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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사랑한다면 주라

사랑한다면 주라

로마서 8:31~39

Introduction

최근에 한국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각 교회마다 건강한 교회가 되고자 슬로건을 내걸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곤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교회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하기도 하고, 또 교회성장학의 이론을 활용해서 교회의 일대 혁신을 이루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한국교회에 유행처럼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이상은 정말로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제의 이면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교회들이 건강한 교회의 슬로건을 내거는 궁극적인 목적이 더 가지려는 내면적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을 살찌우는 교회는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건강하고 능력 있는 교회인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비둔한 엘리 제사장과 같을 뿐입니다. 끊임없이 소유하고도 더 소유하려고 하는 사해바다와 같은 교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돈도 많고, 교인도 많은 건강한 교회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치유되기 힘든 중병에 걸린 교회일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탄식의 이유가 될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힘으로 항상 승리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세상이 위협적 공격을 감행하고, 악한 마귀가 교회에 고통을 가져다 주어도 그 모든 환경가운데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항상 승리할 수 있다면 그 교회는 분명히 건강한 교회입니다. 비록 건물을 작고,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못하고, 성도들의 수가 많지 못하다고 해도, 세상을 이기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교회라면 그 교회는 골리앗 앞에 섰던 소년 다윗과 같이 가장 건강한 교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 심야기도 때에 중국의 지하 교회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당국으로부터 혹독한 시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순교를 당하기도 했고, 모진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가운데서도 그들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천덕꾸러기요, 볼품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당국의 위협이 그들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감옥의 고문과 치욕이 그들의 신앙을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복음의 기쁨과 생명의 구원이 그들 속에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중국지하교회가 얼마나 영적으로 건강한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비록 고난을 당하고 있었지만 승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승전가를 매일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항상 승리하는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세상의 어떤 고난 앞에서도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그런 건강한 교회와 성도들이 되고 있습니까? 외형적으로는 크고 놀라운 부흥을 이룬 것 같아도 세상의 위협과 유혹 앞에서 비굴하고, 견고한 신앙을 가질 수 없는 교회라면 이미 병들대로 병들어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교회에게 승리와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능히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건강한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건강한 교회, 승리하는 교회는 어떻게 될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사도 바울은 수많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게 될 때에 교회는 건강하게 되고, 항상 승리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들이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대체로 일관되게 행하는 일들이 교회의 조직과 질서와 제도를 바꾸는 일을 합니다. 교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교회의 행정과 질서를 효율화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건강하게 되는 것은 그런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건강하게 됩니다. 사랑은 다 잃어버리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광야를 만들어 놓고, 조직과 제도만을 개편하는 것으로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란 가운데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고난 중에서도 모든 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건강한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울에게 역사했고,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되어 나가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승리하는 인생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있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 바울은 망할 대로 망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돈도, 권력도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장래가 총망되는 유능한 젊은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학문에 능한 랍비였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도 바울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까? 그가 승리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해서 하나님의 대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핍박자라고 했습니다. 승리하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하나님의 원수요,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이 아닌 영적 실패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으면서부터는 상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형편없는 모습으로 몰락한 존재였습니다.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천막 만드는 천한 일이나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았습니다. 몸은 병들었습니다. 외적인 것만을 보게 된다면 바울은 형편없는 자로 망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승리케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값진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이, 마귀가 능히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과 축복 가운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서는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거의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넉넉히 이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놀라운 승리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런 승리자가 되었습니까? 건강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울에게 역사했고, 또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되었기 때문에 그는 놀라운 영적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넉넉히 이기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부흥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며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했던 것처럼, 우리의 일생에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함으로 인하여 바울이 넉넉히 이겼던 그 놀라운 승리와 축복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온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3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로마서 8:32)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켜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참 사랑을 찾을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께 참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배워야 하고 하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요한복음 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한복음 3:16) 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도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사랑입니다. 움켜쥐고, 인색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 아니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인들 아들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는 그런 아들입니다. 보석보다 더 귀한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기꺼이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들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기쁨으로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일에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지 않으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움켜쥐는 것이 아닙니다. 내어 놓는 것입니다. 주는 것입니다. 내게 가장 귀한 것이지만 기꺼이 내어놓게 될 때에 비로소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인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고 싶어하십니다. 축복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모든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사랑한다면 마땅히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풍성하게 허락하여주신 것처럼, 우리가 사랑해야 할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모습으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부모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생명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이 풍성한 교회와 성도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기꺼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눠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던 여인 역시 자신의 옥합을 깨뜨렸던 것처럼 우리의 귀한 것을 깨뜨려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주어야 합니다. 결코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돈을 버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공부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업에 성공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으로 우리 자신의 배를 부르게 하며, 우리 자신만을 살찌우기 위한 것이라면 잘못된 것입니다. 줄 수 있기 위해서 벌어야 하고, 모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벌고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줄 수 있기 위해서 그래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해야 합니다. 왜 부흥해야 합니까? 줄 수 있기 위해서 입니다. 주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는 자가 건강한 자입니다. 주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움켜쥐고 내어줄 수 없는 교회는 아무리 큰 건물, 많은 교인수를 자랑한다고 해도, 그 교회는 심각한 질병에 걸린 교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주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이 귀한 것이라도 아까워 하지 말고 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사랑이 풍성함으로 건강한 교회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사랑함으로 주는 교회가 될 때에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축복하십니다. 본문 38~39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39)

