지난 잘못을 눈물로 참회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중세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 위대한 인물 어거스틴으로 거듭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가 아들의 생애를 바꾼 것입니다. 부모의 간절한 기도가 자녀들의 생명을 건지고, 그들의 앞길에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이 마음대로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자녀교육은 더더욱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와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자녀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애굽의 학정 속에서도 아므람과 요게벳은 하나님께 그의 아들 모세를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위해서 바로의 공주를 준비하셨습니다. 그에게 긍휼을 입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의 구원을 위해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 안전하게 자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기술로, 우리의 돈으로 키우려고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를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 시대는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온통 죄악으로 들끓고 있는 이 세상에 참된 구원과 행복이 깃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녀들을 모세같이 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 자녀들을 아름답게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이고, 해외에 유학을 보내도 이 세상에 참된 구원과 기쁨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의 부모였던 아므람과 요게벳처럼 영의 눈을 들어서 우리의 자녀들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가능성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모세같이 되게 하려면 영의 눈으로 자녀의 가능성을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가능성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쳐서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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