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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스바냐 3:16~17

Introduction

지난 월요일에 부산 대연동에서 식구가 단란한 행복을 누리며 살던 집에 끔찍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아빠와 고등학생인 큰 딸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엄마는 교회에 모임이 있어서 잠시 나갔고, 중학생인 둘째 딸은 친구집에 있었습니다. 집에는 6살, 5살의 어린 남매만 남겨져 있었는데 그 사이에 불이 난 것이었습니다. 불은 순식간에 집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말았습니다. 어린 남매는 불길을 피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남매를 잃은 부모의 슬픔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뉴스의 보도를 보니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들 부부는 싱크대 설치사업을 했었답니다. 그런데 2004년 부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집도, 상점도 다 잃고, 기초생활보도대상자가 되어 근근히 살아오다가 간신히 15평짜리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서 이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서 그들은 무척이나 행복했을 것입니다. 이제 고난은 끝이 나고 좋은 일들만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끔찍한 일을 당했으니 망연자실할 뿐인 것입니다.

뉴스의 보도에서 남매의 어머니는 교회의 모임에 갔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이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가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잘했는지, 못했는지에 대하여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일도, 아니고 평일, 월요일에 교회의 모임에 갔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에, 교회생활에 어느 정도 열심을 갖고 있었고, 신실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힘쓰고 있는 분임에 틀림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에게 이처럼 무시무시한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2년 전에 그 끔찍한 부도로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되면서 까지 근근히 모아 마련한 작은 아파트를 전부 태우고, 금쪽 같은 남매마저 앗아갔습니다. 아이들의 엄마가 다른 데 간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가서 봉사를 하고 있었던지, 아니면 성경공부를 하거나 성도들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도 너무 하시는 거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니고, 교회에 간 사람의 집에 그렇게 무서운 일을 당하게 하시는가?” 하는 생각이 울컥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금년 여름에 얼마나 많은 물 사고, 교통 사고들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뉴스 보도마다 교회 수련회를 갔던 아이들이 물 사고로 죽고,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족들의 슬픔을 말할 것도 없고, 교회는 복음 사역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외쳐보았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그 때 뭘 하고 계셨습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그의 교회와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은 맞습니까?” 하면서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Main Subject

1.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6절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스바냐 3:16)

여기에 보니 “그 날에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암시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도 성전이 있는 곳인 예루살렘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무서운 일이 일어납니다. 교회에도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오해될 정도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씀 드린 화재로 두 남매를 잃은 가정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끔찍한 상황이 우리 가운데 다가온다고 해도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무서운 고난이 다가와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찢어지는 가슴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참고 기다리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게 되면 낙심합니다. 좌절합니다. 신앙에 대하여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두려워 말고,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절대로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좌절해서도 안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힘이든지 모릅니다.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데도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풀리지 않습니다. 직장에 취직하려고 해도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결혼을 위해서 수년을 기도해왔지만 하나님은 외면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사업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자녀들도 바라는 대로 자라주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며 살아왔는데, 온갖 쓴 뿌리들이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좌절합니다. 신앙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회의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마음을 강하게 하고,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저는 다리로 곧은 길을 걷게 해야 합니다.

