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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성찬에 대한 합당한 이해

성찬에 대한 합당한 이해

고린도전서 11:23~29

Introduction

고린도 교회는 분쟁이 많은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서 복음을 받았고, 아볼로 같은 위대한 사역자에게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인 사도 베드로와도 교분을 갖고 있던 교회였습니다. 이처럼 좋은 사역자들로 통해 주옥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한 교회였지만, 그 교회에 언제부턴가 사랑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자기들의 권익과 영적 우월감을 과시하며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은사를 가지고 다투었습니다. 때로는 교회의 다양한 권리와 직분을 놓고 다투었습니다. 서로가 자기들에게 더욱 차원높은 영적인 권세가 있노라며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회를 바라보면서 사도 바울은 너희를 결코 칭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도라고 한다면 마땅히 교회의 유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해롭게 하고 있으며, 서로가 파당을 나누어서 싸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이 다투는 것입니다. 서로 화목하고, 우애있게 살아가야 하는 자녀들이 철천지 원수마냥 만날 때마다 싸움질만 하고 있다면,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부모의 마음은 결코 편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의 유익을 위해서 힘쓰므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모이기만 하면 서로 잡아먹으려고 으르렁 거린다고 한다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크게 실망하시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또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함으로 만나면 행복하고, 헤어지면 또 보고싶은 그런 아름다운 축복의 관계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크게 기뻐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사랑이 좋은 것인 줄 다 압니다. 우리 노 장로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덧없이 지나갑니다. 사랑하면서 살아가기에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아껴 사랑해야 합니다. 절대로 파당을 짓거나 싸움질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랑이 충만해야 하는 교회 안에 싸움질이 생깁니다. 성도가 성도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모두가 사랑이 가장 좋은 것임을 다 알고 있는데 왜 이런 미움과 다툼이 일어납니까? 본문 고린도전서 11:18~19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8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19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고린도전서 11:18~19)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고, 파당이 나누어져있음을 안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한국어 개역성경에서는 본문의 의미가 애매합니다. 그런데 원문성경을 참조해 보면 본문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 중에 편당이 있음이 분명한데, 그것은 바로 너희가 사람들 가운데서 옳다고 인정함을 받고자 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왜 분쟁이 일어납니까? 사람에게 인정함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힘있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다른 사람들보다 큰 은사가 있음을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다투었습니다. 그들은 3년씩이나 주님을 따라다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일을 위해서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부모도 떠나고, 가정도 떠나고, 돈도 버리고, 사업장도 버렸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꿈을 다 포기했습니다. 오직 주님을 삶의 목표로 삼고 따라온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대단한 신앙의 사람들이 왜 자기들끼리 다투었습니까? 높이진 인간 예수에게 잘 보여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높아지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아진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높이는 반면에 상대방은 낮춥니다. 비하합니다. 때로는 평가 절하시킵니다. 결국 이것은 다툼을 일으킵니다. 교회 안에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영적인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고, 은사가 있다고 인정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더 높은 지위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파당을 짓게 되고, 또 교회 안에 분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고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나를 더 높이려고 하는, 다른 사람에게 더 인정 받으려고 하는 못된 마음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높여 주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더 인정해주는 넓은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행복한 교회가 될 것이고,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파당을 짓고 싸움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고린도전서 11:20)

분쟁하는 교회를 향해서 바울은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 꾸짖고 있습니다. 교회법에 권징조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로서 신령적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고, 벌하며,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도록 지도하는 것입니다. 권징조례에 의하면 성도가 성도로서 합당한 본분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될 때에 교회에서 출교하거나 또는 수찬정지를 하게 합니다. 수찬정지라는 것은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교인이라 하더라도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으로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너희는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기껏해야 성찬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뭐가 대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시무시한 형벌입니다. 세상의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받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만큼 무거운 형벌입니다. 성찬의 의미를 바르게 안다면 차리리 세상에서 무기징역을 받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형벌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찬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A.

사도 바울은 성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23~2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3~26)

사도 바울은 성찬을 말하면서 그것은 주께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찬은 사람이 정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심으로 허락하신 은혜의 약속입니다. 세상의 권세자의 약속도 귀한 일이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축복을 약속하심으로 명하시며,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함부로 하거나 멸시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명하신 그 성찬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는 십자가의 사랑을 인하여 주님과의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멀리 떨어져 있고, 도무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던 우리가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되고, 주님과 연합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주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언약입니다. 언약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두 사람 사이의 약속입니다. 둘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주님은 성찬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과 축복으로 연결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찬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친히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제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성찬 가운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강림하시며, 놀라운 은혜를 공급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성찬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합당한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 교회 안에 분쟁이나 다툼이 생겨 성찬에 합당치 못한 자가 한 사람도 없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본문은 성찬의 두번째 의미는 성도들의 거룩한 사랑의 연합을 말합니다. 본문 2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6)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본문을 잘 보셔야 합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오실 때 까지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재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세상으로 끝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언젠가 주님이 재림하십니다. 성도들은 그 때까지 성찬을 행하며 주의 죽으심을 기념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어질 천국의 잔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찬은 바로 우리 주님의 재림과 함께 주어질 천국의 잔치를 소망하며, 예표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천국에 가서 영원히 함께 만나고 교제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천국에서만 그런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찬을 나누면서 서로를 향한 사랑과 화해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찬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성찬에 차별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별이 있었습니다. 파당을 따라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성찬의 본질을 해친 것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엄중한 책망을 받게 되고, 성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책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찬은 사랑입니다. 성도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밥상 공동체, 같은 천국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천국과 같이 행복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가정에 우리 주님이 주시는 천국이 임재하기 위해서 성찬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기념하며, 다시금 오셔서 우리에게 천국을 허락하실 주님을 소망 중에 기대하게 될 때에 천국의 기쁨이 임합니다. 행복이 넘쳐나게 되어있습니다.

Conclusion & Blessings

고린도교회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망각하고, 성도를 향한 주님의 사랑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찬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파당을 짓고,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다투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것은 성찬에 합당치 못하다고 선언합니다. 사랑이 없는 성찬은 죄악을 먹고 마시는 것일 뿐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믿음의 응답과 성도를 향한 사랑의 실천으로 은혜와 축복이 약속된 성찬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의 성찬을 대하게 됩니다. 본문 27절 말씀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8절에서는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떡과 잔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성찬은 우리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떡과 잔을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영원히 천국의 잔치에 참여케 하는 약속이 있는 거룩한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분쟁이나 다툼을 모두 제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자랑함으로 형제를 평가절하하며, 스스로 높아지기를 꾀하는 어리석음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성찬으로 통하여 허락하시는 은혜와 천국의 기쁨을 영원토록 누리는 저와 여러분, 온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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