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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믿음의 계단

믿음의 계단

로마서 10:9~13

Introduction

주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여러분의 모든 기도와 소원을 들으시고, 영육간에 강건함과 하늘의 평강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앞뒤좌우에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때문에 행복합니다. 당신 때문에 행복합니다.

교회는 항상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게 되면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에게 약속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을 받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에서 용서함을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육간의 못된 질병에서 깨끗하게 치료함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의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인생의 무거운 짐이 가벼워지고, 지기에 쉬워진다고 했습니다. 자유와 해방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과 은총으로 말미암은 천국의 기쁨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런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고, 구원의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것이 한두 해 된 것도 아닌데 능력이나 기쁨은 고사하고 여전히 질병으로 아파해야 하고, 또 여전히 세상의 문제로 지치고 힘든 축 처진 어깨를 가져야 합니까? 왜 아직도 행복은 저 멀리 우리와는 상관없이 있는 것만 같습니까? 성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라면 무슨 이유 때문에 구원의 능력과 기쁨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야고보 선생은 믿음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산 믿음이고, 하나는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런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구원의 기쁨이 사라진 것이 믿음이 적은 연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분명히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능력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죽었거나, 심히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 역사하는 큰 믿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었거나 적은 믿음으로 무능하게 살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장부의 강건한 믿음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원의 능력과 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믿음은 분명히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일점일획의 변함이 없는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그것이 잘못된 믿음이라면 아무런 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9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로마서 10:9)

여기에서는 바른 믿음이 무엇인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좋은 분으로 생각합니다. 현명한 선생으로,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생각을 합니다. 인류 4대 종교의 창시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봅니다. 객관적으로는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인 불신앙적인 평가요 판단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은 인류 사대 성인 중의 한 분이 아닙니다. 만유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천지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적 섭리하심을 벗어나서는 결코 온전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예수님께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만유의 주인으로 믿게 될 때에 그를 통하여 능력이 역사합니다. 기적이 나타납니다. 구원의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곳은 심히 화려한 곳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섬기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정치적인 권력의 위대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아사랴 빌립보를 다니시다가 갑작스레 질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을 받은 제자들은 세간에 퍼져있는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다양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대단한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결코 감동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슬퍼하셨습니다. 주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 때 베드로가 신속히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제서야 주님은 크게 만족하시면서 베드로를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줄 것인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리라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받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바른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인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되 위대한 선생이나 랍비로 알아서도 안됩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결코 구원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결코 천국의 열쇠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유의 주인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우리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구원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 때 구원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있게 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혹 우리의 믿음이 철학적, 또는 합리적 믿음은 아니었습니까? 단순한 윤리적 선생을 찾아 나선 사람으로서의 믿음은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그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아무런 역사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과 땅의 참된 주권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과 구원, 치유와 회복, 그리고 영원한 행복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열쇠를 품고 다함이 없는 큰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에 다니는 분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분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믿음을 갖고 있기는 해도 그 믿음의 수준이 결코 높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능력없이, 감격없이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10)

2.1.

예수를 믿음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마음으로 믿는 단계입니다. 어떤 분에게 전도를 했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마음으로는 다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많이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쟁이들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꽤 근사한 믿음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수준 높은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비겁한 신앙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군병에 의해서 잡히셨을 때에 제자들은 한결같이 주님을 떠나 도망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큰 소리 치던 사람들이 온데 간데 없이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을 받게 될 때에 보잘 것 없는 여종의 물음에 벌벌 떨면서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저주하며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노라고 서로가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근사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두려움이 다가왔을 때에, 환난이 다가왔을 때에 비겁하게 다 도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의로움의 인정함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구원의 능력과 기쁨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의 재림의 때에 천국에 들어갈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상급이 있는 천국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천국의 축복을 미리 앞당겨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귀신을 물리치고, 질병을 물리치고, 온갖 문제의 태산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버리고 참된 평안과 행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우선적으로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분명합니다. 마음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는 정도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천국은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천국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축복의 삶에는 실패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만족할 수 있는 승리의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2.

믿음의 두번째 단계는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구원은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감격을 말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기쁨과 감격으로 두 눈에 눈물이 고이게 되고, 은혜로 인하여 심장이 떨리게 되는 영적 감동의 단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입으로 고백할 때에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무엇으로 창조하셨습니까? 생각으로 창조했습니까? 아닙니다. 말씀으로 창조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말씀입니다. 생각으로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의 역사는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고백의 선포가 천지와 만물을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말을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방정맞은 말을 하게 되면 그대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매사에 입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말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바꾸는 예언적 명령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독한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은 분명히 살아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에 축복의 말을 담게 되면 그 말 역시 살아서 모든 악한 것을 물리치고, 주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향해서 늘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향해서 늘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을 향해서 늘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것이 보이더라도, 때로는 죄악된 것이 보이더라도 우선적으로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축복이 모든 부족함을 채우고,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잠언 27:21절 말씀에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 합시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잠언 27:21)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가는 것은 비판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독설이 아닙니다. 칭찬과 축복입니다.

