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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마땅히 감사할 이유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이유

데살로니가후서 2:13~17

Introduction

교회와 성도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얼굴과 표정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과 너무 닮아서 예수님의 친동생을 보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이 참 좋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흔히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사진을 구해서 유능한 성형외과 의사를 찾고, 그에게 예수님의 얼굴처럼 수술해 달라고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삶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공의, 그리고 온유하심과 인자하심 등등으로 표현하여 설명합니다. 그런데 대개 예수님의 모습에서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의 감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늘 감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작은 것에 대하여도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물 한 모금을 놓고도 감사하셨고, 보리떡 다섯 개의 지극히 미미한 음식 앞에서도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감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마태복음 26:27) 그렇다면 예수님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삶에 감사를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 없이는 결코 예수님을 본받을 수 없습니다. 감사 없이는 결코 주님과 같이 될 수 없고, 바른 신앙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을 힘써 감사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감사를 모르는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어진 환경과 형편에 대하여는 늘 원망과 불평입니다. 잘되는 것은 자기 탓이고, 못 되는 것은 무조건 조상 탓 부모 탓 환경 탓입니다. 감사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회뿐 아니라 교회도 희망이 없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전래 이야기 중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시골(Kampung)에 아주 인정 많은 돌라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돌라는 특별히 식물을 이용하여 약으로 사용하는 비법을 터득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것도 살리 수 있는 비법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정글을 거닐고 있을 때 뱀 물려 죽은 호랑이를 보았습니다. 돌라는 호랑이를 불쌍히 여기고 비법의 약을 써서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왜 단잠을 깨웠느냐"고 으르렁 거렸고, "지금 꿈속에서 아주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있는 중인데 왜 깨웠나"고 입맛을 다지면서 돌라를 잡아먹으려고 덤벼들었습니다. 돌라는 당황하여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다시 살린 것뿐인데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겠습니다."라고 사정했고,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 줄 분을 찾아봅시다"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첫째로 여우를 만났습니다. 여우는 자기에게 판단해 달라고 하는 데 아주 기뻐했지만 호랑이를 보고서는 "사람이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돌라는 여우란 아주 간사하니 공정치 못하다 했습니다. 이에 두 번째로 풀만 먹고 사는 순박한 물소를 찾아갔는데 물소는 그들을 보고 무서워하여 물 속으로 뛰어 도망가며 "저는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잘못한 것 같습니다"고 했습니다. 돌라는 물소가 호랑이를 너무 무서워하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여기고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호랑이와 돌라는 세 번째로 원숭이를 만나러 갔습니다. 원숭이는 호랑이와 돌라의 말을 충분히 듣고 "이를 정확히 판단키 위해서는 호랑이가 누워있던 장소로 갔고, 원숭이는 호랑이보고 잠들었던 곳에 누어보라고 했습니다. 호랑이는 그가 누웠던 곳에 다시 누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뱀 굴이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그것도 모른 채 뱀 굴 위에 누웠고 뱀을 구멍에서 나와 호랑이를 물었습니다. 호랑이는 다시 죽고 말았습니다. 돌라는 호랑이를 다시 살리려 했습니다. 이때 원숭이가 말했습니다. "안됩니다. 호랑이에게 선을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한번 도왔으나 호랑이는 감사할 줄 몰라 습니다. 당신은 도와주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도울 수 없습니다." 이에 돌라는 원숭이에게 "고맙습니다." 인사하였고 서로 제 갈 길을 갔습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라고 했습니다.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라는 분은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세상과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 그 차이뿐이다. 감옥이라도 감사를 하면 수도원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감사는 세상을 바꿉니다. 지옥같은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며, 무의미한 인생을 가치있는 인생으로 바꿉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6개월을 돌아보시면서 우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무의미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 앞에 무가치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행복을 일구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Main Subject

1.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감사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필수적인 신앙의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면 어떤 환경과 형편에 있든지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성도의 삶에 감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은 우리에게 세가지 감사의 이유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데살로니가후서 2:13)

1.1.

여기에 말씀에 보니 감사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늘 감사해야 하는 것은 돈이 많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형통한 일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엄청난 시련을 만나기도 합니다. 뜻밖의 질병으로 고통하기도 합니다. 사업의 도산으로 인하여 정처없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큰 곤경에 빠지게도 됩니다. 이런 일들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 교회에서 헌신하며, 십일조도 하고, 기타 봉사에 조금도 서슴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 것이야 하면서 멸시하면 안됩니다. 신앙생활을 그 모양으로 하니까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지하면서 독설을 퍼부어서는 안됩니다.

