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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완전한 순종

완전한 순종

신명기 1:34~39

Introduction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복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복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복과 저주의 길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신명기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저주를 받는지에 관해서 여러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핵심은 바로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순종하므로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았던 것처럼, 모든 일에 순종함으로 영육간에 넘치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 39년 10개월의 세월을 보내고, 모압 평지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지난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광야를 지나 가데스바네아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 땅을 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이 좋은 땅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강대한 아낙자손이 버티고 있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다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 자신들의 모습을 보니 메뚜기 같을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상기시키고, 광야의 길을 가는 동안에 자기 아들을 안는 것같이 않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울며 통곡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34~3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4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가라사대 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신명기 1:34~35)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원망하는 말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어떤 사람에게 임하십니까? 그 입술에 파숫꾼을 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아가십니다. 약속하신 은혜를 거두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하고, 불평하므로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가나안의 유업으로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부정적인 고백대로, 불순종함으로 외쳤던 탄식처럼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복받을 말을 하게 되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말하면, 그 말대로 하나님을 무섭게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을 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제사제도를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 율법의 말씀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했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들이 맡아서 관장하게 되었고 나머지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들은 성전 안에 허드렛 일을 하게 했습니다. 성전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거나 온갖 잡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고라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세와 아론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들은 형편없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만 그렇게 살게 된다면 참을 수 있는 일인데, 자기들의 자손들도 영영히 그런 허드렛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을 규합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에게 도전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제사장과 같은 폼나는 일은 너희들만 맡고, 우리는 시덥지 않은 일이나 해야 하고, 너희들의 종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항했습니다. 저는 고라의 반란이 이해가 됩니다. 자기 뿐 아니라 자기의 자손들이 대대로 그와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할 때에 원망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또 당연한 항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에 대하여 분노하셨습니다. 땅이 입을 열어 고라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삼켜 버리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무심결에 쏟아내는 불순종의 말 한 마디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똑똑함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의 불순종이 교회를 무너지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게 합니다. 그러나 비록 어리석은 것같아도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질서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에서 불순종의 거역하는 말을 제하여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에 항상 가 되셨던 것처럼 순종의 말,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순종의 말 한 마디로 하나님의 진노는 사라지고,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되며, 성도들의 가정마다 크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을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 가운데서 단 한 사람 갈렙은 칭찬하시고, 그에게는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3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신명기 1:36)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진노하셨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갈렙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그 밟는 땅을 갈렙과 그의 모든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갈렙은 순수한 혈통의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합니다. 그는 비록 이스라엘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지만, 족장이었지만 순수한 유대혈통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유대민족으로 귀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축복을 주실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분적으로, 혈통적으로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노하셨지만 이 사람 갈렙에게 만큼은 축복하셨습니다. 그를 이스라엘의 어떤 사람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갈렙의 순종을 온전한 순종, 또는 완전한 순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축복된 사람은 온전한 순종, 또는 완전한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순종이란 어떤 것입니까?

2.1.

첫째는 어떤 환경에서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순종하지 않고, 하기 쉬운 것에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때로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곳은 심히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정탐군이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그곳에는 아낙자손이 있었습니다. 장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힘이 있는 용사였습니다. 무장한 정예병이었습니다.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은 견고하고 높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싸워 이길 수 있는 그런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설사 죽는다고 해도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승리는 바로 여기에서 나타납니다. 환경 때문에 순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도 주님의 명령이라면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순종하는 것은 완전한 순종이 아닙니다.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순종할 때에 이것이 완전한 순종이 되어집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막강한 군사력과 위대한 전략으로 세계를 정복할 때의 일입니다. 알렉산더 왕이 작은 무리의 군대를 이끌고 견고하게 성을 쌓은 한 도시에 이르렀을 때 그 도시의 왕을 불러내어 항복하고 그 도시와 군대를 알렉산더에게 바치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러자 그 왕은 큰소리로 웃으면서 그 작은 군대로 무슨 싸움을 할 수 있겠느냐며 항복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자신과 그 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겠다고 하며 군대를 일렬로 세운 후 낭떠러지의 꼭대기를 향해 행진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병사들은 아무 두려움이나 거침이 없이 한 사람씩 낭떠러지로 행군해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열 명의 병사가 떨어져 죽은 후 알렉산더 왕은 행군을 멈출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저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도자의 명령에 따르는 군사들에게는 아무리 강한 요새도 견디지 못할 것을 깨닫고 항복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백성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환경을 극복하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순종할 수 있는 일에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할 수 없는 일에도, 도무지 순종할 수 없을 것같은 명령에도 순종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때에 하나님은 놀라운 승리와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승리와 축복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축복의 시대를 이루게 되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완전한 순종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모든 것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셨는데, 우리가 못 순종할 까닭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명하시는 모든 말씀 앞에 아낌없이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질서를 통하여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마음을 다한 온전한 순종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

