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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주 예수를 믿으라

주 예수를 믿으라

사도행전 16:25~32

Introduction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세상의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교회는 정의로워야 하고, 세상에 소외된 곳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을 살피며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마음에 안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또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찾아와 위로를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온 세상에 복된 소식을 전해 주는 곳입니다. 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고장 난 나침반처럼 흔들리고 있는 인생들에게 참된 복이 무엇인지 전하여 주고 가르쳐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배에 참여하신 분들은 이미 복 받을 준비가 된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복은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수복(壽福)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복이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원로 장로님은 이미 연세가 100세이십니다. 이쯤이면 오래 사신 것이 아닙니까?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헌신예배를 오셨습니다. 장로님의 연세가 100세가 되었다고 하니 깜짝 놀라셨습니다. 그 때에 우리 김 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 당회실에 들어오면 100세는 그냥 삽니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장수의 복이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원로 장로님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이런 장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는(富)의 복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면 잘되고,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이 잘 됩니다. 승진도 잘 됩니다. 농사를 지으면 곡식이 잘 됩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하는 일마다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에 참여하신 분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하는 일들마다 형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다못해 개를 키워도 새끼를 많이 낳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는 강녕(康寧)의 복입니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몸이 건강하지 않고, 마음이 지옥이라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비록 허름한 누옥에 산다고 해도, 가진 것이라고 숟가락 몽둥이 하나가 전부라고 해도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다면 그는 복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질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 예수의 능력으로 다 치유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못된 질병이 다 물러가고 육신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괴롭히는 고통스러운 문제들이 다 풀려 해결되고,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번째는 유호덕(攸好德)입니다. 이것은 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도덕적으로 높은 인격을 갖추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이왕 이 땅에 왔다가 가게 되는데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으며 살게 되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런데 인품과 덕성이 아름다워서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고, 많은 권세를 얻게 된다면 이는 분명히 큰 복일 것입니다. 마지막은 고종명(考終命) 이라 하여 자기의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치매와 같은 끔찍한 병에 걸려서 고생하다가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잠자듯이 자기의 모든 생애를 마감하고 돌아갈 수 있다면 이것은 복 중에 복일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들이 한결같이 이런 인생의 큰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장수의 복도, 부귀의 복도, 건강의 복도, 유호덕의 복도 고종명의 복도 다 받아 누리며 행복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본문에는 행복을 찾아 성실하게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였습니다. 가족들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는 책임감을 갖고 성실히 감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상관이 당시에 빌립보를 여행 중이던 바울과 실라를 잡아다가 매질을 한 후에 그에게 데리고 와서는 이 두 사람이 풍속을 어지럽히고, 많은 죄를 지었으니 옥에 가두고 든든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간수는 상관의 명령에 성실하게 순종했습니다. 본문 24절 말씀에 보면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간수는 자기의 본분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게으르지도 않았습니다. 도덕적으로도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간수는 자기의 행동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고백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며 또 그와 같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두 사람이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감옥에서 찬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감옥 안에 찬송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저 친구들 매를 많이 맞아서 돌았구나.. 간수 역시 그와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정말 이상한 친구들이네.. 뭐 좋은 일이 있다고 노래를 한단 말인가? 노래 소리가 점점 무르익어갈 때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옥터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감옥의 문이 벌컥벌컥 열렸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죄수들을 묶어 두었던 모든 족쇄가 풀어졌습니다. 한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자다가 지진소리에 놀라 깬 간수는 신속히 감옥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옥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레 짐작했습니다. 모든 죄수들이 다 도망갔겠구나.. 죄수들이 도망갔으니 나는 불명예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자결하여 명예롭게 죽자.. 그리고 칼을 들어 죽으려 했습니다. 큰 절망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인류의 실존적 고민이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착하게 살고, 성실하게 살고, 남들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면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성공할 수도 있고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천국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그런 생각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착하고, 성실한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본문에 등장한 간수도 사람들 앞에서는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가정에서는 신실한 부모요, 형제요, 자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임하게 될 때에 성실한 간수였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을 뿐입니다.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살면 행복할 자격이 있는 것 아닙니까? 참된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고, 그런 사람이 천국에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모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참된 행복을 주장할 수도 없고, 당당히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 이사야라는 선지자가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민족의 죄악을 꼬집어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외쳤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았습니다.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도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행복할 수 있는 권세, 또는 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보좌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뵈었을 때에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토록 깨끗하고 의롭고, 정의감에 충만하고 도덕적이었던 사람이었던 선지자마저도 하나님 앞에서 결코 행복을 청구할 수도,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망할 수 밖에 없음은 탄식했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죄가 없고, 또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성실하게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죄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권세를 가져도, 돈을 가져도, 명예를 가져도, 건강을 가져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되어도, 또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일 뿐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도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고사하고, 모든 것을 절망의 지옥에 들어갈 뿐입니다. 이것이 모든 인류의 실존입니다.