욥이 받은 고난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욥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고난이 다가왔습니까? 졸지에 10남매가 되는 자녀들을 다 잃고, 그 많던 재산을 다 빼앗기고, 온 몸에 병이 들어 만신창이가 된 것이 그에게 무슨 특별한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고난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는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하는 자가 있으면 조롱이나 멸시할 것이 아니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야고보 선생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그렇습니다. 고난은 기도하라는 주님의 싸인입니다. 기도함으로 새로운 기적을 준비하라는 주님의 명령이요, 기대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고난이 없기 때문입니까? 항상 형통하기 때문입니까? 만약에 우리의 감사가 그 정도 수준이라면 아주 초급의 감사일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거기에서 찾고 있지 않습니다. 늘 형통한 축복이 있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마땅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만물의 찌끼같은 존재들입니다.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었던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멀어진 존재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 매여 있으며, 지옥의 백성인 존재들입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던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실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먼저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선택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해 주셨습니다. 축복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약속해 주셨습니다. 혹 세상 사람이 우리를 배신하며, 삶이 우리를 속이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만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둘째로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신학자들은 인류 역사의 최대의 사건을 두가지로 소개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도 너무나 귀하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때에만이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효과를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능력있게 부흥하게 된 것이 무엇으로 말미암았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되었습니까? 베드로의 능력과 권세로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와 함께 하시니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전파되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고, 구원의 은총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흥은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하여 주어지게 되는 선물입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목사가 공부를 많이 하고, 멋진 연예인처럼 아름답게 꾸민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시설을 최고급의 현대시설로 만들어야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부흥은 바로 성령의 역사로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교회를 인도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 온 교회가 복종하게 되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된 본성에 사로잡혀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제대로 받지 않습니다. 부정합니다. 부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주장하시는 것을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심장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지 못할 그 때에도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인격을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로워 질 수 있도록 하십니다. 죄의 권세와 싸우게 하십니다. 승리하는 믿음을 간직하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고, 거룩한 삶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역사하시는 것을 기억하면서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거룩케 하시며, 결국은 영화롭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세상의 것으로는 풍족하지 못하고, 모자란 일들이 많아도,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 매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1.3.

세째로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것은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돈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지위를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얻어 저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감사의 제목입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는 잠시 있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얻은 모든 것은 다 두고 갈 것입니다. 정주영이라는 재벌도 자기의 재산을 한 푼도 갖고 가질 못했습니다. 실력이 있던 어떤 과학자도 자기가 얻은 모든 지식을 가지고 가지 못했습니다. 이 땅에 속한 것은 이와같이 썩어질 것입니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지옥의 불로 연단한다고 한들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빛날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그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은혜로 주셨습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그 나라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세상에서 천하게 살고, 가진 것이 부족하고, 좋은 집과 좋은 차는 갖지 못했다고 해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힘으로 천국엘 갈 수 있습니까? 아니 세상의 어떤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천국엘 갈 수 있습니까? 아무도 자기의 힘으로는 천국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비록 지식이 없지만, 능력도 부족하고, 돈도 없지만,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곤 부족하고, 온전치 못한 것들 뿐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구원을 얻게 하시며 천국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우리의 몸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존귀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은혜가 없었다면 감사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과 천국을 주셨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뿐인 감사는 참된 감사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사는 어떻게 표현되어야 합니까?

2.1.

첫째는 원망과 불평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감사의 제일 원리는 바로 원망과 불평을 뿌리채 뽑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과 원망하는 말이 함께 공존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다가오는데 그것을 참고 견딘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런 환경 가운데서 감사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통해서 교훈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인도하셨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능력의 손길로 구원하셨습니다. 열가지의 재앙으로 기적같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와 모든 애굽의 장관들이 두 손을 들고 완전히 항복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들 앞에 홍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마른 땅으로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뒤따라 오던 원수들을 모두 홍해의 바다에 수장(水葬)시키시며, 엄청난 승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함께 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을 것을 공급했습니다. 그들의 옷을 닳지 않았습니다. 헤어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승리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토록 하나님의 큰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 입에 원망을 달고 살았습니다. 불평을 달고 살았습니다. 애굽 땅 종살이 할 때의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목이 곧은 백성이라 말씀하시고 진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망과 불평이 사라져야 합니다. 교회를 향한 원망과 불평이 있습니까?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있습니까? 그것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이 원망과 불평을 말하는 입술이 되기 보다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입술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2.2.

둘째는 상한 심령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감사는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헌금을 많이 하거나, 또는 여러 가지 섬김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감사절이 돌아오는 것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습니다. 왭니까? 많은 헌금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절에 특별한 헌금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감사절을 별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감사절을 원하시겠습니까? 그 불편한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절 예배를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불쾌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감사절에는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 돈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감사절을 왜곡시켜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물질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까? 미가 선지자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미가서 6:6~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 6:6~8)

세상의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17)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는 자신의 실존적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엎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손에 있는 돈을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헌금봉투가 얼마나 두툼한가를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비록 작은 것으로 예물을 드리더라도 진실한 마음, 상한 마음으로 나아오는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속물로 만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손에 돈이나 바라고 계시는 그런 분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우상종교들은 사람들의 손에 돈을 바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베푸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감사없는 돈봉투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이 돈으로 성령의 능력을 사려고 한 것과 동일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감사절에 하나님 앞에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헌신의 고백이 넘치는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감사를 모르면 성도가 아닙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그 순간 성도로서의 능력을 상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감사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또한 진리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은혜를 기억함으로 항상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절대로 감사를 잃는 어리석은 자리에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원망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늘 감사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또 감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물질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일이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뜻을 담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감사하는 것을 통하여 크게 감사할 일들이 우리의 삶에 더욱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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