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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주 안에서 하나라

주 안에서 하나라

에베소서 2:12~18

Introduction

매년 12월이 되면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아마도 그것이 인지상정인 것같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12월이 되면 왠지 숙연해지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목회를 성실하게 잘 했는지? 성도들 앞에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서 있었는지? 부끄러운 모습은 없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잘했던 것은 기억이 나질 않고 부족했던 것만 자꾸 생각이 납니다. 미성숙한 신앙인격을 보이기도 했었음이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2006년의 새해를 허락하시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중대한 삶의 목표를 갖게 하셨습니다. 사랑으로 하나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되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볼 때에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부끄러운 모습으로 고개를 숙여야 합니까?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의 목전에서 어떻게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 부끄럽고 부족함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를 돌아볼 때에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한 마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온갖 갈등의 고리가 끊어지고, 서로를 사랑하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제 남은 12월에는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됨에 부족한 모든 것을 완전히 몰아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교회와 성도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있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고, 성도들이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된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교회를 공격한다고 해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삶에 욥의 고난과 같은 무서운 고난을 가져온다고 해도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만 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고백했던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과 하나되고,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뭉쳐지게 되면 능력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큰 태산이라도 저 바다 깊은 곳에 던져 넣을 수 있게 됩니다. 어떤 풍파에도, 아무리 견고한 성도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하나됨도, 사랑도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이 모든 것이 한낱 유행가 가사에 담겨진 넉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하나됨이나 사랑함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역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으로 하나되는 역사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를 일컬어 도전과 응전의 연속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인류발전의 근간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역사는 평화의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는 끊임없는 싸움의 현장입니다. 도무지 평화란 찾을 수가 없는 곳입니다. 왜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까? 성경은 여기에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평화가 사라지고, 사랑으로 하나됨이 사라지는 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죄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사랑이 사라지고, 평화가 깨지는 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못된 죄악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죄는 이처럼 하나됨을 깨뜨립니다. 평화를 깨뜨립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여기에는 도전이니 응전이니 하는 것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제공하신 모든 것으로 부족함이 없이 만족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하나되었을 뿐 아니라, 세상과도 하나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은 하나됨으로 인한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교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욕심이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가 인류의 마음에 들어오게 되자 그 때부터 평화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생겨났습니다. 그 뿐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간은 자기들끼리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가운데 있게 됩니다. 아담이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여자가 나로 범죄케 했습니다. 아담은 하와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축복인 평화를 잃게 된 것에 대하여 분노했습니다. 하와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하던 그 여인을 향해서 저주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하와의 입장에서도 화가 났을 것입니다. 내가 실수를 했다손치더라도 남자가 되어서 그럴 수 있느냐? 무슨 남편이라는 자가 그렇게 쪼잔할 수 있느냐? 그릇이 밴댕이 속알딱지만하다.고 하면서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고 말았습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고 뱀에게 원망을 쏟아놓았습니다. 내가 뱀 때문에 이런 미움을 받게 되었다. 고 짜증을 냈습니다. 결국 평화롭던 세상에 분열과 갈등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세상이 완전히 서로 다른 분열의 세상, 전쟁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가인과 아벨의 때에는 형제간에 살륙하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죄가 찾아오니 하나됨이 깨어졌습니다. 죄가 찾아오니 평화가 사라졌습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에베소서 2:12)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너희는 언약백성이 아니었다. 너희에게는 소망도, 하나님의 축복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과거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축복과는 상관이 없고, 하나님과 하나되지도 못하고, 또한 거룩한 백성과도 거리가 멀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들에게는 하나됨의 은혜와 기쁨, 능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투고 갈등하고 싸우는 지옥과 같은 삶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에베소에 살고 있던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을 비롯한 모든 인류가 동일하게 이와같은 상황에 있었습니다. 옛날에 유행했던 복음성가 가사처럼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에 소식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세상 두려움 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렇습니다.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분열과 갈등 전쟁이 있을 뿐입니다. 어디에서도 참된 평화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UN으로 모이고, 온갖 평화를 위한 기구들이 만들어져도 그것은 새로운 양상의 전쟁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되기를 바라십니까? 하나님과 하나되고, 또 성도들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귀한 교회를 만들어가기를 바라십니까? 우리의 가정과 직장이 사랑으로 하나된 아름다운 관계들을 만들어가기를 바라십니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죄악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죄된 욕망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 차 있어서는 결코 하나됨을 이룩할 수가 없습니다. 죄의 결과는 분열과 갈등, 그리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낱낱이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됨의 아름다운 교제를 이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하나님과 하나될 수도 없었고, 어떤 사람과도 사랑함으로 하나되는 평화로운 관계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되고, 또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하나되는 평화의 관계를 이룰 수 있게 하셨습니다. 본문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에베소서 2:13)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전에는 멀리 있던 너희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될 수도 없었습니다. 