사람의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능력 있는 말을 가지고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주님을 고백하게 되면 그 때부터 그 고백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을 얽어 매고 있는 모든 것을 풀어헤치기 시작합니다. 메마른 심령에 은혜의 단비가 내립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용솟음칩니다. 알 수 없는 행복이 가슴을 가득히 채웁니다. 지긋지긋한 질병이 물러갑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이 깃털처럼 가벼워집니다. 넘치는 기쁨이 있게 됩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때엔 난 노래 하네 사랑을 노래 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엔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주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내게 구원을 주셨노라고 고백하게 될 때에 그 때에 구원의 참된 기적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뭐 고백 한 번 했다고 무슨 그런 큰 일이 일어나겠는가? 비웃을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실험을 해 봤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참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해 보았습니다. 그 때 마음을 다해서 고백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구원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왜 이런 능력이 나타납니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을 마음 속에 가두어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자주 고백해야 합니다. 수시로 고백해야 합니다. 길을 가면서도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주님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병상에서 주님이 나를 치료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알 수 없는 천국의 행복이 우리 마음을 가득히 채우고 구원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2.3.

믿음의 세번째 단계는 손과 발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말에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말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은 헌신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사랑을 명령하실 때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 3:1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뛰어난 믿음은 입술의 고백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교를 각오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통치 하에서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청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온갖 박해를 받고 심지어는 순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폴리갑이라는 초대교회의 순교자는 로마의 군병들에게 잡히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신 분이셨기에 군인들이 그를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영감,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한 마디만 하세요. 나가서 예수를 믿든 교회의 지도자가 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앞에서 한 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놓아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폴리갑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평생에 자신을 한 번도 부인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이제 와서 내가 부인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예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의 길을 갔습니다.

초대교회에 입술로 주를 고백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를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생명을 다한 헌신과 충성으로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막8:34, 눅9:23) 그렇습니다. 순교적 헌신이 뒤따르지 않고서는 결코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기적을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생명을 건 모험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모험이 없이는 결코 큰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과 능력을 힘입고,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천국의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생명을 건 헌신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올인(All in)하는 것입니다. 전부를 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믿음의 최고봉에 올라 주님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의 밤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운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밤하늘은 심히 아름답고 별이 쏟아지는 듯했을 것입니다. 낮에 있었던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과 교훈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이 덮치더니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레 몰아닥친 풍랑에 제자들은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풍랑을 헤치고 나가기 위해서 온 힘을 쏟았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았습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꼼짝 없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 앞에 희끔한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위로 걸어오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제자들은 유령이다! 소리쳤습니다. 희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바다의 유령이 자기들을 죽이기 위해서 나타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니 안심하라. 두려워 하지 말라”하는 주님의 조용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정녕 주님이시거든 나를 물위로 걸어오라 말씀하시옵소서.”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풍랑이 이는 그 바다 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풍랑을 두려워 하다가 물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손을 잡아 올리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나무라셨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위로 오르자 풍랑은 잠잠해졌습니다.

베드로는 풍랑 이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올인할 때에는 그 무서운 풍랑 위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풍랑이 높이 이는 것을 보고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물에 빠져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의 최고봉에 올라서게 되면 큰 풍랑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기적과 능력이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하게 되었더니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고, 주저하게 되었더니 그 때부터 침몰입니다. 낭패요, 절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우리는 믿음의 산자락에서 허덕이고 있지 않습니까? 순교적 헌신은 고사하고, 작은 헌신에도 갈등하며, 번민하며, 정말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실까 의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주님께 올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풍파가 몰아친다고 해도 두려워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그렇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지신 십자가를 지고 기꺼이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헌신의 큰 믿음을 간직하게 될 때에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삶에 충만케 될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기적과 능력은 오직 예수를 믿을 때에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바른 신앙의 기초 위에 서 있지 못하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일 뿐입니다. 아무런 능력도 역사도 기적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어야 합니다. 세상의 위대한 선생이나 종교지도자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결코 아무런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천국의 열쇠를 얻을 수 있는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바른 믿음 위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의 믿음이 바른 믿음이라고 해도, 약하고 무능할 뿐이라고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의 크기만큼 기적과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왕에 신앙생활을 하는데 큰 믿음으로 큰 능력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으로 믿는 단계를 지나 입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입술로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의 헌신으로 우리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크게 인정을 받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큰 기적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악한 마귀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독하게 고약한 질병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모진 고통과 큰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역사를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항상 간증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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