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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스도와의 연합

로마서 6:1~11

Introduction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삶에 크신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앞뒤좌우에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으로 인해 매우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이런 귀한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가장 출세한 사람이 누군 줄 아십니까? 접니다. (하하) 제가 태어난 곳에 가보니 정말 시골 촌동네입니다. 그런데 지금 서울 한복판에 와서 그것도 위대한 마포중앙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교회에서 너무나 좋은 성도들과 만나 교제를 나누고 있으니 세상이 부럽지 않을 만한 엄청난 출세를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성공은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엄청나게 출세한 사람입니다. 정말 좋은 배우자가 있고, 또 정말 좋은 성도들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인생의 좋은 파트너를 만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노 장로님께서 지난 주간에 이순테니스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했답니다. 65세 이상의 어른들이지만 대단한 실력들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우승 하기 전에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실력을 쌓기 위해서 레슨을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복식 테니스이기 때문에 파트너를 잘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파트너가 테니스를 잘 치는 사람이라면 우승이 한결 쉽답니다. 그러나 파트너가 시원치 않으면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고, 실력을 쌓아도 우승하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테니스 뿐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인생에 좋은 파트너가 있기를 바랍니다.

관포지교를 나눌 친구, 서로 신뢰함으로 사랑할 수 있는 아내와 남편, 함께 마음을 맞출 수 있는 삶의 좋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아무리 멋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큼 이생과 내생에 가장 멋진 파트너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참된 믿음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와 좋은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인생 최고의 행복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송가의 작시자는 고백합니다.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연합하는 것보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로 연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웃음을 잃어가는 이 시대 속에 참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교회에서 나와 저희 집까지 가는 길에는 원불교 교당이 있습니다. 어느날엔가 원불교 교당에 현수막이 크게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저는 그 글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도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수고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축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너나 할 것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인간의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인류는 누구나를 불문하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진노의 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어떻게 이깁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율법마저도 죄를 이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율법도 죄를 더하게 할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20절 말씀에 보니 율법에 가입한 것은 죄를 더하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이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며, 우리의 인생을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천주교에서 행하는 고행이나, 보속(補贖)과 같은 선행도,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이나, 적선(積善) 같은 것도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생각합니다.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회개 자체가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금식하며 통곡한다고 해도 우리의 죄악이 정결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수고와 헌신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며, 절망적 상황에서 축복과 기쁨이 가득한 행복의 나라로 인도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속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죄에서 구원함을 받게 되는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힘이나 공로 때문입니까? 인류가 하나님 앞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입니까? 교회를 부흥케 하며,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부흥케 하는 것도,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구원을 얻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는 결코 우리의 죄악을 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악의 힘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해서, 우리를 사망으로 이끌어가고, 심판으로 몰아가며, 결국은 지옥의 형벌을 받고 말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죄의 압제를 극복할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는 죄보다 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20b절에서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난해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말씀을 기록하고 난해했기에 로마서 6:1절에 와서는 그러므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라고 반문하면서 그럴 수 없느니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충만하게 됩니까? 그렇다면 바울이 반문한 대로 우리는 계속 죄를 지으면서 은혜를 더욱 많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본문에 대한 탁월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깨닮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넘치게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해석은 죄가 아무리 더욱 많아져도, 심지어는 율법을 통해서 죄가 밀려오게 되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보다 더욱 강력하다. 더욱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이 두 해석은 모두가 신뢰할 만합니다.

짙은 잉크가 병 속에 있으면 그것은 새까만 잉크일 뿐입니다. 어디에서도 그것은 새까만 잉크입니다. 그런데 태평양 바다에 그것이 뿌려지면 이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립니다. 흔적도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까맣고 더러운 죄를 지었어도, 태평양보다 더 넓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총의 바다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은혜의 바다에 잠기게 되기만 하면 모든 죄악이 사라집니다. 모든 심판이 사라집니다. 모든 진노와 형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래적 절망 가운데 있는 인류에게는 무어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힘입어 자유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와 상관없이 죄악 된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늘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주홍 같은 죄악도, 진홍 같은 죄악도 흰 눈보다 양털보다 더 희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유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은혜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다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는 무작정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교 12신조에서는 “성령께서 은혜의 직분을 행하실 때에 은혜 베푸시는 방도는 특별히 성경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막무가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십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또는 성례와 기도를 통해서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모하고, 성례에 참여하며,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은혜를 허락하시며,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죄에서 벗어나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2.1.

