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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너희는 물로 나아오라

너희는 물로 나아오라

이사야 55:1~9

Introduction

사람들은 누구나 값진 일을 위해서 투자하고 싶어합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회사가 건실하고, 생산성이 있고, 또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될 때에 사람들은 거기에 아낌없이 투자하게 되어 있습니다. 엊그제 금요심야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늦은 시간이지만 TV를 켰습니다. TV에서는 심야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늦게 골치 아픈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채널을 돌리는데 제이유라는 다단계 회사를 고발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회사에 투자했다가 망했는지 모릅니다. 자기의 퇴직금을 모두 날리기도 했고, 그 일 때문에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고, 이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일도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그런 회사에 투자를 하게 됩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투자금의 250%를 약속했습니다. 투자한 돈에 250%라고 하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돈입니다. 1억을 투자하면 2억5천만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현혹되어 자기의 전 재산을 투자했습니다. 퇴직금 전체를 투자했습니다. 남은 인생을 거기에 다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기성 다단계 회사였던 것입니다.

대체로 지나치게 많은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거짓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수고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소득을 보장한다는 말은 거의 대부분이 사기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이런 세상의 못된 속임수에 넘어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돈 되는 일에 투자하고 싶어합니다.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고 싶어합니다. 돈이 되지 않는다거나 가치없다고 여기지는 것에는 한푼도 던지지 않습니다.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도덕적, 영적 가치를 인정할 만한 일들에 아낌없이 투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우는 워렌 버핏이 자신의 재산의 85%를 사회에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3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35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어떤 사람은 버핏을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가장 가치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 많은 재산을 기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과는 다르게 조금 독특한 일에 가치를 두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돈 되는 일보다, 명예를 얻는 일보다, 어떤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면 기꺼이 손해를 봤습니다. 죽음의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고 짊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복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요, 가장 가치있는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며 살아갑니까? 돈 되는 일을 귀하게 여기며, 그것을 위해서 아낌없이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명예를 얻으며, 도덕적 평판을 듣는 일을 가치있게 여기며 그것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주님 앞에서 가장 복된 자로 인정받기를 위해서 거룩한 일,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입니까?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께 인정 받는 일을 가치있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것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걸고 헌신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 앞에 가장 가치있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는 돈 벌러 가라. 너희는 권력을 얻고,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사야 55:1)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진노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배은망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탄식하셨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을 알지만 나의 백성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거짓되고 가증한 예배를 보시면서 누가 성전문을 닫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진노하셨고, 매를 드셨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망하기를 결코 소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더라도 그들이 다시금 하나님께 돌아와서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혹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신앙의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때에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는 것을 결코 원하시지는 않습니다. 분노하십니다. 그리고 진노하시며 벌을 내리시기도 하시지만 망하도록 하지는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향해서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고 말씀하시며, 진노 중에도 그루터기를 남기시고, 다시금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있는 말씀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구원과 회복의 말씀을 주시면서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돈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음식이 없어서 주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근본적인 가난과 고통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고, 은총의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었기 때문입니다.(아모스 8:11절 참조)[1] 시냇가의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되어 있습니다. 물 근원을 떠나게 되면 가뭄에 말라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로 인하여 생명력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죄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참된 축복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생명적 기쁨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시편 1편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세상에, 죄악 된 욕심에 자리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과는 상관없는 자가 됩니다. 영생토록 솟아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리하지 말라, 욕심에 자리하지 말라 이제는 은총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너희는 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실존을 보라는 것입니다. 목마른 자의 모습이 아니냐? 아무런 은혜로 없고, 감격도 없는 모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세상의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 무능력의 자리에 가만히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감동 없는 신앙의 자리, 성령충만은 고사하고, 욕심으로, 탐욕으로 충만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란 하나님의 은총을 뜻합니다. 생명과 축복을 뜻하는 말입니다. 근동아시아는 물이 귀한 곳입니다. 특별히 가나안 땅은 물이 참으로 귀한 곳입니다. 애굽 땅과 같이 사시사철 나일강의 물이 흐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흡족하게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비가 온다는 소식이 참으로 반가운 소식입니다. 비가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의 은혜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은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디로 초청하고 계십니까? 은혜의 자리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공급하는 자리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은혜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으며, 천국과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은혜의 자리로 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흡족히 내리는 곳으로 나아오게 될 때에 그 때에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절 하반절 말씀에 보니 “그리하며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는 무가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을 올인(All in, 다 걸기)해도 부족함이 없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고, 성공하면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은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에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 지역에서 큰 권세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사마리아에 와서 사람들에게 안수기도를 하게 되었더니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시몬은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고 싶어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시몬을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네가 하나님과 성령의 은사를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사탄적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명예나 권세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고 해서 그 가치가 무가치한 것은 아닙니다. 은혜의 가치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가장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부르십니다. 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은혜의 자리에 나아오기만 하면 돈 없어도, 값 없어도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다함이 없고, 마름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돈 없어도, 능력이 없어도 배운 것이 많지 않아도 은혜의 자리에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은혜의 자리로 나아오는 것을 거부합니다. 계산해 보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자리라고 하지만 그곳에서 낭비하는 시간을 계산합니다. 그곳에 드는 비용을 계산합니다. 그곳에 참여함으로 얻게 되는 다양한 손실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자리로 나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청하시는 그 청함을 싸구려 이등칸쯤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시원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스한 봄 어느 날 담임 목사님이 춘계 대심방 기간을 맞이하여 성도들 집을 찾아 다니면서 심방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성도의 집을 방문하여 집 현관문을 여러번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창문으로 살짝 들여다보니 T.V는 혼자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냥 조그만 메모지에 이렇게 적어 놓고는 갔다. "요한계시록 3;20 절"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고 마시리라