2.

감옥의 지진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면서 간수는 자신의 실존을 느꼈습니다.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바울과 실라는 간수를 만류합니다. 선행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 심판하심 앞에서는 천국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지만, 살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간수는 바울에게 묻습니다. 30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사도행전 16:30)

온갖 방법을 다 강구해봐도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천국의 길은 없습니다. 이런 절망을 깨달은 사람은 어디에 구원의 길이 있느냐고 물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심판하심 앞에서 모든 인생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실존적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의 문을 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어떻게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착하게 산다고 해서 죄가 씻어집니까? 유대인들은 율법의 말씀을 따라 착하게 살기를 힘썼습니다. 말씀을 따라 십일조의 헌금도 드렸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세번씩 기도했습니다. 철저하게 경건했고, 도덕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유대인들을 보시면서 “화 있을진저 회칠한 무덤이여..” 그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경건하며,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같지만, 그들의 중심에는 여전히 죄악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행동, 정의로운 실천으로도 죄악이 깨끗이 씻어지지 않습니다. 선행은 우리의 죄를 씻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그대로 두고 선행으로 그것을 가리기 위해서 포장할 뿐입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을 뿐입니다. 도무지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피를 흘림으로 죄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성경 히브리서는 말씀합니다. “피흘림이 없는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그렇습니다. 피흘림으로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것도 죄없는 의인의 피를 흘림으로 죄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인생의 죄값을 지불할 수 있겠습니까? 피흘림으로 인류의 죄값을 지불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또 하나의 비극입니다.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이 첫째 비극이요, 죄값을 지불할 능력이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이 둘째 비극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하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영원한 절망과 심판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그냥 지켜 보고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천국의 시민이 되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언젠가 드라마 임꺽정이라는 것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임꺽정의 산채에 그를 돕는 참모들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참모의 아내가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아내를 사랑했던 그는 아내의 시신을 붙들고 통곡을 합니다. 사람들이 만류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아내의 시신을 매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관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무덤 속에 내려진 아내의 관 위에 서서 엉엉 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도 같이 묻어줘... 모든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면서 나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통곡만 하고 있습니다. 그 때 임꺽정이 한 마디 했습니다. 그래, 같이 묻어줘라.. 그리고 흙을 퍼 넣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관을 붙들고 있던 그 사람... 어떻게 했겠습니까? 깜짝 놀라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관을 버리고 뛰어나왔습니다. 무사히 장례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같이 죽을 수는 없습니다. 같이 묻어버리려고 하면 얼른 도망쳐 나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 깨끗케 하시기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핏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받게 됩니다. 죄로 말미암은 모든 절망에서 벗어나서 참된 구원과 행복과 천국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모든 죄에서 깨끗케 되기를 바랍니다.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로 인한 절망의 늪에서 해방되어 자유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시는 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대신 죽어주신 예수를 믿으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영생과 구원의 길, 천국에 들어가는 축복의 길은 오직 예수를 믿는 것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사도행전 16:31)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예수를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인생들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죄와 사망의 늪에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스스로 천국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고 하면서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처럼 착하게 산 사람이 천국에 못 간다면 누가 천국엘 갈 수 있겠느냐? 예수쟁이들도 보니까 죄짓고 살고, 나쁜 짓 많이 하고 사는데, 그 친구들은 천국엘 가고 도덕적으로 나쁜 짓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착하게만 산 나같은 사람, 법 없이도 살 나 같은 사람이 천국에 못간다면 말도 안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영화관에 들어가서 영화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착하게 살면 영화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화관 앞에서 내가 착하게 살았으니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누군가 혹 그렇게 주장한다면 모두가 미쳤다고 말할 것입니다. 요즘 직장에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직장에 입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착하게 살기만 했으면 직장에 무작정 들어갈 수 있습니까? 난 착하게 살았는데 왜 날 입사시켜주지 않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영화관에 들어가려면 영화티켓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면 회사가 요구하는 모든 요건에 합당하고, 회사가 채용을 결정해 주어야 합니다. 실력이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착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작은 일에도 그런데 하물며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착한 것, 또는 실력이나 기술로 됩니까?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천국입장 티켓을 가져야 합니다.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고, 그 핏값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사도행전 4: 12절 말씀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말씀하고 있으며, 다른 성경에서는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도, 돈을 많이 벌어도, 어느 종교에서처럼 산중수도를 하거나 고행을 해도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방법은 하나 오직 예수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구원을 크게 세가지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3.1.

