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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세아 6:1~3

Introduction

오늘날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풍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움 속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풍요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자족하는 비결을 깨닫지 못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다 차원높은 부와 권력을 얻으려고 합니다. 부(富)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하심 가운데서 날로 더욱 풍성한 부와 권력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와 권력은 이기적입니다. 심지어는 퇴폐적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도덕적인 선을 추구함도 없습니다. 무작정 많이 소유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지만 정신세계는 얼마나 공허한지 모릅니다. 도덕적 가치가 사라졌습니다. 인륜이 짓밟히고 있고, 추악한 모습으로 세상은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기류에 예수를 믿는 신앙인들도, 교회도 편승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세상적으로는 풍요롭기를 추구하지만, 그리고 어느 정도 그것을 이루었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영적으로는 심히 빈곤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식은 거의 전무한 지경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에 매여 종노릇하는 가운데 있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성도를 향해서, 그리고 교회를 향해서 부요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실 때에 부와 권력은 단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권력을 탐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영육간에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혹 세상의 것은 잃어도, 가난하고, 궁핍하며, 세상에서 아무런 권세는 없어도, 하나님께는 부요하며, 영적으로는 풍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축복입니다. 비록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영적인 은혜를 구하지 않고, 영적 풍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해도, 그들의 불신앙적인 모습을 따라 망하는 가운데 있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풍요와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호세아가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던 시대는 풍요로운 시대였습니다. 당시에 북조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다스렸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능력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국제정세를 밝히 볼 수 있었고, 나라의 힘을 키워,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곳곳에는 많은 물질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대를 보시면서 개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만족하며, 왕이 정치를 잘한다고 칭찬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여로보암 2세를 보시면서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빈곤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는 풍요롭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하나님 앞에는 무일푼의 노숙자와 같이 영적인 빈곤함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영적으로 빈곤하다면 비극입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너희가 부요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러나 너희의 실상은 가난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눈에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빈곤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결국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물질만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됨의 신분을 박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에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적인 것이 풍요롭지 못한 사람의 결국은 이럴 수 밖에 없습니다.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로 다시 돌아오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 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세아 6:1)