욥은 그의 인생에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한 순간에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욥의 아내는 절망했습니다. 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있다면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왔는데, 하나님이 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모든 것을 잃게 하겠느냐? 그러니 하나님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고통스런 인생 더 이상 살지 말고, 모든 것을 끝내버리자..’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절망입니다. 낙심입니다. 이해가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욥은 입술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오직 하나님께 찬송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이와같이 강건한 신앙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연약한 신앙으로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삶을 사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고난이 다가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다가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조롱하고 비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의 손을 늘어뜨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더욱 견고하게 주님을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왜 우리는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까?. 그처럼 잔혹한 고통 중에도 왜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7)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말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대의 사랑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고난도 기쁨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결코 회피하며 도망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함께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그곳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끔찍한 화재 사건으로 사랑하는 자녀를 잃어버린 그 현장에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그곳에 홀로 내팽겨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함께 계십니다. 남매를 잃은 슬픔으로 절규하며, 가슴 아파하며 실신하게 되는 그 현장에서 우리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고 차마 울 기운 조차 없어 참고 참았던 한 방울의 눈물을 떨며 훔치셔야 했던 그 아픔으로 그곳에 함께 계십니다. 함께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죄인인 인생의 모습이 이와같은 비극이다. 어떤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도 이보다 더 무서운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너의 이 절망을 위해서, 이 아픔을 위해서 내가 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너를 이 비참에서 구원했노라. 네 모든 절망에서 너를 구원하기 위해 나는 지금의 너보다 더 가슴 아프게 눈물을 참고 있노라.” 하나님은 말씀하시면서 고난 당하는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그 아픔의 자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구원하시는 주님으로, 영원한 천국을 가져다 주시기 위해서 아파하시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주님이 고난의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억지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극한 고통과 괴로움이 온 몸을 갈갈이 찢어도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기꺼이, 기쁨으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그 아픔 중에도 우리를 묵묵히 사랑하시며, 그 사랑으로 인하여 행복해 하시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아주 감동적인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지켜주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돌 하나가 날아와서 그 사람의 뒤통수를 때린 것입니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우리 주님께서 온 몸으로 그를 향해 날아오는 모든 돌은 막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향해 뒤를 돌아보시고는 “괜찮니? 작은 돌 하나가 네게 튀었나 보고나...” 하면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 절망할 수 밖에 없고, 어떻게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가 하면서 원망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일들 속에 우리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친히 고난 받으시는 주님으로, 또 아들은 그 고난의 현장에 내어주신 주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아파하시면서, 우리보다 더 큰 상처와 눈물을 감당하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비록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다가오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은 모든 인류가 당해야 하는 지옥형벌의 작은 그림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작은 지옥의 구름 속에서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그 아픔의 자리에서 십자가로 고난을 당하신 자기 아들의 희생의 아픔을 지니신 채,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위로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고난의 현장에 우리보다 더 가슴 아파하심으로 우리를 향해 구원을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비록 고난의 자리라도 우리와 함께 하는 자리라고 한다면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고난의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것 뿐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다시금 적극적으로 우리를 향해 사랑을 베푸십니다. 능력으로 도우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무능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고난이 오고, 교회가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무능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 절망인 바로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새로운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고난이 다가오게 되었을 때에,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고, 그보다 더 괴로운 지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장은 그렇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을 반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더욱 찬란한 보석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고난과 절망을 지나 우리의 인생을 지극히 아름다운 보석이 되게 하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진주는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그것은 주로 바닷가의 조개류에서 만들어집니다. 일부의 경우에는 민물의 조개에서 생성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라고 합니다. 바다의 진주 조개는 수심이 약 15m 정도인 곳에서 약 8cm 정도의 크기로 자라며 13년 정도 산다고 합니다. 진주 조개라 해서 다 진주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진주가 만들어지려면 조개 내부에 모래알이나 기생충 알과 같은 이물질이 들어와야 합니다. 조개 안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조개는 이물질을 감싸기 위해 체액을 분비하고, 분비된 체액이 쌓여서 단단한 껍질을 이루는 고통의 덩어리가 되는데, 이것이 진주입니다.
진주는 ‘아비큘레대’라고 불려지는 굴 속에서도 만들어지는데, 굴 속에 모래알이 굴러 들어오면 굴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나카’라는 물질을 생성합니다. 그리고 모래알을 둘러싸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흘러 나카가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진주는 더욱 커져 값진 진주가 됩니다. 작은 진주라도 수개월이 걸리고 어떤 진주들은 수년씩 걸려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굴 속에 들어오는 모든 모래알이 진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굴 자체의 선택에 따라 모래알을 그대로 놓아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굴이 모래알을 그대로 두면 굴은 결국 그 모래알 때문에 병들고 죽게 됩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고통스럽지만 ‘나카’를 생산해서 모래알을 둘러싸기 시작하면 드디어 고귀한 진주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것은 그것으로 절망하고 죽으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고,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주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닫게 되어지면 값진 진주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주님의 사랑을 잊고, 믿음을 저버리면, 결국 그 고난은 우리를 집어삼키고, 멸망에 이르게 할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무능하지 않으셔서, 우리의 눈물과 아픔을 하나님 나라에 진주보다 더 귀한 보석으로 만들어주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아픔과 눈물이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며, 또 열심을 다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섬기고 봉사했는데, 욥이 당한 고난과 같이 무시무시한 지옥의 불꽃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조차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네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고 우리를 조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환난이 다가오고 고난이 왔다고 해서 하나님이 무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고난의 현장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나는 너를 위해 더 큰 아픔으로 너를 사랑한다.” “네가 당하는 아픔과 괴로움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랑으로 너를 구원했노라.”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자리에서 십자가에 자기의 아들을 친히 내어주시기까지 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 할 것 없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 중에도 우리와 함께 있는 것으로 기뻐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절망의 순간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구원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난이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주보다 더 귀한 보석들로 세워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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