하나님은 주는 교회에 복을 주십니다. 그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은혜를 공급하시고, 그 은혜의 파이프 라인을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게 하십니다. 로마서 8장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사람, 그 사랑으로 인하여 사랑하며 살아가는 교회, 그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며, 은사로 말미암은 모든 혜택을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되어지면 하나님은 그 교회에 승리를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데 하루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틀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파이프 라인을 항상 개통하시고 그 파이프 라인을 통해서 끊임없이 은혜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현대교회가 건강한 교회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얻으려는 목적으로 이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회의 몸집을 불릴 수 있는 기법으로 이 프로젝트를 활용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습니다. 그것은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몸집을 불리는 데만 심혈을 기울이는 교회라고 한다면 그 교회는 결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원리는 내 안에 가득 채워야 됩니다. 주기보다 모아야 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나눠줄 때에 너 큰 복을 누리게 되고, 더 큰 은혜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적신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 1:24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잠언 11:24)

부자가 되고, 승리자가 되는 것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과도하게 아낀다고 해서 부자가 되고 승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흩어 구제하게 될 때에 더욱 부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힘과 능력을 잃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가 자기 몸집만을 불리는데 정신이 팔려 있고, 사랑으로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유하는 데만 너무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성장을 멈추고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으며 외면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해바다는 주지 못하고 받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그 바다에는 아무런 생명이 살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받는데, 더 풍성한 생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더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더욱 황폐해져 가고 죽음이 머물고 있는 그런 바다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는 교회가 복이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너희에게서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망합니다.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중요한 사역, 교회의 생명을 건지는 사역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사랑함으로 주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귀한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힘써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 안에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 사랑은 결국 교회를 건강하고 능력있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의 송수관이 항상 열려져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축복하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부흥케 한다는 미명하에 우리 교회의 몸집을 불리는 일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랑의 사명을 가슴에 품고 힘써 퍼 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계와 열방을 가슴에 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퍼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현대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교회가 부흥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숫적 부흥, 교회의 재정적 풍요로움을 이루기 위해서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설명입니다.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은 주는 교회, 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 쓸 것도 없는데 무얼 주느냐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불신앙적인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더욱 풍성하게 줄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면서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풍성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넉넉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받은 사람이며, 동시에 이런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주기를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움켜쥐는 것에 훈련된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빼앗는 자가 아닌 나눠주는 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 충만히 임하게 되고, 주는 자가 복 되도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으로 주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생을 살아가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힘써 주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승리와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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