하나님의 진노 속에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풍요로움에 영적인 눈이 멀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적인 축복을 외면하며 살던 자리에서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시대를 바라보면서, 한국교회의 영적현상을 바라보면서 지금이 바로 호세아 시대와 같이 세상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영적으로는 심히 빈곤한 가운데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온 나라 구석구석에 붕괴와 파멸이 찾아왔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호세아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 멀어졌던 우리의 마음을 돌이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을 바라보시면서 세상을 향해, 세상의 풍요만은 구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본문에서 돌이키다는 말은 원문성경에서 슈브(bWv)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되돌아 가다.” “회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에 떠나왔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믿고 섬기기로 한 백성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영적인 축복의 의미를 상실하고 세상의 물질과 풍요에 눈이 멀고 마음이 빼앗기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죄악된 자리에서 돌이켜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리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던 자리로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돌아오라는 말씀은 “회복하다.” “회개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난 날의 잘못을 회개하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하고, 하나님을 멀리 했던 것,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지 못하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물로 회개하며 나아오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영적인 축복을 누리며, 영적으로 부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회개하는 심령이 되어야만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게 되는 것도 회개하는 자가 될 때에 가능합니다. 죄악을 가지고서는 절대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사랑하며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주님 앞에 철저하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은혜의 가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우리의 불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영적인 것에 풍요롭기를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해야 하는데,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세상에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에만 우리의 모든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을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구주와 하나님께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찢으셨고, 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인식하고 못하고, 은혜를 구하기에 주저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것만을 얻기 위해서 눈을 벌겋게 해서 살아가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그곳에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치셨다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를 통하여 그들을 치셨고, 온갖 재난을 통해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는 실존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잠시는 큰 부요를 누리는 것같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고 있을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부요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멸망의 전조일 뿐입니다. 영적으로 경각심을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크게 망하게 됩니다. 앗수르의 공격 앞에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처참하게 일그러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긍심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세상을 구하며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을 그들을 치십니다. 그들을 갈갈이 찢어버리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부요함을 위해 헌신하지 못한 채, 세상의 것만을 간절히 추구하는 우리의 영적 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두려우신 심판을 피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다시금 치료와 위로를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찢으셨으나 낫게하시고, 치셨으나 싸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회개하는 자가 되어지면 그들이 어떤 죄악을 저질렀더라도 하나님은 다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아무리 더럽고 추한 것이라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용서하십니다. 그 모든 죄악을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큰 죄를 짓고,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세상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신세가 되어서 다시금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에 아버지는 탕자를 외면하거나 박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이었지만, 그가 돌아오게 되었을 때에 그의 모든 허물을 아버지는 감싸주었습니다. 그의 그의 굶주림과 헐벗음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어주었습니다. 새 옷으로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워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없이 세상에 미쳐 살았다 할지라도 지금이라도 주님께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금 놀라우신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용서해주실 뿐만 아니라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 우리의 삶을 영적으로 부요케 하시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개하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회개하면 질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면 문제가 사라지고, 슬픔 중에 위로를 받을 수 이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혀있는 담이 허물어지고, 하늘로부터 임하는 놀라운 영적인 축복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못했거나, 은혜를 사모함에 게으르고 세상만을 추구하던 우리의 모습을 철저하게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하나님께로 우리의 전 생애와 삶의 방향을 되돌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영적으로 부요케 하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3.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왜 그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까? 본문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호세아 6:2)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돌아오게 될 때에 회복하시고, 싸매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이틀 후에 살리시고, 제 삼일에 일으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기적같은 능력으로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신속하게 구원을 얻게 한다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2절에 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암시하며,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것, 우리가 어떤 죄를 범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영생의 축복으로 더하여 주시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희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싸구려 구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조건 예수 앞에 나오기만 하면 구원함을 얻는다고 하니, 구원이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자체의 가치를 값싼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댓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또 어떤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고, 풍성한 영적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은 바로 구원이 싸구려고, 천국이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엄청난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을 지불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결코 싸구려가 아닙니다. 천하를 두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핏값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고,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가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힘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풍요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힘입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부귀나 영화를 취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영적인 부요함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입술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실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의 놀라운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 세상의 풍요로움만을 추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면하던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은혜에 풍성하게 되기 위해서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세아 6:3)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면 우리는 모든 죄에서 용서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치료하심과 위로하심을 얻을 수 있게 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만을 가지고서는 초보의 신앙, 유치한 은총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성장해야 합니다. 보다 성숙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에 더욱 풍성한 가운데 있기를 위해서는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돌이키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와를 안다고 할 때에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d'y)라고 합니다. 이 말은 객관적인 사건이나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야다는 부부가 서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격적 친밀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속성을 갖고 계시는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하는 것 등등을 알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서로를 사랑함과 신뢰함으로 두터운 인격적 친밀함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욥기에 보면 하나님은 동방의 장부 욥을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회의에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욥을 신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욥 사이에는 긴밀한 인격적 교제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인격적 친밀관계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일컬어 하나님의 친구로 묘사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이런 관계에 있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숨기지 않는 사람,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매우 친숙한 관계에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돈을 사랑했습니다.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고,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증언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갖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우리를 삼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풍요롭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힘써 알아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친밀하게 되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친밀한 관계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자주 만나고, 하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세아 성경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향한 헌신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 때에,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가 되어질 때에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하게 되시고, 크신 복으로 함께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예배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되기를 시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품고 주님의 일을 위해서 힘써 동역자가 되어 헌신함으로 주님과 친밀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새벽빛같이 일정하신 하나님, 땅을 적시는 비와 같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빛을 비추시고, 풍성한 은총으로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윤택하게 할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은혜에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향해 우리의 믿음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욕심을 따라가던 우리의 옛 사람을 철저하게 포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 돌이켜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이제는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 기꺼이 동역자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새벽빛 같이 일정하시고,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의 삶에 은혜로 충만케 하실 주님께서 빈곤한 영혼을 풍요롭고 건강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 되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 온 교회 위에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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