잠시 후 그 성도는 목사님이 가신 것을 확인하고 나가 보니 메모지가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움에 그 메모지를 펼쳐보고 그리고 며칠 후 주일 예배 드린 후 자기 이름과 함께 이렇게 적혀진 메모지를 목사님께 드렸다. "창 3;10 절" 내가 목사님의 목소리를 하나님의 소리로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시고, 또 영적 잔치를 베푸시는데 혹 우리는 다른 핑계를 대며 숨어있지는 않는지 모릅니다.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외면하고, 세상 일에 한 눈 팔고 살아가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초청하실 때에 기꺼이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에 얼른 문을 열고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로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왕의 잔치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왕은 아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나라의 실력있는 사람들을 청했습니다. 정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왕은 다급해졌습니다. 종들을 시켜서 어찌된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아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사람들의 대답이 왕의 잔치가 있는 줄은 알지만 가지 못할 이유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나는 장가갔으니 아내와 함께 즐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소를 샀으니 그 소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왕의 잔치를 거부했습니다. 그 때에 왕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거리의 부랑아들, 눈먼 사람들 등등의 별볼일 없는 사람들을 청했습니다. 강권하여 잔치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청함을 받았던 사람은 모두가 왕의 잔치를 맛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은혜의 잔치는 왕의 잔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핑계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피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정신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은혜의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청하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성도들은 은혜 받는 일을 위해서 수고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위해서 수고합니다. 돈 버는 일을 위해서 수고합니다. 이 세상의 별볼일 없는 일을 위해서 목숨을 겁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믿음생활에 분명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여섯명의 남편이 있어도 은혜가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어도 은혜만 있으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제일로 생각하고, 그 은혜를 위해 기꺼이 포기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3.

본문이 우리에게 제시한 은총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3절 말씀에 보니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영혼이 살리라 고 말씀하고 있고, 6절에서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은혜의 자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다른 것으로 은혜를 받을 수 없고, 다른 것으로 거룩하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며,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말씀을 듣는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는 자리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리를 사모하고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면 기회가 옵니다. 축복과 은혜의 기회가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오늘을 기회의 시간으로 주셨습니다. 지금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은혜의 기회로 주신 지금의 축복의 자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해서 준비하신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힘껏 부릅니다. 그래서 반드시 은혜를 쟁취하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입니다. 지금 기회를 놓치게 되면 이번에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도무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한들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두신 말씀과 기도의 잔치에 힘써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환경과 형편을 뒤로 하고, 우선적으로 은혜 받기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성도는 마땅히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세상에 돈 되는 자리 중요합니다.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자리, 무가치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격형성 및 비전을 위해 지금 공부하고 있는 그 자리 가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은혜 받는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받는 일을 위해서는 조금의 손해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영생케 하는 귀한 축복이 있는 은혜의 자리를 거부하고, 세상의 부질 없는 것을 위해서 돈을 걸고, 생명을 걸고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물가로 나오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이 귀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번 전교인수련회를 가게 됩니다. 놀기 위한 것이 전부인 수련회라면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목사가 목회적 계획을 가지고, 작년 말부터 기도하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새로워지고, 성도들간의 아름다운 교제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은혜 충만케 되기를 위해서 준비해온 수련회입니다. 이 수련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것입니다. 동시에 함께 기도하며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일을 계획하신 하나님께서 이 수련회에 충분히 은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이 은혜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주님의 초대하심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물로 나아오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꺼이 은혜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풍성케 하시고,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온 교회 위에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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