둘째는 완전한 순종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때에 그는 모세가 명한 대로 행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순종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명한 대로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완전한 순종은 말씀 앞에서 자기의 뜻이나 주장, 전문적인 지식, 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차 한 잔 마시고 싶으니 끓여 오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생각하기를 쓰디쓴 차보다는 시원한 배가 좋을 것 같아서 배 한 개를 사다가 드렸는데 아버지는 다시 차를 끓여 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또 다시 생각하기를 '맛있는 홍시는 좋아하실 것이야'하고 차보다 이 홍시가 더 좋으니 잡수어 보시라고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요구하는 것은 하여 주지 않고 원치 않는 것만 가져오느냐?" 하고 책망한 것입니다.

완전한 순종은 명한 대로 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경험에 의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합니다. 말씀이 명한 곳에 가고, 말씀이 서는 곳에 서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 멈추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행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렇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자존감도 있으니 매사에 내 생각을 앞세웁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께서 교회의 질서를 통하여 명하시는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당회의 결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목사의 목회적 지도를 가볍게 여깁니다. 그리고 자기의 경험과 철학, 전문지식, 또는 이성적 판단을 우선시 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교회의 질서를 좌지우지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한 순종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게 된 것이 그의 기술로 잡은 것입니까? 그는 그의 기술로 고기를 잡아보았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했습니다. 경험을 동원했고, 지식을 동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협의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두배에 가득히 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내가 밤이 맞도록 수고했으나 한 마리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는 자기에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의지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같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완전한 순종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미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도 내 자신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우리의 믿음직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믿음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특히 하나님께서 교회의 질서를 통하여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구체적으로 철저하게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왕위를 빼앗기고,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갖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도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순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하신 바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순종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순종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아말렉의 왕을 살려두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의 좋은 가축을 살려두었습니다 계산이 빠른 순종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불순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그는 왕위를 빼앗기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완전한 순종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첨가하거나 삭제해서는 안됩니다. 내 판단을 유보해야 합니다. 내 철학도 경험도 다 유보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명하심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을 왜곡하거나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내어 놓으신 뜻을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은 갈렙의 앞길을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3.

세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희망을 품고,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확신 속에 미래의 축복을 눈으로 보며 지금 겪어야 하는 순종의 고통을 감사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비전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권고하면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모든 일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순종은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희망이 있고,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헌신하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억지로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이 온전한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렙은 기쁨으로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억지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을 소망하며, 그것을 기뻐하며 순종을 결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 그를 인정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도 이처럼 기쁨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가 불순종 때문이었음을 말씀하시고, 오직 한 사람, 갈렙은 완전한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밟는 땅은 모두 그와 그의 자손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순종을 배워야 한다. 갈렙의 순종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너의 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케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신명기 1:38)

하나님은 갈렙의 순종을 말씀하시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은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완전한 순종의 사람이 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는 여호수아가 담대하게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순종으로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불어넣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순종의 사람들로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용기를 잃고, 낙심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한 순종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배짱 좋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교인들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생활을 잘하게 되면, 목회자는 배짱이 생깁니다. 담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늘 속을 썩이게 되고, 근심을 거리를 가져다 주면, 목회자는 주눅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잘난 자식을 둔 부모는 어디서나 큰 소리를 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자식을 둔 부모는 자식 이야기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향해서 담대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따름처럼 여호수아를 따랐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귀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존중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 완전한 순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결코 담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여호수아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 그 말씀은 무엇을 반증합니까? 바로 여호수아가 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려워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여호수아가 용기를 내고, 힘을 내고, 가나안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 죽기를 다하여 완전한 순종을 이루었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수아가 담대하게 되고, 가나안 정복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완전한 순종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완전한 순종을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을 특별한 방법으로 들으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우신 사역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라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목사를 담대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담대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지도력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사람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갈렙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유일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분이나 출생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어떤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완전한 순종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갈렙의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어떤 환경에서도 심지어는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 중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갈렙을 향해 네가 밟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계획한 모든 일이 성취되고, 더욱 풍성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완전한 순종을 영적 지도자를 담대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므로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을 담대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사라지고, 영육간에 풍성한 가나안 땅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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