이웃이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평화의 관계를 이룰 수도 없었습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축복과도, 평화와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전쟁과 싸움 뿐인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가까와지게 되었습니까?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모든 인생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됨과 평화의 비밀을 잃어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평화와 행복, 그리고 사랑으로 말미암은 하나됨의 관계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과 평화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깨어진 인간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되고,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사랑의 하나됨, 그리고 평화와 축복의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의 피흘리심이 우리로 하나됨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누구나 평화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고, 이웃과 하나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아오게 될 때에 전에는 하나님과 멀리 있었고, 전에는 참된 평화를 모른 채 전쟁의 고통에 있어야 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모든 갈등과 싸움이 사라지고, 참된 평화를 이루고 하나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하나됨의 능력과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됨의 열매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희생으로 댓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저 우리의 목에 걸고 다니는 장식품 정도가 아닙니다. 교회를 상징하는 간판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형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였습니다.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인류 최악의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되고, 성도들이 하나되는 행복한 관계를 이룩하고, 평화 가득한 천국공동체를 만드시기 위해서 친히 이 저주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희생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또한 성도와 성도간에 균열된 간격을 하나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저주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십자가는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더하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사이를 연결짓고, 평화하게 하는 은혜의 곱하기가 된 것입니다. 전에는 갈갈이 끊어져 있었던 우리의 관계를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갈갈이 찢으심으로 우리를 연결하시고,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그 마음 속에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너희는 하나라 말씀하실 때에,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우리 교회를 향해서 마포중앙교회는 하나라고 선포하실 때에 이 말씀은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핏값을 기억하시면서 눈물을 머금고 우리를 향해서 선포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희생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고, 또 우리에게 화평을 주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향해 성도가 서로 이 사랑으로 하나됨일 이루어 가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워진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교회는 내가 십자가를 지면서 하나되게 한 교회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하나됨을 잃지 않도록 하라. 그렇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하나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절대로 하나됨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교회에는 분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의 값으로 하나된 교회 안에 다시금 죄와 욕심이 들어와서 교회를 파괴하며 황폐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사랑의 수고로 인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과 하나되고, 성도가 하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세워지고, 하나된 교회이기에 어떤 것으로도 교회를 파괴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간혹 정의의 이름으로 교회를 파괴하려는 악한 사탄의 계략이 있습니다. 얼마나 정당해 보입니까? 정의의 이름으로 교회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도의 속임수입니다. 어떤 것도 교회를 파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간의 연합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핏 값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성도들이 연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린도전서 3:17)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교회는 분열될 수 없습니다. 다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그 분열과 다툼의 단초를 제공하며, 교회를 깨뜨리는 사람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관계를 깨뜨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되어야 합니다. 생각이 맞지 않고, 의견이 다르고, 때로는 생활방식이 다르더라도 그것 때문에 다투고 나뉘어서는 안됩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주어진 하나됨이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됨을 이루며 살아야 할 것입니까? 본문의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몇 가지 단초를 제공해 줍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을 본받아서 우리가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거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됨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못된 자아가 살아서 역사한다면 그것은 분열과 다툼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가운데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막힌 담을 깨뜨려야 합니다. 자존심으로 옹벽을 치고, 자기의 신분과 권력으로 높은 울타리를 치면 어느 누구가 그에게로 다가가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성소의 휘장을 찢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깨뜨리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과 하나됨을 이룰 수 있었고, 또 사람과의 하나됨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죄인이라고, 돈없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며 하나됨을 거절한다면, 반대로 돈많은 사람이라고 질시하고 미워한다면 사랑의 하나됨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선입견과 편견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관계를 파괴하는 막힌 담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안에 하나됨의 행복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째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18절 말씀에서는 이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됨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주장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하나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연합과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어떤 담도, 벽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 교회에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허물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성도들 각자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사랑의 수고를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교회는 능력가운데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교회는 하나됨의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간격을 좁혀주셨습니다. 성도와의 관계를 회복케 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귀중한 하나됨의 관계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와 같이 다시 범죄함으로, 욕심과 이기심에 이끌려서 천국의 행복한 관계를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교회를 하나되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한 것처럼, 오늘 우리는 서로의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써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하나되고, 하나됨의 능력과 권세로 교회 안에 천국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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