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랑, 주의 복음 Introduction 요즘 목회자들이나 장로님들을 만나게 되면 가끔씩 교회를 어떻게 건축하게 되었는지, 혹은 교회가 어떤 시설을 갖추게 되었는지 하는 것에 관하여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도 교회를 새로 건축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건물이 노화되고, 여기저기에 물이 새고, 그 뿐입니까? 페인트도 벗겨지고.. 꼴이 말이 아닙니다. 손을 대려고 하니 막막하고, 안 대자니 답답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회와 성도들이 자랑하는 것이 기껏 교회의 건물이 얼마나 아름답고, 교회의 재산이 얼마나 되고, 또 교회에 어떤 편의시설들이 있는가? 성도들이 어떻게 복을 받았고, 또 성공하고 출세했는가? 하는 것 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좋은 것들, 그리고 성도들의 삶에서 얻어진 성공과 성과들은 자랑할만한 것이지만, 교회와 성도는 그것보다 항상 우선해서 자랑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자랑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랑할 만한 것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하면 세상의 모든 자랑거리들은 비록 자랑거리가 아닐 수는 없지만, 배설물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Main Subject 1.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랑하는 일을 위해서 그의 일생을 바쳤습니다. 사도행전 20:24절 말씀에서 그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사랑했습니다. 그 복음을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귀한 것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심지어는 자기의 생명도 복음을 위해서 사용할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생명을 바쳐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 즉 죽을 자리가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리 중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좋은 집에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도 중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다 바쳐서 헌신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있고, 그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을 바쳐 헌신할 일을 찾았습니까? 그리고 그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분명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돈이야 직장생활하는 사람이나, 또는 사업하시는 분에 비하여 많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늘 편안하게 놀고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 바쁘고 분주하게 지냅니다. 가고싶은 곳이 있어도 마음 편히 갈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제겐 생명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좋은 것을 취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바쳐 해야 할일은 오직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귀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감당하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을 바칠만한 일은 오직 하나 주의 복음 뿐입니다. 복음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건져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일생에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년에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인생의 참된 행복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데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바쳐 감당해야 할 일은 오직 복음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 그렇다면 우리가 생명을 바쳐 자랑해야 하는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본문의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로 복음의 내용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2.1.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에베소서 2:4)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심령들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살기 보다는 세상의 풍속을 따랐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았습니다.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시보다는 하나님의 원수로, 십자가의 반역자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천대받는 우리를 향해, 어느 누구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음탕한 고멜과 같은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세상을 따라가며, 세사에 한눈을 팔고, 세상이 주는 기쁨을 찾아 하나님을 쉽게 배신하는 영적으로 심히 더럽고 추한 모습이 아닙니까? 음란한 고멜보다도 더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영적 실존이 아닙니까? 탕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세상 좋다고 배은망덕하게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감히 하나님께 사랑을 요구할 수도 없고, 긍휼을 구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사랑의 손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2.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5~7)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인류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존재가 아닙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옥엘 가야 합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영원토록 계속되는 곳입니다. 조금의 인정도 없는 곳입니다. 손가락 끝에 묻혀서 떨어뜨려주는 물 한 방울의 자비도 용납이 되지 않는 곳입니다. 극도의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괴로움을 느끼는 것밖에, 그리고 그 고통으로 인하여 몸부림을 치며 절규하는 것 밖에 없는 곳입니다. 큰 호수에서 두 명의 여행자가 배를 타고 노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잔잔한 호수 위에서 한없이 즐거웠습니다. 주변의 경치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자기들의 여행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수 밖을 보니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배위에 있는 두 사람을 향해서 손짓합니다. 빨리 호수에서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경치를 두고 그냥 갈 수 없었습니다. 애써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호수를 노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앞에 엄청난 폭포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급히 노를 저어서 배를 돌리려 했지만, 이미 급물살에 말려들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폭포에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잔잔한 호수 위를 노니는 것처럼 평안할 수 있습니다. 권세도 얻고, 돈도 얻고, 즐거운 일들도 있으니 그저 행복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지옥이 없는 줄로 알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취해서 살아갑니다. 전도자들이 지옥이 있음으로 경고를 합니다. 그러나 애써 무시합니다. 괜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지옥문 앞에 이르러서는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망할 뿐입니다. 지옥의 고통속에서 영원히 비명을 지르며, 살을 찢는 고통으로 절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런 고통에 빠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우리를 건져 천국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실 때에 예수님 대신 풀려나온 강도 바라바는 그 곁에서 바로 나 때문에 저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탄식하면서 울었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라바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그는 강도이기에 마땅히 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라바는 건짐을 받고 애꿎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바라바는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기쁜 일이었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나 때문에 저 분이 죽었노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3.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8~9) 우리가 복음을 자랑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주어진 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하게 씻겨지고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 중에 자기 자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은혜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으로 자랑을 삼습니다. 오래 교회 다닌 이력서를 가지고 자랑을 삼습니다. 또 남다른 헌금과 헌신을 했던 것으로 자랑을 삼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과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간증하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구원이지, 우리의 어떤 공로에 의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랑을 삼아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건물이나 교회생활의 이력서, 또는 직분같은 것으로 자랑을 삼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은 오직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천국을 소유하게 하셨음을 인하여 자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을 복음 자랑하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그것을 최대의 기쁨이요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모습을 기억하고, 복음을 자랑함으로 바울의 행복과 영광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가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와 성도들도 힘껏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왜 부흥하지 않습니까? 왜 천국의 복음이 온 세상에 충만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세상 것을 자랑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하나님의 복음을 자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복음을 자랑합시다. 우리를 자랑하던 것, 눈에 보이는 모든 자랑거리를 뒤로 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우리의 가족과 친지,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자랑하시므로 모든 사람에게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도 크게 부흥하는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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