첫째는 치유입니다. 못된 질병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을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뿐입니까? 이 땅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질병을 겪고 살아갑니다. 이 모든 질병에서 깨끗이 치료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의사를 찾아갑니까? 물론 찾아가야 합니다. 의사의 진료와 처방에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치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비록 의사의 손을 통해서 치료의 역사가 진행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질서와 원리에 따라 치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기적적인 능력으로 질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러므로 병에서 고침을 받기 원하시는 분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시므로 암을 고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심으로 심장병도 고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시므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도 고침을 받고 영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2.

두번째로 구원은 자유함을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사랑함으로 결혼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그 사람이 짐이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자식이 짐이 됩니다. 때로는 부모가 짐이 됩니다. 인생의 무게가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인생들을 향해서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모든 문제와 근심이 사라지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짐이 사라집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이후에 아내는 도망갔지요, 누님은 중풍을 맞고 쓰러져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지요.. 여동생은 정신병자가 되어 병원신세를 져야만 하지요. 인생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죽고 싶었습니다. 그 때 한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장로님이 그분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 당신 그러니까 예수 믿어야 돼 그 말씀을 듣고 교회엘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일년이 지났습니다. 그분의 삶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돌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님이 중풍병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고, 여동생이 정신병원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 속에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있었습니다. 그 무겁던 인생의 짐이 가볍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모든 일을 감당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중에도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로 내 영혼을 덮으소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과 초조함 속에 살아갑니까? 요즘 결혼이 한창입니다. 왜죠? 길일이기 때문이랍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두려워 합니다. 이사갈 때도 길일인지 흉한 날인지 물어봅니다. 결혼할 때도 사주를 보고 궁합을 봅니다. 왭니까? 세상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두렵게 사는 이유는 그들의 인생의 짐이 무겁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이런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인생의 자유함이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멍에에서 자유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해방감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

3.3.

세째로 구원은 행복을 의미합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결혼하는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 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법니다. 불행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행복을 얻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행복이 누구에게서 오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을 때에 행복이 찾아오게 되고, 영원히 기쁨으로 웃을 수 있게 되어집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행복을 채워주십니다. 가정에 행복을 주십니다. 직장에 행복을 주십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모두가 행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는 질병도, 또 우리의 삶을 괴롭게 하는 온갖 문제들도 다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찬송가의 작시자가 고백한 것처럼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얻겠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런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예수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잠시왔다가 가는 것 뿐입니다. 헛될 뿐입니다. 세상의 많은 것을 가져봐야 일장춘몽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기 원하신다면 예수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고,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질병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의 쓴 뿌리인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자유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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