본문 3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로마서 6:3)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죄에 거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세례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죄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언급한 바와 같이 진실한 믿음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운데 역사하게 되고,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대한다고 하는 사람이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은 논리 모순입니다. 그것은 배부르기를 원하는 사람이 밥을 안 먹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싶다는 사람이 옷을 세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절망적인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힘입어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부끄럽다고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례 받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마치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가 자신의 결혼식에 사람을 초청하여 축복을 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와 행복을 힘입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세례를 받지 않는 분들은 다음기회에 꼭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체험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원래 씻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독교라는 종교에 입교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례는 자신의 죄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던져 맡기는 것입니다. 주홍 같고 진홍 같은 죄들을 자기가 끌어안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시며, 죄용서를 선포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통곡하고 있을 때에 베드로는 “너희가 각각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사도행전 2:38)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야만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죄사함도 받고, 성령의 충만함도 얻을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례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은혜의 방편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어집니다.

본문에서는 세례가 왜 축복의 통로가 되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4~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로마서 6:4~5)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세례를 받는 즉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악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버립니다. 그리고 세례와 더불어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와 선하신 통치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백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례가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은 바로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가 복의 원천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5~39)

세상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끊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에게서 어느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를 사모한다면,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크신 은혜를 받고 행복하시기를 원한다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회개함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눈과 같이 희어질 것입니다. 양털 보다 더 희게 될 것입니다. 세례받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를 향한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세례가 아무런 의미없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토록 보장하시고, 지켜주시는 사랑의 확인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세례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그 은혜에 늘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하신 분들은 세례에 참여함으로 주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죄사함은 기쁨과 영육간에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세례받음에 합당한 삶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끊임없이 공곱됩니다. 세례는 한 번 받는 것이지만, 세례에 합당한 삶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세례받은 자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쟁 고아가 어느 날 부잣집 양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어디서 오늘 밤을 지샐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멋진 옷과 맛있는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고, 꿈에도 보지 못한 고급 장난감이 가득합니다. 꿈과 같은 나날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뭔가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냄새 나고 지저분한 거리가, 아무데서나 먹고 자던 옛날이 그리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하고 화려한 침대를 빠져 나와 마구간에서 잠을 잡니다. 지저분한 환경과 악취가 오히려 익숙하여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끝까지 이처럼 과거의 습관을 고수한다면 양부모는 그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이희녕/우리 주님과 함께 누리는 맑은 영성의 삶)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이제는 그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세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그에 합당치 못한 삶을 산다는 은혜의 기쁨을 누리기 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자신의 삶에도 결코 기쁨이 찾아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받은 자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6~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로마서 6:6~7)

여기에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된 사람의 삶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 가운데 더욱 풍성하게 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A.

첫째는 세례받은 자는 그리스도께서 죄를 죽이신 것처럼 죄를 죽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을 때에 전인격적인 회개를 고백합니다. 그러나 한번의 고백으로 우리의 삶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가운데 계속해서 공급되어야 합니다. 은혜가 중단되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세례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도 끊임없이 역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의 세례 이후에도 이상하게 죄의 욕망이 우리 안에 살아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끊임없이 기도의 생활을 계속해 나아가는데도 죄의 유혹은 잠시도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온 세상에 가득한 마귀의 간계는 우리가 믿음의 삶을 계속하고, 세례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우리의 신앙을 무너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기 위해서 눈을 떼지 않는 것처럼, 악한 마귀도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우리의 영혼으로 능력을 잃고, 실패하게 하기 위해서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죄의 유혹이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옛 사람의 죄된 습관이 살아나려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함으로 그 은혜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기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죄를 죽이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죄는 가만히 두면 안됩니다. 적극적으로 죽여야 합니다. 퇴치해야 합니다. 적당히 함께 공유하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못된 질병과 함께 일생을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암세포와 함께 친구삼아 인생을 살 수 없는 것처럼, 죄악은 철저하게 괴멸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우리 안에 능력이 살아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세례자들이 죄악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액세서리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의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눌릴 수가 없습니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서 무시무시한 항암주사를 맞는 것처럼, 아니 그 이상의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죄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살아 올라오는 죄성을 철저하게 퇴치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주님의 놀라우신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되 죄에 대하여 만큼은 능력있는 전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온갖 유혹과 타협의 손길에 절대로 넘어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멸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음을 기억하며,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이 예견된다고 해도 죄죽이기에 앞장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은혜가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둘째로 세례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죄를 죽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에서 세례에 합당한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세례를 받음으로 육신의 욕망은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죽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셔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하고, 주님처럼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예수님의 생명으로 부활한 자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세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그 은혜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 이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또는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우리는 마땅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착한 행실과 진실한 언행을 통해 힘써 복음을 전하므로 세례에 합당한 자로 살아,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은혜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은혜 없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축복을 누리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의 가장 존귀한 금은 보석보다, 아니 그보다 더 귀한 건강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하늘과 땅을 통틀어 우리가 사모해야 할 유일한 것은 하나님과 그의 은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받은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세례 없이 은혜가 있을 수 없고, 세례에 합당한 삶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례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가 무가치한 싸구려가 아닙니다. 지극히 귀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나를 연결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 영생을 얻게 하는 능력있는 약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에 참여함으로 그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세례에 합당한 삶을 결단하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없이 공급하시는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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